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단축하여진고로 (고전7:29-31)
본문
오늘은 6월 마지막 주일!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말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물리적인 시간은 항상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10대엔 시간이 10km/h로, 20대엔 20km/h로, ., 60대엔 60km/h로, . 흘러간다." 여러분, 모래 시계를 보신적이 있으시죠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모래가 동일하게 떨어지지만, 얼른 보면 처음엔 모래가 서서히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아주 신속하게 떨어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마치 그것처럼 우리 인생도 점점 빨라지는 느낌입니다. 시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옛날에 비해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는 편리한 교통편이나 도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왜 그런지 정신없이 바쁘기만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겨우 3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기가 나온다고 하죠. 서울에서 아침 먹고 뉴욕에서 점심 먹고 실컷 일보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때가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말세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이렇게 세월이 신속하게 지나는 가운데 우리가 과연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정신없이 일상사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생이 다 된 것을 느끼고 인생무상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죠.
그러므로 평소에 이따금 정신없는 일상사에서 뚝 떨어져 인생을 전체로 놓고 묵상하고 정리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인생 자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7:2,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이 말씀대로 종말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 세상 외에 죽음 이후 내세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성숙한 성도일수록 이런 신앙을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그런 신앙을 권면해 줍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건전한 종말론적 신앙을 회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어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종말론적 신앙이 필요한 이유 1 인생의 때가 단축되어 갑니다.(29절a-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 ’98/06/28 주일낮예배(9826) 2 엄밀하게 말하면 인생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단축되어 갑니다. 여러분, '나이'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의 연륜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전체 인생에서 '단축된 기간'인 것입니다. 대상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언제 우리 인생이 끝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 나 항상 그 가능성이 열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종말의 때가 성큼 앞으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상과 성경 마24:을 비롯한 말세의 징조를 예언한 기록들을 비교해 보면 그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종말이 정말 가까이 왔음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예> 천재지변-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기상 이변(엘 니뇨, 라 니냐 현상 등) 세계 구석 구석에 복음이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음(마24:14)
2 세상 것들은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31절b-이 세상의 형적/fashion은 지나감이니라) 아무리 세상에서 화려한 것들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곧 사라지게 됩니다. 덧없습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PASS AWAY) ." 시103:15-16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우리 인생은 정말 휙- 하고 지나갑니다. [2] 종말론적 신앙의 구체적 자세 인생이 이렇게 신속하게 지나고, 또 소유했던 것 모두가 사라져 가므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생각없이 세상 풍조를 따라 어영부영 살다가는 후회막심한 인생으로 마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 잘 해야 됩니다.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산다'는 뜻입니다. 즉 인생의 시간은 기회들인데,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나를 무작정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가 안 타도 기차는 떠납니다. 그러면 순간 순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를 갖고 살아야 할까요 본문 29절b-31절a을 봅니다. 세상에서 초연한 자세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 현실도피주의로 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세상에서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에 살지라도 항상 세상을 떠날 때가 있음을 의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즉 그 마음의 중심이 세상보다는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 시민권자로서(빌3:20) 하늘 나라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로 살 때 가장 확실하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요 ’98/06/28 주일낮예배(9826) 3 1 일시적인 관계보다 영원한 관계를 귀히 여기는 자세(29절b) 이 말씀은 가정 생활을 포기하거나 무시하란 뜻이 아닙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기관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가정 생활에 충실해야 됩니다. 다만 여기서 말씀하는 바는 가족들과의 가까운 사랑의 관계보다 더 가깝고 중요한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인간 관계는, 가족 관계를 포함해서 아무리 가깝고 좋아도 언젠가는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여러 가지 상황으로, 혹은 죽음으로 인해서 그렇게 됩니다. 누구나, 특히 가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안간 관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인간 관계는 부분적이고 사라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혹시라도 지나치게 사람에게 치우치다가 하나님과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인간 관계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그도 하나님을 믿고 나와 그가 서로 사랑할 때 성숙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그러므로 가족을 포함한 인간 관계를 맺을 때 사람끼리 좋게 지내지 말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신경써야 할 것입니다.
2 일시적인 즐거움보다 영원한 즐거움을 귀히 여기는 자세(30절a) 세상 것들로 인해 우리는 늘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조 건적인 기쁨이죠. 그런 삶의 자세를 갖고 살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피곤합니다. 늘 세상 근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혹은 세상 향락에 빠져 말초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진정한 기쁨이 없고 세속적인 즐거움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마치 미취제와 같습니다. 취하면 좋은 것 같은데, 깨어나면 괴롭고 힘듭니다. 소금물과 같습니다. 마실수록 오히려 더 갈증이 납니다. 세상 즐거움을 추구할수록 더욱 공허해 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이 부어주시는 평안은 진정한 기쁨이 됩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 십자가로 죄사함받고 영생을 얻은 자의 기쁨입니다. 그것은 장차 천국에서 완전해질 것입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감사하면서 더 좋은 천국을 사모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근심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이 세상의 근심 걱정 다 이기게 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눈물이 없는 ’98/06/28 주일낮예배(9826) 4 천국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슬픔 많은 이 세상이 마치 천국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기쁨의 차원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있었기에 바울 사도는 감옥에서도 기뻐하라는 말씀을 담대히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3 일시적인 물질보다 영원한 하늘의 상을 귀히 여기는 자세(30절b-31절a) 누구나 공수래 공수거입니다.(고전4:7)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세상 일에만 분주합니다.(시39:6-7) 하나님의 그런 것들보다 장차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물질 소유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 예> 루암밋(카렌족)-농사와 코끼리 운행으로 수입-주일 성수하느라 관광객이 와도 일절 응하지 않습니다. "예배해야 되고, 코끼리도 쉬어야 되쟎아요"-물질 소유 자체보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 물질을 포함한 모든 소유는 그 자체의 소유 가치(얼마나 많이 가졌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 가치(무엇을 위해 썼는가)가 중요합니다. 때로는 많은 소유가 무익할 수도 있고, 적은 소유가 유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 자식들 사이에 재산 싸움이 생긴다면 예> 어린 소년의 오병이어, 과부의 두 렙돈-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태국 교회당 건축-경제위기 이전 1만불 정도의 헌금으로 3개 교회당이나 세워짐. 산족들이 너무 가난해서 3년 이상 헌금하던 중 하나님의 섭리로 지원되었고 구원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 그 교회들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과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영원한 상이 될 것! 여러분, 우리 인생이 특별하다는 게 과연 무엇입니까 영원을 바라보면 사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미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각성이 필요합니다. 만일 오늘 하나님이 나의 생명을 불러가신다면 과연 내 자신은 내 인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또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평가가 내려지겠는가 우리 모두가 이 아침 깊임 묵상할 문제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면서 남은 생애 종말론적 신앙으로 영광스런 생애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10대엔 시간이 10km/h로, 20대엔 20km/h로, ., 60대엔 60km/h로, . 흘러간다." 여러분, 모래 시계를 보신적이 있으시죠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모래가 동일하게 떨어지지만, 얼른 보면 처음엔 모래가 서서히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아주 신속하게 떨어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마치 그것처럼 우리 인생도 점점 빨라지는 느낌입니다. 시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옛날에 비해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는 편리한 교통편이나 도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왜 그런지 정신없이 바쁘기만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겨우 3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기가 나온다고 하죠. 서울에서 아침 먹고 뉴욕에서 점심 먹고 실컷 일보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때가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말세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이렇게 세월이 신속하게 지나는 가운데 우리가 과연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정신없이 일상사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생이 다 된 것을 느끼고 인생무상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죠.
그러므로 평소에 이따금 정신없는 일상사에서 뚝 떨어져 인생을 전체로 놓고 묵상하고 정리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인생 자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7:2,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이 말씀대로 종말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 세상 외에 죽음 이후 내세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성숙한 성도일수록 이런 신앙을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그런 신앙을 권면해 줍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건전한 종말론적 신앙을 회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어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종말론적 신앙이 필요한 이유 1 인생의 때가 단축되어 갑니다.(29절a-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 ’98/06/28 주일낮예배(9826) 2 엄밀하게 말하면 인생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단축되어 갑니다. 여러분, '나이'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의 연륜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전체 인생에서 '단축된 기간'인 것입니다. 대상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언제 우리 인생이 끝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 나 항상 그 가능성이 열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종말의 때가 성큼 앞으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상과 성경 마24:을 비롯한 말세의 징조를 예언한 기록들을 비교해 보면 그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종말이 정말 가까이 왔음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예> 천재지변-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기상 이변(엘 니뇨, 라 니냐 현상 등) 세계 구석 구석에 복음이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음(마24:14)
2 세상 것들은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31절b-이 세상의 형적/fashion은 지나감이니라) 아무리 세상에서 화려한 것들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곧 사라지게 됩니다. 덧없습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PASS AWAY) ." 시103:15-16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우리 인생은 정말 휙- 하고 지나갑니다. [2] 종말론적 신앙의 구체적 자세 인생이 이렇게 신속하게 지나고, 또 소유했던 것 모두가 사라져 가므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생각없이 세상 풍조를 따라 어영부영 살다가는 후회막심한 인생으로 마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 잘 해야 됩니다.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산다'는 뜻입니다. 즉 인생의 시간은 기회들인데,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나를 무작정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가 안 타도 기차는 떠납니다. 그러면 순간 순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를 갖고 살아야 할까요 본문 29절b-31절a을 봅니다. 세상에서 초연한 자세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 현실도피주의로 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세상에서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에 살지라도 항상 세상을 떠날 때가 있음을 의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즉 그 마음의 중심이 세상보다는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 시민권자로서(빌3:20) 하늘 나라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로 살 때 가장 확실하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요 ’98/06/28 주일낮예배(9826) 3 1 일시적인 관계보다 영원한 관계를 귀히 여기는 자세(29절b) 이 말씀은 가정 생활을 포기하거나 무시하란 뜻이 아닙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기관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가정 생활에 충실해야 됩니다. 다만 여기서 말씀하는 바는 가족들과의 가까운 사랑의 관계보다 더 가깝고 중요한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인간 관계는, 가족 관계를 포함해서 아무리 가깝고 좋아도 언젠가는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여러 가지 상황으로, 혹은 죽음으로 인해서 그렇게 됩니다. 누구나, 특히 가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안간 관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인간 관계는 부분적이고 사라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혹시라도 지나치게 사람에게 치우치다가 하나님과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인간 관계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그도 하나님을 믿고 나와 그가 서로 사랑할 때 성숙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그러므로 가족을 포함한 인간 관계를 맺을 때 사람끼리 좋게 지내지 말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신경써야 할 것입니다.
2 일시적인 즐거움보다 영원한 즐거움을 귀히 여기는 자세(30절a) 세상 것들로 인해 우리는 늘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조 건적인 기쁨이죠. 그런 삶의 자세를 갖고 살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피곤합니다. 늘 세상 근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혹은 세상 향락에 빠져 말초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진정한 기쁨이 없고 세속적인 즐거움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마치 미취제와 같습니다. 취하면 좋은 것 같은데, 깨어나면 괴롭고 힘듭니다. 소금물과 같습니다. 마실수록 오히려 더 갈증이 납니다. 세상 즐거움을 추구할수록 더욱 공허해 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이 부어주시는 평안은 진정한 기쁨이 됩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 십자가로 죄사함받고 영생을 얻은 자의 기쁨입니다. 그것은 장차 천국에서 완전해질 것입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감사하면서 더 좋은 천국을 사모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근심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이 세상의 근심 걱정 다 이기게 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눈물이 없는 ’98/06/28 주일낮예배(9826) 4 천국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슬픔 많은 이 세상이 마치 천국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기쁨의 차원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기쁨이 있었기에 바울 사도는 감옥에서도 기뻐하라는 말씀을 담대히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3 일시적인 물질보다 영원한 하늘의 상을 귀히 여기는 자세(30절b-31절a) 누구나 공수래 공수거입니다.(고전4:7)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세상 일에만 분주합니다.(시39:6-7) 하나님의 그런 것들보다 장차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물질 소유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 예> 루암밋(카렌족)-농사와 코끼리 운행으로 수입-주일 성수하느라 관광객이 와도 일절 응하지 않습니다. "예배해야 되고, 코끼리도 쉬어야 되쟎아요"-물질 소유 자체보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 물질을 포함한 모든 소유는 그 자체의 소유 가치(얼마나 많이 가졌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 가치(무엇을 위해 썼는가)가 중요합니다. 때로는 많은 소유가 무익할 수도 있고, 적은 소유가 유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 자식들 사이에 재산 싸움이 생긴다면 예> 어린 소년의 오병이어, 과부의 두 렙돈-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태국 교회당 건축-경제위기 이전 1만불 정도의 헌금으로 3개 교회당이나 세워짐. 산족들이 너무 가난해서 3년 이상 헌금하던 중 하나님의 섭리로 지원되었고 구원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 그 교회들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과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영원한 상이 될 것! 여러분, 우리 인생이 특별하다는 게 과연 무엇입니까 영원을 바라보면 사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미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각성이 필요합니다. 만일 오늘 하나님이 나의 생명을 불러가신다면 과연 내 자신은 내 인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또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평가가 내려지겠는가 우리 모두가 이 아침 깊임 묵상할 문제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면서 남은 생애 종말론적 신앙으로 영광스런 생애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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