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성읍 (수21:1-45)
본문
지난주에는 20장에서 도피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오늘은 21장에서 레위인들의 성읍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장에서 보았던 도피성들은 21장에서는 모두가 레위인의 성읍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용도 20장과 21장이 서로 비슷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도피성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예수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레위인으로서 부름받아 살게 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레위 사람들의 족장 즉 어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어른들에게 나아 왔습니다. 이들이 나아 온 시기를 그냥 "때에 나아 왔다"라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그들이 나아 온 시기를 이스라엘이 땅을 지파대로 다 나누고 또 도피성도 지정되고 하여 땅 나누기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무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이 나아와서 말하는 투로 보아 위급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 어른들이 나아 온 이유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즉 레위인들은 자기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을 기업으로 주지는 않았지만 자기들이 살 성읍과 가축을 먹일 들을 주라고 하셨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 나누기가 끝이 나고 도피성들이 지정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살 성읍과 들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된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가만히 그냥 있다가는 자기들이 살 성읍도 들도 받지 못하고 끝나겠다는 위기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레위인 어른들이 나아 와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약속된 성읍과 들을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자기들의 기업에서 48 성읍을 레위인에게 주었습니다. 오늘 21장에는 이것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딱딱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대단히 재미없는 기록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주의하여 살펴보면 여기에도 어떤 의미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들어 있는 그 의미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레위인에게 48성읍이 주어졌다는 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레위인에게 48 성읍이 주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성읍들이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에게는 비록 농사지을 땅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48성읍이 주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성읍이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지파들이 얻은 성읍과 비교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냐민은 두 번 째 인구 조사에서 42600 명이었는데 그들에게는 18성읍과 그 촌락들이 주어졌고, 유다는 64300 명이었는데 112 성읍이 주어졌습니다. 유다에게는 가장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숫자가 많아 64400 명이나 되었던 단 지파에는 18 성읍이 주어졌고, 60500 명이었던 스불론에게는 12 성읍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일 개월 이상 되는 아이들을 다 포함해도 23000 명에 불과했던 레위 지파에게 48 성읍을 분배해 준 것은 대단히 많이 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레위 자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의 번성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48 성읍 중에서 그핫(고핫) 자손에게 23 성읍이 주어졌습니다. 레위 자손은 크게 그핫과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크게 세 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읍을 준 것은 거의 절반 가까이를 그핫 가문에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핫 가문에 이렇게 많이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핫 가문에 이렇게 많이 준 이유는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많은 성읍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가족도 그핫 가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 아론 한 가족에게 13성읍을 주었습니다. 유다에서 9성읍을 주었고 베냐민에서 4성읍을 주었습니다. 제사장 아론 가문의 가족 수가 얼마나 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아론 가문에 준 성읍은 다른 한 지파 전체에게 준 만큼 되는 수입니다. 이것은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것 외에도 제사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흔적들이 여러 면에서 있습니다. 10-12절에는 아낙 자손 아르바가 살던 성 기럇 아르바를 갈렙이 빼앗아 헤브론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아론 자손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본문을 볼 때 헤브론은 유다에서 제일 중요한 성읍으로 인정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여겨지던 아론 자손들이 첫 번째로 제비 뽑히자 헤브론을 그들에게 준 것이 헤브론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헤브론을 아론에게 준 것을 특별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3절에도 헤브론을 아론 자손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왜 헤브론이 아론 자손에게 돌아 간 사건을 먼저 다소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갈렙이 헤브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데도 제사장을 위한 하나님의 제비는 갈렙의 소유권 보다 더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갈렙은 헤브론을 추첨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약속된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올라가서 쳐서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에 대하여서는 이미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기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비 뽑아 아론 자손이 먼저 뽑히자 재론하지 않고 헤브론을 아론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12절에 "오직 그 성읍의 밭과 촌락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는 말씀은 헤브론도 아론의 소유인데 아론에게 주지 않고 헤브론 주변의 밭과 촌락만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 백성과 갈렙이 제사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제사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20절 이하에서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은 레위 사람 그핫 자손'에는 모세의 자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세도 그핫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자손은 전혀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만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에서 우리는 레위의 중요성을 보았고 또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제사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이렇게 레위인들이 중요시되면서도 레위인들은 온 이스라엘에 골고루 흩어져 있습니다. 유다 지파에 9성읍이나 살게 되지만 그 외에 베냐민에 4 성읍, 에브라임에 4 성읍, 단에 4 성읍, 므낫세에 동서 각각 2 성읍씩 합 4 성읍, 잇사갈에 4 성읍, 아셀에 4성읍, 납달리에 3 성읍, 스불론에 4 성읍, 르우벤에 4 성읍, 갓에 4 성읍씩 흩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파에 4 성읍씩 골고루 흩어져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레위 자손을 통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 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3:12-13에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택했다는 것은 애굽의 모든 장자는 죽이는 중에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렸다는 말은 이스라엘 전체를 살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체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서 살려 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선택은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이 대속하여 장자의 백성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레위인들을 이스라엘 지파마다 흩어 두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들이 하나님의 대속을 입고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교과서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들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백성 레위인으로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파에서 레위인들에게 성읍을 주고 들을 주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귀하게 여기고 그 백성 된 것을 감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인을 흩어 두신을 이것을 이스라엘이 망각하지 않도록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레위인이 성읍과 들을 얻어서 골고루 흩어져서 살게 되어야 기업 얻는 것이 마무리됩니다. 즉 레위인이 성읍을 얻고 들을 얻어 평안히 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기업 얻는 것이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이 자기들의 성읍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은 언약 성취의 표적이요 안식의 표적입니다(43-4
5).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에 표적이 되기 위하여 흩어져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레위인들이 평안히 거하지 못하게 되면 언약이 깨어지며 안식이 깨어졌다는 뜻입니다. 즉 기업을 누리지 못할 사건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이 기업을 누리지 못하고 소요 중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레위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잣대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인들을 골고루 흩어서 성읍을 주고 살게 하는 뜻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새 생명의 백성들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잣대요 시금석입니다. 이스라엘이 레위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귀하게 여기고 있으며 선택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 레위인이 누구입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 레위인은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레위인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구속을 보여주는 자라면 이 레위 직은 우리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선택과 구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심판 받을 처지에서부터의 구속을 보여줍니다.
둘째, 민수기에서 레위인들이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로서 일을 했습니다. 성물과 성막과 각종 널판과 기둥들을 메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서 봉사함으로서 죽음을 막아 주는 일을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으로부터 백성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막아 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런 일은 중보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우리에게는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레위인은 각 성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평가하는 잣대로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레위인들도 각 성읍에서 평안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레위인들은 평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 안정과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레위인들은 백성들 때문에 늘 고난을 지고 살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안전과 평안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고난 당할 사람들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고난과 위협을 지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레위인들은 우리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고난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자는 이 예수님 때문에 레위인으로 참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모든 신자는 레위인 즉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회에 레위인 귀한 줄 아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면 믿는 자이고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믿는 자가 아니니 우리는 어떤 사람인 지를 되살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소중하게 여길 때 자기 신앙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또한 믿는 사람으로서의 자기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을 때의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런 것을 내 던져 버리십시오. 오로지 믿는 자로서의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귀하기 때문에 믿는 자기도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레위인들이 나아와서 말하는 투로 보아 위급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 어른들이 나아 온 이유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즉 레위인들은 자기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을 기업으로 주지는 않았지만 자기들이 살 성읍과 가축을 먹일 들을 주라고 하셨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 나누기가 끝이 나고 도피성들이 지정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살 성읍과 들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된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가만히 그냥 있다가는 자기들이 살 성읍도 들도 받지 못하고 끝나겠다는 위기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레위인 어른들이 나아 와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약속된 성읍과 들을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자기들의 기업에서 48 성읍을 레위인에게 주었습니다. 오늘 21장에는 이것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딱딱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대단히 재미없는 기록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주의하여 살펴보면 여기에도 어떤 의미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들어 있는 그 의미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레위인에게 48성읍이 주어졌다는 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레위인에게 48 성읍이 주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성읍들이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에게는 비록 농사지을 땅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48성읍이 주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성읍이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지파들이 얻은 성읍과 비교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냐민은 두 번 째 인구 조사에서 42600 명이었는데 그들에게는 18성읍과 그 촌락들이 주어졌고, 유다는 64300 명이었는데 112 성읍이 주어졌습니다. 유다에게는 가장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숫자가 많아 64400 명이나 되었던 단 지파에는 18 성읍이 주어졌고, 60500 명이었던 스불론에게는 12 성읍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일 개월 이상 되는 아이들을 다 포함해도 23000 명에 불과했던 레위 지파에게 48 성읍을 분배해 준 것은 대단히 많이 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레위 자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의 번성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48 성읍 중에서 그핫(고핫) 자손에게 23 성읍이 주어졌습니다. 레위 자손은 크게 그핫과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크게 세 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읍을 준 것은 거의 절반 가까이를 그핫 가문에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핫 가문에 이렇게 많이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핫 가문에 이렇게 많이 준 이유는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많은 성읍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가족도 그핫 가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 아론 한 가족에게 13성읍을 주었습니다. 유다에서 9성읍을 주었고 베냐민에서 4성읍을 주었습니다. 제사장 아론 가문의 가족 수가 얼마나 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아론 가문에 준 성읍은 다른 한 지파 전체에게 준 만큼 되는 수입니다. 이것은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것 외에도 제사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흔적들이 여러 면에서 있습니다. 10-12절에는 아낙 자손 아르바가 살던 성 기럇 아르바를 갈렙이 빼앗아 헤브론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아론 자손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본문을 볼 때 헤브론은 유다에서 제일 중요한 성읍으로 인정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여겨지던 아론 자손들이 첫 번째로 제비 뽑히자 헤브론을 그들에게 준 것이 헤브론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헤브론을 아론에게 준 것을 특별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3절에도 헤브론을 아론 자손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왜 헤브론이 아론 자손에게 돌아 간 사건을 먼저 다소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갈렙이 헤브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데도 제사장을 위한 하나님의 제비는 갈렙의 소유권 보다 더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갈렙은 헤브론을 추첨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약속된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올라가서 쳐서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에 대하여서는 이미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기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비 뽑아 아론 자손이 먼저 뽑히자 재론하지 않고 헤브론을 아론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12절에 "오직 그 성읍의 밭과 촌락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는 말씀은 헤브론도 아론의 소유인데 아론에게 주지 않고 헤브론 주변의 밭과 촌락만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 백성과 갈렙이 제사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제사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20절 이하에서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은 레위 사람 그핫 자손'에는 모세의 자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세도 그핫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자손은 전혀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만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에서 우리는 레위의 중요성을 보았고 또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제사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이렇게 레위인들이 중요시되면서도 레위인들은 온 이스라엘에 골고루 흩어져 있습니다. 유다 지파에 9성읍이나 살게 되지만 그 외에 베냐민에 4 성읍, 에브라임에 4 성읍, 단에 4 성읍, 므낫세에 동서 각각 2 성읍씩 합 4 성읍, 잇사갈에 4 성읍, 아셀에 4성읍, 납달리에 3 성읍, 스불론에 4 성읍, 르우벤에 4 성읍, 갓에 4 성읍씩 흩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파에 4 성읍씩 골고루 흩어져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레위 자손을 통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 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3:12-13에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택했다는 것은 애굽의 모든 장자는 죽이는 중에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렸다는 말은 이스라엘 전체를 살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체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서 살려 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선택은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이 대속하여 장자의 백성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레위인들을 이스라엘 지파마다 흩어 두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들이 하나님의 대속을 입고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교과서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들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백성 레위인으로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파에서 레위인들에게 성읍을 주고 들을 주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귀하게 여기고 그 백성 된 것을 감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인을 흩어 두신을 이것을 이스라엘이 망각하지 않도록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레위인이 성읍과 들을 얻어서 골고루 흩어져서 살게 되어야 기업 얻는 것이 마무리됩니다. 즉 레위인이 성읍을 얻고 들을 얻어 평안히 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기업 얻는 것이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이 자기들의 성읍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은 언약 성취의 표적이요 안식의 표적입니다(43-4
5).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에 표적이 되기 위하여 흩어져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레위인들이 평안히 거하지 못하게 되면 언약이 깨어지며 안식이 깨어졌다는 뜻입니다. 즉 기업을 누리지 못할 사건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이 기업을 누리지 못하고 소요 중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레위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잣대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레위인들을 골고루 흩어서 성읍을 주고 살게 하는 뜻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새 생명의 백성들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잣대요 시금석입니다. 이스라엘이 레위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귀하게 여기고 있으며 선택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 레위인이 누구입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 레위인은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레위인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구속을 보여주는 자라면 이 레위 직은 우리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선택과 구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심판 받을 처지에서부터의 구속을 보여줍니다.
둘째, 민수기에서 레위인들이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로서 일을 했습니다. 성물과 성막과 각종 널판과 기둥들을 메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서 봉사함으로서 죽음을 막아 주는 일을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으로부터 백성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막아 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런 일은 중보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우리에게는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레위인은 각 성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평가하는 잣대로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레위인들도 각 성읍에서 평안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레위인들은 평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 안정과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레위인들은 백성들 때문에 늘 고난을 지고 살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안전과 평안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고난 당할 사람들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고난과 위협을 지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레위인들은 우리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고난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자는 이 예수님 때문에 레위인으로 참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모든 신자는 레위인 즉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회에 레위인 귀한 줄 아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면 믿는 자이고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믿는 자가 아니니 우리는 어떤 사람인 지를 되살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소중하게 여길 때 자기 신앙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또한 믿는 사람으로서의 자기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을 때의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런 것을 내 던져 버리십시오. 오로지 믿는 자로서의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귀하기 때문에 믿는 자기도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