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시는 하나님 (창7:1-6)
본문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7: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창7: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 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창7:4)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창7:5) 노 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7: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 어느 누구나 한 평생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영원토록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육신적으로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는 것 을 뜻한다면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시며, 말씀하고 계시며 또한 듣고 계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당시의 세상에 죄악만을 보시고 한탄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세대에 물들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켜 나가는 의로운 노아를 아울러 보셨음과 같이,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보시되 세상의 부정적인 죄악만을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노아와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는 믿음의 성도를 아울러 지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눈과 눈을 마주 바라보 며, 한 사람이 입으로 말하면 한사람이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눔과 같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눈을 마주 하고 때로는 그 하나님께 입을 열어 기도로 아뢰면 사라아계신 하나님은 아무리 바 쁘시더라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영적인 교제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믿음의 성도들은 믿음의 귀를 열어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 에 믿의의 귀를 열고 기울리며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사데 교회를 향해 예수께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자로다(계3:1)" 라는 책망을 들었던 것처럼 육신적으로 건강하고 젊다는 것만으로 다 된 거싱 아니 라 영적인 눈과 귀와 입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 열려져 있어야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있는 사람은 육신적인 부귀권세 이전에 계2:7 귀있는 자는 성려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 수 있는 영적 귀를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1. 완성된 방주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의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노아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해 큰 배인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을 때 인간의 생각으로는 수만톤이 나 되는 그 큰 배를 어떠헤 만들 수 있어서, 또한 무엇 때문에 그 같이 만들어야만 하는 지 그 이유에 대해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아니하는 명령이 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노아가 무조건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비록 기간이 길고 지루하며 어럽고 힘들었었 지만 때가되니 마침내 그 방주가 다 완성되었습니다. 그같은 노아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 양상과 유사한 몇가지 공통점이 있으믓띵 개닫게 되는데 하나님의 명령은 때로 믿음으로만 이해되어지고 순종은 이해되어는 부분만이 아니라 잘 이해되어지지 아니하는 부분까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마른 하늘에서도 무조건 순종하며 방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로는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오래 참음 가운데 순종하느라면 내가 하는 것 같으나 내힘만으로 될 수 없 었었던 그 일들이 "빌1:6 너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 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는 말씀과 같이 마침내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그처럼 인고 끝에 만든 방주이지만 그것이 당장 위대하게 생각 되고 만인이 찬사를 보낸 것이 아니라 불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조롱과 화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만은 그 완성된 방주를 보시고 기뻐하셨으며, 노아 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창7:1 "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집은 방 조로 들어가라 네가 이세대에 내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노아와 그이 가족을 방주안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것을 노아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만든 방주라고 할지라도 그 방주는 밖에서 구 경하기위해 만들어지 것이 아니라는 것이입니다
1)교회와 방주 우리는 방주를 오늘의 교회로 생각하고 말씀을 적용하여 봅시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니 1 방주가 크니, 작으니, 잘 만들었느니 못만들었느니, 길이가 얼마며 높이가 얼마 며, 재료는 무엇이며 얼마나 들어갔는가 하는 것을 아무리 잘 안다고 할지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되며
2노아와 그의 가족이 아무리 정성을 다해 방주를 완성하였다고 할지라도 밖에서 구 경만 할 뿐이지 방주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며 그 기나긴 세월동안 방주를 만든 수 고는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3그러나 어느 누구든지 그 방주안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들어갈떼 구원 함을 받을 수 있으며 그 동안 노아의 수고에 참다운 보람과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지상 교회는 마 치 방주와도 같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은 지상에 그의 몸된 교회를 세 우실때 노아와 같은 믿음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게 되셨습니다. 지상의 코고 작은 교회는 어는 교회를 막론하고 노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의 쑤고 와 인내를 통해서 세워졌고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같은 교회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꺼리가 되고 있으며, 많은 교인 들이 교회 밖에서 교회의 외부적인 관찰만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교회를 아름답게 페인트 칠을하는 일에 수고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과 생각이 교회안으로 들어가 라고 초청하시는 주님의 부르심과는 거리가 먼 교회 밖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일고, 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해 수고하고 자선사업을 하여 교회를 빛 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방주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노아만이 아니라"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 과 같이 온 가족 식구들이 다 함께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너만이 아니라 네 집안에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아버지 어머님를 포함한 온 식구들과 더불어 다함께 주님이 피흘려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안으로 들어오라고 초청 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한 집안 식구이지만 믿음의 정도가 제 각기 다르겠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금 방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오늘 이 죄악된 세상에 빠져 영적으 로 침몰하지 않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와 방주 물론 지상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비유하여 그 의미를 찾는데 있어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노아의 방주안에 들어간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구원함 을 받게되지만 유형 교회안에 들어와 앉아 있기만 하면 누구나 말세 심판에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고 오직 믿음의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로 비유하여 해석함은 오늘 우리에게 유일한 방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가 야만 구원함을 받는다는 말이 공간적 의미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아니하나 그 예수님 의 몸이 교회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 될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교회안에 들어와 있을지라도 구원함을 받지 못할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과 같이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노아와 가족이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을 믿고 방주안으로 들어감 과 같이, 지금도 나와 내 온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말이 곧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는 길인 것입니다. 신앙은 개인적이나 하나님은 온 가족 의 구원을 기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신앙하면 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지상에 몸도니 교회를 세우신 것은 바로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와 다 구원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 아니 세상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몸된 교회는 방주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충분히 제공하여 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곳임을 잊지 말 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방주안으로 초청하셨을 때는 누구든지 그 방주안 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 완벽하게 예비된 구원의 처소였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는 커녕 지나간 어제나 다름이 없이 태양이 빛나고, 하늘은 푸 르르며, 새들이 그 창공을 나는 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기 대문에 방주의 문은 열려져 있었으며, 누구나 방주를 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족들을 이끌고 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직 보지 못한 홍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가 사실로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없이는, 세상과의 단절과 분리없 이는 한쪽 발은 방주 안에, 다른 한쪽 발은 방주 밖 세상에 양 다리를 하고서는 들 어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가 바로 그와 똑같으며 믿음으로 구언함 을 받는다는 말이 바로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가.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 우리의 구원은 노아보다 쉬울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맏르라고 하셨고 노아는 그 방주를 만드는 일에 오랜 세월을 수고해야만 하였지만 오늘 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행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고 말씀하신 구원이 며,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값없는 은혜이며, 아무런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형편에 처하여 있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주님의 초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향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 이라"는 말씀처럼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노아보다 쉬운 구원 일 수 있습니다. 나. 그러나 노아는 온 가족을 방주 안으로 이끌고 간 것과 오늘 우리는 나의 가족 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인도하여 나아온 것이 형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노 아의 구원이나 오늘 우리의 구원이나 동일한 것은 바로 믿음의 구원이라는 점입니다. 노아가 죄악된 세상에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마른 하늘아래에서도 온 가족을 이끌 고 방주 안으로 들어간 그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다 적용되어진다는 것 입니다. 세계의 도처에서 연속되어져 일어나고 있는 천재지변과 더불어 날로 부태하여져 가는 도덕성이 말세 심판을 예고하는 션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세의 심판을 잘 믿지 않으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는 것이 현대 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말세에 세상의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유 혹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믿음으로 방주안으로 들어온다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아니한 것이 사실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고 몸만 교회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마른 하늘아래서 방주를 만들고, 마른 하늘 아래서 온 가족을 이끌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던 노아와 같은 말세의 믿음이 요 구되어지는 것입니다.
2. 마지막 기회
1)인간들은 自信이 不完全한 존재로 죄인이며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물이 드러나 있음을 깨닫지 못한채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에 대해서 관용하지 못하며 정죄하거나 비난하기 잘 할 분 아니라 정반대로 자신의 허물과 죄 에 대해서는 변명하거나 핑계하기 잘하는 단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한 후에도 즉시 죽게 하지 아니하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가인이 자기 동생을 돌로 쳐 죽인 후에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 며 도리어 그 이마에 표를 하여 사람들에게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다 사랑의 하나님 께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그 시대의 사람들임에도 불구 하고 즉시 멸하지 아니하시고 자그마치 120년의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만도 감사한 데, 방주가 다 완성되어 그 방주 안으로 누구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노아를 조롱하면서 방주로 들어가기를 거부 하는 패역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은 창7:7 칠일 후에 홍수가 덮이니 라는 말씀 처럼 마지막 회개의 기회, 마지막 믿음의 기회 칠일을 남겨 주셨습니다. 회개치 아니하고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채 결국 홍수로 전멸 당하였다면 과연 하나님의 무자비탓인가 아니면 인간의 패역한 탓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기회를 제공 받은 것으로서 그 기회가 학생에게는 실력을 연마하여 미래의 일꾼이 되기 우히나 준비의 기회이며, 사업가에게는 열심히 일을 하여 성공할 기회이며, 성도들에게는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기회들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다가와서는 잠시 머문 후에 때가되면 그 꼬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지나가 버리게 되며 그 기 회가 지나고난 후에는 후회속에서 늙고 병들어 죽게 되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태풍이 갑자기 몰아 닥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구름의 방향을 따라 예고되며 태풍의 눈안에 들어오면 오히려 반시동안의 고요함과 적막함이 있음과 같이 하나님이 노아 시대 사람들은 홍수로 심판하시기 직전에도 마른 하늘에 햇빛 찬란한 칠일의 고요함 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에게 베푸신 회개를 추구하시는 마지막 자비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끝까지 목을 곧게한 교만한 인류들에 게는 그것마져 무시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만일 그 칠일동안 노아처럼 온 가족을 이끌고 방주로 들어갔 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짐승보다 귀한 존재인데 방주에는 노인의 가족만 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창7:8,9에보면 정결한 짐승은 물론 불결한 짐승과 새와 심지 어 땅에 기는 것들마져 방주에 들어간 것은 다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보면 인간의 교만과 패 역과 부도덕함이 노아 당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세계화 되어가고 있으며, 하나님 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의 딸들인 세상에 빠져가며, 세계도처에 거듭 되고 있는 기상이변과 재난들과 온갖 죄악들이 최후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 인할 수 없는데도 현실은 그같은 위기감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비가 없는 마른 하늘 이 계속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불신 자는 물론 다수의 신자 징계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깊은 잠에 빠져가는 우리의 현실은 어쩌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지막 기회인 7일과도 같은 귀중한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때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크고 작은 고난들이 자던 잠을 일깨워 그 마지막 기회를 선용하라고 하시는 것임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과 신앙의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엎드려 기도 드리며,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 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일생을 쏟아 바치며 정성을 기우렸고 그것 때문에 신앙마져 소홀했던 사업이 나 자식이나 친구나 직장이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텨 내리고 철새처럼 멀리 내 곁을 떠나고 실패와 배신과 아픔의 현실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방주로 들어가라 고 주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며, 하나님께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회개하고 주 앞에 나아오게 하시는 마지막 기회로 주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기회를 낭비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방주가 항상 열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칠일이 지나자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닿으신 것처럼(창7:16),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고, 일하고 싶어도, 사랑하고자 하여도 마음뿐이지 이미 기회가 지나가 버리는 날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깨달야만 합니다. 고전6:"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 신 것처럼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처녀 비유중에서 신랑에게 거절당한 미련한 다섯처녀도 과거에는 지혜로 운 처녀들처럼, 그들과 함께 신랑을 함께 기다렸었으나 문제는 신랑이 더디 온다고 태만해져서 기름 준비할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었다면 신앙은 지나간 어제가 아 니라 바로 지금이며, 오늘 주님을 믿으며,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며, 준비하고 있으 며, 기회를 선용하고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예 용서받기 어려운 죄인들에게, 축복받기 어려운 죄인들에게 은혜의 문을 활짝 열기도 하시지만 의로우신 하나님이 때가 되면 그 문을 닫으시며, 닫으신 후에는 누구도 그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계 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 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하신 그 하나님께서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만이 아니라 온 가족을 향해 문을 활짝 여시고, 부르심에 대해서 감사하며 지체말고 노아의 식구들처럼 다 이끌 고 나아와야만 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지금 방주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확신한다면 우리 가족이 잘 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세상에서 가정 큰 축복을 하나님께 받았을 깨 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3. 방주안과 밖 전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라는 말씀처럼 때 가 되니 방주의 문은 창7:16"여호와께서 그르 닫아 넣으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방주의 뭄은 닫히고 하늘이 열려 비가 쏟아지고 땅에 심들이 터져 지하수가 솟구치 기 시작하여 사십일 밤 낮 쏟아졌으니 그 같은 홍수는 노아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 던 대 사건이었으니 결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빙자하여 이같은 노아 홍수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황당한 신화라고 하면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불신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예고하신 말씀이 성취되 지 아니한 적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면 노아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고하 신 심판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성취될 수 밖에 없으며, 그 증거를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닌 성경에서 찾을 때, 지질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이 창조과학회를 결성하고 이를 사람드에게 과학적으 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홍수가 지역적으로 큰 장마라면 하나님은 노아에 게 방주대신 대피령을 내리셨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270여가지의 대 홍수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으며 하멜 표루기에 보면 조선시대에도 홍수 이야기가 전해내려져 오고 있었 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노아 홍수 사건에 대한 역사성 뿐만아니라 지구의 온 산을 덮고도 물이 불어서 십오규빗이나 오를 정도로 넘치는 물가운데 죽어져가던 불신앙 의 인생들과 온각 짐승드과 대조적으로 이리 저리 정처없이 떠다니는 방주안에서 온 가족과 짐승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방주는 분명히 사망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세상 바다 가운데 떠 있었으며 때로는 방주가 흔들리기도 하며 밖에서의 절규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을 것이지만
1)방주 안에는 생명과 평화와 감사가 있었으나
2)방주 밖에는 사망과 풍파와 두려움이 가득한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안에 자그만치 일년이상(375일) 머문 기나긴 세월은 천국처럼 고난이 없는 행복의 처소가 아니라 한탄과 근심중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비통 하심은 노아에게 단 한마디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는 고요와 침묵의 기간이며, 언제 홍수가 끝나며, 어제 방주가 문이 열리게 될지 알수가 없는 답답함 중에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 날을 기다려야만 하는 침묵의 세월이며 75,000마리나 된다는 수 많은 동물들을 온 가족이 쉴 사이 없이 보살펴야만 하는 수고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주 밖의 세상이 흉흉하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방주안이 답답하고 힘 든다고 할지라도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주안에 있는 농 아의 가족과 온 생물들을띵 안전하게 보호하셨다고 하는 것과 세상에서는 좀 불편해 도 홍수심판이 끝나기 전에는 방주 안보다 더 안전한 달른 피난처는 세상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 다윗은 세상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사람으로 고백하기를 시 139:8 "내 가 하늘띵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띵 붙드시리 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오늘띵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땔로 답답하고 갑갑하게 보이며 또한 예수를 믿는 우리 자신도 때로는 그렇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 기쁨이요, 생명이시라고 하며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으며 그 약속을 믿고 교회를 다 녀 보지만 왜 나의 현실은 노아의 방주안처럼답답하고 수고스러운가 하는 의문들이 바로 오늘 말씀안에서 해결되어져야만 합니다. 비록 방주 밖의 세상에 자우와 쾌락이 있으나 그것은 마지막 칠일의 세상과 같은 것 이며 지금도 죄악의 홍수 속을로 한사람, 한사람씩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와 정반대로 장주안과 같은 교회 생활이지만 구원받은 성도, 천국을띵 소망하는 성도, 재림을 확싣하는 성도의 가슴속에는 죽음이 두렵지 아니한 세상 심판에 대한 두 려움이 없는 마음에 평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지리적인 어떤 유토피아나 도피처럼 찾아가서 머물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구원의 참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머물며, 그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안에서 수고하 며 충성하며 영원한 평화의 날인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주안에서의 삶을 가르침 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방주되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현실도피적인 삶이 아니라 현실을 이기는 보다 적 극적인 삶입니다. 엡 1: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7 그리하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은 방주 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하며 방주 밖 세상을 자유라고 오해하거나 부러워해서는 안될 것이며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맏음의 성도 들이라고 할지라도 방주 안과도 같이 때로는 수고와 답답함이 있고 하나님의 침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며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 406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 하며 내 짐을 지시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결론)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부르심의 종교입니다. 방주 안으로 노 아와 그의 가족을 부르시던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가족을 불러주셨습니다. 성경에는 무려 600번이상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기록되어져 있으며 롬 10:13 "누 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부르시는 하나님은 믿음 있는자 부르시며, 믿는다고 하면서 세속에 빠진자를 부르시 며,믿는자중다니시며 부르시는 중에
1)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방주 밖에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 고 있을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를 방주안으로 부르셨으며
2)우리가 병들고,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상처를 받아 세상과 인강이 싫어지고 삶의 환멸을 느끼고 있을 떼에도 우리를 방주안으로 부르시며
3)우리가 환란과 픗라속에서 믿음이 약해져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게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리라"고 하시면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4)나의 영적 현주소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이 아니라 세사이라는 방주 밖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회 들을 낭비해져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아직 나의 건강과 나의 가정과 나의 사업에 홍수가 내리고 창수가 터지는 대신 찬란하게 햇볕이 비취고 있는 같을지라도 그것은 최후의 7일과 같음을 깨닫고 머물 러 있지말고 그곳을 떠나 믿음의 방주안으로 들어와야 만 합니다.
5)은혜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것이 아님을 깨닫고 바로 우리에게 나의 것으로 주신 오늘이라는 기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안에서 항상기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 지말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순종과 실천적인 삶으로 살아가자는 것 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방주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려고 또 다시 은혜의 문을 활짝 여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제2의 미스바 기도회'에 책임이나 의무 감 대신에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간마다 마음을 열고, 처음부터 마지막날까지 온 교우들이 참석하여 나의 사랑하는 온식구들을 방주안으로 이끌고 내 이웃을 방주 안으로 이끌어 구원함을 받게하는 노아의 방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믿음의 성도들은 믿음의 귀를 열어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 에 믿의의 귀를 열고 기울리며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사데 교회를 향해 예수께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자로다(계3:1)" 라는 책망을 들었던 것처럼 육신적으로 건강하고 젊다는 것만으로 다 된 거싱 아니 라 영적인 눈과 귀와 입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 열려져 있어야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있는 사람은 육신적인 부귀권세 이전에 계2:7 귀있는 자는 성려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 수 있는 영적 귀를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1. 완성된 방주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의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노아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해 큰 배인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을 때 인간의 생각으로는 수만톤이 나 되는 그 큰 배를 어떠헤 만들 수 있어서, 또한 무엇 때문에 그 같이 만들어야만 하는 지 그 이유에 대해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아니하는 명령이 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노아가 무조건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비록 기간이 길고 지루하며 어럽고 힘들었었 지만 때가되니 마침내 그 방주가 다 완성되었습니다. 그같은 노아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 양상과 유사한 몇가지 공통점이 있으믓띵 개닫게 되는데 하나님의 명령은 때로 믿음으로만 이해되어지고 순종은 이해되어는 부분만이 아니라 잘 이해되어지지 아니하는 부분까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마른 하늘에서도 무조건 순종하며 방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로는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오래 참음 가운데 순종하느라면 내가 하는 것 같으나 내힘만으로 될 수 없 었었던 그 일들이 "빌1:6 너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 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는 말씀과 같이 마침내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그처럼 인고 끝에 만든 방주이지만 그것이 당장 위대하게 생각 되고 만인이 찬사를 보낸 것이 아니라 불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조롱과 화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만은 그 완성된 방주를 보시고 기뻐하셨으며, 노아 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창7:1 "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집은 방 조로 들어가라 네가 이세대에 내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노아와 그이 가족을 방주안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것을 노아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만든 방주라고 할지라도 그 방주는 밖에서 구 경하기위해 만들어지 것이 아니라는 것이입니다
1)교회와 방주 우리는 방주를 오늘의 교회로 생각하고 말씀을 적용하여 봅시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니 1 방주가 크니, 작으니, 잘 만들었느니 못만들었느니, 길이가 얼마며 높이가 얼마 며, 재료는 무엇이며 얼마나 들어갔는가 하는 것을 아무리 잘 안다고 할지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되며
2노아와 그의 가족이 아무리 정성을 다해 방주를 완성하였다고 할지라도 밖에서 구 경만 할 뿐이지 방주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며 그 기나긴 세월동안 방주를 만든 수 고는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3그러나 어느 누구든지 그 방주안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들어갈떼 구원 함을 받을 수 있으며 그 동안 노아의 수고에 참다운 보람과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지상 교회는 마 치 방주와도 같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은 지상에 그의 몸된 교회를 세 우실때 노아와 같은 믿음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게 되셨습니다. 지상의 코고 작은 교회는 어는 교회를 막론하고 노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의 쑤고 와 인내를 통해서 세워졌고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같은 교회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꺼리가 되고 있으며, 많은 교인 들이 교회 밖에서 교회의 외부적인 관찰만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교회를 아름답게 페인트 칠을하는 일에 수고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과 생각이 교회안으로 들어가 라고 초청하시는 주님의 부르심과는 거리가 먼 교회 밖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일고, 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해 수고하고 자선사업을 하여 교회를 빛 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방주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노아만이 아니라"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 과 같이 온 가족 식구들이 다 함께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너만이 아니라 네 집안에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아버지 어머님를 포함한 온 식구들과 더불어 다함께 주님이 피흘려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안으로 들어오라고 초청 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한 집안 식구이지만 믿음의 정도가 제 각기 다르겠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금 방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오늘 이 죄악된 세상에 빠져 영적으 로 침몰하지 않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와 방주 물론 지상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비유하여 그 의미를 찾는데 있어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노아의 방주안에 들어간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구원함 을 받게되지만 유형 교회안에 들어와 앉아 있기만 하면 누구나 말세 심판에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고 오직 믿음의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로 비유하여 해석함은 오늘 우리에게 유일한 방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가 야만 구원함을 받는다는 말이 공간적 의미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아니하나 그 예수님 의 몸이 교회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 될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교회안에 들어와 있을지라도 구원함을 받지 못할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과 같이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노아와 가족이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을 믿고 방주안으로 들어감 과 같이, 지금도 나와 내 온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말이 곧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는 길인 것입니다. 신앙은 개인적이나 하나님은 온 가족 의 구원을 기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신앙하면 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지상에 몸도니 교회를 세우신 것은 바로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와 다 구원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 아니 세상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몸된 교회는 방주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충분히 제공하여 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곳임을 잊지 말 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방주안으로 초청하셨을 때는 누구든지 그 방주안 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 완벽하게 예비된 구원의 처소였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는 커녕 지나간 어제나 다름이 없이 태양이 빛나고, 하늘은 푸 르르며, 새들이 그 창공을 나는 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기 대문에 방주의 문은 열려져 있었으며, 누구나 방주를 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족들을 이끌고 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직 보지 못한 홍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가 사실로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없이는, 세상과의 단절과 분리없 이는 한쪽 발은 방주 안에, 다른 한쪽 발은 방주 밖 세상에 양 다리를 하고서는 들 어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가 바로 그와 똑같으며 믿음으로 구언함 을 받는다는 말이 바로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가.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 우리의 구원은 노아보다 쉬울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맏르라고 하셨고 노아는 그 방주를 만드는 일에 오랜 세월을 수고해야만 하였지만 오늘 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행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고 말씀하신 구원이 며,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값없는 은혜이며, 아무런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형편에 처하여 있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주님의 초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향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 이라"는 말씀처럼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노아보다 쉬운 구원 일 수 있습니다. 나. 그러나 노아는 온 가족을 방주 안으로 이끌고 간 것과 오늘 우리는 나의 가족 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인도하여 나아온 것이 형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노 아의 구원이나 오늘 우리의 구원이나 동일한 것은 바로 믿음의 구원이라는 점입니다. 노아가 죄악된 세상에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마른 하늘아래에서도 온 가족을 이끌 고 방주 안으로 들어간 그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다 적용되어진다는 것 입니다. 세계의 도처에서 연속되어져 일어나고 있는 천재지변과 더불어 날로 부태하여져 가는 도덕성이 말세 심판을 예고하는 션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세의 심판을 잘 믿지 않으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는 것이 현대 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말세에 세상의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유 혹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믿음으로 방주안으로 들어온다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아니한 것이 사실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고 몸만 교회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마른 하늘아래서 방주를 만들고, 마른 하늘 아래서 온 가족을 이끌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던 노아와 같은 말세의 믿음이 요 구되어지는 것입니다.
2. 마지막 기회
1)인간들은 自信이 不完全한 존재로 죄인이며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물이 드러나 있음을 깨닫지 못한채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에 대해서 관용하지 못하며 정죄하거나 비난하기 잘 할 분 아니라 정반대로 자신의 허물과 죄 에 대해서는 변명하거나 핑계하기 잘하는 단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한 후에도 즉시 죽게 하지 아니하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가인이 자기 동생을 돌로 쳐 죽인 후에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 며 도리어 그 이마에 표를 하여 사람들에게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다 사랑의 하나님 께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그 시대의 사람들임에도 불구 하고 즉시 멸하지 아니하시고 자그마치 120년의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만도 감사한 데, 방주가 다 완성되어 그 방주 안으로 누구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노아를 조롱하면서 방주로 들어가기를 거부 하는 패역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은 창7:7 칠일 후에 홍수가 덮이니 라는 말씀 처럼 마지막 회개의 기회, 마지막 믿음의 기회 칠일을 남겨 주셨습니다. 회개치 아니하고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채 결국 홍수로 전멸 당하였다면 과연 하나님의 무자비탓인가 아니면 인간의 패역한 탓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기회를 제공 받은 것으로서 그 기회가 학생에게는 실력을 연마하여 미래의 일꾼이 되기 우히나 준비의 기회이며, 사업가에게는 열심히 일을 하여 성공할 기회이며, 성도들에게는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기회들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다가와서는 잠시 머문 후에 때가되면 그 꼬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지나가 버리게 되며 그 기 회가 지나고난 후에는 후회속에서 늙고 병들어 죽게 되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태풍이 갑자기 몰아 닥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구름의 방향을 따라 예고되며 태풍의 눈안에 들어오면 오히려 반시동안의 고요함과 적막함이 있음과 같이 하나님이 노아 시대 사람들은 홍수로 심판하시기 직전에도 마른 하늘에 햇빛 찬란한 칠일의 고요함 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에게 베푸신 회개를 추구하시는 마지막 자비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끝까지 목을 곧게한 교만한 인류들에 게는 그것마져 무시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만일 그 칠일동안 노아처럼 온 가족을 이끌고 방주로 들어갔 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짐승보다 귀한 존재인데 방주에는 노인의 가족만 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창7:8,9에보면 정결한 짐승은 물론 불결한 짐승과 새와 심지 어 땅에 기는 것들마져 방주에 들어간 것은 다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보면 인간의 교만과 패 역과 부도덕함이 노아 당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세계화 되어가고 있으며, 하나님 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의 딸들인 세상에 빠져가며, 세계도처에 거듭 되고 있는 기상이변과 재난들과 온갖 죄악들이 최후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 인할 수 없는데도 현실은 그같은 위기감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비가 없는 마른 하늘 이 계속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불신 자는 물론 다수의 신자 징계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깊은 잠에 빠져가는 우리의 현실은 어쩌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지막 기회인 7일과도 같은 귀중한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때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크고 작은 고난들이 자던 잠을 일깨워 그 마지막 기회를 선용하라고 하시는 것임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과 신앙의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엎드려 기도 드리며,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 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일생을 쏟아 바치며 정성을 기우렸고 그것 때문에 신앙마져 소홀했던 사업이 나 자식이나 친구나 직장이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텨 내리고 철새처럼 멀리 내 곁을 떠나고 실패와 배신과 아픔의 현실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방주로 들어가라 고 주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며, 하나님께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회개하고 주 앞에 나아오게 하시는 마지막 기회로 주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기회를 낭비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방주가 항상 열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칠일이 지나자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닿으신 것처럼(창7:16),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고, 일하고 싶어도, 사랑하고자 하여도 마음뿐이지 이미 기회가 지나가 버리는 날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깨달야만 합니다. 고전6:"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 신 것처럼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처녀 비유중에서 신랑에게 거절당한 미련한 다섯처녀도 과거에는 지혜로 운 처녀들처럼, 그들과 함께 신랑을 함께 기다렸었으나 문제는 신랑이 더디 온다고 태만해져서 기름 준비할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었다면 신앙은 지나간 어제가 아 니라 바로 지금이며, 오늘 주님을 믿으며, 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며, 준비하고 있으 며, 기회를 선용하고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예 용서받기 어려운 죄인들에게, 축복받기 어려운 죄인들에게 은혜의 문을 활짝 열기도 하시지만 의로우신 하나님이 때가 되면 그 문을 닫으시며, 닫으신 후에는 누구도 그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계 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 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하신 그 하나님께서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만이 아니라 온 가족을 향해 문을 활짝 여시고, 부르심에 대해서 감사하며 지체말고 노아의 식구들처럼 다 이끌 고 나아와야만 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지금 방주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확신한다면 우리 가족이 잘 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세상에서 가정 큰 축복을 하나님께 받았을 깨 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3. 방주안과 밖 전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라는 말씀처럼 때 가 되니 방주의 문은 창7:16"여호와께서 그르 닫아 넣으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방주의 뭄은 닫히고 하늘이 열려 비가 쏟아지고 땅에 심들이 터져 지하수가 솟구치 기 시작하여 사십일 밤 낮 쏟아졌으니 그 같은 홍수는 노아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 던 대 사건이었으니 결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빙자하여 이같은 노아 홍수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황당한 신화라고 하면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불신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예고하신 말씀이 성취되 지 아니한 적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면 노아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고하 신 심판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성취될 수 밖에 없으며, 그 증거를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닌 성경에서 찾을 때, 지질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이 창조과학회를 결성하고 이를 사람드에게 과학적으 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홍수가 지역적으로 큰 장마라면 하나님은 노아에 게 방주대신 대피령을 내리셨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270여가지의 대 홍수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으며 하멜 표루기에 보면 조선시대에도 홍수 이야기가 전해내려져 오고 있었 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노아 홍수 사건에 대한 역사성 뿐만아니라 지구의 온 산을 덮고도 물이 불어서 십오규빗이나 오를 정도로 넘치는 물가운데 죽어져가던 불신앙 의 인생들과 온각 짐승드과 대조적으로 이리 저리 정처없이 떠다니는 방주안에서 온 가족과 짐승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방주는 분명히 사망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세상 바다 가운데 떠 있었으며 때로는 방주가 흔들리기도 하며 밖에서의 절규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을 것이지만
1)방주 안에는 생명과 평화와 감사가 있었으나
2)방주 밖에는 사망과 풍파와 두려움이 가득한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안에 자그만치 일년이상(375일) 머문 기나긴 세월은 천국처럼 고난이 없는 행복의 처소가 아니라 한탄과 근심중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비통 하심은 노아에게 단 한마디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는 고요와 침묵의 기간이며, 언제 홍수가 끝나며, 어제 방주가 문이 열리게 될지 알수가 없는 답답함 중에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 날을 기다려야만 하는 침묵의 세월이며 75,000마리나 된다는 수 많은 동물들을 온 가족이 쉴 사이 없이 보살펴야만 하는 수고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주 밖의 세상이 흉흉하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방주안이 답답하고 힘 든다고 할지라도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주안에 있는 농 아의 가족과 온 생물들을띵 안전하게 보호하셨다고 하는 것과 세상에서는 좀 불편해 도 홍수심판이 끝나기 전에는 방주 안보다 더 안전한 달른 피난처는 세상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 다윗은 세상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사람으로 고백하기를 시 139:8 "내 가 하늘띵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띵 붙드시리 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오늘띵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땔로 답답하고 갑갑하게 보이며 또한 예수를 믿는 우리 자신도 때로는 그렇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 기쁨이요, 생명이시라고 하며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으며 그 약속을 믿고 교회를 다 녀 보지만 왜 나의 현실은 노아의 방주안처럼답답하고 수고스러운가 하는 의문들이 바로 오늘 말씀안에서 해결되어져야만 합니다. 비록 방주 밖의 세상에 자우와 쾌락이 있으나 그것은 마지막 칠일의 세상과 같은 것 이며 지금도 죄악의 홍수 속을로 한사람, 한사람씩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와 정반대로 장주안과 같은 교회 생활이지만 구원받은 성도, 천국을띵 소망하는 성도, 재림을 확싣하는 성도의 가슴속에는 죽음이 두렵지 아니한 세상 심판에 대한 두 려움이 없는 마음에 평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지리적인 어떤 유토피아나 도피처럼 찾아가서 머물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구원의 참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머물며, 그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안에서 수고하 며 충성하며 영원한 평화의 날인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주안에서의 삶을 가르침 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방주되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현실도피적인 삶이 아니라 현실을 이기는 보다 적 극적인 삶입니다. 엡 1: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7 그리하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은 방주 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하며 방주 밖 세상을 자유라고 오해하거나 부러워해서는 안될 것이며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맏음의 성도 들이라고 할지라도 방주 안과도 같이 때로는 수고와 답답함이 있고 하나님의 침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며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 406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 하며 내 짐을 지시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결론)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부르심의 종교입니다. 방주 안으로 노 아와 그의 가족을 부르시던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가족을 불러주셨습니다. 성경에는 무려 600번이상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기록되어져 있으며 롬 10:13 "누 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부르시는 하나님은 믿음 있는자 부르시며, 믿는다고 하면서 세속에 빠진자를 부르시 며,믿는자중다니시며 부르시는 중에
1)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방주 밖에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 고 있을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에 우리를 방주안으로 부르셨으며
2)우리가 병들고,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상처를 받아 세상과 인강이 싫어지고 삶의 환멸을 느끼고 있을 떼에도 우리를 방주안으로 부르시며
3)우리가 환란과 픗라속에서 믿음이 약해져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게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리라"고 하시면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4)나의 영적 현주소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이 아니라 세사이라는 방주 밖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회 들을 낭비해져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아직 나의 건강과 나의 가정과 나의 사업에 홍수가 내리고 창수가 터지는 대신 찬란하게 햇볕이 비취고 있는 같을지라도 그것은 최후의 7일과 같음을 깨닫고 머물 러 있지말고 그곳을 떠나 믿음의 방주안으로 들어와야 만 합니다.
5)은혜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것이 아님을 깨닫고 바로 우리에게 나의 것으로 주신 오늘이라는 기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안에서 항상기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 지말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순종과 실천적인 삶으로 살아가자는 것 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방주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려고 또 다시 은혜의 문을 활짝 여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제2의 미스바 기도회'에 책임이나 의무 감 대신에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간마다 마음을 열고, 처음부터 마지막날까지 온 교우들이 참석하여 나의 사랑하는 온식구들을 방주안으로 이끌고 내 이웃을 방주 안으로 이끌어 구원함을 받게하는 노아의 방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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