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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돌이키시리라 (렘26:1-15)

본문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계속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섭리하시며 운행해 가십니다. 그 섭리하시는 방법 은 미리서 앞날의 어떤 작정하신 계획과 뜻을 하늘에서 세우시고 그 다음에 그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방법을 쓰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설계도를 먼저 작성 하시고 그 설계대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진행해 가십니다. 그 설계도가 바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뜻대로 되어 져 간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그러한 대목이 나옵니다. "하늘에서 뜻이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먼저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지고 작정되고 그 다음에 그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고백입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단 작정하신 뜻은 얼마나 엄위하고 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몬테스큐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 자신에 유익해도 내 가 족에게 해로우면 하지 말아야 하고, 내 가족에게 유익해도 내 나라에 해로운 일 은 하지 말아야 하며, 내 나라에 유익해도 전 인류에게 해로우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에다 한가지를 더 말하고 있습니다. 전 인류에 유익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만큼 하나님 의 뜻이라는 것은 최고로 중요한 것이며 가히 절대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무슨 건축물 공사를 하는데도 설계도 없이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 계획 이 먼저 세워지고 그 다음에 그 계획대로 진행해 갑니다.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그 공사 기간이 1년7개월밖에 안 걸렸지만 사전에 그 건축에 대한 치밀한 설계와 계획을 세우는데는 무려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실제 공사 기간보다도 설계 기간이 두배 이상 걸린 것입니다. 건물 하나 짓는데도 이처럼 계획과 설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실례입니다.
그런데 간혹 시공해 가면서도 도중에 설계가 수정되어지는 수도 있습니다. 설 계가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절대적이라는 하나님 의 작정, 하나님의 뜻도 때로는 바뀌어지는 경우는 없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조 심스럽지만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확인되어지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 도 변경되고 수정되고 돌이켜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게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같은 것은 일찍이 출애굽기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밑에 있는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 어 섬기면서 뛰고난리 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모세 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 백성을 멸망시키고 모세에게 씨를 주어서 모세로 하 여금 지면에 자손이 많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말씀을 듣고 기도합니다. "주의 맹렬 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그러자 출애굽기 32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말씀하시면 그것을 반드시 이루신다고 했고 그것을 삼키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선 포하신 하늘의 뜻을 한 사람의 기도로 돌이키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 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지만 우리가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 오면 하나님께서 재앙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그 뜻을 돌이켜 오히려 복을 끼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나서에서도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라는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그에게 다메섹 니느웨 성에 가서 백성 들에게 40일 후면 이 성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겠다고 하는 것을 선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늘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수리아 민족이 멸망하기를 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부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다 가 물속에 빠져 물고기 배속에서 3일간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회개하 고 결국 니느웨 성에 가서 외칩니다.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 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니느웨를 멸망시키시겠다고 그 시기까지 정하셨습니다. 멸 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사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선포하기는 했지만 은근히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40일째 되자 니느웨 옆 동산에 올라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서 3장 1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 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왕으로부터 심지어 가축에 이르기까지 다 옷을 찢고 재를 뒤 집어쓰고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날짜까지 정해진 계획을 놀 랍게도 돌이키셨습니다. 이에 짜증이 난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햇빛에 고생하고 있는 요나에게 박 넝쿨이 나게 하셔서 그늘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벌레가 나타나서 금방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께 소리칩니다. "하나님 왜 이 박넝쿨에 벌레를 보내서 자르게 하셨습니 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 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 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요4:10-11) 그래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뜻을 세우셨다가도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고 기도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하나님을 찾으면 놀랍게도 하늘의 엄위하신 작정하신 뜻까지 도 돌이키시면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왕 여호야김은 비극의 운명으로 끝난 왕입니다. 자 신은 왕으로서 자기의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고 그리고 자기는 바벨론 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죽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위에 올랐는데 불과 석달여만 에 강제로 퇴위되어서 그도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운명을 맞습니다. 이 땅위의 사람들의 운명과 장래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작정하심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극적 종말을 그가 맞은 것은 하늘에서 그렇게 작정되 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정되었던 그의 운명은 잘하면 돌이켜 질 수도 있었 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 유다의 역사도 이같이 비참하게 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고 나라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 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같은 그들의 재앙을 선지자를 통해서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 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 던 뜻을 돌이키리라 "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하나님께서 그들 앞길에 세우신 그 재앙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재앙을 결정하시고 이미 세우셨으나 그 뜻을 돌이킬 수 있으시다고 하십니다. 단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13절에 또 반복됩니다. "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 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했습니다. 예레미야를 오히려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그리고 전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비교로 예로 들고 있습니다. 바로 유다왕 히스기야입니다. 유다왕 히스기야 시대였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시온은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것 같이 되리라." 한마디 로 유대 땅이 망하고 황폐해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 하 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재앙의 뜻을 전한 미가 선지자를 히스기야왕은 죽이 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여호와께 간구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렘26:19) 맞습니다. 과거에 히스기야왕이 즉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재앙 에 대한 하늘의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는 그것을 놓고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작정되어서 이미 선포된 하나님의 뜻이 돌이켜져서 히스기야왕과 그의 나라가 히스기야 시대에 재앙이 아니라 엄청난 복이 임하여서 부강하고 평안하고 형통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이 돌이켜져 버린 것입니다. 유다라는 나라는 하마터면 일찍 히스기야왕 때에 종말을 고할 뻔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부친은 아하스왕이었습니다. 극도로 우상 숭배하며 고난을 주어도 더욱 앗수르를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의 나라를 종지부 찍으시려고 했습니다. 그의 아 들 히스기야왕때에 예루살렘 성을 폐허로 만들고 시온을 경작해 버린 밭같이 만 드실려고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뜻을 이제 왕으로 즉위한 히스기야에 게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듣고는 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유월절 제사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산당을 파하고 우상을 척결했습니다. 그 유명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입니다. 그러자 이 남 유다왕국을 히스기야때에 멸망시키려고 작정하셨던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솔로몬 시대 이후로 가장 부흥하며 형통하며 복되게 나라를 부흥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 로 기울어 가던 나라의 운명이 다시 부흥하고 놀랍게 일어서는 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완전히 운명이 바뀌고 역사가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기도로 인하여서 저 하늘의 뜻이 수정되고 돌이켜 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 서도 매일 것이요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니라." 히스기야가 그때 간구의 기도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 나마나 하나님의 작정하신 대로 그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그와 그 나라에 재앙 이 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기도로 그의 작정된 운명과 나라의 역사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재앙이 예정되었다가 그것이 오히려 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사건이 있은 후로 나중에 그의 생애에 또한번 그러한 하나님 의 뜻을 바꾸는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히스기야왕이 병들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전달하게 했습니다. 이사야 38장 1절 입니다.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 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 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 이 정도면 포기 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전에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간구의 기도를 해서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복과 형통을 받아 낸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히스기야는 분명히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듣고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 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사야를 불렀습니다. "내가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 았고 그의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그의 날을 15년 더해 주겠다."죽이시겠다고 작 정하신 후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선포케 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 철회하 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는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 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수명을 연장시키신 것입니다. 기도에는 이런 놀라운 능력과 역사가 있습니다. 여호야김도 말씀을 듣고 간구 하였더라면 그의 운명과 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여호야김 은 부하들이 말려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그 냥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야김의 최후는 어떠했습니까 작정된 재앙이 그대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은 운명론과 숙명론을 주장합니다. 한번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포기합니다. 불교에서도 숙명론을 가르칩니다. 전생의 무슨 업보로 인 해서 작정된 인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작정하시는데 그러나 내가 부르짖고 간구하고 매달리면 운명까지도 바꿔 주실 수 있습니다. 한번 말씀하시 면 식언치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위엄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시고 자녀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앞날의 재앙에 대해서만 돌이킬 수 있다고 하지만 예레미야 18장 7절부터 보면 재앙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날에 작정한 선한 일도 내가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이 선도 바꿔 버리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 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 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 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 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 리라"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여러 달째 수고와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우리 앞날에도 어떤 고생과 수고가 언제 어 느때 작정되어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불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앞날에 어떤 어려움을 작정하고 계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두렵게 생각하며 기도의 때가 돌아오면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작정하셨다가도 재앙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재앙을 돌이켜 축복으로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도의 기간을 맞았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성탄절과 부활 절을 지켜 옵니다. 그러나 사순절도 초대교회때부터 지켜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순절 기간은 우리가 잘 지키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이 사순절 기간 에는 경건하게 생활하고 기도 안하던 사람도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 생활, 구제 생활, 찬송 생활을 해왔습니다. 정말로 내가 기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라의 운명과 역사까지 뒤바꿀 수 있는 기도의 힘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정말 우리는 나라 적으로 볼 때도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 하는 이유중 하나는 기도해도 특별한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는데 금요 기도회때 임규례 집사님께서 간증해 주신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 려고 합니다. 저도 이 말씀을 통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자 마자 바로 그 다음부터 새벽 기도회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계속 끊이지 않고 새벽 재단을 쌓아 오신 귀한 어머님이십니다. 이 집사님 께서 마음속에 지워지지 아니하는 것이 있는데 집사님께서 구파발교회에 다니실 때에 장마철에 밤새도록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많이 왔었답니다. 이런데도 새벽 기도회를 가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다가 그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에 교회를 가셨답니다. 갔더니 아무도 오지 않고 목사님과 사모님만 오셔서 세분이 예배를 드리셨답니다.
그런데 합심 기도를 하는 가운데 집사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딸아"이런 음성이었습니다. 나중에 혹시 목사님이 부 르셨는가 물었더니 목사님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시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 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비가 오고 날이 젖어 안 나왔는데도 끝까지 새벽 재 단을 쌓은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특하게 여기셔서 지금까지 입다물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 음성을 들려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 하십니다. 문제는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대 충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과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기도 회를 하여도 목숨 걸고 40일을 지키리라, 목숨걸고 벼랑끝 기도를 하나님께 드 리리라 하면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가정을 위해 나자신의 앞날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는 각오를 하 시고 이번 기도 기간은 예전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날을 바꿔 주시고 우리 기도를 통해 우리 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주시는 이러한 주인공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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