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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 싶은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살자 (애1:1-6,딤후1:1-14,시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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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라고도 하는 유행가에는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 또는 기쁨과 사랑이 배여 있습니다. 일제시대로부터 60년대까 지는 슬픈 노래가 많았고, 70년대로부터 80년대까지는 명랑한 노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노래는, 제가 갖고 있는 시대 감각이나 감정 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의 슬픔을 노래 한 것인지, 아니면 기쁨을 노래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나름대로의 뜻을 담고 있기는 하나, 왜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슨 목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냥 흥얼거리자는 것이요, 몸을 비틀어 대다 보니 저절로 외쳐 나오는 소리인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비디오 가수라고는 하지만, 노래로써 어떤 감정이나 의미를 표현하려는 몸동작으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몸을 비틀어 대는 것이 주목적이고, 노래는 그 부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생활 모습이 또한 그렇 지 않나 싶습니다. 특별히 무슨 큰 아픔이나 슬픔, 또는 무슨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래도 또한 아무런 감정 없이 맹목적으로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시편 137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붙잡혀 가서 온갖 굴욕과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의 그 아픔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억압자들이 강제로 노래를 시키는 바람에, 하기 싫은 노래를 해야만 했다고 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 돌리 던 노래를 억압자들을 위하여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 명나게 한 가락 읊으란 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만든 자가 우리에게 신명을 돋구라 하네. 자기들을 위해 시온 노래를 한 가락 읊어라 하네.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머나먼 타향 땅에 붙잡혀 와서 종살이를 하는 것만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 질 일인데, 자기들의 기분을 돋구기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아무데서나 부르라 하니, 얼마나 열 바치는 일이었겠 습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한 신세가 되게 끔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일은, 마치 자식이 그 부모를 공양해야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찬양해서는 안되고, 진실한 마음 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예배하며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할 때에는, 의무감으로 해서는 안되고 감사한 마음으로 부모를 섬겨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분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엉뚱한 것 을 인생의 으뜸으로 삼고 찬양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되는 것 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게 된 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찬양하고 받들어 섬기게 되면, 그 영혼이 제 고향 땅을 벗어나 이상한 곳에서 헤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목적 없이 사는 떠돌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뻔한 일입니다. 애가서 1장 3절을 보면, 이스라 엘 백성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마음 편할 날이 없 었다 고 했는데, 목적이 분명치 못한 인생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 괴로워하는 (애가1:4) 인생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번지를 잘 찾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정 말 인생을 멋있게 살고자 한다면,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신나게 부르기를 원한다면, 인간이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딤후1:3) 고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열심히 감당함으로써, 그 렇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인간 자신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1.만일 이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미 말씀드렸듯이 자 신이 원치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신나게 달려가게 되면 잠시는 기분 이 좋을지 모릅니다. 다른 차를 추월하여 앞으로 달려가는 그 맛이란 상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에 맛을 들이게 되면 언젠가는 사고를 당할 것이 뻔한 일이고, 그렇게 되면 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르기 싫어도 불러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삶이란, 인간이 그 정도 (正道)를 따라 걸어감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정해 놓으신 인간의 길을 열심히 달려갈 때에, 마음 편히 그리고 신나게 노래하며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그러나, 지금 우리는 혹시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서 죄의 노래를 열심히 불러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서 기분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닙 니까 하나님이 아시면 큰 일 날 일이건만, 이익이 아주 많이 남았다고 행복해 하는 것은 아닌지요 엊그제 신문에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기사 한편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소매치기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는 법정에 서, 소매치기 전과 14범인 60대 남자가 방청객을 상대로 또 소매치기를 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입니다. 대구 수성경찰서가 19일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김종인씨(67.주거 부정)는 지난 18일 오전 10시 10분께 대구 지방법원 제3호 법정에서 공판이 열리고 있는 동안, 방청석에 서 이 모씨(37.대구시 동구 신암4동)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현 금 16만원이 든 지갑을 빼내려다 이씨와 법정 정리에게 붙잡 혔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소매치기 전과 14범으로 모두 16년 간을 감옥에서 보낸 것으로 밝혀져 조사 경찰관을 놀라게 했 다는 기사였습니다. 그가 처음 소매치기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버릇이 있었던 것은 아니 었리라 생각합니다. 재미 삼아 한 짓이었거나, 아니면 살아가 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할 때마다 어떤 쾌감 내지 승리감을 맛 보았을 것입니다. 그 쾌감을 잊지 못해, 아니면 세상을 살아 가기 위해, 그 짓을 계속하게 되었겠지요. 그러다가 습관적으 로 그런 짓을 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죄의 포로가 되어, 자신이 원치 않는 짓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죄짓는 자리에 가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끼게 됩니다. 한두 번 참석하다 보면 죄의식을 못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운 듯 수줍음을 느끼면서 하는 짓입니다. 양심의 가 책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 책도 느끼지 않고 당당히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죄의 포로가 되어, 사탄이 조종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런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부모가 말려도 소용이 없고 목사가 타일러도 듣지 않 습니다. 3그러다가 끝내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어 신 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짓이란, 사람을 이용할 대로 다 이용하고서 나중에는 그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좀 심한 표현일지 모르나, 사실입니다. 사탄은, 처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을 유혹하지요. 그 럴듯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일단 자신 의 부하로 삼은 다음에는 자기 맘껏 부려먹는다는 것을, 우리는 주일학교 때부터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처럼 잘 아는 사실인데도, 그런 잘못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 때에야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깨닫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참한 신세를 기억해 주소서! 쓰디쓴 쑥이나 씹으며 소태나 마시는 이 신세를 정말 기 억해 주소서! 마음 속 깊이 이 괴로움만을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힐 뿐입니다. (애가서 3장 19-20절) 그러나 실패와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그 순간이 기회입니다.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잘못된 삶을 고쳐 살면, 그 러한 경험을 맛보지 못한 사람보다 더 앞서 갈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잘못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사람 도리를 다하고 있지, 나 정도는 되어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하고 자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날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오늘 자 신의 부족과 허물을 깨닫고 주께 돌아와 주님을 의지하면
2.하나님은 그에게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 두 가지를 디모데에게 부 탁하고 있습니다.
ㄱ."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롭고 담대하게 살기 를 원한다"고 했으며,
ㄴ."때로는 절제하며,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진정한 삶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신나게 노래 부르며 살아갈 수 있는 떳떳한 인생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잘못된 삶에서 벗어나, 이러한 삶을 살 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구원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1그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그 구원의 사역자로 우리 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물론
ㄱ.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알려졌습니다 (딤후1:10).
ㄴ.그리고 그를 통해서 구원 계획을 보이셨습니다(딤후1:9).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좀더 알아야, 그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구원의 삶이란 '때 빼고 광(光)내는 일' 입니다. 잘못된 생활을 고쳐서 새로운 삶을 살고, 그래서 빛 이 되는 생활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아서 세상의 빛이 되게 하 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2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딤후1:8에서 밝히기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사람들 앞에서 주님에 관해 말하기를 주저치 말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담대히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의 삶의 방식은 옳은 것입니다. 조금은 힘들고 외로운 길이지만, 그러나 자식들 앞에서는 옳은 길이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생활 방식입니다. 때묻은 세상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나, 순수한 아이들은 옳은 일이라고 긍정을 할 것입니다. 3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 신다고 했습니다. 세상 살자면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 을 살려면 그 타협을 거부해야 합니다. 잠깐 살자고 한다면 자신의 양심을 속여야 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 앞에 서려면 그 양심을 지켜 보존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성령님이 주신 그대의 놀라운 능력을 소중하게 보존하라(딤후1:14) 고 했습니다. 놀라운 능 력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입니다. 옳다고 여기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위에 서서
3.우리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 말하면 그럴 듯하고, 저 사람이 저 말하면 또한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면, 참으로 딱한 형편에 놓여 있음 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엉뚱한 것을 으뜸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만을 고집해도 또한 불쌍한 일입니다. 분명하게 자신의 인생관이나 처세관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자동차를 차량 정비 공장에 가지고 가서 정비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정비해야 합니다. 분명히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도 계속 몰고 가다가는 큰 탈이 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인생을 어디서 정비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엉터리 기술자에게 우리 인생을 맡기면,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개똥 철학 하는 사람이나 이단 사 설을 좇아가게 되면,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 기준 에 따라 정비를 해야만, 영원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잠깐 멋있고 화려하게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등진 채 정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정리해 보면, 우리의 삶은 이러해야 합니다. 1자신이 처한 형편을 바로 인식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 아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삶을 고쳐 살아야 합니다. 괜스레 남의 눈치 보며 체면 차리느라고, 자신의 잘못된 생활을 고쳐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크게 창피 당할 날이 옵니다. 애가서의 기자는 1장 5절에서 우리가 허물과 죄가 많아, 여호와께서 내리치셨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를 들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나아와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쳐 살려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2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진리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인생의 어떤 목적도 뚜렷하게 갖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좀더 잘사는 일에 매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 들로부터 욕을 먹지 않으려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사십시오. 무엇이 옳은 일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을 분명 히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삶 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랬으니, 우리도 그 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인생 의 목표로 해야 할 것인가'하고, 반드시 그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 사는 방법은 진리와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기사 바울이 정한 목표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사는 방법만큼은 이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십자가의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3분명 이 길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억지로 노 래부를 염려는 없습니다. 신념이 있는 사람은 누가 강제로 억누른다고 해도 굽히지 를 않습니다. 이 세상 욕심을 따라 죄를 짓게 되는 경우 비겁 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지,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나게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했지 않습니까 그는 옥중에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주 기철 목사가 또한 그러했지 않습니까 그는 순교를 당하면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에 따라 사는 길은 멋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멋이 있어 보일 따 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목표와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은 어떤 환난 속에서 도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욕심에 따 라 사는 사람은, 마음에는 원치 않지만 처세를 위하여 억지로 노래를 불러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쪼록 자신 있게 살아가면서,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 를 신나게 노래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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