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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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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특징이 무엇인가 아무래도 신자가 되면 무엇인가 달라진다. 세상 사람들도 신자라 하면 조금은 마음을 놓는다. 좀 더 바보같고 좀 더 착해지고 좀더 순해지는 것이다. 화도 덜 내는 것 같다. 시간이 갈 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남에 대한 비판력도 무디어 가는 것 같다. 전에는 화가날 일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제대로 믿으면 반드 시 그렇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약해지거나 세상에서 퇴보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우리가 가장 싫어하는건 착하지만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다. 제대로 된 신자는 착하지만 절대로 무능하거나 게으리지 않다. 오히려 강하고 부 지런하다. 그리고 착한 것은 기본이다. 얼마나 강한지 웬만큼 욕을 먹 거나 웬만큼 손해를 보아도 끄덕도 없다. 거기 덧붙여 언제나 무엇인 가 하고 있으므로 잘 산다. 한마디로 여유있는 모습, 그것이 신자이다.만약 이것을 느끼지 못하 면 곤란하다. 지난 번에는 신자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절대로 과속 하지 않고 합승도 않하고 교통 도덕도 완벽했다. 칭찬했더니 합승하고 과속하고 악착같이 하는 사람이나 자기나 결국 계산해 보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드른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도 엉망이니 약값도 대단하단다. 그는 여유가 있었다. 이 여유가 바로 신앙을 이해한 신자의 특징이다. 이러한 사람일수록 질서에 복종을 잘한다.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매사에 기꺼이 복종 을 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성숙한 신자의 조건으로 복종을 꼽았다. 능 력이나 사랑이나 지혜보다도 순종하는 것을 가장 높은 덕으로 말한 것이다. 성경은 여러 귀절에서 신자들의 복종을 가르친다. 덕이 높을수 록 복종한다. 복종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서워서 하는 복종이 제일 유치한 단계이다. 다음에는 상 받으려고 하는 복종이다. 이 두가지의 복종이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미숙한 신자들도 그렇다 하나님 이 무서워서 또는 복받으려고 복종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복종은 다른 종류이다.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복종이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복종이다. 부부 간에 친구 간에 서로 사랑한다면 언제나 서로 복종한다. 무서워 서 하거나 상받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기꺼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수준도 안된다고 그런 복종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간에 복종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높은 표현이듯이 하나님을 향해서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선물보다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기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종할 대상을 세상에 많이 주셔서 복종을 훈련시킨다.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복종의 모습을 이해시킨다. 우선 자라면서 부모에게 복종하게 하신다. 만약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 다면 아무에게도 복종할 수 없게 된다. 부모에게도 반항하는 사람이 누구에게 복종할 것인가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여기서 부모는 하나님의 그림자이다. 자라면서 선생에게 복종하고 선배들에게 복종한다. 군대가면 상관에 게 복종하고 직장에 가면 상사에게 복종한다. 어떤 경우에는 윗사람이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나보다 무식하기도 하다.인격이 부족하거나 여 러가지 면에서 따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나라의 지도자가 독재자요 부패자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윗사람에게 복종하라고 한다(롬 13:1). 왜 그런가"권세는 다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성경의 가르침이다.또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르심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윗사람을 존경하고 그에게 복종하라 고 하신다. 그것도 진심으로 하게 하신다. 그래야 하나님도 경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세나 윗사람은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질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질서를 원하신다. 마귀란 무질서를 의미한다. 마귀가 힘을 쓰는 곳에 가보면 무질서와 더러움이 판을 친다. 누구든지 무질서하고 더럽다면 하나님보다는 마귀에 가까운 것을 알아야 한다. 수고를 많이 하더라도 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 다도 우선 할 일이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세상을 지으실 때 다 좋게 지으셨어도 더 좋은 것 과 덜 좋은 것을 구분하셨다. 더 훌륭한 사람과 더 영리한 사람을 지 으셨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고 영리한 사람을 찬양한다. 그래서 더 훌륭하고 더 영리한 존재를 사모하게 하고 마지막으로는 모든 존재 위에 하나님이 있음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계신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신다. 이것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똑같이 적용된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복 종하면서 영적으로 부모에게의 복종을 배운다. 세상의 어른들에게 복 종함으로 천지의 지배자에게 복종함을 배운다. 하다못해 동네의 반장 에게도 복종할만큼은 복종해야 한다. 더우기 교회의 어른들에게 복종 함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늘 나라 모형에 가 장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모든 복종할 대상을 놓고서 말씀하신다. "너희 들인 눈에 보이는 대상에게도 순종하지 못하면 안보이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범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 라."(엡 5:20)고 하신다. 세상에서 복종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종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서 복종을 잘 한다해도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이해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 그것이 우리 영혼에 도움을 줄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복종은 어떻게 나타나는가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 이 하나님께 대한 복종인가우선 교회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시작한다. 교회 일에 무관심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어거스틴은 분명히 이 점을 지적한다. "교회에 가르침에 우선 복종하 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복종도 있을 수 없다."하나님께 대한 복종이 되어야 우리의 복종은 완성된다. 그렇 다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복종은 무엇인가
첫째 예배에 출석해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와 신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교회에 참여하고 일을 분담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무엇보다도 교회에서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교회 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일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다. 교회일에 열심내고 온통 시간을 다 내도 하나님께 불복종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말씀에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가 교회 일에 촛점이 어디 있는가 바로 그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요, 그의 뜻은 복음에 명백히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함은 이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다. 복음 곧 복된 소식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전에는 복조할 수 없는 인간이 이제는 진정한 마음으로 복 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성경 전 체는 이 사실을 말해준다. 그의 죄사함과 그의 능력이 주어졌음을 믿고 그 말씀에 준해서 순종 하면서 산다. 그리고 교회는 이 일을 돕는다. 신자는 교회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이 들려지도록 교회 일을 돕는다. 이러한 일들은 여러가지의 순종하는 시험을 거치게 만든다. 그래서 교회에서 도 일꾼으로 세우고 차츰 어른으로 존경을 받게 하고 주의 몸된 교회 를 이끌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차짓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복종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복종을 오해했다. 자기들 생각에는 무지무지 한 복종을 했다. 안식일에는 절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안식 일에 적이 쳐들어와도 죽을지언정 전투하지 않았다. 정확한 십일조를 냈다. 성경도 다 외웠다.
선행도 굉장히 했다. 율법대로 겉으로만은 완벽한 순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복종은 없었다. 힘써 자기의 의를 내세 워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다(롬10:3) . 외형적으로는 완벽한 복 종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한 복종이었다. 마음은 죄를 원하지만 겉으로 하는 복종을 했다. 헌금할 때는 아까웠고 예배할 때는 즐겁지 않았다. 간음을 참아냈고 남 해하는 것을 참았지만 속까지 복종은 되 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음을 들려준 것이다. 내 뜻에 완전히 복종하려면 내 복음에 복종하라. 즉 아무 것도 안해도 내가 해준 것을 믿어라.너희가 하지 못한 것들을 그리스가도가 다 해준 사실을 받아들여라. 내 가 나의 의를 너희에게 선물로 준다. 아울러 나의 생명과 능력과 거룩 을 너희에게 주겠다. 믿으라,받으라. 그렇게 내 뜻에 복종하라. 너희 를 구원하려는 내 뜻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를 통해서 살려는 내 뜻에 복종하라. 너희 속에 내 영이 있다.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너희의 주인이다. 그래서 그의 일을 너희의 몸을 통해서 하라. 마치 그리스도가 한 것처럼 모든 사람을 섬기고 복조하라. 그들의 아픔을 고치고 그들을 구원하라. 그 리고 교회를 일으키고 교회를 이끌어 나가라.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신 자들끼리 복종하라. 이것이 복종이다. 하나님 말씀에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힘으로 복종하는게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셨 기에 새사람이 되었고 그가 나를 통해서 살기에 하나님께 복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 앞에 펼쳐주신 위대한 삶에 복종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일을 돕는다. 그러니까 신자는 교회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
미국 목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겨울에 어느 십대 여자 아이가 홍역에 걸렸다. 자기 침대에 누워있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아이는 별로 아픈 느낌이 아니었다. 부모는 일 때문에 출타해야만 했다.그래서 아이에게 절대로 침대에 누워있고 몸을 덥게 해야한다고 엄하게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복종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제멋 대로 자란 아이였다. 부모가 떠나자마자 아이는 난방도 않된 이층으로 다락으로 올라갔다. 옷은 그냥 잠옷 차림이었다. 부모가 없을 때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일 이었다. 다락에 올라가서 이것 저것 뒤지고 노느라고 부모의 명령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아이는 거기서 몇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에 목사는 이 아이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아이가 급성 폐렴으로 바로 죽었 기 때문이었다. 소아과 전문의의 말이다. "심한 병에 걸렸을 때 복종을 배운 아이들 은 훈련 안되고 제멋대로 자란 아이들보다 네 배나 생존율이 높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위기를 당했을 때 순종 잘하는 신자는 이기적에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종을 훈련시키신다. 작은 일부터 우리는 복종할 수 있다. 순서지에 자기 할 일이 적혀 있다. 안내와 헌금과 주방봉사등이다. 귀찮아 하지 말자. 대부분 대표기도를 두려워한다. 기도하는 날은 일주일간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어느날은 권사님들만 설겆이를 한다. 우리가 복종하지 않기 때 문이다. 예배 시간에는 15분 일찍 와서 기도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확실히 에배시 감동이 더 많다. 자 다시 한번 스스로 질문해 보라. 나는 왜 복종하는가 가장이고 높 은 사람이고 나이도 먹었다. 그런데 왜 순종해야 하는가 하나님이나 높은 사람이 무서워서 하는가 아니면 잘 보여서 상받으려고 하는가 신자는 이 정도 차원에 머물면 안된다. 우리가 복종하는 것이 그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기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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