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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사람의 사명1 (대상23: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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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워사람의 사명이란 말속에는 기독교의 사명 내지는 기독교인의 사 명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족장이었던 야곱이 아들 열둘을 낳게 되었는데 열둘 증 에
셋째 아들이 곧 레위였습니다(창 29 . 30). 열두 아들의 자손들이 열두 지파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레위의 족속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는 동안 광야에서 제사 장의 직분을 맡게 되었고, 그 때부터 성막과 성소를 관리하며 성물들 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목사가 나오고 장로가 나오고 집자 권사가 나와서 교회를 봉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읍니다. 당시 백성을 대표하여 ` `-닐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은 레위 사람 가운데서 뽑았습니다. 제사상은 일정한 예복을 늘 입고 있어야 했고 (출 39장) 몸이 상한 사람이나 신체에 이상이 있는 사람(부패자)은 제사장 직을 맡지 못했습니다(레 2l:I6_24). 그 까닭은 그만큼 제사장 이 된다고 하는 것은 거룩하고 엄숙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사장은 적자라야 될 수 있었습니다. 즉 혈통이나 조상이 순결한 사람이 어야만 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따라서 공명심의 충족을 위 해서 제사장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제사장은 가 장 우수한 인재를 발탁해서 세웠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도 다양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일과 성전의 여 러 가지 기구들도 제사장의 감독하에 관리 되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전쟁에 종군하는 일을 했고,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쳤고, 백성을 재판했고, 문등병자를 진단하여 건강진단서를 떼어 주었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백성에게 전달해 주는 등 실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대하 15:3, 렘 18:18, 대하 19:18-lI, 출 28:S0). 그래서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증보자 역할을 하는 그런직분이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가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이라고 해서 다 제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 렇다고 해서 제사장이 안된 사람들이라고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 습니다. 저는 오늘 교우 여러분에게 제사장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 ! 옛날로 말하면 레위 사람들이 맡았던 사명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레위 사람들이 각각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지켜나온 몇 가지 원칙 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I) 서로 남의 일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일에 층성을 다하는 사람은 남의 일에 간섭 할 겨를이 없습니다. 대개 자기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이 남의 일을 간섭합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저의 경우 목사로서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 다하고 있습니다. 좀더 좋은 설교를 준비해서 교우 여러분 에게 드리고 싶은 것이 제 소원입니다만 그것도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고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고 싶은 것 이 저의 소원입니다만 그것도 제대로 안 됩니다. 할 수 있으면 많은 교인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위하여 축복해 드리고 싶은 것이 제 소원 입니다만 그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어언 이 교회에 부임한 지 S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목회자로서 할 일도 다 못하는 주제에 어 떻게 다른 일을 간섭할 수 있으며 남의 일을 간섭할 겨를이 있겠는가 하고. 이러한 이치는 우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7장 3-5 절을 보면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더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하겠느냐 외 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후에야 밝히보고 형 제의 눈 속에서 티를 uHt 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의 일을 간섭하거나 비판하거나 판단하기 전에 남을 욕하 고, 정죄하고 돌을 던지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욕먹을 일 이 없는가 내 눈 속에 들보는 없는가를 먼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서 로 자기가 맡은 일에 층실하면서 남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 생활태도 가 교회생활에선 제일 좋습니다. 자기는 남의 밥상에 놓는 숫가락까 지 간섭하려고 하면서 남 더러는 나를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신 들보를 눈에 가지고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2레위 사람들이 맡은 일은 모두가 똑같이 중요한 일들 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증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 모든 직분은 똑같이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귀중한 일들 이었습니다. 어떤 단체나 모임 같 은 데를 나가보면 좋은 부서는 서로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기 없는 부서는 저마다 기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은 다 중요 합니다. 그리고 다 귀합니다. 관존민비 사상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백성은 얕잡아 보고 멸시하고 권력가진 자는 높게 보았던 전근대적 역사 의 부산물이 관존민비인데 오늘날 까지도 그 악습이 살아서 조그마한 권력만 쥐고 있어도 그것을 악용한다면 이는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 습니다. 사실은 관이란 백성의 녹을 먹고 사는 봉사자.섬기는 자에 불과합니다. 즉 녹을 먹고 백성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회안 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직분이 특별히 높고 어떤 직분은 낮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부서는 좋고 어떤 부서는 나쁠 수도 없습니다. 똑같이 증요하고 다같이 소증한 것입니다.
(3)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성경에 사명이라고 표기된 곳은 많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을 보면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바울 사도가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명이 란 말은 봉사를 뜻합니다 한글사전을 보면 사명이란 '지워진바 임무 흑은 사신이 받는 명령'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맡은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시고 하라고 명령하신 임무는 다 사명입니다. 그런 의 미에서 우린 모두 사명자들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말씀 드린다면 우리는 다 사명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장년 교인 1000명이 모두가 목사의 사 명을 받았다면 이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1000명이 다 장로의 사명을 맡았다면 이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600명이나 700명의 먹자 교인들이 다 권사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다면 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서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 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하심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불성실한 목사 가 되기 보다는 성실한 진인이 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t'.
I 가 .=1 이리 '-:종이 되어라>고 말하지 않는 신증론자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눈 , _.=! 신 선량한 백성들보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더 많은 죄를 범했넌 것을 발견하게니다. 세상을 떠난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초대 이스라엘 공화국의 대통령 이 되어 달라는 교섭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아인슈타인 박 사는 첫마디에 나는 일생동안 숫자만 가지고 살아 온 과학자임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전혀 문외한이니 나로서는 그 직을 수락할 자격 이 없다고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그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쉽게 말 하면 목사도 사명, 장로도 사명, 집사도 사명, 권사도 사명, 성가대도 사명, 교사도 사명입니다. 그뿐 입니까 사업도. 장사도. 정치도, 예 술도. 사명으로 알고 해야 합니다. 말씀 드렸거니와 사명이란 하나님 께서 내게 맡겨 주신 직무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정치도 하고 교 육도 하고 예술도 하고 사업도 한다면 오늘의 사회 현상이 이떻게 되 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있는 그 자리, 내가 맡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다. 오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야 내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층성된 자는 큰 것에도 층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블의하니라고 습니다. 목회자들에게도 그렇습니다. 전도사 때 잘하는 사람은 부목사가 되어도 층성을 다 합니다. 부목사로서 성공한 사람은 원목사가 되어서도 목회에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전도사 때 게으르고 잘 못하던 사람은 부목사가 뇌어서도 그떻습니다. 그리고 원목사가 되어도 그렇고 교회를 옮겨도 매 한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맡은 일 ! 그 사명에 선을 다 하십시다. 본문을 주목하십시다. 레위 사람들은 어떤 사명을 맡았습니까
1. 섬기는 일 입니다. 즉 봉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섬긴다는 말 속에는 몇가지 뜻이 들 어 있습니다.
(1) 글자 그대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종을 섬기는 일은 없습니다. 종이 주인을 섬깁니다. 그러니 까 섬기는 생활은 내가 종이 되어야 하고 낮아져야 하는 생활입니다. 봉사자가 되려면 낮아져야 하고 종의 자리로 내려가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3_14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 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으니라'고 했읍니1-
I. 섬기노라 하면서,봉사자라고 하면서. 공복이라고 얘기하면서 짓밟고 억누르는 것은 참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2) 시중을 든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아기의 시증을 들 때. 간호원이 환자의 시중을 들 때, 아내 가 병든 남편을 시중들 때, 어떤 태도로 들어야 할까요 조심스럽고 자상하고 겸허하고 사랑하는 심정으로 시증을 들어야 합니다. 특히,예전에 왕의 시증을 드는 사람은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시 증을 들지 못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I4-15절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고쳐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열병을 치료받은 베드로의 장모(아마 나이가 많았을 것입니다)가 예수께 수종들더라H는 말씀이 나옵니다. 시중들어 주는 태도가 거칠다던지 불성실하면 안 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가장 기분 나쁜 사건은 의사나 간호 원들의 불성실한 태도를 대할 때인 것입니다.
(3) 직무를 수행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직무를 층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이 곧 섬기는 일입니다. 쌔가 맡은 직무를 잘 감당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이웃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공무원이 처벌받는 죄목 가운데 하나가 직무유기죄라는 것이있습니다. 자기의 직무를 바로 쓰지 않거나 잘 못썼을 때 받는 벌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린 우리의 직무에 성실과 정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 은 직무를 게을리 한 종을 가르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했읍니다.
(4) 싸맨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래 봉사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JtttoJ'`t )라는 말은 찢어진 것을 싸맨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최고의 봉사자 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찢길대로 찢긴 우리의 영흔을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 로 싸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남의 아픔을 위로해 주려고 하 면 그가 겪고 있는 아픔에 내가 동참해 주어야 합니다. 그의 슬픔 속 에 내가 동참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 위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싸매시는 분입니다. 찢어진 인격을 싸매시고 찢어진 가정을 싸매시고 찢어진 심령을 싸 매시는 분입니다. 호세아서 6장 1절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 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 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싸매어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들춰내고 후벼대고 어 버리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감싸서 치료해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 이하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강도만 난 우리의 이웃을 보고 그 곁으로 다가가서 상처를 닦아주고 기름을 발라주고 상처를 싸매어 주어야 합니다. 아픈 상처는 싸매어 두어야 합니다. 자꾸 건드리고 자극하면 크게 번지고 염증이 생겨 고생을 하 게 됩니다. 남의 상처를 건드리고 자극하는 것은 결코 선한 일이 아닌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치료하시는 주님, 싸매시는 주님께서 우리 시대,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싸매주셔야 겠습니다. 우리 시대는 크게 세 가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는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섬김을 받겠다고 높아지기를 원하고, 상대방이 무릎끓고 절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섬기려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희생이라든지. 봉사라든지 하는 것을 고전어로 생각하는 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째는 진실로 섬기고픈 사람이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강요당한 채로 박수를 보내고 존경을 보내고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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