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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열국과 백성 (창10:1,32)

본문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로 말미암아 퍼져나간 인류의 확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10:1) 창세기 9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하신대로 수많은 종족이 새로운 땅에 솟아 나왔습니다. 그들은 셈과 함과 야벳을 각기 조상으로 하여 쏟아져 나왔습니다. 땅은 활기를 찾았고 그들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과 그 후손에 대한 말씀으로 그 내용을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2절부터 5절까지는 야벳의 후손에 관한 기록입니다.2 6절부터 20절까지는 함의 후손에 관한 기록입니다. 3 21절부터 31절까지는 셈의 후손에 관한 기록입니다.4 그리고 결론으로서 32절입니다. 야벳은 노아의 막내아들이면서 성경 기록상으로는 제일 먼저 그들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 다음이 함의 후손의 족보가 나오고, 마지막이 셈의 후손의 족보가 나옵니다. 이들 후손들의 이름이 기록된 후에 나오는 말이 이들로부터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가 나왔다는 말입니다.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창10:5)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 대로이었더라”(창10:20)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창10:31)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창10:32)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나라가 있어도 이들은 다 셈과 함과 야벳을 조상으로 하여 생겨난 사람들과 나라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이들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나의 뿌리와 신앙의 위치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야벳의 후손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창9:27) 하나님은 야벳을 창대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야벳의 노력과 수고로 그가 창대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대케 하심으로 창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신다고 했습니다.(창12:2) 욥기에서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하셨습니다.(욥8:7) 성경은 인간의 노력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적극적으로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결과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전도서 5장 19절에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인간으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수고를 무효로 돌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1-2) 신명기 8장 18절에 큰 부자는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을 주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봅시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와 재물과 존영을 줄 것인데 너와 같은 이가 솔로몬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욥기 1장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욥의 집과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셨다고 했습니다.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창대하기를 원하십니까 왜 창대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믿는 성도를 창대케 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소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져야 합니다. 창세기 9장 27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은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왜 야벳을 창대케 하십니까 그리고 그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십니까 바로 그 위에 나오는 26절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 함의 후손 성경 기록상으로 보면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이 제일 길게 나와 있습니다. 6절부터 20절까지 무려 15절이나 됩니다. 그리고 야벳을 창대케 하신다고 했는데 오히려 함의 후손들의 이력이 더 거창하게 보입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들과 흡사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니므롯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10:8-9) 니므롯은 함의 후손 중 구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나타난 처음 영걸이라 했습니다. 영걸은 뛰어난 영웅을 말합니다. 니므롯, 그 이름의 뜻은 ‘반역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하고 대적했던 최초의 전제 군주였습니다. 사단 마귀가 영물로서 최초의 하나님을 대적한 자라면 니므롯은 사람으로서 큰 무리를 형성하고 집단적인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했습니다. 사냥꾼은 짐승을 잡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특이한 사냥꾼이 된 것은 그가 짐승을 사냥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가 얼마나 넓은 나라였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아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창10:10-12) 그는 큰 나라를 세우고 뭇 백성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지극히 큰 성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자신을 높였습니다. 높아진 자신을 섬기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냥하여 자기의 손아귀에 두고 장악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뛰어난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땅에서는 누가 앞서서 땅을 지배하느냐로 칭송을 받습니다. 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을 장악함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니므롯은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남다른 재주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창대하고 번창한 그들 가운데 주목받는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높이며 하나님처럼 떠받들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크고 넓고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그런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관심이 그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웅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영웅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선 자신이 영웅이 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벽에 부딪힐 때는 자신을 대리한 다른 영웅에게 자신을 반영시켜 버립니다. 어떤 개인을 우상화하고 정신 못차릴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그는 바로 나 자신이 투영된 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록 영웅이 되지 못했지만 다른 영웅에게 나를 반영시켜 그가 영웅으로 뭇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을 때 나도 영웅이 된 양 붕붕 떠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영웅이 되지도 못하고 영웅으로 떠받들만한 그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맘모스, 매머드 대형교회를 좋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큰 건물에 많은 사람 속에 동화되어 나도 함께 높아지고 나도 함께 크고 싶다는 잠재의식 때문입니다. 니므롯의 영웅주의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의 후손의 창대함, 니므롯의 창대함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였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땅의 축복만을 사모하는 것은 저주받은 심성입니다. 땅의 창대함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얻든 못 얻든 관계없이 저주입니다. 가장 큰 축복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을 언제든지 훌훌 털고 이 땅을 빨리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큰 것, 많은 것, 높은 것, 넓은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이한 사냥꾼, 영혼의 포수 마귀 사단에게 땅에 것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자유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셈의 후손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6-27)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지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셈의 후손들에게는 함의 자손 중에서 니므롯이 나오는 것처럼 그런 영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영웅들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철저하게 하나님만 높아져야지 인간이 높아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굳이 영웅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영웅이 못될 때 다른 사람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추구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높아지고 하나님만 영광받으시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나는 한없이 낮아져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다윗은 너무 기뻐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옷은 벗겨지고 하체가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다윗의 아내 미갈이 창문을 통해서 내려다보니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궁에 들어왔을 때 미갈은 이 사실을 들어 왕을 크게 책망했습니다. 이 때 다윗이 미갈에게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삼하6:21-22) 내 수치가 드러나면 어떻습니까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면 어떻습니까 예수님만 높아지면 됩니다. 이후로 다윗은 미갈을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 그녀는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이 높아져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자칫하면 우리가 추앙하고 높이기 쉬운 다윗의 부끄러운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인물들이 다 별 것 아니요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찌 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만 높여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주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 일 때문에 주님이 가려진다면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한 것입니다. 마귀의 앞잡이 역할을 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높아져야 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2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사실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0장 상황은 이것이 역전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야벳이 창대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된 모습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의 세력, 가나안의 세력이 온 세상을 다 뒤덮고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끝내 주님이 이루실 역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시는 역사가 드디어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렇듯 인류가 세 사람을 통해 각자 나라와 백성이 이루어졌습니다. 함과 가나안의 특징은 영웅주의입니다. 함과 가나안은 사람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번성은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주받은 족속의 특징입니다. 셈과 야벳은 비영웅주의입니다. 이들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호두까듯이 깨보니까 한쪽은 영웅이 들어 있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다릅니다. 이 두 민족이 서로 섞여 있다는 것이 제일 희한합니다. 둘이 섞여 있다는 말은 한쪽은 압박하는 쪽이고, 한쪽은 압박을 받는 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고난을 주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고난을 받는 쪽입니다. 그러나 고난받는 쪽이 오히려 역으로 승리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 15절 약속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머리를 깨뜨리며 발꿈치를 무는 관계입니다.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시68:21) 정수리를 치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몫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몫으로 남겨 두자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심판은 주께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68:19) 구원은 짐을 대신 져주시는 것입니다. 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21절에 나오는 죄입니다. 죄라는 악마가 우리에게 죄라는 문제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 짐을 깨버렸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먼저 우리가 무엇엔가 잡혀 있다는 것이 확정적으로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잡은 그 주동자의 정수리를 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기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구원관입니다. 출애굽 사상입니다. 어떤 실체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얻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사망이 늘 우리를 두렵게 했는데 예수님이 그의 정수리를 치심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게 생명이고 영생입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호13:13-14)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이 말은 아이는 낳아야 하겠는데 낳으면 아이도 자신도 다 죽는 것입니다. 빼도 박도 못하고난처한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괴로운 입장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은 받아야 하겠습니다. 태아가 엄마의 모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구원이듯이 나오기는 나와야 하겠는데 나올 수는 없습니다. 빠져 나오고 싶은 것은 우리의 희망 사항인데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시고 사망의 너의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너는 멸망을 받을지어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정수리를 누가 쳐야 합니까 주님께서 쳐주셔야 합니다. 쳐주신 분에 의하여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오늘날 노아의 후손으로 번성한 인류는 자기 뿌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결국 찾아낸 것이 쿤타킨테라는 노예가 자신의 조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록이 소설과 영화로 작품화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뿌리 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아담을 조상으로 하여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분명한 것은 노아의 후손입니다. 여기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그 다음은 셈과 함과 야벳인데 이 셋 중에 나의 뿌리는 과연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혈통적으로 조사하면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중에 함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자신은 저주받은 후손이 되기 때문입니다. 셈과 야벳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뜻과 노력에 따라 일이 되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셈과 함과 야벳에게 주신 약속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함의 자손입니다. 육신의 혈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적 혈통, 영적 신분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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