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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엎드려 들으매 (행9:1-9)

본문

본문의 중요한 교훈의 요점은 땅에 엎드린 사울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울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자세로 다메섹을 향했던 그의 태 도와 땅에 엎드려서 "주여 뉘시니이까"하는 모습은 사울이 새로워 진 변화된 마음의 태도가 외부적으로 나타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땅에 엎드린 것은
1) 주께 대한 존엄성과 권위에 대해서 높여 보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2)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항복을 의미하는데 땅에 엎드렸음은 완전히 자신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앞으로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당신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절대복종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로써 살펴 볼 때에 오늘 우리들이 주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너무나 성실하지 못하고 교만한 태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중심에 받아 드리지 못하므로써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경우가 매우 어렵다는 데에서, 오늘 사울이 다메섹 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말씀을 듣는 태도는 그의 앞날에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이 그리스도교를 핍박하려고 다메섹에 가던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역사적 사건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는 참 산 신앙적 교훈은 무엇인가를 살피면서 은혜를 받고져 합니다.
1.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대한 관심 그 당시 유대교는 기독교를 핍박하는 상황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당시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관심있게 살피고 계시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오늘 나타나는 사울이라는 청년 한 사람에게 보이신 관심은 바로 사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의 한 사람을 모두 이토록 사랑 하시고 구원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특별히 선택하셔서 부르시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창22장11절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번 부르시고, 삼상3장 10절에는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 지라"라고 했고 눅10장41절 에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라고 합니다. 또 눅22장31절에는 "시몬아,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 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내 이름을 알고 계실뿐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내가 하고저 하는것도, 내가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될것도, 나의 전부를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토록 아시는 주님께서 침묵을 지키시고 계시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시기도 하시며 귀로 듣도록 말씀을 하시 기까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여호와 하나님의 원하고 계시는 뜻대로 살아갈 것을 바라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성에서 우리 주님이 나에게 대한 깊은 관심과 우리가 주의 뜻을 따 라 살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립니다. 사울이 핍박한 것은 성도들이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신 것은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함은 바로 예수님을 위함이지만 교회를 핍박하거나 교회를 해하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대한 반박행위요, 핍박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종들을 핍박함이 예수님 자신을 핍박함입니다.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라고 한 말씀은 바로 주님의 사랑하는 종들에게 행하는 것 이야마로 예수님께 대한 도전이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성도의 핍박엠 동참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성도는 나홀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 로 주님이 나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일곱별을 오른 손에 붙드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왕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말해 주며, 하나님의 교회와 그곳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종들과 하나님의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을 우리 주님께서 붙들고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3) 강팍한 사람도 필요하면 사용하십니다. 사울은 교만한 자입니다. 오만방자한자 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할 때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죽일만한 강팍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버리지 않스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는 착하고 얌전하고누가 보든지 쓸 만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분으로 잘못알고 나같은 사람이 무엇을 하 겠는가하는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성령님안 에서는 사람에게 버림 받은 쓸모없는 사람을 구원하여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새롭게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잠16장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같이 죄인중에 괴수라도 사용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성도 각자를 필요하셔서 부르시고 지금 세우셨으니 주께서 부르 실 때는 "아멘"으로 순종하여 따라야 할 것입니다.
2. 우리의 관찰 이 사울을 부르시는 사건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신령적의 미를 관찰헤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일어나 성으론 들어가라(6절) 이 말씀은 "주여 뉘시오니까"라고 질문하는 사울에게 하신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엎드린 자에게 일어나라 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 가 있습니까 이것은 무조건 용서의 음성일뿐아니라 나는 너를 피 요로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속에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라"는 명령을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사60장1절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라"하시는 명 령을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1. 창13장17절에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택한자를 향한 말씀이며,
2. 창35장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 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싸으라 하신지라"라는 서 약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3. 수1장2절에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 라"는 사명자에게 하신 명령이요,
4. 겔2장1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 게 말하리라 하시며"는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5. 욘1장6절에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6. 눅8장54절에는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어나라 하심은 사명을 주심이요,능력을 주심이요, 새로운 축복을 주심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의 사건을 관찰하면서 우리 자신들이 지금까지 앉어서, 누워서, 잠자며, 낙심하며, 태만하며, 세상에 도취가 되어 있던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네가 일어나서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했는나데 이것은 우리가 일어설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여야 할 사명을 주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2)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9절) 이 3일이란 인간 의지의 한계시간입니다. 창22장4절에서 아브라 함이 이삭을 바칠 모리아산은 3일 길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3일 길을 가다가 믿음이 아니면 돌아왔을 것입니다. 욘1장17절에서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삼야를 지내며 하나님 앞에 회개한 사실을 볼 때 3일은 바로 사람의 의지와 인내의 한계라고 봅니다. 또 행9장9절을 보면 사흘동안 사울은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샜 습니다. 이 3일 기간은 사울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옛 날 사울이 죽고 바울로서 새로워지는 시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덤에서 3일간 계시다가 부활의 영광을 가지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이 삼일을 거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삼일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길인데 이 길을 지나게 되므로써 옛사람이 죽어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이 3일 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살 펴보면서 이 길을 지나는 성도가 됩시다.
3) 보지 못하는 눈(8절) 18절에서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보게 된지라"라고 했는데 과거의 사울의 감긴 눈과 변화되어 비늘이 떨 어진 바울의 눈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변화되 었을 때3층전의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되고 말로 형용할수 없는 세 계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신령한 눈이 떠지기 이전에 사람들이 보는것은 세상의 사치, 부귀영화, 형제의 비리, 잘못을 보며 남을 보되 자신은 보지 못하는 소경이요, 우맹이요, 음란하고 더럽고 패 역한 현실세상과 육신의 정욕적인 사실만 바라보게 되고 신령한 세 계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바울은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 죄악으로 충만한가를 보았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을 볼때 얼마나 불쌍한 심령인가를 알고 안 타까워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는 이 신령한 눈을 떠야 합니다. 보이는 세상만이 전부가 아 니라 이세상의 것, 보이는 것은 잠깜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이 신령한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에 보이는 것만 위하여 노력하고 애쓰다가 죽는자가 가장 불쌍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찬송가 269장에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물건 불 탈때에 너도 타겠구나"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처럼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의 영광이 펼쳐지고 하나님 의보좌와 네 영물과 이십사 장로와 천군천사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저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신령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3. 사울이 받은 은혜 사울은 다메섹에서 그의 일생의 큰 변화를 받았으나 그것 중에서 세가지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가지 사실을 꼭 은혜 로 받아야 합니다.
1) 자기를 똑바로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는 자기자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잠16장32절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모를 때에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남을 중상모략하고 자신이 가장 의로운 줄로 착각하여 남을 심판하기가 쉽고 그 안목에는 하나님도 없다고 하게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이 자신을 알기전에 취했던 행동이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나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역사가 일어날 때 에 자신의 부족과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깨닫게 된 바울이 자기를 무엇이라 했습니까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와 같다. 즉 칠삭동이라는 것입니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의 찌끼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지극 히 작은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자신을 똑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돈푼이나 있다고, 살만큼 됐다고, 좀 배웠다고, 자신을 모르고 사 울처럼 살지말고 성령님안에서 변화받아 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 에 가련하고 1분 앞도 모르고 내 계획대로 한가지도 성사시킬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인가를 자각하고 예수님의 도우심과 성령님의 인도 를 받고 사는 사람이 됩시다.
2)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습니다. 사울은 무엇을 알았습니까
1.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았습니다.
2. 예수님은 영광중에 하나님 우편에 계신것을 알았습니다.
3. 죄 짓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4.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그 큰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사랑 의 주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5.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고 예수님의 피로서 의로워짐을 알겜 되었습니다. 6.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는 그 어떤 것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가외에는 자랑하지 않았고, 예수님밖에는 증 거하지 않았고, 말씀외에는 자랑하지 않았으며, 사명외에는 바램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이여!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예수님께서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모른다면 아주 가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 시며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와 "당신 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나다나엘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2장6절-8절까지에 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탸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 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합니다. 곧 주님이 우리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엄청난 놀라운 사랑을 힘있게 외쳤습니다. 그의 사랑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축량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엡3:18-19). 이것을 알게 될 때에 분명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3) 자기가 해야할 사명을 알았습니다.(15절)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20장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 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면서 사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 은 없습니다. 할일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가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되 영 혼 구원 한 일은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살아 남아 있는 기간동안 무엇을 위해 살 것입니까 정치 무상, 권력무상, 재물무상, 명예무상, 인생무상등 무엇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그것을 위해서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삽시다. 이것이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받은 사명이었 고, 그의 사명을 통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렇게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주의 복음의 사명자들이 됩시다. 이토록 자신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사명을 알게 됐던 바울을 지금도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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