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시1:1-3)
본문
오늘 본문으로 삼은 시편 1편은 둘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1-3은 복 있는 사람,:4-5은 악인 그리고:6은 의인과 악인을 대별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 교독한 말씀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 나 복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복을 좋아하는 민족인 줄 압니다. 그래서 그런 지 '복'자가 어디에나 붙어 있습니다. 이불, 베개, 방석, 장, 저고리, 치맛자락, 숫가락, 젓가락, 밥그릇, 국 그릇, 또 대문 등 어디에나 써 붙일 수 있으면 '복'자 를 써 붙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새해 인사가 어떻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 요" 어떤이는 자녀 이름을 '복'자를 넣어서 '복순'이라든지 '복남'이라고 부르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번 신년에도 벽두부터 집회를 가지는 교회들을 보면 거의 "신년 축복 성회" 또는 "신년 축복 대 성회"라고 '축복'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면 1년 내 내 복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축복을 받기 원하신다면 오늘 이 시편 1편을 잘 읽고, 배우고, 그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축복이란 최고의 행복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행복'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을 떠 올리며 "그 사람이라면 정 말 행복할 게야"하고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알 고보면 그 사람도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여건 이 아닌 어떤 다른 여건, 곧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어떤 여건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이 내게로 다가와 주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안정, 물질적 풍요, 사업의 성공, 건강, 장수, 혹은 명예, 지위 등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내 앞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여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의 조건은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것 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복에 대해서 생각할 때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어야 합니다. 하나다 복 된 환경, 혹은 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복된 사람, 곧 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개념을 분명히 정리하여 복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제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 은 봄대로 좋다". 여름, 가을에 대해서도 물어 봅시다.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가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 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니까---" 이런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춥고 게을러져 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싫고 노곤해서 싫다"하고 '싫다' '싫다' 소리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하는, 어디에 갖다 놓아도 불행 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새해도 없습니다. 행복도 없습니다. 가난할 때는 자나깨나 돈만 생각하고, 돈만 있으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더니 부자가 되고 나 니까 "가난 할 그 때가 좋았는데---"하고 앉아 있습니다. 또 총각 때는 결혼해 달라고 죽자사자 좇아다니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총가 때가 좋았어"라고 합니다. 답답한 사람들 아닙니까 어느 때, 어느 장소에 처해도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행복해 질 수 있는 여건이 따로 있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여건에 관계 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병들면 기도할 수 있다 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하여 주심을 감사하고,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 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복음의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일 하니 좋고, 닫히고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준비 할 시간이 더 주어져서 좋고, 다치고 고난당하고 순교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 으로 복된 사람입니까 오늘 이시간 복의 개념을 진지하게 정T9리하실 수 있는 시 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막연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나는 부동자세로 있으면서 복 되 다 세상이 내 앞에 열려지기를 바라는 망상은 이제 더 이상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요. 에덴 동산과 같이 좋은 곳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 습니까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고 복된 곳입니다.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낙원을 잃어 버 리고 말았습니다. 실낙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즉 낙원에서 쫓겨났단 말씀입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십시요. 그는 억울하게 형님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거기서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웁니다. 갖가지 어 려움을 다 당합니다. 결코 복된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어디를 가나 복되 다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애굽이라는 큰 나라의 총리대신 이 됩니다. 그는 어떤 곳이든 어떤 환경이든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으로 여겼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 있는 사람도 세상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일은 다 당한 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저 분간하고 알아보기 위해 서 그 얼굴이 다르게 만드셨지 그 외의 것은 모두가 비슷합니다.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심령 뿐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축복받 은 사랍도 세상에 살면서 고통을 겪어야 하며 실패를 맞보아야 합니다. 질병에 시 달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 보아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고통을 당하지 않 거나 실패하는 일이 전혀 없고, 질병에 시달리지 않는 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 의 인간으로서 축복받은 사람도 역시 약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도 자칫하면 시험에 빠지고 죄에 물들기 쉽습니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축복받은 사람도 일반적인 인간입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 더라도 그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축복을 받았다 할 지라도 우리는 분명히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어떤 임금님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 한복판에 큰 돌덩이 하나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 나 갑니다. 어떤 사람은 길 한 복판에 놓인 돌을 보고 "웬 나쁜 녀석이 길 복판에 다 돌을 갖다 놓았담!"하고 투덜거리면서 비켜갑니다.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면서 지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돌에 채어 넘어질 뻔하자 고래고래욕을 하고 원망 을 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런데 마침 채소 장수 할아버지 한 분이 수레를 끌고 오시 다가 그 돌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세워 놓고 낑낑거리며 돌을 한편으로 치웁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힘겹게 돌을 옮겨 놓고 보니 그 돌 밑에 금은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글이 적힌 편지가 한장 놓 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돌을 옮기는 사람에게 이 금은 보화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금년을 어떻게 살아가시렵니까 살살 피해 가며 기회주의자처럼 살 것입니까 금년에는 그러지 마십시다. 옮겨 놓으면서 사십시다. 그런 사람이 복 된사람입니다. 부동자세로 서서 누가 나에게 복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고, 복된 여 건이 와 주기를 사람은 설령 낙원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실락원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요. 이 말씀 속에서 내가 복 있는 사람인지 복 없는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복 있는 사람의 환경이 전혀 복스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생각 같아서는 복된 사람의 환경이란, 악인도 없고, 죄인도 없으며, 유혹도 없고, 교만한 사람도 없는 곳이어야 하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을 보면 결코 그 렇지 않습니다. 복된 사람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사람들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된 환경이 아닙니다. 유혹도 없고, 죄도 없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복되지 못한 환경에서 어떻 게 복되 다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의 생활은 소극적인 면에서 피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st.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좇지 않는다는 것은 따라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과 함께 동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불신앙의 삶을 의미합니다. 2nd.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합니다. 죄 짓는 사람들 사이에 서 서 서성대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서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곧 죄에 빠지게 되니까 말입니다. '죄인'은 현행범을 말합니다. 3rd.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오만한 자'는 죄 를 짓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아주 경직된 죄인, 혹은 완악한 마음 가리킵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이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이 수군대고 있는 자리에 쓸데 없이 들어가 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멍청히 앉아 있다가 그 대로 죄인이 되어 버리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의 길입니다. 나쁜 사람들이 수군대고 있는 자리에 떡 들어가 앉아 화해시켜 보겠다, 들어 보고 시시비비를 가리겠다---하다가는 자신까지 다치기 십상입니다. 쓸데 없는 짓입니다. 그러지 마십시요. 복된 사람으로 사시려거든 깨끗하게 사십시요. 그것이 복된 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이것을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형태로 구분 해 보면 앉고, 서고, 좇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인간이 날아 갈 수는 없고, 눕는 것은 쉬는 것이라고 할 때, 앉고, 서고, 좇는 것은 인간이 활동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한마디로 하면 복 있는 사람은 불경건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따 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불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실 축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세상에 관심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2-3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말씀이 결코 힘들지 아니합니다. 지킬 만 합니다. 또한 율법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싶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얼마나 즐거워하십니까 또한 "복 있는 사람은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읽는 것은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과 같고 묵상은 말씀을 새김질하며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는 우리에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깊이 묵상하며 소화시켜야 합니다. 먹기는 먹었는데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면 소 용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슴에 젖어있 게되어 어떤 시험이 닥쳐 오더라도 말씀의 검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 소 교회에 편지할 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 으라"고 권면하면서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은 공격용입니다. 언제 마귀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서 도전한다 하더라도 당장 허 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말씀의 칼로 마귀의 도전을 소멸해야 합니다. 자, 아무 튼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 율법을 지키는 사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3에 있는 말씀대로입니다. "시냇 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이 귀절을 이해하려면 이 시가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필요 가 있는데 이시가 쓰여진 땅, 팔레스타인 지금 이스라엘 땅은 무척 척박한 곳입니다. 기후가 석 좋지 않습니다. 1년이 우리와 같이 4계절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 라 건기와 우기로 나누이는데, 비가 내리는 우기도 12달 중 3개월 밖에는 되지 아니 하고, 강우량도 우리의 봄이나 가을에 내리는 정도의 강우량 밖에는 안된다고 합니다. 좀더 실감나게 말씀드리면 우리는 삼천리 어느 곳에서나 그리 어렵지 아니하게 물을 구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물이 귀해 농사를 지어도 스프링쿨러로 인공으로 물을 뿌려 주곤 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끌어다 쓰냐하면 서 울에서 대전 정도의 거리에서 끌어다 쓴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쉬운일 이 아닙니다. 결국 그 가은 물이 귀한 곳이라 우기에는 식물들이 자라지만 건기에는 식물들이 말라 버리곤 합니다.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유독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입니다.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아니합니다. 언제나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습니다. 이 것 을 좀더 세분해서 생각해 보면 1st. 주안에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삶의 근거가 되시는 생명수이신 그리스도 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그 안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입니다. 꽃을 맺는 기쁨의 생활입니다 2nd. 가뭄이 드는 법이 없습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평안한 삶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3rd. 마음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유혹과 위협에도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용비어천가에도 있듯이 "뿌리 깊 은 남간 바람에 아니 뫼쌔 꽃 두고 여름하나니" 하는 그대로입니다. 즉 뿌리가 깊 은 나무는바람에 아니 흔들립니다. 4th. 계속 성장합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위로 자라고 옆으로 퍼지며 가 지를 뻗습니다. 5th. 결론적으로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이말은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말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모두 악을 선 으로 바꾸는 사랑인 것입니다. 요셉이 생애가 그랬습니다. 아주 억울한 일, 어려 운 일, 고생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선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십시다. 주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늘 햇빛 뿐이면 사막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끔 비도 주시고 눈도 내리십니다. 햇빛이 쪼이는 아름다운 날 도, 구름 낀 날도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선히 인 도해 주실 것입니다. 악한 길은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리고, 흉내도 내지 마십시다. 그리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십시다. 바로 여기에 복된 사람의 길이 있으며 이 길만이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길로 걸어갈 때에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항상 푸를 것입니다. 막연한 새해를 맞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주께서 복 있는 사람의 길을 보증해 주 셔서 우리의 삶이 오늘 말씀처럼 축복된 사람의 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번 신년에도 벽두부터 집회를 가지는 교회들을 보면 거의 "신년 축복 성회" 또는 "신년 축복 대 성회"라고 '축복'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면 1년 내 내 복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축복을 받기 원하신다면 오늘 이 시편 1편을 잘 읽고, 배우고, 그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축복이란 최고의 행복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행복'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을 떠 올리며 "그 사람이라면 정 말 행복할 게야"하고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알 고보면 그 사람도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여건 이 아닌 어떤 다른 여건, 곧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어떤 여건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이 내게로 다가와 주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안정, 물질적 풍요, 사업의 성공, 건강, 장수, 혹은 명예, 지위 등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내 앞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여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의 조건은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것 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복에 대해서 생각할 때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어야 합니다. 하나다 복 된 환경, 혹은 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복된 사람, 곧 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개념을 분명히 정리하여 복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제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 은 봄대로 좋다". 여름, 가을에 대해서도 물어 봅시다.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가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 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니까---" 이런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춥고 게을러져 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싫고 노곤해서 싫다"하고 '싫다' '싫다' 소리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하는, 어디에 갖다 놓아도 불행 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새해도 없습니다. 행복도 없습니다. 가난할 때는 자나깨나 돈만 생각하고, 돈만 있으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더니 부자가 되고 나 니까 "가난 할 그 때가 좋았는데---"하고 앉아 있습니다. 또 총각 때는 결혼해 달라고 죽자사자 좇아다니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총가 때가 좋았어"라고 합니다. 답답한 사람들 아닙니까 어느 때, 어느 장소에 처해도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행복해 질 수 있는 여건이 따로 있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여건에 관계 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병들면 기도할 수 있다 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하여 주심을 감사하고,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 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복음의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일 하니 좋고, 닫히고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준비 할 시간이 더 주어져서 좋고, 다치고 고난당하고 순교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 으로 복된 사람입니까 오늘 이시간 복의 개념을 진지하게 정T9리하실 수 있는 시 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막연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나는 부동자세로 있으면서 복 되 다 세상이 내 앞에 열려지기를 바라는 망상은 이제 더 이상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요. 에덴 동산과 같이 좋은 곳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 습니까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고 복된 곳입니다.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낙원을 잃어 버 리고 말았습니다. 실낙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즉 낙원에서 쫓겨났단 말씀입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십시요. 그는 억울하게 형님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거기서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웁니다. 갖가지 어 려움을 다 당합니다. 결코 복된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어디를 가나 복되 다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애굽이라는 큰 나라의 총리대신 이 됩니다. 그는 어떤 곳이든 어떤 환경이든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으로 여겼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 있는 사람도 세상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일은 다 당한 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저 분간하고 알아보기 위해 서 그 얼굴이 다르게 만드셨지 그 외의 것은 모두가 비슷합니다.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심령 뿐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축복받 은 사랍도 세상에 살면서 고통을 겪어야 하며 실패를 맞보아야 합니다. 질병에 시 달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 보아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고통을 당하지 않 거나 실패하는 일이 전혀 없고, 질병에 시달리지 않는 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 의 인간으로서 축복받은 사람도 역시 약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도 자칫하면 시험에 빠지고 죄에 물들기 쉽습니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축복받은 사람도 일반적인 인간입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 더라도 그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축복을 받았다 할 지라도 우리는 분명히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어떤 임금님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 한복판에 큰 돌덩이 하나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 나 갑니다. 어떤 사람은 길 한 복판에 놓인 돌을 보고 "웬 나쁜 녀석이 길 복판에 다 돌을 갖다 놓았담!"하고 투덜거리면서 비켜갑니다.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면서 지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돌에 채어 넘어질 뻔하자 고래고래욕을 하고 원망 을 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런데 마침 채소 장수 할아버지 한 분이 수레를 끌고 오시 다가 그 돌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세워 놓고 낑낑거리며 돌을 한편으로 치웁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힘겹게 돌을 옮겨 놓고 보니 그 돌 밑에 금은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글이 적힌 편지가 한장 놓 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돌을 옮기는 사람에게 이 금은 보화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금년을 어떻게 살아가시렵니까 살살 피해 가며 기회주의자처럼 살 것입니까 금년에는 그러지 마십시다. 옮겨 놓으면서 사십시다. 그런 사람이 복 된사람입니다. 부동자세로 서서 누가 나에게 복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고, 복된 여 건이 와 주기를 사람은 설령 낙원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실락원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요. 이 말씀 속에서 내가 복 있는 사람인지 복 없는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복 있는 사람의 환경이 전혀 복스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생각 같아서는 복된 사람의 환경이란, 악인도 없고, 죄인도 없으며, 유혹도 없고, 교만한 사람도 없는 곳이어야 하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을 보면 결코 그 렇지 않습니다. 복된 사람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사람들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된 환경이 아닙니다. 유혹도 없고, 죄도 없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복되지 못한 환경에서 어떻 게 복되 다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의 생활은 소극적인 면에서 피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st.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좇지 않는다는 것은 따라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과 함께 동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불신앙의 삶을 의미합니다. 2nd.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합니다. 죄 짓는 사람들 사이에 서 서 서성대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서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곧 죄에 빠지게 되니까 말입니다. '죄인'은 현행범을 말합니다. 3rd.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오만한 자'는 죄 를 짓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아주 경직된 죄인, 혹은 완악한 마음 가리킵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이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이 수군대고 있는 자리에 쓸데 없이 들어가 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멍청히 앉아 있다가 그 대로 죄인이 되어 버리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의 길입니다. 나쁜 사람들이 수군대고 있는 자리에 떡 들어가 앉아 화해시켜 보겠다, 들어 보고 시시비비를 가리겠다---하다가는 자신까지 다치기 십상입니다. 쓸데 없는 짓입니다. 그러지 마십시요. 복된 사람으로 사시려거든 깨끗하게 사십시요. 그것이 복된 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이것을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형태로 구분 해 보면 앉고, 서고, 좇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인간이 날아 갈 수는 없고, 눕는 것은 쉬는 것이라고 할 때, 앉고, 서고, 좇는 것은 인간이 활동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한마디로 하면 복 있는 사람은 불경건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따 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불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실 축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세상에 관심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2-3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말씀이 결코 힘들지 아니합니다. 지킬 만 합니다. 또한 율법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싶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얼마나 즐거워하십니까 또한 "복 있는 사람은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읽는 것은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과 같고 묵상은 말씀을 새김질하며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는 우리에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깊이 묵상하며 소화시켜야 합니다. 먹기는 먹었는데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면 소 용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슴에 젖어있 게되어 어떤 시험이 닥쳐 오더라도 말씀의 검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 소 교회에 편지할 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 으라"고 권면하면서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은 공격용입니다. 언제 마귀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서 도전한다 하더라도 당장 허 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말씀의 칼로 마귀의 도전을 소멸해야 합니다. 자, 아무 튼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 율법을 지키는 사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3에 있는 말씀대로입니다. "시냇 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이 귀절을 이해하려면 이 시가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필요 가 있는데 이시가 쓰여진 땅, 팔레스타인 지금 이스라엘 땅은 무척 척박한 곳입니다. 기후가 석 좋지 않습니다. 1년이 우리와 같이 4계절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 라 건기와 우기로 나누이는데, 비가 내리는 우기도 12달 중 3개월 밖에는 되지 아니 하고, 강우량도 우리의 봄이나 가을에 내리는 정도의 강우량 밖에는 안된다고 합니다. 좀더 실감나게 말씀드리면 우리는 삼천리 어느 곳에서나 그리 어렵지 아니하게 물을 구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물이 귀해 농사를 지어도 스프링쿨러로 인공으로 물을 뿌려 주곤 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끌어다 쓰냐하면 서 울에서 대전 정도의 거리에서 끌어다 쓴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쉬운일 이 아닙니다. 결국 그 가은 물이 귀한 곳이라 우기에는 식물들이 자라지만 건기에는 식물들이 말라 버리곤 합니다.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유독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입니다.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아니합니다. 언제나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습니다. 이 것 을 좀더 세분해서 생각해 보면 1st. 주안에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삶의 근거가 되시는 생명수이신 그리스도 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그 안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입니다. 꽃을 맺는 기쁨의 생활입니다 2nd. 가뭄이 드는 법이 없습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평안한 삶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3rd. 마음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유혹과 위협에도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용비어천가에도 있듯이 "뿌리 깊 은 남간 바람에 아니 뫼쌔 꽃 두고 여름하나니" 하는 그대로입니다. 즉 뿌리가 깊 은 나무는바람에 아니 흔들립니다. 4th. 계속 성장합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위로 자라고 옆으로 퍼지며 가 지를 뻗습니다. 5th. 결론적으로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이말은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말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모두 악을 선 으로 바꾸는 사랑인 것입니다. 요셉이 생애가 그랬습니다. 아주 억울한 일, 어려 운 일, 고생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선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십시다. 주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늘 햇빛 뿐이면 사막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끔 비도 주시고 눈도 내리십니다. 햇빛이 쪼이는 아름다운 날 도, 구름 낀 날도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선히 인 도해 주실 것입니다. 악한 길은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리고, 흉내도 내지 마십시다. 그리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십시다. 바로 여기에 복된 사람의 길이 있으며 이 길만이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길로 걸어갈 때에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항상 푸를 것입니다. 막연한 새해를 맞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주께서 복 있는 사람의 길을 보증해 주 셔서 우리의 삶이 오늘 말씀처럼 축복된 사람의 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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