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지만 누구냐? (창4:1-6)
본문
만약 여러분들이 같은 교회에서 같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누구는 구원을 받고 누구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때문에 마음 여하에 따라서 마음의 열매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같은 날에 같은 장소에서 감나무를 심었는데 이상하게도 한 쪽 감나무만이 열매가 맺힐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습니다. 마치 선악과처럼 오히려 가짜가 더 맛있게 보이고 좋게 보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은 똑 같은 물인데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젖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품으면 인간의 몸속에 독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 독이 피 속에 들어가 피를 더럽게 해서 노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똑 같은 아담의 후손이요, 똑 같은 지구 촌에서 살면서 누구는 축복을 받고 누구는 축복은 커녕 축복 근처에도 못가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똑같은 조건 속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1. 아비나답의 집에도 오벧에돔의 집에도 각각 다른 기간에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을 때 그 법궤로 인해 자기 아들 웃샤가 죽는 결과를 초래 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때문에 복을 받았는데 복을 받았다는 소문이 다윗 왕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20년 간이나 있었으나 아무런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를 섯달동안 모셨는데 복이 임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20년간이나 예수를 믿었는데 복을 받지 못한 가정이 있고 어떤 성도들은 섯달 정도 있었는데 복이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섬기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즉 몇년동안 믿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수님을 섬기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하루를 믿어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믿어야 합니다. 똑같은 법궤를 모셨는데 아비나답의 집에는 슬픔이요 오벧에돔의 집은 기쁨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아비나답의 집은 법궤를 지키기만 하였지 섬기지를 않았습니다.(삼상7:1) 아비나답의 실수는 자기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놓고 지키기만 하였지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비나답의 결정적인 실수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법궤를 옮길 때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렇게 제사를 드린 것은 바로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 앞에서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한 소식을 듣고 축복을 받기 위해 오벧에돔처럼 그대로 행했을 것으로 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쭉정이 같은 아비나답의 집입니까 아니면 알곡 같은 오벧에돔의 집입니까 똑같지만 누구 입니까
2. 가인과 아벨은 똑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창4:1-6)
그런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다는 사실은 왠만한 기독교인 이며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는가를 설명드릴려고 합니다. 아벨의 제물은 첫 소산으로 피가 있는 양의 제사입니다. 즉 보혈의 제사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있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은 첫것이라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첫 소산이 아니며 그리고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즉 생명이 없는 제사 입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니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여러분들은 아벨의 제사입니까 가인의 제사 입니까 여러분들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아벨의 제사인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양이요 첫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지 않는 자들은 모두 가인의 제사 입니다.(문성명) 여러분들은 아벨의 제사에 속해서 매주일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야곱과 에서는 똑 같이 쌍동이로서 리브가가 출산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야곱과 에서가 똑 같지만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야곱은 아비 이삭의 축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야곱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 합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도움이 컷기 때문인데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자식이 잘 된다고 어린이 심리학에서 그 내용이 나옵니다. 야곱이 축복은 속여서 받았지만 장자 명분은 정정당당하게 약속에 의해서 팟죽 한 그릇으로 산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으로 축복을 받았지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자녀된 명분으로 충분히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에서는 억울하게도 장자이면서도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이며 또하나는 그가 장자 명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무지 때문입니다. 저도 장자로 태어난 것에 대하여 상당히 잘된 일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자로 태어났다고 하시면서 다리 밑에서 주어다 기른 것은 무엇인가”라고 한때 어렸을 적에 깊이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이 물려준 가장 큰 재산은 땅과 재산이 아니라 그의 축복이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재산을 물려 주는 것보다 오히려 난 것입니다. 야곱은 보이지 않는 영적 재산을 물려 받았으나 에서는 보이는 물적 재산은 물려 받았어도 아주 귀한 보이지 않는 영적 재산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삭은 사냥군으로 “산 토끼 잡을려다 집 토끼 놓친다”는 속담처럼 사냥하려 산에 갔다가 집 토끼를 놓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이지 않은 영적 재산을 기도로 물려 받은 야곱은 12지파 자손들의 조상이 되었고 그 후손을 통해 그 뿌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열매로 오실 수가 있었던 영광을 차지 했습니다.
4. 술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은 똑 같이 옥 중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술맡은 관원장은 살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었습니다. 둘이 똑 같이 옥중에 갇혀 밤에 꿈을 꾸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좋은 꿈을 꾸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1)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리는 것입니다. 꿈에 남에게 주는 꿈은 좋은 꿈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꿈에 빼앗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많은 영혼을 살리는 역활을 하는 것으로 전도자의 결실을 거두는 꿈으로 전도자를 상징합니다.
(2)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흰 떡 세광주리가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하는 꿈이 였는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쁜 꿈입니다. 1 새는 사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가 살을 의미하는 떡을 먹었으니 사단이 생명을 뺏어갈 것을 의미하는 죽음을 뜻합니다.
2 떡은 말씀인데 그 말씀의 떡을 사단이 먹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전도의 실패를 의미하는 배도자를 뜻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술맡은 관원장처럼 포도즙 즉 그리스도 보혈로 영혼을 살리는 자가 되십시요 그러면 남의 영혼을 살리니 자기의 영혼도 살 수 있습니다.아멘! 여러분! 여러분들은 떡 맡은 관원장처럼 떡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 즉 사단에게 먹히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말씀이 없으니 남의 영혼에게 말씀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5. 똑 같은 직업을 가진 두 여인이 똑 같은 방에서 잠을 자다가 한 여인은 자기아기를 죽이고 한여인은 자기아기를 바꿔치기 당했습니다. 똑 같은 여인이 솔로몬왕 앞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한 여인은 자기 아기라 아닌고로 사랑이 없음을 스스로 나타냈고 또 다른 여인은 자기 아기인고로 진정한 사랑임을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두 성도가 재판장이 되시는 예수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한 성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어 그리스도는 “나는 너를 몰라”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한 성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서 “내가 너를 이끌어 천국으로 데려가마”라는 기쁨의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구약에 나타난 똑같은 둘중에서 축복된 하나를 말씀드렸지만 이제 신약에 나타나는 똑 같은 둘중에 축복된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6. 예수님의 비유로서 미련한 다섯 처녀와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똑 같은 처녀로서 똑 같은 밤에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영광을 차지 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어두운 데 내어 쫓기는 비극을 초래 했습니다. 왜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습니까 등잔에 기름을 불을 부쳐 빛을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가장 중요한 내용의 핵심이 되고 있는데 그 기름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있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어느 여자가 “나는 신랑이 둘입니다.” “아니 당신 같이 믿음이 좋은 여자가 어떻게 신랑이 두 명이란 말입니까” “믿음이 좋기 때문에 신랑이 둘이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요” “
그런데 신랑 하나의 이름은 하늘 나라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여러분!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모두 예수님 보고 신랑이라고 하니 예수님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분입니까 라고 믿음이 없는 자가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영적인 일로 누구든지 마음으로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영적의미로 해석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7.똑 같이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왼편 강도와 오른 편 강도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은 교회로서 교회는 영적으로 왼편 강도와 오른 편 강도로 나뉘이는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교회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미 쭉정이이니 키질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으니 키질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련한 다섯 처녀와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처녀가 모두 예수님을 기다리던 신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 택함을 받은 사람 다 똑 같이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 중에는 분명히 청함을 받은자가 있고 택함을 받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택함을 받은 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택함을 받으신 분들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8. 두 여인이 똑 같이 매를 갈고 있었고 두사람이 똑 같이 밭에 있었는데 두 여자 중에 하나가 데려감을 당하고 두 남자 중에 하나가 데려감을 당했습니다.(마24:40-41) 똑 같은 상황 속에서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된다면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 합디다 “둘이서 포옹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죠” “포옹뿐만이 아니라 끈으로 묶어 놓아도 데려감을 받을 수 있소” 여러분! 옥에 갇혀도 휴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 속에서 누구 입니까 승리의 면류관을 선한 영광의 그 날을 차지할 사람은 누구 입니까 그것은 아마 여러분들 자신 스스로가 더 잘 아실 것이니 휴거의 대상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준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전4:17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펄시 콜레 박사는 입신해서 천국에 갔을 때 거대한 흡착판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데려감을 받을 때 고무풍선처럼 둥둥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데려 올라가게 하시지 않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휴거의 방법보다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면서 잘 살아 가느냐하는 그것이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1. 아비나답의 집에도 오벧에돔의 집에도 각각 다른 기간에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을 때 그 법궤로 인해 자기 아들 웃샤가 죽는 결과를 초래 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때문에 복을 받았는데 복을 받았다는 소문이 다윗 왕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20년 간이나 있었으나 아무런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를 섯달동안 모셨는데 복이 임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20년간이나 예수를 믿었는데 복을 받지 못한 가정이 있고 어떤 성도들은 섯달 정도 있었는데 복이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섬기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즉 몇년동안 믿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수님을 섬기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하루를 믿어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믿어야 합니다. 똑같은 법궤를 모셨는데 아비나답의 집에는 슬픔이요 오벧에돔의 집은 기쁨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아비나답의 집은 법궤를 지키기만 하였지 섬기지를 않았습니다.(삼상7:1) 아비나답의 실수는 자기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놓고 지키기만 하였지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비나답의 결정적인 실수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법궤를 옮길 때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렇게 제사를 드린 것은 바로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 앞에서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한 소식을 듣고 축복을 받기 위해 오벧에돔처럼 그대로 행했을 것으로 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쭉정이 같은 아비나답의 집입니까 아니면 알곡 같은 오벧에돔의 집입니까 똑같지만 누구 입니까
2. 가인과 아벨은 똑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창4:1-6)
그런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다는 사실은 왠만한 기독교인 이며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는가를 설명드릴려고 합니다. 아벨의 제물은 첫 소산으로 피가 있는 양의 제사입니다. 즉 보혈의 제사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있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은 첫것이라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첫 소산이 아니며 그리고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즉 생명이 없는 제사 입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니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여러분들은 아벨의 제사입니까 가인의 제사 입니까 여러분들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아벨의 제사인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양이요 첫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지 않는 자들은 모두 가인의 제사 입니다.(문성명) 여러분들은 아벨의 제사에 속해서 매주일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야곱과 에서는 똑 같이 쌍동이로서 리브가가 출산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야곱과 에서가 똑 같지만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야곱은 아비 이삭의 축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야곱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 합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도움이 컷기 때문인데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자식이 잘 된다고 어린이 심리학에서 그 내용이 나옵니다. 야곱이 축복은 속여서 받았지만 장자 명분은 정정당당하게 약속에 의해서 팟죽 한 그릇으로 산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으로 축복을 받았지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자녀된 명분으로 충분히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에서는 억울하게도 장자이면서도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이며 또하나는 그가 장자 명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무지 때문입니다. 저도 장자로 태어난 것에 대하여 상당히 잘된 일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자로 태어났다고 하시면서 다리 밑에서 주어다 기른 것은 무엇인가”라고 한때 어렸을 적에 깊이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이 물려준 가장 큰 재산은 땅과 재산이 아니라 그의 축복이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재산을 물려 주는 것보다 오히려 난 것입니다. 야곱은 보이지 않는 영적 재산을 물려 받았으나 에서는 보이는 물적 재산은 물려 받았어도 아주 귀한 보이지 않는 영적 재산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삭은 사냥군으로 “산 토끼 잡을려다 집 토끼 놓친다”는 속담처럼 사냥하려 산에 갔다가 집 토끼를 놓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이지 않은 영적 재산을 기도로 물려 받은 야곱은 12지파 자손들의 조상이 되었고 그 후손을 통해 그 뿌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열매로 오실 수가 있었던 영광을 차지 했습니다.
4. 술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은 똑 같이 옥 중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술맡은 관원장은 살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었습니다. 둘이 똑 같이 옥중에 갇혀 밤에 꿈을 꾸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좋은 꿈을 꾸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1)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리는 것입니다. 꿈에 남에게 주는 꿈은 좋은 꿈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꿈에 빼앗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많은 영혼을 살리는 역활을 하는 것으로 전도자의 결실을 거두는 꿈으로 전도자를 상징합니다.
(2)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흰 떡 세광주리가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하는 꿈이 였는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쁜 꿈입니다. 1 새는 사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가 살을 의미하는 떡을 먹었으니 사단이 생명을 뺏어갈 것을 의미하는 죽음을 뜻합니다.
2 떡은 말씀인데 그 말씀의 떡을 사단이 먹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전도의 실패를 의미하는 배도자를 뜻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술맡은 관원장처럼 포도즙 즉 그리스도 보혈로 영혼을 살리는 자가 되십시요 그러면 남의 영혼을 살리니 자기의 영혼도 살 수 있습니다.아멘! 여러분! 여러분들은 떡 맡은 관원장처럼 떡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 즉 사단에게 먹히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말씀이 없으니 남의 영혼에게 말씀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5. 똑 같은 직업을 가진 두 여인이 똑 같은 방에서 잠을 자다가 한 여인은 자기아기를 죽이고 한여인은 자기아기를 바꿔치기 당했습니다. 똑 같은 여인이 솔로몬왕 앞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한 여인은 자기 아기라 아닌고로 사랑이 없음을 스스로 나타냈고 또 다른 여인은 자기 아기인고로 진정한 사랑임을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두 성도가 재판장이 되시는 예수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한 성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어 그리스도는 “나는 너를 몰라”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한 성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서 “내가 너를 이끌어 천국으로 데려가마”라는 기쁨의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구약에 나타난 똑같은 둘중에서 축복된 하나를 말씀드렸지만 이제 신약에 나타나는 똑 같은 둘중에 축복된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6. 예수님의 비유로서 미련한 다섯 처녀와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똑 같은 처녀로서 똑 같은 밤에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영광을 차지 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어두운 데 내어 쫓기는 비극을 초래 했습니다. 왜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습니까 등잔에 기름을 불을 부쳐 빛을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가장 중요한 내용의 핵심이 되고 있는데 그 기름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있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어느 여자가 “나는 신랑이 둘입니다.” “아니 당신 같이 믿음이 좋은 여자가 어떻게 신랑이 두 명이란 말입니까” “믿음이 좋기 때문에 신랑이 둘이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요” “
그런데 신랑 하나의 이름은 하늘 나라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여러분!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모두 예수님 보고 신랑이라고 하니 예수님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분입니까 라고 믿음이 없는 자가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영적인 일로 누구든지 마음으로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영적의미로 해석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7.똑 같이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왼편 강도와 오른 편 강도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은 교회로서 교회는 영적으로 왼편 강도와 오른 편 강도로 나뉘이는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교회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미 쭉정이이니 키질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으니 키질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련한 다섯 처녀와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처녀가 모두 예수님을 기다리던 신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 택함을 받은 사람 다 똑 같이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 중에는 분명히 청함을 받은자가 있고 택함을 받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택함을 받은 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택함을 받으신 분들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8. 두 여인이 똑 같이 매를 갈고 있었고 두사람이 똑 같이 밭에 있었는데 두 여자 중에 하나가 데려감을 당하고 두 남자 중에 하나가 데려감을 당했습니다.(마24:40-41) 똑 같은 상황 속에서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된다면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 합디다 “둘이서 포옹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죠” “포옹뿐만이 아니라 끈으로 묶어 놓아도 데려감을 받을 수 있소” 여러분! 옥에 갇혀도 휴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 속에서 누구 입니까 승리의 면류관을 선한 영광의 그 날을 차지할 사람은 누구 입니까 그것은 아마 여러분들 자신 스스로가 더 잘 아실 것이니 휴거의 대상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준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전4:17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펄시 콜레 박사는 입신해서 천국에 갔을 때 거대한 흡착판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데려감을 받을 때 고무풍선처럼 둥둥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데려 올라가게 하시지 않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휴거의 방법보다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면서 잘 살아 가느냐하는 그것이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