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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영광 (고전1:26-31)

본문

우리가 사는 이 우주 안에는 두가지 위대한 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시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 치 못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신앙의 사람도 모 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단 , 바울 사도를 통한 말씀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능력을, 마치 말을 수레에 연결시키듯이 인간 생활 속에 이어 주시고 겸손한 성도의 손에 말고삐를 쥐어 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아무 보잘 것 없는 우리들에게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나를 받아들이라"고, "환영하라"고, "나를 소유하라"고, "나와 함께 역사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조그마한 차바퀴가 힘센 엔진에 연결되면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한하신 전능의 엔진에다가 마음껏 연결하 여 위대한 힘을 나타내도록 우리 인생들에게 명하시고 허락하십니다. 이렇듯이 하나님께 연결이 되어진 사람을 통해서 죄악을 물리치는 일, 사탄을 이기는 일, 자연을 정복하는 일, 온갖 유혹을 뿌리치는 일, 성 결과 의무와 사랑으로 변화받은 인격과 경건한 가정을 세우게 되며, 그리고 이상적인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 사회 속에서 그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사람이 얼 마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들은 나 자신이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존재인지 를 확인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시되 우리의 생각 과는 다른 존재를 즐겨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대로 "미련한 것들을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옛날 고린도라고 하면 문화를 자랑삼는 매우 화려한 도시로 지금 도 그 잔재가 산호있는 곳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문화를 버린다는 것은 치욕적인 굴욕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볼로라고 하는 구약성서 학자가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철학을 열심히 전하였을 때 그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전하는 단순한 복음은 그들의 지식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이를 배격했습니다. 문화 를 자랑삼고 귀중히 여기는 나머지, 복음을 배격하고 하나님 앞에 나 아가는 데 장애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런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분명히 문화가 일 종의 신이 되어버린 것같은 느낌을 가지게합니다. 자신들이 이해하지 도 못하는 그림을 수집하고, 감상하지도 못하는 음악을 듣고자합니다. 그것도 비싼 돈을 들여 가면서 말입니다. 자연적 문화는 가끔 세상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최초로 성을 쌓았고, 최초로 악기를 만들었으며, 최초로 기계를 제작한 사람들은 창세기에서 보는대로 카인과 그 자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 시대부터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 해 왔습니다. 그러나 문화의 땅 애굽이나, 찬란하였다고 하는 바빌론 시대나 지혜와 예술을 자랑삼던 헬라와 로마로 이어 내려온 인간 노력 은 가장 무서운 타락에 빠져 들어가게 한 것 외에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지성에만 의존하는 활동은 도덕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치 명적인 상황에 몰아넣을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놀라운 지성이나 뛰어난 재능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아니하십니다. 다만 십자가의 단순성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철두철미한 믿음으로 세상을 구원하게 하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자신 들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존재가되고자 한다면 나 자신의 두뇌나 사회 적 권력이나 나의 부나 나의 영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런 것들 을 다 버려 놓은 채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며 그의 말씀과 명 령대로 주시는 힘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여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것들,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십니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상식이 없다는 말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분 별력이 모자란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뜻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의미는 인간적인 지혜를 완전히 버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천재에게 맡겨 구원하려 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외형으로 볼 때에 평범하고 미숙해서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전적으 로 위탁하는 신앙의 사람들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사람의 봅잘 것 없는 어부들을 부르셔서 전세계를 향하여 구원의 역사 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파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단순한 복음이 마침내는 로맘를 복음화하고 그 복음 이 계속 확산되게 하였습니다. 근세에 가장 위대한 전도 사역자 중의 한 사람인 미국의 D.L.무디는 영어 어휘 조차 제대로 문법에 맞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디를 통해서 문화의 중심지라고하는 영국의 옥스포 드와 캠브리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고 구원얻게 했습니다. 그 후에도 무디의 선교 활동은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해서 지금도 전 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작은 두뇌, 서투른 발 음, 빈약한 문법을 사용해서라도 전 세계를 복음화시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것을 버리고 오로지 신앙으로 헌신할 때 위대한 개혁과 복음의 역사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는 '약한 것들을' 택하신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가장 무능하고 약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또한 매우 약한 존재로 자라갑니다. 특히 도덕적인 면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의 정욕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합니다. 온갖 유혹은 아까운 인생을 송두리채 잘못된 길로 몰아 넣어서 영원히 망하게 하고 맙니다. 주변 에 있는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 모두는 지극히 작은 일에까지 인간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모 든 것을 지배하는 듯이 보여집니다. 영적인 면에서 보면 인간은 더욱 약합니다. 가장 무력할 뿐 아니라 사실은 호 호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 브라함의 거짓말, 다윗의 이중생활, 욥의 오랜 고난, 그리고 베드로의 변명할 여지 없는 빼신 등이 모두 인간의 약함을 나타냅니다. 소년이 라도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하나님께서 강한 자를 부르신다고 한다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도 응할 자 격이 없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같이 "강한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부르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한 것들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증거의 기록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너무 엄청난 소 명에 두려워서 여러번 간곡히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두려움 없이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는 비로소 결심을 하고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갑니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네 손에 무엇을 가졌느냐".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는 결코 강 한 무기가 아닙니다. 약한 것 중에 약한 막대기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바로의 왕좌를 흔들었고, 하늘을 열기도 하고, 바다를 가르 기도 하고, 바위를 터쳐 생수가 나오게도 했습니다. 이 약한 것으로 온갖 세상이 말하는 강한 것들을 모두 무너뜨렸습니다. 다윗도 그렇 습니다. 갑옷도 입을 수 조차 없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그당시 블레셋 의 세계적인 대장군" 골리앗을 물맷돌로 거꾸려뜨렸습니다. 어느 학식이 많은 목사님이 아직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학자 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가지고 가서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몇번 설교를 한 다음인데 그 학자가 아주 기쁜 환희의 얼굴로 목사님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 했습니다. 목사는 내심 자기가 설교를 잘 준비했더니만 효과가 있구 나 하는 자부심에서 "아! 선생님, 어떤 부분에서 구런 믿음이 생기셨 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 대답이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믿음의 확신을 얻은 것이 아니라 저를 믿음의 확신에로 인도한 것은 저 가련한 다리 저는 흑인 여성입니다. 예배당에서 앞으 로 나아가며 '오, 나의 사랑하는 주님! 주님 없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감격해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을 때에내 이 무신론 적인 잘못된 불신앙의 태도가 녹아지고 깊은 감명과 함께 하나님을 섬 기게 되었습니다"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가장 놀라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약한 것으로 위대한 일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의 부끄러움이 오히려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여름날 대평원은 작은 풀잎으로 가득히 덮여 그 색깔로 조화를 이 루게 하는 것이 사실이고 우거진 살림도 작은 나뭇잎, 무수한 나뭇잎 들이 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의 몸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세포로 되어 있고, 우리 사람들의 생활도 사실 다시 알고 보면 지극히 작은 사랑을 교환해 가면서 그 속에서 위대한 일을 해 가 고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진리를 알았기에 "나의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노라"고 말하면서 "약할 그 때 곧 강해진다"고 말하였습니다.
본문에 계속해서 천한 것들, 멸시 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신 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노예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당시 가장 교만 한 바로를 신앙으로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족보를 보더라도 기생 라 합, 불륜의 다말, 이방여인 룻, 간통한 우리아의 아내가 나오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유추해 볼 때 사회적 신분이 별로 높지 못한 여 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멸시 받는자, 없는 자 를 택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나 부끄러운 것 밖에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시며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없는 자 즉, 자아가 완전히 죽어 버리고 완전 히 그리스도 안에 의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어두움이 닥쳐오기 시작하면 그 어두움이 세상을 완전히 덮을 것 같은 아주 강대한 세력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태양이 떠 오르면 소 리도 없이 다 없어지는 것이 암흑의 세력입니다. 금은동철로 하늘에 닿을 듯한 우상도 날아가는 작은 돌에 맞아서 가루하나 남지 아니하는 전멸의 상태가 되어졌다는 것이 다니엘의 계시입니다. 악의 세력은 언제나 아주 강대하게 보이지마는 작은 정의와 사랑 에 넘어지게 되 며 흔적도 ㅊ을 수 없게되는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 을 두려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원리입니다. 언제나 어두움이 서광 의 빛을 두려워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미련하고, 약하 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같은 존재이지마는 그리스도의 빛 안에 서 이 시대에 다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생명과 위대한 하 늘나라 건설에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 를 받는 자, 없는 자같은 존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이 보잘것없는 그저 주님 앞에는 부끄러운 것 밖에 없는 우리 민족을 택하셔서 이 시대에 세계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긴장된 국방의 문제, 특히나 요즈음 수습하지 못해 곤욕스러워하는 경 제문제와 기타 우리 사회에 어둡게 나타나는 여러가지 문화,윤리, 사 회적인 각양의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외부로부터 압박해 오는 어떤 힘이기 보다는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의 요소들입니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적이 우리를 침략하기 보다는 죄악의 암흑 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인생들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죄악의 세력과 암흑의 세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심은 바로 이러한 영과 정신과 생명 속에 작용하는 온갖 죄악적인 세력을 단순한 복음,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통하 여 위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새로운 구원을 입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 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부르심과 그 기대하시는 놀라 운 뜻을 잊지 말고 매일 매일의 생활을 바로하여 본연의 목적대로 위 대한 승리를 거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와 형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도리 어 우리의 부끄러움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님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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