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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은 전도 (눅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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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우리 부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다. 우리 영혼에 하늘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 주머니 속에 온 세상의 보화가 가득 담겨 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기쁨이 되겠는가'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예수께서 들려주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염두에 두고 한 말처럼 느껴집니다. 예수께서들려주신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이 세상 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섞여 사는 세상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만인이 피할 수 없는 것임도 보 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인생에게 사후(死後)의 세계가 존재함을 알려 줍니다. 더욱이 이 세상에서 하지 못한 것을 사후의 세계에서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옥 간 부자의 때늦은 전도 소원입니다.
I. 공존(共存)하는 세상을 보여 줍니다. 곧 부자와 나사로가 함께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1. 한 부자가 세상에 살았습니다. 그는 이름이 없습니다. '한 부자'라는 말이 그의 이름을 대신해 버렸습니다. 당시에 라틴어로 극치에 이른 부자를 디베스(Dives)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그는 부라고 하는 물질 속에 그 인격이 파묻혀 버린 인생이었 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색옷은 겉옷이고, 고운 베옷은 속옷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왕이나 귀족들이 입은 값비싼 옷 들입니다. 이것은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의 34,000배에 해당되는 고가 의 옷이라고 합니다. 그는 호화로운 연락으로 인생을 즐겼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호화로운 연락'이란 이국적이고도 값비싼 요리와 함께 주연과 주색으로 흥청거리는 쾌락을 뜻합니다. 그것이 부자의 일과였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 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 (출 20:9)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한 삶을 살았습니다. 적어도 그는 일락을 좋아하는 육체주의의 삶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실상은 죽은 자였 습니다. 그는 하나님 없는 자의 삶, 하나님 모르는 자의 삶, 하나님이 어디 있느 냐고 하는 무신론자의 삶을 가진 자였습니다. 물질이 행복의 기조인 줄 아는 유물론자였고, 현실주의자였고, 쾌락주의자였습니다. 철두철미하게도 금세주의자였습니다.
2. 나사로라 이름하는 자도 세상에 살았습니다. 1 그는 자기 이름이 있었습니다. '나사로'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히브리어의 '엘리에셀'에서 온 것으로 '하나님의 도움'이란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신자'의 상징인지 모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자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크게 보이는 불신앙적인 이 세상과의 대조적 상태를 말합니다.
2 그는 거지 곧 걸인이었습니다. 3 헌데를 앓아 이제 기동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자였습니다. 심지어 근 동의 개들은 그의 냄새나는 헌데를 핥았다고 하였습니다.
4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곳이 그의 숙소가 되 어 버렸습니다. 5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식으로 삼아 배를 채울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그는 무기력하고 비참한 고난의 삶의 전형같이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그는 삶 중심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삶의 신조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Ⅱ. 공사(共死)하는 인생임을 보여 줍니다(눅 16:21-22). 성경은 그 거지 나사로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눅 16:22). 그리고 그 뒤 에 장사지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아마도 그의 시체는 부잣집의 종들에 의 해서 오물을 치우듯이 간단하게 처리되어 버린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자도 죽었다고 하였습니다(눅 16:22). 그리고 성경은 그가 장 사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시체는 장례식이라고 하는 것 을 통하여 그의 마지막을 최고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중대한 교훈은 두 류(類)의 실존이 다 같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난한 거지 나사로는 가난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부자는 그 부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한 거지는 가난의 동정을 받 아 죽음을 연장한 것도 아닙니다. 부자는 그의 부의 힘 때문에 죽음을 연 장한 것도 아닙니다. 한 번 태어나는 것이나 한 번 죽는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정해놓은 천정(天定)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히 9:27). 생(生)이 만인의 것이라면 죽음도 만인의 것입니다. 이유는 죄의 삯인 사망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 칙이기 때문입니다.
Ⅲ. 실존하는 내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 함의 품에 들어가고 라고 한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나사로의 육신의 호흡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물 인 천사들이 그의 죽음의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갔다는 말을 '받들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극한 영 접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품'은 구원받은 자들의 처소, 곧 천국을 나타내는 말 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천국백성의 대표가 됨을 알려 줍니다(마 8:11). '아브라함의 품'이란 실존하는 천국의 넉넉함과 안전함 그리고 풍요함과 행복함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의 육체가 부잣집의 종들에 의해 흙 속으로 버림을 받을 때, 그의 영혼은천사들의 큰 영접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속으로 안내되었습니다. 반면에 한 부자의 사후는 나사로의 사후와는 판이하였습니다.
1. 한 부자는 음부로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눅 16:23). '음부'라는 헬라어 '하데'는 히브리어 '쉐올'인데 사실상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의 표상입니다. 혹자 들은 그가 지옥에 간 것이 자선을 베풀지 아니한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그는 자선을 베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의 불신앙의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요 16:9). 예수 믿지 아니한 불신앙의 결과로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요 3:18-19).
2. 그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눅 16:23). 누가복음 16장 28절에도 보면 그 부자가 음부에서 스스로 하는 말이 '이 고통받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무엇인가 그 내용이 어떤 것 인가 그것은 소원대로 안 되는 고통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고 통입니다. 1 그는 천국(아브라함의 품)을 보고도 못 가는 고통을 받았습니다(눅 16:23).
2 불꽃 중에 고민하는데 한 방울의 물로 혀를 적실 수도 없었습니다(눅 16:24-25). 결코 천국에 간 나사로가 지옥 간 부자의 심부름꾼이 될 수 없 었습니다. 3 단절의 고통이었습니다(눅 16:26).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 이 있기 때문에 오거나 가거나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구렁'이란 '크 게 벌어진 틈'이란 뜻인데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고정해 놓으신 완벽한 간 격을 뜻합니다.
4 전도 소원의 거절입니다(눅 16:27-30. 그때 부자에게 뼈저리게 떠오 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자기 골육형제였습니다. 지옥 간 부자의 소원, 간절한 소원, 큰 소원이 나타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구하오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 지 않게 하소서!"(눅 16:27-28) 정말 기막힌 소원입니다. 지옥 간 부자의 애타는 소원입니다. 아니 절규의 소원입니다. 이 세상(금세)에 있는 자기 형제 다섯이 자기가 고통받고 있는 지옥에 오지 않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지옥의 실존을 맛보면서 터진 전도의 소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소원은 거절당하고 있습니다. 그 큰 이유는 때늦은 전도였기 때문입니다.
Ⅳ. 때늦은 전도가 무엇인가
1. 사후 전도입니다. 그는 살아 있을 동안에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육체로 일락 을 즐기다가 하나님 없이 죽은 자입니다. 성경은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눅 16:22-23).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는 이 세상(금세)의 일에 관여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옥과 천국, 지옥과 금세, 천국과 금세 사이에는 큰구렁이 있습니다. 서로 내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파의 기회는 오직 이 세상에 있을 때만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후에는 금세에서 주어지는 모든 기회가 상실 당하고 마는 것 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자가 죽은 자를 위하거나, 죽은 자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자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라 일컫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카톨릭에서 말하는 사후에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고 가르치는 이른바 연옥설 교리는 이단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후손들 이 죽은 자를 위하여 그 어떠한 속죄 공덕 행위도 전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일종의 유령 전도입니다. 부자는 죽은 나사로를 환생시켜 이 세상에 보내면, 죽은 자가 환생하는 일로 인하여 저희 형제 다섯이 회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눅 16:27-30).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눅 16:29, 31). 모세와 선지자는 율법과 예언을 가리킵니다. 율법과 예언의 중심은 예수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예수(율법과 예언)의 복음을 전 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들의 전도를 받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지옥 간 부자는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면' 저희가 회개할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는 이것은 일종의 유령전도입니다. 그는 지옥에서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 있는 전도자들의 전 도보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도해야 그 형제들이 믿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있는 그 다섯 형제들의 심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종의 유령전도, 혹은 이적적 전도를 통해서만이 그 형제 다섯이 회개할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벵겔(Bengel)은 '우리는 충실한 들음(모세와 선지자의 글)으로 구원을 받았지 유령으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때늦은 전도는 아무 것도 아님을 보여 줍니다.
3. 그럼에도 지옥 간 부자의 소원, 금세에 있는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소원의 외침에서 살아 있는 우리는 교훈을 받아야 됩니다. 예컨대 이 세상에서 죽은 부모를 위해 제사를 드린다거나 아니면 죽은 자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살아남은 자들이 속죄 공덕을 쌓는 일을 대 신 하는 죄들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지옥 간 부자의 외침은 우상숭배(제사)하지 말고, 미신 섬기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이 산 사람에게 결코 의사전달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성경 계시의 빛을 볼 때,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이 오늘이라 일 컫는 동안에 피차 전하고 전도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힘써야 될 것입니다. 1969년 늦은 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시무하던 당시 부산제일영도교회 에 곽씨 부인 허씨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으로는 홀로 계시는 불신 시 아버지와 또 불신 남편과 교회에 나오는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교회에서 세례식이나 성찬식을 행할 때마다 괴로워하고 탄식하며 울고 있 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유인즉 불신 시아버지와 남편 때문에 조상의 제사를 끊지 못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 때문에 세례도 못 받고, 성찬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기 때 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성도를 조상 제사의 압제에서 해방시키 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마침죽은 시모의 제삿날이 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우선 시아버 지와 남편이 시키는 대로 모든 제사 준비를 다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자정 전에 저와 두 분의 장로와 남녀 부교역자들이 그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남편 곽씨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 시아버 지는 아랫방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음식으로 예배드린 모든 자 가 맛있게 야식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남편 곽씨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했 습니다. 그후 얼마 안되어 또 조부의 제사가 다가왔습니다. 그때도 전과 같이 예 배드리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지방 집회 인도 때문에 빠지고 사모와 구역심방자들과 남녀 부교역자들이 그날 밤에 또 찾아갔습니다. 시아버지가 긴 지렛대를 들고 마당 한가운데로 뛰어 나왔습니다. 이때 예배를 인도 할 남자 교역자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남은 여자들끼리 끝까지 참고 예배를 드리고 야식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그 집의 제사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부인은 기다리던 세례를 받았고, 성찬식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 남편도 교회에 나오 게 되었고, 그 여성도는 지금 권사로 봉사하는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자녀들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이 중대합니다. 내일이면 늦을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 며,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실험은 정확하지 못하고, 판단은 곤란하다.'고 히포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태양이 비취고 있는 동안에 건초를 만들어라.' M. 세르반데스 돈키호테 가 말했습니다. '기회는 모든 자들에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는 자는 소수다.'
A. 리톤이 말하였습니다. '고기 보고 기뻐만 하지 말고 가서 그물을 던져라.'고 하는 한국 속담은 기회를 활용하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고 헛수고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기회가 사람을 버리는 것보다 사람이 기회를 잃 어버릴 때가 더 많다.' 프랑스 격언입니다. 예수님은 말했습니다.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한다 (요 11:9)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은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너는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 지 항상 힘쓰라 고 하였습니다(딤후 4:2). 히브리서 3장 13절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 고 하였습니다. 때늦은 전도는 사실상 전도일 수가 없습니다. 때늦은 전도란 말은 사실 상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사후 전도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유령전도입니다. 사후 전도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옥 간 부자는 전도 하지 않은 자였습니다. 아니 전도를 못 해본 자입니다. 다만 주님은 이 비유에서 살아 있을 동안에 골육의 구원을위하여 전도 해야 된다는 암시적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지옥이 있고 천 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아브라함의 품이 있 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음부의 영원한 고통이 있다는 내세의 진리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세에서 받은 시간이나 공간이나 건강이나 지혜나 부나 기타 모든 것들을 선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부 (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단일 뿐, 결코 숭배나 육체적 쾌락이나 삶의 목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일할 수 없는 밤(죽음)이 오기 전에, 때가 늦기 전에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구령(救靈)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 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감당할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본분입니다. 바로 별들의 전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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