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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여 보아라 (계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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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교회를 예표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의 편지를 마지막 수신한 교회였다. 일곱 교회 중 가장 영적 상태가 좋지 못한 교회였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단 한마디도 칭찬하지 아니했다. 책망만 있는 교회였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무가치한 교회가 되어버린 이유는 부유함 속에서 미지근한 신앙 때문이었다. 역사적 속에 모든 교회들이 부유함 속에서 안주하고 신앙이 미지근해져 버릴 때 교회는 타락되었다. 이러한 교회에도 주님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1. 역사적 배경. 이 도시는
B.C 261-246 년에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2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B.C 190년에 버가모 성의 지배를 받아 라오디게아의 쇠퇴가 시작 되었고
B.C 133년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경제적으로 발전된 도시로 변화되어 가면서 옛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2. 지리적 배경. 빌라델비아 에서 동남쪽 약72km,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였다. 일곱교회는 에베소에서 시작하여 서머나, 버가모 등으로 북쪽으로 갔다가 동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부채꼴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끝이 라오디게아 도시였다.
3. 지명의 배경. 본래 이 도시의 이름은 디오스폴리스로 불리었으나 수리이 왕 셀류커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충성하는 안티오커스 2세 에게 포상으로 내려준 땅이었기에 안티오커스 2세는 자신의 아내 라오디게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정했다. 이 도시의 이름 뜻은 "백성의 정의" 이라는 뜻이다.
4. 경제적 배경. 동서남북 사방으로 도로가 잘 발달된 이곳은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였다 무역과 상업이 발달되었으므로 매우 부유하고 번창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3가지 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1. 금융과 은행업의 중심지였다.
2. 의류 산업의 중심지였다.
3. 안약으로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다.
5. 종교적 배경. 이 도시는 황제 숭배 중심지로서 거대한 신전이 있었다. 치료의 신으로 유명한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있었다. 이 도시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골로새 출신의 에바브라에 의해 전파되었을 것으로 본다 (골4:12-13) 그 다음 목회자는 아킵보 였는데 사도 바울은 아킵보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 (골4:17) 고 권면 한 것을 볼 때 라오디게아 교회 타락이 아킵보에게도 임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6. 현재의 모습. 부요함 속에서 활기를 떨치던 이 도시는 터키 왕조의 전쟁에 시달리다가 13세기말 이 도시는 폐허로 변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교회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7. 예언적 배경. 선교의 문이 닫힌 후 세상을 향하여 부유함 속에서 살아가는 상태가 되어 신앙의 열정이 식어가는 마지막 때 교회의 모습이다. 부유함과 좋은 여건 속에서 안주해 가는 종말의 교회 모습이다. 세상 속에서는 부유함을 나타내면서도 하나님을 향해서는 가난해져 가는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들이다. 첫번째:수신처와 수신자 14절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
예수님의 편지를 받은 라오디게아 주의 종은 어떠 했을까요 단 한마디도 칭찬도 없이 처음부터 L까지 책망 있는 주님의 편지를 받고 주의 종의 마음은 우울했을 것이다. 마지막 때 이러한 주님의 책망 소리를 듣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 "백성의 정의민중의 비유를 맞추다"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주권이 백성들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대 민주주의가 가장 아름다운 용어가 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자 민주주의 제도만이 살길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세상 정치는 주권이 민중에게 있지만 교회의 정치는 주권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 세상 정치는 민주주의로 해야 하지만 교회는 신본주의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교회가 민주주의로 빠지면 교회는 미지근하게 돤다는 것을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교회가 타락하고 잘못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있다.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마다 수신자가 누구 였는가 모두 각 교회 담임 목사였다. 칭찬도 누구가 제일 먼저 받았는가 그러나 책망도 주의 종이 제일 먼저 받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타락되고 책망 받은 교회가 된 것은 맨 먼저 주의 종에게 있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다. 성도들 탓으로만 모든 것을 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의 종이 그 만큼 성도들을 강하게 말씀대로 가르치지 아니하고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성도들 신앙이 타락 한 것이다. 민주주의 신앙은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고 만다. 민주주의 신앙이 무엇인가 좋은게 좋다고 서로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 생활 하는게 민주주의 신앙이다. 목회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 편에 서서 강하게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켜야 한다. 성도들 비위나 맞추는 목회자는 주의 종이 아니다. (고전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성도가 잘못된 길로 나가면 강하게 이끌어 줄줄 아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듯이 교회 성도도 보면 그 교회 목회자를 알 수 있다. 자식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가는데 보고만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어찌 그런 자를 주의 종이라고 하겠는가 바울이 라오디게아 교회 담임 목사였던 아킵보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말했다는 것은 이미 사도 요한을 통해서 주님의 편지가 전해지기 전에 교회의 주의 종에게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은 다시 사랑의 편지를 보내고 계신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고 편지를 주신 것이다. 두 번째: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4절 = "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
라오다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3가지 였다.
1. 아멘이신 예수
2. 충성된 증인의 예수.
3. 창조자의 근본이신 예수. 예수그리스도 모습을 속에서 당시에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했다.
아멘 = "진실로" 라는 뜻이다.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했으면 아멘이신 예수로 모습을 보였겠는가 충성된 증인 =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충성한 모습이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얼마나 충성하지 못했으면 충성한 참된 증인의 모습으로 보였겠는가 창조의 근본이신 이 = 예수가 창조자라는 뜻이다. 이 모습은 창조주이신 예수가 너희를새롭게 하여줄 수 있다는 사랑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의 책망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고 회개하고 나온다면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다시 새롭게 하여 주겠다는 예수님의 뜻이 예수님 모습 속에 숨어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까 주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고 주님께 나왔습니까 저들은 나오지 아니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얼마나 수많은 교회들이 주님의 경고와 주님의 책망을 듣고 외면한 교회들이 많은가 얼마나 주님의 경고와 책망을 외면한 성도들이 많은가 이것은 곧 주님의 사랑을 외면한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외면한 라오디게아 도시가 오늘날 어디에 남아 있는가 마지막 때에 수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주님의 경고를 책망을 주님의 사랑을 외면할 것이다.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1. 아멘의 모습으로 보이신 예수의 모습에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아니했는지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신앙은 먼저 "아멘"의 신앙으로 시작된다.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차차 알아 가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다 .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 아멘" 하는 것은 내가 진실로 이 말씀을 믿는 다는 내 마음을 표시하는 행위이다 아무나 아멘 하는 것 같습니까 "아멘" 소리가 크냐 ! 작으냐 ! 따라서 우리는 그 신앙을 어느 정도 가름할 수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처럼 미지근한 신앙 상태에서는 "아멘" 소리를 크게 할 수 없다. 성도 여러분 "아멘"의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멘의 신앙은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는 신앙이고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신앙이다. 어찌 이런 신앙이 미지근한 신앙이 되겠습니까 아멘의 신앙이 되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외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충성된 참된 증인의 모습 속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볼수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교회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가난하고 벌거벗은 교회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인간 편에서 볼 때는 열심히 부지런히 신앙 생활을 한 교회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 눈으로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교회였다. 마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들이 섬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듯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 교회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그렇게 많은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 제사를 똥이라고 무섭게 말씀하셨다 (말2:3) "보라 !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 마23장에서도 예수님이 얼마나 무섭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책망하고 저주까지 했습니까 왜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책망을 듣고 저주를 들었습니까 참되게 하지 안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거짓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된 증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세상 방법, 인간의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참되게 사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충성된 자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보라 ! 온전히 십자가에 죽기까지 말씀대로 충성된 삶을 살았다. 세상 속에서는 가난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마음이 충성된 자는 부유한 자이다. 죽기까지 충성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또한 죽도록 충성해야 할 것이다.
3.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죄악 속에서 타락되어 가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창조자의 권능의 모습을 나타내 신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너희를 새롭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 사랑의 손길을 라오디게아 교회가 잡았습니까 역사 속에서 타락되어 가는 교회를 주님이 사랑의 손길로 얼마나 많이 붙잡아 주는지 모른다. 타락의 불길로 빠져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붙잡아 주는지 모른다. 이 사랑의 손길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이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다. 세상속에 빠져버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사랑의 손길을 내미셨다. "시몬아 내가 날 사랑 하느냐 "
< 복음송> 갈릴리 호수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주님만이 아십니다. 자신을 은 30냥에 팔려고 타락한 가룟 유다에게 얼마나 주님이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습니까 그러나 가룟 유다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처럼 그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말았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회개하라는 사랑의 손길을 뿌리쳤다. 회개는 은혜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다.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아니 회개를 모두 거부할 것이다. 계16:9 =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1=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성도 여러분 ! 새롭게 하는 능력이 예수께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 새롭게 하는 능력이 곧 회개이다.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고 새 힘을 주실 것이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처럼 부유함 속에서 안주해서는 안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안주해 버린 신앙은 미지근 신앙이 될 수밖에 없고 타락 될 수밖에 없다.
< 결론 >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 속에서는 휼륭한 교회였다. 부자 교회였다. 부족함이 없는 교회 였다. 부족함이 없다 보니까 자랑이 많은 교회였다. 스스로 성공한 교회였다. 라오디게아 교회 목사는 나는 성공한자라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떠들었을 것이다 성도들도 우리 교회 한번 와바라! 얼마나 큰 교회인지 아느냐! 우리 교회는 부자 교회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교회는 어려움이 없다고 떠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 눈에 가장 비참한 교회였고 불쌍한 교회였다. 한마디로 거지같은 교회였다. 옷도 못 입을 정도로 가난하고 벌거벗은 교회였다. 앞도 못 보는 소경 교회였다. 이 시대 이러한 교회가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러한 교회가 많다는 것은 이러한 성도가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타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아니하면 우리도 이러한 자들이 될 수 있다. 교회의 타락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목회자의 타락, 성도의 타락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마24:11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바로 교회가 타락한 다는 것이다 주의 종의 타락은 곧 교회의 타락이다. 12절 = 불법이 성하고 많은 사람이 사랑이 식어지겠다고 하셨다. 불법이 판을 치고 사랑이 식어지겠다는 말은 세상이 악해 진다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러한 타락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것이었다.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은 바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멘 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주님의 어떤 말씀이라도 순종하고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타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충성한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 충성한 자만이 참된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된 증인은 말로만 되는게 아니다. 몸으로 보여야 한다. 예수님은 그 충성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참된 증인이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표시를 해야 되는 게 사랑의 원리이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밥도 안주고 학교도 안보내면 그것이 사랑하는 것인가 남편이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다 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 가정을 사랑하고있는 것인가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혀 예수를 위해 아무 것도 안한다면 과연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예수다고 너무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 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교회가 주님의 몸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보이는 주님의 몸에 우리의 사랑을 보여야만 한다. 보여주었는데도 사랑의 표시를 안하고 말로만 한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 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거짓 사랑을 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로는 예수를 사랑하고 떠들어 댔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더 사랑했고 보이는 세상을 더 사랑했다. 성도 여러분 ! 예수를 뜨겁게 사랑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신앙은 미지근한 신앙이 될 수밖에 없고 타락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계시는 주님의 손을 뿌리치지 말고 잡으시길 바란다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하길 축원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바로 이 시간 나에게 주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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