로마서 서론및 복음의 이해 (롬1:1)
본문
1).“예수 그리스도”라는 두 이름.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중요성. 그리스도는 메시야인데 이는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망으로서의 구원주이시다. 바울 서신에는 어디나, 말하자면 고린도서, 갈라디아서, 에배소서 등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두 이름을 사용한것이다. 바울 사도가 확신하고 사명으로 안 것은 그 예수님께서 기다리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임을 로마 교회 뿐만 아니라, 만방에 증거하고 가르치고 확신케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본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을 때에는 남에게 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렇게 쓰고 말했을 때마다 그 마음속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주인되시고 동시에 그가 그리스도의 종이었음을 항상 뼈저리게, 가슴에 스며들게 고백했던 것이었다고 하겠다.
2) 바울(Παυλοs)이란 이름 사울(Σαυλοs)이었던 자가 사도행전 13:9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 불리워졌다.사울이란 말은 구약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사울’인데 그것이 뜻하는 바는 “요청한다,”“명령하다,”혹은 “(돈을) 빌린다”는 등의 뜻을 하고 있으며 그 원형(原形)은 “샤알”이다. 그런데 사울이란 이름은, 베냐민족속에서 온 이스라엘의 처음 왕의 이름이었음을 우리는 잘아는 바이다(삼상14:47f).“사울”이란 낱말이 뜻하는 것은 “크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울이란 이름에서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은 바울이 회개와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울이 바울이라고 이름을 변경 한 것에는 그의 회개와 직접적 관계가 있어 그 이름들이 뜻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찰스 하지(Charles Hodge)의 주석에 의하면, 구약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경사나 흑은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이름을 변경하는 예가 있다고 설명하고는 창17:5에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었고, 또 창32:28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된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 명예가 새롭게 주어졌을 때도그러하다 창41:45에서 요셉을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단1:6-7에서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샤랴는 아벳느고라고 하였으며, 라고한다.
사울이란 이름이 바울로 변경된 것에는 그의 회개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여, “성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8:4에서 바울은 그의 자랑과 교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복되었을 때에 사울보다도 바울이라 불리워 지기를 원했다고 말하였다. “요한 캘빈”에 의하면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위에서 말하는 것들과 좀 다른 의견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사울이란 크고 높은 이름의 내용에서 바울이란 “작다”는 바를 말함으로써 겸손을 말하려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가 전에 유대교에 충실함으로써 유대인들과 접촉했던 처지가 바뀌어져서 이제는 이방인들과 접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이름인 사울보다 오히려 바울이란 헬라 이름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시대는 로마 제국의 통치 하인지라, 바울 사도가 각 교회에 편지한 것은 거의가 다 이방 나라요,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있는 교회였으므로 로마나 헬라식의 바울이란 이름이 더욱 유리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란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편견적 견해를 삭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점에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교회 역사에 권위가 높은 “필립 샤프"(Phiiip Schaff)에 의하면,바울은 히브리인 뿐만 아니라 로마위 시민권을 소유한 자이며, 히브리말의 사울이라는 이름이 있는 동시에 일찍부터, 말하자면 그가 회개하기 이전부터 헬라와 로마말에 적합한 바울이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축하여, 그가 이방인 들과 접촉했을 때마다 곧 이방 교회들에게 편지했을 때에 접촉하기가 부드럽고 적응되기 쉬운 이름인 바울을 사용했으리라고 말하고 있다(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1962, Vol.1,p286). 여기에 관한 우리의 결론적 견해는 아무튼 바울이란 이름은 그의 회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한 후에 불리워진 것을 안다.
3).“종 바울” 바울 사도가 쓴 편지마다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란 문구를 읽게 된다. “요한 캘빈”은 그의 주석에서 말하기를 “종”이란 말은 “신하” 또는 “사역자”(Minister)라는 뜻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다고 밝히면서 덧붙여 말하기를 “종”이라고 한 말에 과분한 주석과 관심을 피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또 “하지”(C.Hodge)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를 의지하는 자(엡6:6)를 뜻한다고 하고는 수1:1에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일러서 모세가 하였던 임무를 대행시킬 때에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라고 말씀하였으며, 또 사42:1에서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 라고 한 것을 들고 있다. 또 “안더스 나이그렌”(Anders Nygren)의 로마서 주석에 의하면 “종”이란 칭호를 쓴 것은 바울 사도의 깊은 확신과 자기의 사도된 것은 다른 사도들과 다름없는 동등 권위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자기의 종됨을 강조함은, 그의 생애 내용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섬겼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나이그랜”의 요점은, 바울 사도의 신앙 인격을 고조하고 거기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보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처지는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을 때는 쉽게 그리고 형식적 관계로 말한 것이 아니라, 신앙 인격의 깊은 내적 고백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확신했으므로 그 명칭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모되었음을 그의 생애의 내용으로써 우리가 알게 된다고 하겠다(행9:23ff.,14:19-23;롬14:7,8)
4)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κλητοs αποστολοs). “안더스 나이그렌”에 의하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을 말함이요, 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강조한 것은 자기자찬(自己自讚)이 아니라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임명하셨다는 권위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 “하지”(Hodge)는 말하기를 “부르심을 받음”(κλητοs)이라고 함은, “불리웠고”(Called),Ehsms “선택되었고”(Chosen), 또 “지정되었고,”“임명되었다”(Appointed)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였다. 이런 사도직은 사람에게서나 또 다른 세력에게 의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고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갈1:1)이라고 말했다(비교:고전1:1;딛1:1). 헬라어 “클레토스 아포스톨로스”(κλητοs αποsτολοs)를 번역하여 “소명된 사도”(召命使徒:Called Apostle)와 “사도되기 위하여 불리어진”(Called to de apostle)으로 구별하여 설명하라는 이도 있다.(참고 켈빈의 주석을 영어로 번역한 자,요한 오우엔:켈빈의 로마서 주석 주혜를 보라). 이 점에 있어서의 우리의 견해는 “소명된 사도” 혹은 “사도되기 위하여 불리워진 자” 라는 표현의 구별은 언어학상의 구별이나, 혹은 문구적 구별이지 그것이 결코 내용의 깊은 차이는 없는 것이라고 보는 바이다. “불리워진 사도”나 “사도로 불리워진 바”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는 같은 내용의 뜻을 말한다고 보는 바이다.
5). “택정함을 입었으니.” 택정함을 입었다 함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라고 하였다. 곧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하였는데, 영어 성경(K.J.V.)에는 “Separated unto the Gospel of God"라고 하였다. 영어 성경이 번역한 것은 곧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별되었으니”라고 하는 뜻이다. 헬라어 성경 원문에는, 우리말의 “택정함을 입었다”는 낱말이 “αφωρισμενοs”(아포리스메노스)라고 기록되었는데, 시형(時形)은 주격,단수, 남성, 완료, 분사이다. 그 낱말의 뜻은 “짜르다,”구별하다. “:다른 사람들 에게서 사이를 끊다”는 등의 뜻이며, 곧 마13:49에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και αφοριουσιν τουs πονηρουs εκ μεσου των δικαιων)라고 한 뜻과 같은 것인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멀리하고”(눅6:22)라 번역된 말인데, 그 뜻은 “절교”(絶交)라는 말이며 또 “선출되다”는 말이니 , 이렇게 사용된 성경은 우리의 본문을 포함하여 갈1:15에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라고 한 말씀과, 또 행13:2의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한 말씀 중에 “따로 세우다”는 말의 뜻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문에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 헬라어의 “아포리스메노스”(αφωρισμενοs)가 뜻하는 바를 모두 내포(內包)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고 보는 바이다. 곧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것은 세상 사람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멀리했다는 뜻이니, 곧 자신이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8)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택정된 것은 세상의 것들에게 매력을 갖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들과 멀리한다는 것이며, 말하자면 세상 친구들과는 교제를 단절한다는 뜻이니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폿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이라고 고백하고있다. 바울 사도가 택정함을 입없다는 것은 이전에 하던 것을 버리고, 멀리하고, 단절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2) 바울(Παυλοs)이란 이름 사울(Σαυλοs)이었던 자가 사도행전 13:9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 불리워졌다.사울이란 말은 구약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사울’인데 그것이 뜻하는 바는 “요청한다,”“명령하다,”혹은 “(돈을) 빌린다”는 등의 뜻을 하고 있으며 그 원형(原形)은 “샤알”이다. 그런데 사울이란 이름은, 베냐민족속에서 온 이스라엘의 처음 왕의 이름이었음을 우리는 잘아는 바이다(삼상14:47f).“사울”이란 낱말이 뜻하는 것은 “크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사울이란 이름에서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은 바울이 회개와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울이 바울이라고 이름을 변경 한 것에는 그의 회개와 직접적 관계가 있어 그 이름들이 뜻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찰스 하지(Charles Hodge)의 주석에 의하면, 구약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경사나 흑은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이름을 변경하는 예가 있다고 설명하고는 창17:5에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었고, 또 창32:28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된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 명예가 새롭게 주어졌을 때도그러하다 창41:45에서 요셉을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단1:6-7에서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샤랴는 아벳느고라고 하였으며, 라고한다.
사울이란 이름이 바울로 변경된 것에는 그의 회개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여, “성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8:4에서 바울은 그의 자랑과 교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복되었을 때에 사울보다도 바울이라 불리워 지기를 원했다고 말하였다. “요한 캘빈”에 의하면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위에서 말하는 것들과 좀 다른 의견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사울이란 크고 높은 이름의 내용에서 바울이란 “작다”는 바를 말함으로써 겸손을 말하려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가 전에 유대교에 충실함으로써 유대인들과 접촉했던 처지가 바뀌어져서 이제는 이방인들과 접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이름인 사울보다 오히려 바울이란 헬라 이름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시대는 로마 제국의 통치 하인지라, 바울 사도가 각 교회에 편지한 것은 거의가 다 이방 나라요,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있는 교회였으므로 로마나 헬라식의 바울이란 이름이 더욱 유리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란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편견적 견해를 삭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점에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교회 역사에 권위가 높은 “필립 샤프"(Phiiip Schaff)에 의하면,바울은 히브리인 뿐만 아니라 로마위 시민권을 소유한 자이며, 히브리말의 사울이라는 이름이 있는 동시에 일찍부터, 말하자면 그가 회개하기 이전부터 헬라와 로마말에 적합한 바울이란 이름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축하여, 그가 이방인 들과 접촉했을 때마다 곧 이방 교회들에게 편지했을 때에 접촉하기가 부드럽고 적응되기 쉬운 이름인 바울을 사용했으리라고 말하고 있다(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1962, Vol.1,p286). 여기에 관한 우리의 결론적 견해는 아무튼 바울이란 이름은 그의 회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한 후에 불리워진 것을 안다.
3).“종 바울” 바울 사도가 쓴 편지마다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란 문구를 읽게 된다. “요한 캘빈”은 그의 주석에서 말하기를 “종”이란 말은 “신하” 또는 “사역자”(Minister)라는 뜻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다고 밝히면서 덧붙여 말하기를 “종”이라고 한 말에 과분한 주석과 관심을 피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또 “하지”(C.Hodge)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를 의지하는 자(엡6:6)를 뜻한다고 하고는 수1:1에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일러서 모세가 하였던 임무를 대행시킬 때에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라고 말씀하였으며, 또 사42:1에서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 라고 한 것을 들고 있다. 또 “안더스 나이그렌”(Anders Nygren)의 로마서 주석에 의하면 “종”이란 칭호를 쓴 것은 바울 사도의 깊은 확신과 자기의 사도된 것은 다른 사도들과 다름없는 동등 권위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자기의 종됨을 강조함은, 그의 생애 내용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섬겼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나이그랜”의 요점은, 바울 사도의 신앙 인격을 고조하고 거기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보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처지는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을 때는 쉽게 그리고 형식적 관계로 말한 것이 아니라, 신앙 인격의 깊은 내적 고백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확신했으므로 그 명칭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모되었음을 그의 생애의 내용으로써 우리가 알게 된다고 하겠다(행9:23ff.,14:19-23;롬14:7,8)
4)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κλητοs αποστολοs). “안더스 나이그렌”에 의하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을 말함이요, 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강조한 것은 자기자찬(自己自讚)이 아니라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임명하셨다는 권위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 “하지”(Hodge)는 말하기를 “부르심을 받음”(κλητοs)이라고 함은, “불리웠고”(Called),Ehsms “선택되었고”(Chosen), 또 “지정되었고,”“임명되었다”(Appointed)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였다. 이런 사도직은 사람에게서나 또 다른 세력에게 의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고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갈1:1)이라고 말했다(비교:고전1:1;딛1:1). 헬라어 “클레토스 아포스톨로스”(κλητοs αποsτολοs)를 번역하여 “소명된 사도”(召命使徒:Called Apostle)와 “사도되기 위하여 불리어진”(Called to de apostle)으로 구별하여 설명하라는 이도 있다.(참고 켈빈의 주석을 영어로 번역한 자,요한 오우엔:켈빈의 로마서 주석 주혜를 보라). 이 점에 있어서의 우리의 견해는 “소명된 사도” 혹은 “사도되기 위하여 불리워진 자” 라는 표현의 구별은 언어학상의 구별이나, 혹은 문구적 구별이지 그것이 결코 내용의 깊은 차이는 없는 것이라고 보는 바이다. “불리워진 사도”나 “사도로 불리워진 바”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는 같은 내용의 뜻을 말한다고 보는 바이다.
5). “택정함을 입었으니.” 택정함을 입었다 함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라고 하였다. 곧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하였는데, 영어 성경(K.J.V.)에는 “Separated unto the Gospel of God"라고 하였다. 영어 성경이 번역한 것은 곧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별되었으니”라고 하는 뜻이다. 헬라어 성경 원문에는, 우리말의 “택정함을 입었다”는 낱말이 “αφωρισμενοs”(아포리스메노스)라고 기록되었는데, 시형(時形)은 주격,단수, 남성, 완료, 분사이다. 그 낱말의 뜻은 “짜르다,”구별하다. “:다른 사람들 에게서 사이를 끊다”는 등의 뜻이며, 곧 마13:49에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και αφοριουσιν τουs πονηρουs εκ μεσου των δικαιων)라고 한 뜻과 같은 것인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멀리하고”(눅6:22)라 번역된 말인데, 그 뜻은 “절교”(絶交)라는 말이며 또 “선출되다”는 말이니 , 이렇게 사용된 성경은 우리의 본문을 포함하여 갈1:15에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라고 한 말씀과, 또 행13:2의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한 말씀 중에 “따로 세우다”는 말의 뜻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문에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 헬라어의 “아포리스메노스”(αφωρισμενοs)가 뜻하는 바를 모두 내포(內包)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고 보는 바이다. 곧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것은 세상 사람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멀리했다는 뜻이니, 곧 자신이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8)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택정된 것은 세상의 것들에게 매력을 갖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들과 멀리한다는 것이며, 말하자면 세상 친구들과는 교제를 단절한다는 뜻이니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폿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이라고 고백하고있다. 바울 사도가 택정함을 입없다는 것은 이전에 하던 것을 버리고, 멀리하고, 단절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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