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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사람 (창12:1-4)

본문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흔히 십자가의 종교 또는 사랑의 종교라고 호칭하는데 거기 에 한 가지 덧부친다면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 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아무나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롬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는 말씀처럼 누군가 그 사람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 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 시도다 이처럼 기독교는 침묵의 우상앞에 일방적인 부르짖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내가 하나님을 부르는 부름의 종교인 것입니다. 흔히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었으 면 평생 우상을 숭배하며 살다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불신자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주셨기 때문이라면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아브라함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 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에게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하나님이 부르실 때 신문 지상에 간혹 대통령이 모범 시민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다과나 칼 국수를 같이 하였다는 기사를 접하게 될 때 있는데 그 사람은 그만한 자격이 있고 그만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대통령을 만나 뵙는 영광의 자리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은 그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의 영광 스러운 일이면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큼 무슨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 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일방적으로 부르 셨을 때 아브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한 무슨 업적이 있었 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는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는 말씀처럼 도리어 하나님 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때였습니다. 오늘도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어느 누구 를 막론하고 목사 장로 집사는 그만두고서라도 구원조차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예수를 믿고 성도 가 되고 집사 장로 목사가 된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며, 또 하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나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한 아무 런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님이 불러 주셨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첫 출발은 아브람에게는 어떤 티끌만한 공로가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비록 내가 하나님앞에서 무슨 잘 한 일이 없어도 하나님이 정말 나같은 자를 불러 주셨을까 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 습니다. 바울 사도가 뒤늦게 사도가 되었지만 어느 사도보다 많이 충성하고 목숨을 걸면서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충성심의 동기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예수님 을 믿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었는가에 대해서 잘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러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자신을 사도롤 불러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이같은 고백은 사도 바울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말씀처럼 저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 가 받아야만 할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 혼자 예수 믿고 조용히 주일 낮 예배나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각 지교회에서 남전도회 회원으로 교회를 섬기고 전도와 선교에 헌신해야 만 할 절대적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불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 하는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우리 민족만큼 우상숭배를 심하게 한 민족이 어디있습니까 그냥 버려두었으면 지옥 특실에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부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나였는데 불러주신 것을 생각하면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주님이 피흘 려 값주고 사신 교회를 달 받들어 충성하고, 주님의 복음 전도와 선교에 시간과 물 질을 바쳐 헌신해도 아까와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찬송 378 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영광의 주님을 비방했다 지극한 그 은혜 내게 넘쳐 날 불러 주시니 고마워라
2.하나님이 부르신 까닭 하나님이 아브람을 우상의 가문에서 불러 내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 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람을 이용하여 무슨 유익을 취하시기 위해서가 아니었 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말씀과 같이 한 마디로 아브람에게 복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이라고 하면 그것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며 받기 원하는 것이며 받을 수록 좋 은 것이 복이기에 어느 누구도 복을 거절할 사람이나 복이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흔히 신앙의 목적이 복을 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기복주의를 비난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복받기를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알고보면 인간이 바라는 것들 중에 좋은 것은 복이라는 말안에 다 내포되어있으며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신앙을 갖고 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틀리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한 평생은 그렇게 소원하는 복보다 불행 스러운 삶을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기에 (전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라는 말씀처럼 헛된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는 말이 결코 염 세주의라고만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지막 죽음앞에서 모두 헛되고 마는 것이 분명한 현실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브람을 불러 주시지 아니하셨다면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헛된 삶을 살다가 우리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2)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복을 받지 못한 삶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삶을 살다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한 무가치한 삶을 살다가 죽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남기고 죽는 무책임한 부모, 자신을 낳아 길러 주신 부모를 욕되고 하고 죽는 불효자식, 사회에 기생하여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다가 제명을 살지 못하고 죽는 범법자,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사랑의 실천자 등 갖가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아브람은 어떤 사람이었었는지 우리는 잘알 수 없습니다. 물론 아브람이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브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을 만한 무슨 선한 일을 많이 한 때문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만 하셔도 감사한 일인데 아브람에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뿐만 아니라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 겠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아브람이 무슨일을 많이 했다고 이같은 복을 약속하시는 것이며 그 약속을 아 브람 당대에만이 아니라 아브람이 죽은 후에도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갈지라도 그대로 이행하시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같은 말씀을 들을 때 아브람만이 그같은 복을 독점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도 하나님은 그 복을 나눠주시고 계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 성도들의 처지가 제각기 다를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 을 믿고난 다음에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의 주변에 영육간에 좋은 것들을 하나 하나 생각하면 어느 하나를 막론하고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 게 주어진 축복들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무엇이 며, 내가 과연 하나님의 마음에 들을 만한 사람인가를 돌이켜 보면 그 답은 분명히 아니요 일 것입니다. (시116: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시 116:6)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 도다 (시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는 시편 기자의 감사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헌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신은 책임이나 계획에 따른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격하여 나의 무엇을 그 하나님께 드리면 좋을까 하는 감격에서 자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이어야만 합니다.
3.복주신 까닭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주시기 위해 부르셨으며 또한 그에게 복을 주시는 까닭은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고 한 말씀 처럼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하시는 이유는 아브람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야만 할 이유도 내가 그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우월감이나 나는 얼마의 물질을 주는 대신에 나는 그보다 더 값진 보람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은 복받을 자격이 없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을 나누는 복 배달 부가 되게 하심이라는 진정한 선교와 선행의 원리와, 우리가 남에게 어떤 마음으로 선을 베풀어야 하는가 하는 청지기 정신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고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복을 선언하 신 것처럼 복을 주시기 위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와 타락은 그같은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와 갈 수록 벌어져서 복 이 아니라 도리어 진노와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일들만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일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일에서 비롯하여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일과, 노아의 날에 죄악이 홍수만큼 세상에 가득 해진 일과, 바벨탑을 쌓은 일등 모든 일들이 복은 커녕 심판과 저주를 자초하는 일 들이었습니다. 만일 그같은 인간들을 하나님이 그냥 버려두신다면 인류는 땅위에서 한 사람도 남 김없이 멸망하고 말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같은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을 탄식하시기에 충분하였으며 마치 참포도를 기대하 고 포도나무를 심고 계속 거름을 주고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갈 수록 무성하게 달 리는 것은 참포도가 아니라 들포도인 것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인류를 얼마든지 포기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라는 한 가지를 택하셔서 그곳에 참포도나무를 접부치셔서 처음에 의도하신 대로 참포도 열매를 맺기를 원하신 것이 바로 아브람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 아브람의 가문에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접부쳐서 참포도 열매를 맺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 열매로 즐거워하고 배불리 먹고 복되게 하시기 위한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으시고 복주시겠다는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 12 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 사건은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가 리키는 뜻 깊은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브람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까닭이 바로 만민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 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구원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한 사람 아담으로 시작된 것처럼 인류 구원의 역사도 한 사람 아브 람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 가문에서 태어나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롤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심은 영적인 종자 개량 작업이며 영적인 축복의 나눔인 선교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아브람 한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 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하시고자 하시는 그 축복의 원리는 놀랍게도 아브 람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롬4:23)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롬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고 한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진다고 하니 더욱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헌신하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복을 쏟아 부어 주시는 까닭은 결코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나의 가정이, 나로 말미암아 나의 직장이, 나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이, 나로 말미암아 세계가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합니까 아직도 나 한 사람에 머물고 있으며, 아직도 복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감사와 기쁨이 없으며, 아직도 남에게 선한 일 한번 못하고 복음 한 번 전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신앙마져 흔들거리고 있다면 참으로 주님을 실망 시키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불신자가 아니요 살인 강도가 아니라 그 같은 세상을 방 관만한채 하나님의 복을 차단시키고 있는 오늘의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욱 의기소침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자신을 돌 이켜 볼때 자신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염려일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부으심을 받은 아브람에게는 남에게 복을 나누기는 커녕 자신의 문제마져도 해결 못하고 있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
1)큰 민족을 이루 며
2)이름을 창대케하며
3)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이같은 엄청난 비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앞에 자신의 빈약한 처지 때문에 의심하거 나 거부하지 아니하고 그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서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는 말씀처럼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아브람의 믿음은 자신의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할 수 없지만 자신을 부르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음을 믿고 75세 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향 산천을 미련없이 떠나는 순종이 동반되는 믿음입니다. 왜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의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입으로는 믿는 다고 하면서 손과 발로는 떠날 자리에서 떠나지 아니하 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믿습니다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짓없는 믿음과 최선의 순종이 부족한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할 수 없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맡겨 버리고 전폭적으로 순종 하는 일이며 그것까지만 내가 한다면 그 나머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서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아브람의 힘으로는 이삭을 나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이 믿고 순종하고 인내함으로 기다릴 때 마침내 이삭을 주셨으며 그 후손을 통해서 복되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결론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 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 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Theodore H. Epp는 "하나님이 누군가를 택하신 것은 그 택한 사람 을 통해서 일을 하시기 위함이다" 라고 한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 남전도회원들을 택 하시고 부르신 것은 일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일이 바로 남을 복받게 하는 일이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남은 한 평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영 육간에 복을 믿음없는 내 가족과 이웃과 민족과 이방민족에게 나누는 복된 일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헌신을 하되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날 불러 주시니 고맙고 내게 복주시니 감사하고 나를 일꾼으로 써주심이 고마워서 기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충성할 것이며 설 령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을 할지라도 하나님이 불러 주시지 아니하시고 복주시지 아 니했으면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존귀케 하신 것처럼 우리 남전도회원들을 이 땅에서도 영화 롭고 존귀케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 이밤에도 떠나라고 하시는 자리에서 아픔이 있고 희생이 있어도 믿음으로 떠나며, 가라고 하시는 곳까지 순종함으로 가는 헌신자들이 되어 마침내 다 다르게 하시며, 이루게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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