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암투 (창29:31-30:24)
본문
지난 시간 우리들이 살펴보았던 야곱의 생애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 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서 레아와 라헬의 인생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누가 더 행복하리라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당연히 라헬 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 본 본문 중 에 야곱이 라헬을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본문이 있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한 번 볼까요 .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예,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말하죠. 사실 7년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세월을 수일처럼 여길 정도로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라헬은 미모가 뛰어난 반면 레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 본 것처럼 그는 뭔가 좀 덜떨어진 듯한 여인이었습니다. 더욱 이 그가 야곱의 아내가 된 것 자체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레아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야곱의 입장에서 레아를 보면 라헬과 관계를 방해하는 훼방꾼이었을 것이며, 그저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남편의 사랑이 레아에게 머물러 있을 리 만무하겠죠. 여러분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남 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 레아, 그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일, 이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터이니까요. 이처럼 우리는 29:30절 의 말씀을 토대로 해서 라헬은 레아의 인생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라헬을 행복한 여인으로 레아는 불행한 여인 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인생은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그렇게 발전을 하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는 대 로 발전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제 이 일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원합니다. 등식이 깨어지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하고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이런 등식이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깨어지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31절 말씀을 읽습니다. 어떻게 이런 등식이 깨어지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관계에 개입을 하시기 시작을 함으로 이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 을 합니다. 어떻게 깨어지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라헬의 태를 여셨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레아가 총이 없음을 보셨기 때문이라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총이 없다는 말은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즉,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태를 여셔서 아들을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아가 잉태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딱한 처지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태의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라헬은 누구의 눈에 들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남편 야곱의 눈에 들었습니다. 남편 야곱이 라헬 을 처음 보는 그 순간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습니다. 이에 반해 라헬은 야곱의 눈에 들지 못했습니다. 남편 야 곱에게 아무런 매력도 주지 못했던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누구의 눈에 들고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남편의 눈에는 띄지 못했을 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띄 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성경은 보시고 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태를 여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도 레아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레아와 같이 사람들의 눈 에는 띄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누구의 눈에 띄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눈에 띄고 싶습니까 사람의 눈에 띄고 싶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눈에 띄고 싶습니 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를 위해서 살아가십시 오. 종종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니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틀림없이 넘어질 것입니다. 틀림없이 시험에 들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기대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기대할 바는 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띌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지 않는 그런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왠 줄 아십니까 여시니라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여기 여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 니까 그렇습니다. 이 여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보시고 여셨다는 이 말씀을 잘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뭔가 행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뭔가 채우신다는 것이죠. 공평하신 하나님 저는 이 본문을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시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 그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태를 여기고 저의 약한 부분 을 채워 나가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도 뭔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부분 이 있다면 이것 채워 나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송명희라는 시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말도 제대롭지 못하고 몸도 제대롭게 가누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역사 하신 일을 보고 이런 복음송을 지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 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 게 하셨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공평하신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연약함을 채우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레아에게 임한 은혜 이렇게 해서 레아는 첫 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의 이름에서 레아가 지녔던 슬픔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라 이름을 짖죠 그렇습니다. 르우벤이라 짖습니다. 여러분 르우벤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세울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 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슬픔으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라헬이 갖지 못한 아들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라 아들이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자신도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나도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얼마나 레아가 슬픔에 사무쳤으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 리고 그는 이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 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는 되어진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지은 이름을 보면 그가 이 슬픔 중에서 무엇을 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무엇이라 짖죠 그렇습니다. 시므온이라 짖습니다. 여러분 시므온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예, 들으셨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아들을 낳았을 때 이 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3절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아가 자신의 슬픔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했을 까요 그렇 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원통함을 감정으로 풀지 않고 하나님의 의뢰하며 하나님께 도움 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레아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레아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야곱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을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레아의 신앙은 계속되는 아들들의 이름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르우벤이나 시므온이라는 말에서 또 레위, 유다라는 말에서 그의 신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유다라는 말은 내가 찬양한다는 의미 가 담겨져 있는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얻은 아들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시기심이 불타는 라헬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선대하심이 라헬의 시기심을 불질러 놓고 말았습니다. 함께 1절을 읽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을 원망하면서 자식을 낳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라헬의 시기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사실 모든 것을 다 차지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남편의 사랑 외에 더 큰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 외에 있을 수 없습니다. 남편만 차지하면 사실 모든 것을 다 차지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라헬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서도 형 레아가 아들을 낳기 시작을 하지 시기하고 질투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라헬의 탐욕을 보게 됩니다. 이 라헬의 탐욕은 레아의 모습과 비교가 됩니다. 여러분 조금 전에 살펴 본 레아의 모습에서 탐욕적인 모습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러나라헬 그는 어떠합니까 그렇습니다. 탐욕이 가득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릅니다. 아들을 낳게 해 달 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여러분 누구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에게 원망 의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다. 마치 야곱이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서 야곱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2절 야곱이 노를 발한 것을 보면 라헬이 한 두 번 이 렇게 말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집니다. 아마도 시간만 나면 남편을 붙잡고 이 문제에 대해서 거론을 하지 않았 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야곱도 견딜 수 없어서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그것은 내 탓이 아니 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라헬은 어떻게 해결을 하려 하고 있습니까 3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어떻게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자신의 종인 빌하를 통해서 아들을 얻고자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레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신앙으로 해결을 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감정으로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슬픔을 아뢰었습니다. 그러나라헬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보다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 며 그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런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혹 이 라헬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먼저 무릎을 꿇으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경험 이런 것들을 앞세우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비록 이런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해결하실 것입니다. 라헬의 불 신앙 우리는 여기서 라헬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헬 레아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살고 있었던 지방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야곱과 결혼을 하고 하나님을 배우지만 라헬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의 신앙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창 31장에서 야곱의 가족들이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라헬이 어떻 게 한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칩니다. 여기 드라빔이라는 것은 우상의 일종으로 당 시 아버지 라반과 그의 가족이 섬기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라헬이 이것을 훔쳤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 복을 얻고자 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라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을 의뢰할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그가 빌하를 통해 아들을 낳자 지은 이름들을 보십시다.
첫째 아이의 이름은 단이라 짖고
둘째 아 이의 이름은 납달리라 짖습니다. 여러분 이 이름의 뜻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예, 단은 변호자란 뜻이고 납달리는 경쟁하다는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들이 신앙적인 이름처럼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납달리를 낳 았을 때 그의 표현을 보십시다. 8절입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라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그렇습니다. 형 레아와 경쟁하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래서 종 빌하를 통해 두 번 아들을 놓자 이 경쟁에서 이겼노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라헬의 모습, 여러분들은 닮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또 문제를 해결하는 라헬의 모습, 이것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도 이런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지극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경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종종 신앙생활을 경 쟁심으로 하려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투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낳은 사람이 있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눌러야 합니다. 내가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덮어놓고 무시해 보기도 하고 험담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으로 삶을 살아 갑니다. 그는 믿음의 방편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모습을 갖추기 바랍니다. 흉내내는 레아
그렇다면 레아는 이런 라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9절 말씀을 보십시다. 어떻습니 까 예, 금방 모방을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선하고 좋은 것은 잘 본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쁜 것을 잘 본받아요. 사람들이 외국에 이민을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있다고 하죠 예, 그 나라 욕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 보다 나쁜 것을 더 빨리 배우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레아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문제를 해결 받던 레아도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할 행동을 쉽게 흉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만약 레아가 여기서 이것을 흉내내지 않았다면 그의 신앙이 얼마나 영롱하게 빛났을 것인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아쉬운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이 레아와 같이 아쉬운 순간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 지 신앙을 견지하십시오.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여러분들의 그 처음 신앙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종 처음 을 잘 시작해 놓고는 그만 넘어지는 사람들을 봅니다. 처음에는 멋진 신앙으로 출발을 해 놓고 금세 세상을 흉내 내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렇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을 흉내내지 마십시오. 비록 여러분들이 손 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레아는 이렇게 해서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갓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아셀입니다. 이 이름들은 둘다 행운이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짖는 것을 보면 그래도 레아는 레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라헬 같았으면 이렇게 이름을 짖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완벽한 승리 라고 이름을 지었던지 멋진 승 리 라고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합환체 사건 이런 투기가 계속되는 동안 이상한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자 여기 에 등장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합환체라는 것이 등장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합환체란 강장 제나 최음제의 일종으로 생각되어 지는 식물로 보여 집니다. 이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것을 르우벤이 들에서 얻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줍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을 라헬이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에게 달라 고 합니다. 왜 달라고 했을 까요 요즘도 왜 기를 보강하는 식품이다 해서 그런 것을 먹고 몸을 보호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라헬도 자신의 몸이 허약해서 아이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는 이 합환체를 통해서 자신의 허약한 몸을 보호해서 아들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이것이 귀했던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런데 이 귀한 식물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레아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라헬은 그의 형 레아에게 가서 이것을 청구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합당한 모습이라 생각이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합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왜 라헬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요구를 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것을 요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들도 시기심이 발동을 하면 얼마든지 이 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한 레아의 반응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랬더니 라헬이 무엇이라 말하죠 예, 라 말합니다. 여기서도 라헬과 레아의 처지를 알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내 남편 이라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레아가 사용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야곱이 자신의 남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 남편을 빼앗았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라헬은 어떠합니까 예, 야곱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강한 생각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라헬은 남편 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탐심에 가득 차서 이것을 요구하죠. 아무튼 이 일로 인해 야곱은 다시 레아와 동침을 하게 되었고 잇사갈 스불론을 낳게 됩니다. 이 이름들의 의미는 둘다 행운 이 라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레아는 자신의 몸에서 난 아들 여섯 아들 그리고 자신의 몸종에게 서 나은 아들 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라헬은 그저 자신의 몸종에서 나은 아들 둘 밖에 갖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라헬에게 드디어 아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무엇이 라 기록을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 태를 여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얻은 아들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의 의미는 제거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그 동안의 부끄러움을 제거되었 음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이 여인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독차지 한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없는 한가지 것을 인하여 불행하게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 으로 위로를 삼지 않고 없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아들이 없다는 것은 큰 수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는 만족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행함으로 세월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라헬처럼 사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을 바라보면 늘 답답합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그래도 위로가 됩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승리자
그렇다면 여러분 보십시다. 이 암투에서 누가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었을까요 글쎄요, 누가 승리자가 되었다 말할 수 없지만 이 두 사람의 종말을 보면 그대로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 던 라헬은 어떻게 죽는 줄 아십니까 35장에 보면 그는 노중에서 아들 베냐민을 놓다가 그만 죽고 맙니다. 이 때 의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창 35:16-18)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 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지금 그 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 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그녀가 죽어 가면서 이 아들을 어떻게 불렀다고요 그렇습니다. 베노니라고 불 렀습니다. 무슨 뜻일 줄 아십니까 슬픔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 이죠. 이렇게 해서 라헬은 죽고 말았습니다. 미모를 갖추었지만 질투가 불타올랐던 질투심의 여인,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아들을 갖기 위해서 많은 계략을 세웠던 탐욕의 여인, 그는 이렇게 자신이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 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아는 어떻게 인생을 마감했을 까요 글쎄요. 성경에서 레아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이런 진술이 있습니다. 창 49:29-33절에 있는 말씀을 보 죠 자 여기 보면 레아의 장지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어디라 소개 하고있죠 그렇습니다. 막벨라에 장사를 했노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레아가 이 땅에서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땅에 어떤 사람들이 묻혀있다고 소개를 하죠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의 아내 사라, 이삭, 그리고 그의 아내 리브가가 묻혀 있노라고 소개를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여기 에 묻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아브라함 가문의 선산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대게 이 런 곳에는 누구만 묻히죠 정실이 묻힙니까 소실이 묻힙니까 그렇습니다. 정실이 묻힙니다.
그렇다면 레아는 비 록 남편에게 사랑은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정실로 인정을 받은 샘입니다. 그는 생전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슬픔의 나날을 보냈지만 죽고난 후 그는 정실로 인정을 받은 그런 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도 정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누가 난다고 약속을 했죠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가 누구의 후손에서 난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유다의 후손에서 나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누구의 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아 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레아는 대단한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어떤 영광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로서의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습니다. 라헬 그녀는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한 여인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심이 불일 듯 일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미모 외에 찬양 받을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인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질투와 시기심이 많 고 까다로운 성격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레아는 어떻습니까 예, 그는 아름답지도 않은 여인이었고 똑똑한 여인 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사랑도 제대롭게 받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 앙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중간에 동생 라헬의 흉내를 내기는 했지만 그는 그래도 그 모든 슬픔을 하나님께 아뢰며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이 여인을 택하셔서 메시아의 가문의 일원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평 가하고 따져 쓰시지 않습니다.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그런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의 사람을 쓰시지도 않습니다. 투기의 사람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좀 못생겨도 좀 미련하게 보여도 우직하게 그 분을 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그런 사람을 선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람들을 야 곱과 같이 라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레아를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시렵니까 레아와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퀴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아름다 움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꽃처럼 곧 시들어 버린다. 또 다른 아름다움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은총에 의해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결코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꽃핀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두 여인의 아름다움 중에 어떤 아름다움을 소유하시겠습니까 야곱을 훈련하시는 손길 이제 마지막으로 잠시만 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야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두 여인 사이에 있었던 야곱 어떠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까 그렇습니다.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집안이 편안해야 남자는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집안은 어떠했습니까 예, 여인들 의 끊임없는 암투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저 같으면 집에 들어가기조차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살맛을 잃었던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그가 밖에 나가면 누구를 상대해야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라반의 솜씨에 번번이 당하면서 기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잃어버린 기력을 집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없죠 집에 들어오 면 다시 야곱은 라헬과 레아의 암투에 시달려야 만 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한 인생입니까 살맛 나지 않는 그런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야곱이 이런 일 가운데 서 있으면서 어떤 일들을 생각했을까요 특별히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 끊임없이 암투를 벌이는 이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보았을 까요 그 렇습니다. 역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예전에 했던 그런 행동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야곱을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라반의 손에 맡기셔서 자신 의 모습을 보게 했고 또 라헬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야곱을 다루어 가셨을 까요 그렇습니다. 그만큼 그의 자아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억세게 야곱 을 다루시지 않으면 안될 그런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렇게 다루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아는 어떻습니까 혹 여러분들도 이 야곱과 같이 억세게 다루어야지 만 다듬어 질 수 있는 그런 여러분들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이것이 우리들의 살길입니다. 그래야만 다듬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에서 여러분들이 만들어지고 싶다면 속히 여러분들의 자아를 십자가에 꽁꽁 못박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 본 본문 중 에 야곱이 라헬을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본문이 있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한 번 볼까요 .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예,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말하죠. 사실 7년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세월을 수일처럼 여길 정도로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라헬은 미모가 뛰어난 반면 레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 본 것처럼 그는 뭔가 좀 덜떨어진 듯한 여인이었습니다. 더욱 이 그가 야곱의 아내가 된 것 자체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레아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야곱의 입장에서 레아를 보면 라헬과 관계를 방해하는 훼방꾼이었을 것이며, 그저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남편의 사랑이 레아에게 머물러 있을 리 만무하겠죠. 여러분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남 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 레아, 그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일, 이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터이니까요. 이처럼 우리는 29:30절 의 말씀을 토대로 해서 라헬은 레아의 인생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라헬을 행복한 여인으로 레아는 불행한 여인 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인생은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그렇게 발전을 하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는 대 로 발전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제 이 일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원합니다. 등식이 깨어지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하고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이런 등식이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깨어지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31절 말씀을 읽습니다. 어떻게 이런 등식이 깨어지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관계에 개입을 하시기 시작을 함으로 이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 을 합니다. 어떻게 깨어지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라헬의 태를 여셨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레아가 총이 없음을 보셨기 때문이라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총이 없다는 말은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즉,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태를 여셔서 아들을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아가 잉태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딱한 처지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태의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라헬은 누구의 눈에 들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남편 야곱의 눈에 들었습니다. 남편 야곱이 라헬 을 처음 보는 그 순간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습니다. 이에 반해 라헬은 야곱의 눈에 들지 못했습니다. 남편 야 곱에게 아무런 매력도 주지 못했던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누구의 눈에 들고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남편의 눈에는 띄지 못했을 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띄 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성경은 보시고 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태를 여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도 레아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레아와 같이 사람들의 눈 에는 띄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누구의 눈에 띄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눈에 띄고 싶습니까 사람의 눈에 띄고 싶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눈에 띄고 싶습니 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를 위해서 살아가십시 오. 종종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니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틀림없이 넘어질 것입니다. 틀림없이 시험에 들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기대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기대할 바는 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띌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지 않는 그런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왠 줄 아십니까 여시니라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여기 여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 니까 그렇습니다. 이 여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보시고 여셨다는 이 말씀을 잘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뭔가 행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뭔가 채우신다는 것이죠. 공평하신 하나님 저는 이 본문을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시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 그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태를 여기고 저의 약한 부분 을 채워 나가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도 뭔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부분 이 있다면 이것 채워 나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송명희라는 시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말도 제대롭지 못하고 몸도 제대롭게 가누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역사 하신 일을 보고 이런 복음송을 지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 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 게 하셨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공평하신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연약함을 채우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레아에게 임한 은혜 이렇게 해서 레아는 첫 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의 이름에서 레아가 지녔던 슬픔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라 이름을 짖죠 그렇습니다. 르우벤이라 짖습니다. 여러분 르우벤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세울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 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슬픔으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라헬이 갖지 못한 아들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라 아들이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자신도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나도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얼마나 레아가 슬픔에 사무쳤으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 리고 그는 이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 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는 되어진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지은 이름을 보면 그가 이 슬픔 중에서 무엇을 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무엇이라 짖죠 그렇습니다. 시므온이라 짖습니다. 여러분 시므온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예, 들으셨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아들을 낳았을 때 이 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3절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아가 자신의 슬픔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했을 까요 그렇 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원통함을 감정으로 풀지 않고 하나님의 의뢰하며 하나님께 도움 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레아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레아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야곱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을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레아의 신앙은 계속되는 아들들의 이름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르우벤이나 시므온이라는 말에서 또 레위, 유다라는 말에서 그의 신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유다라는 말은 내가 찬양한다는 의미 가 담겨져 있는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얻은 아들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시기심이 불타는 라헬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선대하심이 라헬의 시기심을 불질러 놓고 말았습니다. 함께 1절을 읽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을 원망하면서 자식을 낳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라헬의 시기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사실 모든 것을 다 차지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남편의 사랑 외에 더 큰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 외에 있을 수 없습니다. 남편만 차지하면 사실 모든 것을 다 차지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라헬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서도 형 레아가 아들을 낳기 시작을 하지 시기하고 질투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라헬의 탐욕을 보게 됩니다. 이 라헬의 탐욕은 레아의 모습과 비교가 됩니다. 여러분 조금 전에 살펴 본 레아의 모습에서 탐욕적인 모습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러나라헬 그는 어떠합니까 그렇습니다. 탐욕이 가득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릅니다. 아들을 낳게 해 달 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여러분 누구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에게 원망 의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다. 마치 야곱이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서 야곱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2절 야곱이 노를 발한 것을 보면 라헬이 한 두 번 이 렇게 말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집니다. 아마도 시간만 나면 남편을 붙잡고 이 문제에 대해서 거론을 하지 않았 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야곱도 견딜 수 없어서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그것은 내 탓이 아니 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라헬은 어떻게 해결을 하려 하고 있습니까 3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어떻게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자신의 종인 빌하를 통해서 아들을 얻고자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레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신앙으로 해결을 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감정으로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슬픔을 아뢰었습니다. 그러나라헬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보다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 며 그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런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혹 이 라헬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먼저 무릎을 꿇으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경험 이런 것들을 앞세우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비록 이런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해결하실 것입니다. 라헬의 불 신앙 우리는 여기서 라헬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헬 레아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살고 있었던 지방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야곱과 결혼을 하고 하나님을 배우지만 라헬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의 신앙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창 31장에서 야곱의 가족들이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라헬이 어떻 게 한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칩니다. 여기 드라빔이라는 것은 우상의 일종으로 당 시 아버지 라반과 그의 가족이 섬기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라헬이 이것을 훔쳤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 복을 얻고자 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라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을 의뢰할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그가 빌하를 통해 아들을 낳자 지은 이름들을 보십시다.
첫째 아이의 이름은 단이라 짖고
둘째 아 이의 이름은 납달리라 짖습니다. 여러분 이 이름의 뜻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예, 단은 변호자란 뜻이고 납달리는 경쟁하다는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들이 신앙적인 이름처럼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납달리를 낳 았을 때 그의 표현을 보십시다. 8절입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라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그렇습니다. 형 레아와 경쟁하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래서 종 빌하를 통해 두 번 아들을 놓자 이 경쟁에서 이겼노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라헬의 모습, 여러분들은 닮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또 문제를 해결하는 라헬의 모습, 이것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도 이런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지극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경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종종 신앙생활을 경 쟁심으로 하려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투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낳은 사람이 있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눌러야 합니다. 내가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덮어놓고 무시해 보기도 하고 험담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으로 삶을 살아 갑니다. 그는 믿음의 방편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모습을 갖추기 바랍니다. 흉내내는 레아
그렇다면 레아는 이런 라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9절 말씀을 보십시다. 어떻습니 까 예, 금방 모방을 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선하고 좋은 것은 잘 본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쁜 것을 잘 본받아요. 사람들이 외국에 이민을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있다고 하죠 예, 그 나라 욕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 보다 나쁜 것을 더 빨리 배우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레아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문제를 해결 받던 레아도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할 행동을 쉽게 흉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만약 레아가 여기서 이것을 흉내내지 않았다면 그의 신앙이 얼마나 영롱하게 빛났을 것인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아쉬운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이 레아와 같이 아쉬운 순간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 지 신앙을 견지하십시오.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여러분들의 그 처음 신앙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종 처음 을 잘 시작해 놓고는 그만 넘어지는 사람들을 봅니다. 처음에는 멋진 신앙으로 출발을 해 놓고 금세 세상을 흉내 내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렇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을 흉내내지 마십시오. 비록 여러분들이 손 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레아는 이렇게 해서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갓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아셀입니다. 이 이름들은 둘다 행운이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짖는 것을 보면 그래도 레아는 레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라헬 같았으면 이렇게 이름을 짖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완벽한 승리 라고 이름을 지었던지 멋진 승 리 라고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합환체 사건 이런 투기가 계속되는 동안 이상한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자 여기 에 등장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합환체라는 것이 등장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합환체란 강장 제나 최음제의 일종으로 생각되어 지는 식물로 보여 집니다. 이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것을 르우벤이 들에서 얻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줍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을 라헬이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에게 달라 고 합니다. 왜 달라고 했을 까요 요즘도 왜 기를 보강하는 식품이다 해서 그런 것을 먹고 몸을 보호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라헬도 자신의 몸이 허약해서 아이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는 이 합환체를 통해서 자신의 허약한 몸을 보호해서 아들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이것이 귀했던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런데 이 귀한 식물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레아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라헬은 그의 형 레아에게 가서 이것을 청구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합당한 모습이라 생각이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합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왜 라헬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요구를 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것을 요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들도 시기심이 발동을 하면 얼마든지 이 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한 레아의 반응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랬더니 라헬이 무엇이라 말하죠 예, 라 말합니다. 여기서도 라헬과 레아의 처지를 알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내 남편 이라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레아가 사용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야곱이 자신의 남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 남편을 빼앗았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라헬은 어떠합니까 예, 야곱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강한 생각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라헬은 남편 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탐심에 가득 차서 이것을 요구하죠. 아무튼 이 일로 인해 야곱은 다시 레아와 동침을 하게 되었고 잇사갈 스불론을 낳게 됩니다. 이 이름들의 의미는 둘다 행운 이 라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레아는 자신의 몸에서 난 아들 여섯 아들 그리고 자신의 몸종에게 서 나은 아들 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라헬은 그저 자신의 몸종에서 나은 아들 둘 밖에 갖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라헬에게 드디어 아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무엇이 라 기록을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 태를 여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얻은 아들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의 의미는 제거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그 동안의 부끄러움을 제거되었 음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이 여인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독차지 한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없는 한가지 것을 인하여 불행하게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 으로 위로를 삼지 않고 없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아들이 없다는 것은 큰 수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는 만족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행함으로 세월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라헬처럼 사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을 바라보면 늘 답답합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그래도 위로가 됩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승리자
그렇다면 여러분 보십시다. 이 암투에서 누가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었을까요 글쎄요, 누가 승리자가 되었다 말할 수 없지만 이 두 사람의 종말을 보면 그대로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 던 라헬은 어떻게 죽는 줄 아십니까 35장에 보면 그는 노중에서 아들 베냐민을 놓다가 그만 죽고 맙니다. 이 때 의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창 35:16-18)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 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지금 그 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 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그녀가 죽어 가면서 이 아들을 어떻게 불렀다고요 그렇습니다. 베노니라고 불 렀습니다. 무슨 뜻일 줄 아십니까 슬픔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 이죠. 이렇게 해서 라헬은 죽고 말았습니다. 미모를 갖추었지만 질투가 불타올랐던 질투심의 여인,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아들을 갖기 위해서 많은 계략을 세웠던 탐욕의 여인, 그는 이렇게 자신이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 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아는 어떻게 인생을 마감했을 까요 글쎄요. 성경에서 레아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이런 진술이 있습니다. 창 49:29-33절에 있는 말씀을 보 죠 자 여기 보면 레아의 장지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어디라 소개 하고있죠 그렇습니다. 막벨라에 장사를 했노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레아가 이 땅에서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땅에 어떤 사람들이 묻혀있다고 소개를 하죠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의 아내 사라, 이삭, 그리고 그의 아내 리브가가 묻혀 있노라고 소개를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여기 에 묻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아브라함 가문의 선산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대게 이 런 곳에는 누구만 묻히죠 정실이 묻힙니까 소실이 묻힙니까 그렇습니다. 정실이 묻힙니다.
그렇다면 레아는 비 록 남편에게 사랑은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정실로 인정을 받은 샘입니다. 그는 생전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슬픔의 나날을 보냈지만 죽고난 후 그는 정실로 인정을 받은 그런 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도 정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누가 난다고 약속을 했죠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가 누구의 후손에서 난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유다의 후손에서 나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누구의 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아 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레아는 대단한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어떤 영광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로서의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습니다. 라헬 그녀는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한 여인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심이 불일 듯 일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미모 외에 찬양 받을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인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질투와 시기심이 많 고 까다로운 성격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레아는 어떻습니까 예, 그는 아름답지도 않은 여인이었고 똑똑한 여인 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사랑도 제대롭게 받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 앙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중간에 동생 라헬의 흉내를 내기는 했지만 그는 그래도 그 모든 슬픔을 하나님께 아뢰며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이 여인을 택하셔서 메시아의 가문의 일원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평 가하고 따져 쓰시지 않습니다.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그런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의 사람을 쓰시지도 않습니다. 투기의 사람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좀 못생겨도 좀 미련하게 보여도 우직하게 그 분을 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그런 사람을 선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람들을 야 곱과 같이 라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레아를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시렵니까 레아와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퀴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아름다 움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꽃처럼 곧 시들어 버린다. 또 다른 아름다움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은총에 의해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결코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꽃핀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두 여인의 아름다움 중에 어떤 아름다움을 소유하시겠습니까 야곱을 훈련하시는 손길 이제 마지막으로 잠시만 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야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두 여인 사이에 있었던 야곱 어떠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까 그렇습니다.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집안이 편안해야 남자는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집안은 어떠했습니까 예, 여인들 의 끊임없는 암투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저 같으면 집에 들어가기조차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살맛을 잃었던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그가 밖에 나가면 누구를 상대해야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을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라반의 솜씨에 번번이 당하면서 기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잃어버린 기력을 집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없죠 집에 들어오 면 다시 야곱은 라헬과 레아의 암투에 시달려야 만 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한 인생입니까 살맛 나지 않는 그런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야곱이 이런 일 가운데 서 있으면서 어떤 일들을 생각했을까요 특별히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 끊임없이 암투를 벌이는 이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보았을 까요 그 렇습니다. 역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예전에 했던 그런 행동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야곱을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라반의 손에 맡기셔서 자신 의 모습을 보게 했고 또 라헬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야곱을 다루어 가셨을 까요 그렇습니다. 그만큼 그의 자아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억세게 야곱 을 다루시지 않으면 안될 그런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렇게 다루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아는 어떻습니까 혹 여러분들도 이 야곱과 같이 억세게 다루어야지 만 다듬어 질 수 있는 그런 여러분들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이것이 우리들의 살길입니다. 그래야만 다듬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에서 여러분들이 만들어지고 싶다면 속히 여러분들의 자아를 십자가에 꽁꽁 못박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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