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근원 (행10:1-8)
본문
이 세상에는 가정처럼 소중한 곳이 없습니다. 가정은 제일의 모임이며 잘 가꾸어져야 하는 곳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고넬료라는 사람의 가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가장 성숙한 가정의 모델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군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어느날 하나님의 천사가 방문했습니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지금 욥바라는 곳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해다가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초청해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이에 놀란 베드로는 모든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이방 가정이면서도 그날 가장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낼료의 가정이 이렇게 복을 받은 데는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경건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그는 경건했다”고 했습니다. 우선 가정은 경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어떤 가정은 어딘지 모르게 집안 분위기가 경건합니다. 꾸밈과 장식들이 모두 경건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경건합니다. 가족들이 그런 경건한 분위기에서 살면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살이 경건해집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반면에 다분히 세속적인 가정들도 있습니다. 우선 분위기가 세속적입니다. 꾸밈과 장식들이 세속적입니다. 그리고 결려 있는 그림들이 세속적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가게 되면 가족들이 세속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불행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집은 경건했습니다. 신앙으로 중심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집에 천사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방문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래서 가정은 우선 경건해야 합니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이든 가정은 경건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2.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 온 집안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온 집”이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말합니다. 자녀는 물론이고 그의 부하나 노예들까지 모두를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초청을 받고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가족들은 물론이고 노예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고 심지어는 이웃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고넬료라는 사람은 참 인간적입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해 동포적인 가슴을 지닌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그 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속적으로부터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예배하도록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의무는 예배하는 일입니다. 성도의 첫 번째 할 일이 예배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이미 가족과 부하들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까지 모여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도착하면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고넬료의 집이 그렇게 경건했고 예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천사가 방문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를 예배 생활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의 생활입니다.
3. 본문 4절을 보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생기는 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초월하는 힘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상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내것을 나누게 됩니다. 누굴 위해서 희생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노예와 부하들을 신앙 안으로 끌어들였ㅅ브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기사와 함께 자가용을 타고 교회에 온 분은 대부분 기사는 밖에 있고 혼자만 예배드립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보면 가정부는 언제나 부엌에서 일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노예들까지 배려했습니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둔군 장교임에도 군림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까지 관심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유대인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에게까지 상달되고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사가 그 가정에 좋은 소식을 들고 방문했던 것입니다. 확실히 베푸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습니다. 이웃에게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베풀어 주면 그 관심과 배려가 곧바로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여러분, 메아리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메아리는 내가 말하는 대로 곧바로 되돌아옵니다. “사랑해”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곧 이어서 그 말이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네가 좋아”하고 외치면 그 말도 곧바로 내게로 곧바로 내게로 되돌아 옵니다.
그런데 ‘나쁜 놈“하고 외치면 그 말도 곧바로 ”놈놈놈“하고 되돌아옵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마치 부메랑과 같습니다. 부메랑은 내가 상배방의 목을 치기 위해서 날리면 상대방에게 갔다가 곧바로 내게로 날아와 내 목도 칩니다. 흉기가 갔으니 그 흉기가 다시 내게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원수를 갚으면 그 원수가 한을 품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람은 이웃과 관계를 맺고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이웃과 함께 관계하면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이 정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만한 관계를 이루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으나 유대인과 노예들과 부하들이 그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그를 사랑하셔서 천사를 그 집으로 보내서 은혜받는 길을 안내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러분, 금년 한해를 살아가시는 동안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가정입니다. 적어도 우리 신앙인들은 이와 같은 은혜를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4. 항상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항상”이라는 말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3시, 6시, 9시입니다. 우리 시각으로는 오전 9시와 12시,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본문을 보면 제9시에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후 3시라는 말입니다. 오후 3시에 고넬료도 기도했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도 기도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하나님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말씀하시기를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해다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고 욥바의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에 가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안내자의 인도를 받아서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온 식구가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배를 드릴 때 그집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했던 것입니다. 이미 준비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준비된 곳에 임합니다. 이렇게 보면 한 가정의 구심점은 역시 가장입니다. 가장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경건하고 믿음이 든든하면 그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장이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교회는 목회자가 없어서 연만하신 장로님이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아주 엄격하셨습니다. 주일학교에서 공부를 마치면 그 장로님이 반드시 문답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진땀을 뺐습니다. 어떤 때는 야속하기도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 교육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때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한 가정의 구성이 이렇게 가부장적인 성숙한 신앙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그래서 한 가정의 가장은 무엇보다도 염격한 신앙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이 대략 천 2백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400만이 홀로신앙 가정이라고 합니다. 가장이 신앙생활하지 않는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가 풀렸으면 합니다. 그래서 모든 가정이 균형을 이룬 신앙으로 살고 근본적인 복을 받고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가장을 전도하는 이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정전도학교라는 곳에서 남편을 전도하는 30일 작전이라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거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날은 먼저 남편을 위해 기도할 시간을 정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30일 동안 꾸준히 기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3일째 되는 날은 남편이 중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극진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극진하게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4일째 날은 자신도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급한 마음으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남편을 사랑해 주자”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각오를 하게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9일째 되는 날은 “남편의 외로움을 채워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은 기절하고 말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좋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남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10일째 날은 남편의 허물을 덮어 주는 날입니다. 남편들은 대개 허물이 많습니다. 꼭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장점만을 골라서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최고다, 당신은 남자답고 아량이 넓은 남자다, 내 이니생에서 당신을 만난 것이 최대의 행운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것이다.” 얼마나 짜릿하고 감동적인 사랑의 고백입니까 16일째 되는 날에는 남편의 구두를 닦아 주고 차를 닦아 줍니다. 그런 아내의 손길에 남편들은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17일째 날은 남편의 기를 살려 주는 날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불평을 하거나 말대답을 하면 혼을 냅니다. “아버지께 어떻게 불평을 하고 말대답을 할 수 있느냐”고 혼을 내면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기를 세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평소에도 필요한 아내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19일째 날에는 예쁘게 화장을 합니다. 옷도 새롭게 입고 머리도 만지고 입술도 가꾸고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변화를 좋아하고 환경을 바꾸는 것을 좋아합니다. 20일째 날에는 사랑을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한심하게 살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인입니다.”
얼마나 감칠맛 나는 사랑 고백입니까 그런 편지를 써서 남편의 주머니에 살짝 넣어 줍니다. 직장으로 편지를 보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24일째 날이 되면 이제부터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날은 서비스하는 날입니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가 남편의 발을 씻어 주는 날입니다. 아내가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앉아서 남편의 발을 씻어 준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소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라고 해보십시오.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이쯤 되면 남편은 분명히 왕입니다. 27일째 날은 남편 식구들을 초청해서 잔치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남편을 마음껏 자랑합니다. 그러면 남편의 어깨가 올라갈 것입니다. 28일째 날에는 남편을 위해 보약을 달여 줍니다. “당신은 우리집 기둥이에요,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집안이 평안할 수 있어요. 보약드시고 건강하세요”라고 하면서 약을 달여서 주면 그 남편의 마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주 부드러운 남자가 될 것입니다. 29일부터는 결판을 내는 날입니다. 그래서 29일 째에는 하루종일 시무룩한 얼굴로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아무 일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견딜만 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들은 상당히 걱정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되면 근심스럽게 쳐다보는 남편에게 심각한 얼굴로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한 가지 소원만 이루어지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남편의 얼굴은 더욱 굳어질 것입니다. “정말 이 여자가 죽을 병이라도 걸렸단 말인가” 하고 별 생각을 다할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작전입니까 그때 내 소원 한 가지를 꼭 들어주겠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약속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조용히 말하십시오. “내 평생에 소원이 하나 있는데 내일 교회에 한번만 가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남편들이 모두 놀랄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운 소원임을 알고 대개는 쉽게 약속할 것입니다. 그렇게 150명이 시도를 해보았는데 90%가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10%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군인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천사가 방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온 관심이 그 가정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경건이고 예배 생활이고 선행이고 기도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그 집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최대 행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정이 복을 받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정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가정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 가정이 복을 받고 중심 있는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며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어느날 하나님의 천사가 방문했습니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지금 욥바라는 곳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해다가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초청해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이에 놀란 베드로는 모든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이방 가정이면서도 그날 가장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낼료의 가정이 이렇게 복을 받은 데는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경건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그는 경건했다”고 했습니다. 우선 가정은 경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어떤 가정은 어딘지 모르게 집안 분위기가 경건합니다. 꾸밈과 장식들이 모두 경건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경건합니다. 가족들이 그런 경건한 분위기에서 살면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살이 경건해집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반면에 다분히 세속적인 가정들도 있습니다. 우선 분위기가 세속적입니다. 꾸밈과 장식들이 세속적입니다. 그리고 결려 있는 그림들이 세속적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가게 되면 가족들이 세속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불행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집은 경건했습니다. 신앙으로 중심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집에 천사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방문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래서 가정은 우선 경건해야 합니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이든 가정은 경건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2.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 온 집안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온 집”이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말합니다. 자녀는 물론이고 그의 부하나 노예들까지 모두를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초청을 받고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가족들은 물론이고 노예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고 심지어는 이웃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고넬료라는 사람은 참 인간적입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해 동포적인 가슴을 지닌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그 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속적으로부터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예배하도록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의무는 예배하는 일입니다. 성도의 첫 번째 할 일이 예배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이미 가족과 부하들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까지 모여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도착하면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고넬료의 집이 그렇게 경건했고 예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천사가 방문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를 예배 생활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의 생활입니다.
3. 본문 4절을 보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생기는 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초월하는 힘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상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내것을 나누게 됩니다. 누굴 위해서 희생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노예와 부하들을 신앙 안으로 끌어들였ㅅ브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기사와 함께 자가용을 타고 교회에 온 분은 대부분 기사는 밖에 있고 혼자만 예배드립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보면 가정부는 언제나 부엌에서 일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노예들까지 배려했습니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둔군 장교임에도 군림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까지 관심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유대인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에게까지 상달되고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사가 그 가정에 좋은 소식을 들고 방문했던 것입니다. 확실히 베푸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습니다. 이웃에게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베풀어 주면 그 관심과 배려가 곧바로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여러분, 메아리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메아리는 내가 말하는 대로 곧바로 되돌아옵니다. “사랑해”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곧 이어서 그 말이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네가 좋아”하고 외치면 그 말도 곧바로 내게로 곧바로 내게로 되돌아 옵니다.
그런데 ‘나쁜 놈“하고 외치면 그 말도 곧바로 ”놈놈놈“하고 되돌아옵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마치 부메랑과 같습니다. 부메랑은 내가 상배방의 목을 치기 위해서 날리면 상대방에게 갔다가 곧바로 내게로 날아와 내 목도 칩니다. 흉기가 갔으니 그 흉기가 다시 내게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원수를 갚으면 그 원수가 한을 품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람은 이웃과 관계를 맺고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이웃과 함께 관계하면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이 정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만한 관계를 이루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으나 유대인과 노예들과 부하들이 그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그를 사랑하셔서 천사를 그 집으로 보내서 은혜받는 길을 안내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러분, 금년 한해를 살아가시는 동안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가정입니다. 적어도 우리 신앙인들은 이와 같은 은혜를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4. 항상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항상”이라는 말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3시, 6시, 9시입니다. 우리 시각으로는 오전 9시와 12시,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본문을 보면 제9시에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후 3시라는 말입니다. 오후 3시에 고넬료도 기도했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도 기도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하나님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말씀하시기를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해다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고 욥바의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에 가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안내자의 인도를 받아서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온 식구가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배를 드릴 때 그집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했던 것입니다. 이미 준비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준비된 곳에 임합니다. 이렇게 보면 한 가정의 구심점은 역시 가장입니다. 가장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경건하고 믿음이 든든하면 그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장이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교회는 목회자가 없어서 연만하신 장로님이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아주 엄격하셨습니다. 주일학교에서 공부를 마치면 그 장로님이 반드시 문답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진땀을 뺐습니다. 어떤 때는 야속하기도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 교육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때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한 가정의 구성이 이렇게 가부장적인 성숙한 신앙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그래서 한 가정의 가장은 무엇보다도 염격한 신앙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이 대략 천 2백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400만이 홀로신앙 가정이라고 합니다. 가장이 신앙생활하지 않는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가 풀렸으면 합니다. 그래서 모든 가정이 균형을 이룬 신앙으로 살고 근본적인 복을 받고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가장을 전도하는 이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정전도학교라는 곳에서 남편을 전도하는 30일 작전이라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거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날은 먼저 남편을 위해 기도할 시간을 정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30일 동안 꾸준히 기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3일째 되는 날은 남편이 중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극진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극진하게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4일째 날은 자신도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급한 마음으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남편을 사랑해 주자”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각오를 하게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9일째 되는 날은 “남편의 외로움을 채워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은 기절하고 말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좋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남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10일째 날은 남편의 허물을 덮어 주는 날입니다. 남편들은 대개 허물이 많습니다. 꼭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장점만을 골라서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최고다, 당신은 남자답고 아량이 넓은 남자다, 내 이니생에서 당신을 만난 것이 최대의 행운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것이다.” 얼마나 짜릿하고 감동적인 사랑의 고백입니까 16일째 되는 날에는 남편의 구두를 닦아 주고 차를 닦아 줍니다. 그런 아내의 손길에 남편들은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17일째 날은 남편의 기를 살려 주는 날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불평을 하거나 말대답을 하면 혼을 냅니다. “아버지께 어떻게 불평을 하고 말대답을 할 수 있느냐”고 혼을 내면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기를 세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평소에도 필요한 아내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19일째 날에는 예쁘게 화장을 합니다. 옷도 새롭게 입고 머리도 만지고 입술도 가꾸고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변화를 좋아하고 환경을 바꾸는 것을 좋아합니다. 20일째 날에는 사랑을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한심하게 살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인입니다.”
얼마나 감칠맛 나는 사랑 고백입니까 그런 편지를 써서 남편의 주머니에 살짝 넣어 줍니다. 직장으로 편지를 보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24일째 날이 되면 이제부터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날은 서비스하는 날입니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가 남편의 발을 씻어 주는 날입니다. 아내가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앉아서 남편의 발을 씻어 준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소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라고 해보십시오.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이쯤 되면 남편은 분명히 왕입니다. 27일째 날은 남편 식구들을 초청해서 잔치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남편을 마음껏 자랑합니다. 그러면 남편의 어깨가 올라갈 것입니다. 28일째 날에는 남편을 위해 보약을 달여 줍니다. “당신은 우리집 기둥이에요,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집안이 평안할 수 있어요. 보약드시고 건강하세요”라고 하면서 약을 달여서 주면 그 남편의 마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주 부드러운 남자가 될 것입니다. 29일부터는 결판을 내는 날입니다. 그래서 29일 째에는 하루종일 시무룩한 얼굴로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아무 일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견딜만 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들은 상당히 걱정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되면 근심스럽게 쳐다보는 남편에게 심각한 얼굴로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한 가지 소원만 이루어지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남편의 얼굴은 더욱 굳어질 것입니다. “정말 이 여자가 죽을 병이라도 걸렸단 말인가” 하고 별 생각을 다할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작전입니까 그때 내 소원 한 가지를 꼭 들어주겠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약속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조용히 말하십시오. “내 평생에 소원이 하나 있는데 내일 교회에 한번만 가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남편들이 모두 놀랄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운 소원임을 알고 대개는 쉽게 약속할 것입니다. 그렇게 150명이 시도를 해보았는데 90%가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10%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군인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천사가 방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온 관심이 그 가정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경건이고 예배 생활이고 선행이고 기도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그 집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최대 행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정이 복을 받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정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가정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 가정이 복을 받고 중심 있는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며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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