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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 (계3:14-22)

본문

라오디게아 교회는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43마일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금융업이 성한 부의 도시입니다. 배금사상이 행복의 기점이라 생각하는 도시요, 유명한 양모가 생산되어 값싼 의류를 대량 생산하는 의류 제조업의 중심지요, 귀앓이 약과 안약의 특효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약품의 생산지인 라오디게아 지역에 세워진 라오디게아성 이름을 따서 설립된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고, 사람의 세상 지식대로 비판하고, 평가하여 알기에는 자기들은 모든 면에 구비하고 행복스런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알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할 때는 자기들보다 더 가련하고, 불쌍한 자가 없는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교회 중에서도 제일 형편 없는 타락한 교회요, 아주 허무한 교회입니다. 계시록 2장, 3장에 계시된 일곱교회 중, 여섯교회는 옳고 그른 것으로 두쪽으로 갈라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만은 두쪽으로 분열되지 않고 한 덩어리된 교회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경계가 없어져서 세상대로 교회가 할려고 하니 하나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종다수 결정에 따라서 끌려가나, 교회는 다수보다는 진리대로 나아가야 되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수보다 다수, 진리보다 다수인 비진리로 따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타락하여 부패한 교회가되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만물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바로 알아야 잘 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고, 또 비뚤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 알면 그것은 벌써 사망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특수성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일곱교회 중에 제일 타락한 교회요, 이 타락한 교회에 특수한 능력으로 주님이 찾아오셨고,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 같이 너희가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면이 희망이 없는데 특수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서 치료하러 오신 교회입니다.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찾아 오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모든 준비가 세상적이요, 죄악적이요, 생명과 신령적이 아니었으며, 그 원인은 아멘생활, 충성된 생활, 참된 증인생활, 창조주 하나님 상대의 생활을 무시하고 행하지 아니한 연고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인간적으로 보면 완전히 타락되고 부패해서 희망이 없는 교회지만 창조의 근본되신 이로 찾아오셨기 때문에 힘만 쓰면 창조의 근본되신 능력으로 도우셔서 개혁되고 새롭게 될 희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 생활은 하나님이 해 놓은 일에 대하여 찬성하고 동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멘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를 원하고, 할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그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대로 힘써 노력하겠다는 표시로 아멘하는 것입니다. 요4:34 예수님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이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기독자는 진리와 성령님으로 중생된 새 사람이니, 자기의 양식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고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요, 자기의 성장은 자기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때에 자기의 소유, 몸, 생명, 다하여 이루어지길 원하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 둘 씩, 이루어진 것 만큼 자기는 성장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멘생활은 자기를 기르는 것입니다. ‘충성’은 임금과 신하간이나 주인과 종사이에만 사용되는데, 자기를 구속하신 주님의 피 값에 팔리운 주님의 것인줄 깨닫고, 주인 되신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하고, 생명까지 다하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명령하신 맡기신 사명을 있는 힘 다 기울여 할 때에, 힘이 모자라는 것이 안타까와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할 때, 현재 실력 이상의 새 실력을 충만시켜 주셔서 감당케 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눅19:17)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맡긴 므나를 가지고 사용해서 남긴 므나만큼 더하여 고을로 갚아 주심 같이 자기의 부족한 실력을 충성하므로 새 실력을 받아 감당케 하심은 충성의 방편으로 자기의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충성은 하나님의 모든 실력을 자기가 받아서 자기 것 삼는 것입니다. ‘참된 증인’의 생활은 보이지 아니하여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서 보여주고, 알려주어, 나타내는 사람이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 하신 말씀 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의 중보 역할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섭리를 예수님이 나타내는 중보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떠한 분임을 피조물들에게 바로 나타내는 것이 예수님의 보좌 우편에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은혜를 베푸는 영원무궁의 자기 지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 생활은 자기 지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상대생활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졌고, 또 하나님의 주권 섭리로 생겨지고, 없어지는 것임을 알아 이분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해결해야 그분이 책임을 지시지, 그분이 허락지 아니하면, 개미 한 마리도 사람의 뜻대로 못합니다. (롬8:20)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는 이로 말미암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가 위탁한 것을 그날까지 지켜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주권섭리로 되어지는 것인줄 알고,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면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 되므로, 자기 소유를 풍성케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아멘으로 자기를 기르고, 충성으로 자기 실력을 갖추고, 참된 증인으로 자기 지위를 마련하고, 창조주 상대생활로 자기 소유를 풍성케 하려는 생활을 해야됩니다. 라오디게아는 이러한 생활이 없어, 완전히 타락되고, 부패하여 희망이 없는 교회인데, “창조의 근본되신 특수한 능력으로 치료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찾아오시므로 특수한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책망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책망은, 첫째로 행위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한것에 대하여 책망을 했습니다. ‘미지근하다’는 말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것을 말씀하는데, 모든 면이 다 그러하지마는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으로 보아서 천국이며 천국, 세상이면 세상이라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교회입니다. 천국 준비 하는 줄 알고 하는데 실상은 세상준비를 하고, 천국 준비 한다고 하면서 세상 준비 하는 것을 ‘미지근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운 것’은 좋은 것을 말하는데, 천국 준비하는 것과, 중심과 위주가 하나님이요, 소욕이 성령님의 소욕대로 사는 것입니다. ‘찬 것’은 나쁜 것을 말하는데, 정반대로 중심과 위주가 세상이나, 사람이요, 소욕이 사람의 소욕대로 사는 것으로 세상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은 안 믿는 땅에 속한 사람들과 같이 세상 것을 마련하고, 순전히 세상 것을 목적하고, 세상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세상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천국 준비하는 생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하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제일 중대한 문제가 바로 이 문제 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주님께 버림을 당합니다. 라오디게야 교회에게 네가 천국 준비가 안되는데 천국준비 하는 줄로 알고, 너는 세상생활은 아니라고 말하지마는 실은 세상 생활하고, 땅에 속한 네가 아닌 줄로 아는 그 이유를 17절에 말씀을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미지근한 이유는, 만물관을 세상대로 가졌고, 빈부관을 세상대로 가졌고, 시관을 세상대로 가졌고, 안보관을 세상대로 가졌기 때문입니다.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을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나타나신 주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는 말은 공연한 말이 아닙니다. 세상대로 빈부관을 보면 그렇게 보이나, 바른 정관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도 누구보다 앞섰고, 모든 물질도 많이 소유했고, 권세도 현재 가지고 누리고 있고, 과학이 발전했고, 예술도 발전하여 모든 면이 세상적으로 다 부요하고 구비하나, 하나님의 성경 지식대로 볼 때에, 세상에서 죽어 떠날 때, 손 툴툴 털고 빈 손 들고 가야 합니다. 죽음 저편, 영원히 살 무궁세계에 얻을 것이 하나도 없고,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고, 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네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주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계약한 계약대로 가진 것이라야 계약대로 내 소유가 되지, 계약대로 강한 것이라야 강하지, 계약대로 좋은 것이라야 좋은 것이지, 계약과 상관 없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대로의 만물관이나 빈부관은 잘못된 것이요, 세상적으로 아무리 구비하고, 부강해도 죽는 그 시간으로 끝나 버리고,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눅12:16-21) 어리석은 부자가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여러 해 쓸 것 많이 쌓아 두고, 평안히 먹고, 쉬고, 즐기자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날 밤에 데려가시면서, “어리석은 자여 네가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자기 위해 곡간에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자가 이와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죽고난 뒤, 재산 많고, 자손 많고, 잘 되어, ‘호상’이라 해서 호화스런 장례한다 해도 무슨 소용 있습니까 죽는 그 시간부터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홍포 입은 부자를 보십시오. 하늘나라 가지고 가는 것은 믿음만 가지고 갑니다. ‘눈먼 것’:눈먼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 불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 떠나면 다 내 놓고, 다 두고 가야 합니다. 내 놓을 것을 모르고 내놓을 것을 죽자 살자 가질라고 애를 쓰고, 영원히 가질 것은 상관하지 아니하는 것이 눈이 먼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나든지, 주님이 오시든지 하면 끝나고 마는 내게 상관이 없는 필요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귀하게 여겨 가지고, 마련하려고, 손해 안 보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된 것, 영원 무궁한 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눈 먼 사람입니다. 시관이 잘못된 사람입니다.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벌거벗은 것’은 세상이 끝나고, 전지자의 심판대 앞에 설 테인데, 그 때에 예수님의 공로가 아닌 것은 다 멸망받고, 정죄받아, 이것이 환하게 드러나 영원한 수치가 되는 것을 안보관이 틀려서 모르니, 고칠 수 없고, 고칠려고도 안하니 책망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정신병자는 자기가 정신병자인 것을 알기만 하면, 고치는 것이 시간문제지, 60% 병을 고칠 수 있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만물관, 즉 빈부관, 시관, 안보관이 잘못된 것을 알기만하면 고치는 것은 시간 문제지, 고칠 수 있기 때문에 곤고한 것, 가련한 것, 가난한 것, 눈먼 것, 벌거벗은 것을 주님이 지적하셔서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의 권면 18절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공심판 통과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요, 사심판은 주님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권면하시기를 내게서 하는 말씀은 주님이 인정하시는 금, 흰옷, 안약을 사라는 것입니다. ‘사는 것’은 비유인데 물건을 살려고 하면 물건 값을 치러야 합니다. ‘내게서 사라’는 말씀은 장사하는 주인이 주님이시니,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가를 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세상의 어떤 고문, 고행, 박해, 환난이 닥쳐 이 세상 세력이 다 달라들어서 믿음을 없애려고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이 요동치 아니하는 믿음입니다. 어떤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믿음을 가지고 부요하라고 하셨는데 믿음을 무엇을 주고 사야 하겠습니까 믿음 지키려고 할 때, 사업이 문을 닫게 된다고 할 때, 감옥에 갇혀야 될 때, 어떻게 그 현실이 어렵고,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주님이 요구하시는데 만족을 이루기까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내고 사야 합니다.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흰 옷’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피 공로입니다. 어떻게 어렵고,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어떻게 좋고, 아름답고, 편하고, 쉬워도 주님의 요구하시는데 만족을 이루기까지 대속의 피공로 벗지 않고, 입고 사는 것입니다. “두루마리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은 하나님의 전지의 지식인 성경지식과 영감입니다. 성경지식과 영감이 가르쳐 주는대로 그대로 보면 옳고 바르고 참되고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습니다. 신관, 인관, 만물관, 금생, 내세, 심판관을 진리지식, 영감지식대로 보게 하라는 권면입니다. 상점에 물건을 살 때, 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값을 내어야 하듯이 주님이 그때 그때 요구하시는 요구에 대하여 소유, 몸, 생명, 손해, 구속, 매, 욕, 모욕, 멸시, 천대, 억울, 누명, 무엇이든지 값으로 내어야 합니다. 같은 값이면 값비싼 것을 주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는 말씀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는 것,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 보이지 않는 것, 안약을 서서 눈에 발라 보게 하는 것을 ‘열심을 내라’는 말로 권면하신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만물관이 잘못된 것을 회개하라는 권면입니다. 하라고 해도 안하면 내가 책망하고 징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도록 방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망과 징계가 오거든 하나님이 왜 나에게만 이렇게하실까 속단, 경솔, 불만, 불평, 원망,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 20절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문을 두드리시는 분은 자존자, 주권자, 창조주, 전지전능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주님이 문 밖에서 두드리십니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주님의 모습이 (막5:2-8) 머리는 이슬에 젖고 머리털에 밤이슬이 가득하도록 두드리는데 성도들은 잠 자리에서 밤새도록 문을 열지 않습니다. 서서 두드리는 주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박힌 손으로 두드리고 못박힌 발로 밤새도록 서서 가시 면류관 쓰신 머리는 밤이슬을 맞아가면서 두드리는 뜨거운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만 열면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문을 여는 것’이란 현실에서 주님 말씀대로만 하면 됩니다. 내 소원대로냐 주님 소원대로냐 내 생각대로냐 주님 말씀대로냐 여기서 결정됩니다. 주님 영접하기가 쉽습니다. 무슨 힘이 들어서 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하기가 싫어서 안합니다. 주님 영접은 현실 만났을 때, 주님 하라는 대로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주님 영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 맘대로 하기가 제일 쉽습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이 제 맘대로 하면 마귀 영접하는 것이요, 피와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된 새 사람이 제 맘대로 하면 마귀 배척하고, 주님 영접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왜 문 밖에서 두드리십니까” 문을 열어야 들어가실 수 있고, 들어가시면 더불어 먹으시기 위함입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내가 영접해야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하여 주시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그에게’:열심을 내고 회개하는 자에겐 ‘보좌에 함께 앉는다’:라는 말씀은 승리하여 주님과 같은 그런 영광스런 위치에, 하나님 아버지 것을 다 줄 수 있는 귀한 자리에, 주님이 영접해서 주님의 오른편에 앉게 됩니다. ‘오른 편’은 승리자란 말이요, 가장 신임해서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승리는 아버지의 뜻을 다 행하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다 이룬 것입니다. 우리 승리는 주님의 뜻을 다 행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이 승리 하셔서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승리한 우리는 주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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