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라 (요일2:24)
본문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 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 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 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 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 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 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 24절,너희들은 처음부터서 들었던 것을 너희안에 거하도록 하라(머물도록 하라)여기 에 들었던 것은제 1부정과거로 썼습니다. 우리가 들었던 것은 반복해서 들 려지는 것이 아니고 한번 들은 것은 복음의 도를 들은 것은, 이제 지나간 일이지요. 그러나 이제 그 다음에 를 연결하면 복음의 역사의 도를 잘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이, 여러분들이 처음부터서 들었던 것을여러분 안에 머물도 록 하라. 우리말로는(개역성경본) 너희안에 거하게 하라. 거하게 하라 혹은 머물게 하라. 우리는 계속적으로 복음의 선포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는 사도들로 부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선포가 늘 계속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부터서 들은 것은 이미 들은 것의 반복이지요. 그것은 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그러니까 사도들로 부터 들은 것은 단번에 이루어졌는데 보존하는 책임이 성도들 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들은 것이 무엇이냐처음부터 들은 것,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위에서 지금 18절 부터서 이야기 하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대항해서 지금 사도 요한이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 말은 예수가 바로 구주라.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은 예수가 예수가 구주이고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이 세상을 선하게 지으셨는데 악한 자와 서로 짝하여 하나님에게서 타락하여 떨어져 나갔는데 하나님께서 타락한 창조를 자기 에게로 돌리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보내시사 그리스도가 되어 구세주가 되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 그것이 복음이요, 그것이 지금 요한에게서 말하고 있는 전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고서 아들로 말하는 것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 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가 되어 오셨는데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우리를 돌리신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보편적으로 돌리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을 옛 삶의 방식에서 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저주와 정죄에서, 그리고 사탄의 권세에 서 여러분들을 하나님께로, 그냥 하나님께로가 아니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에게로 여러분을 돌리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그런데 이 복음은 계속해서, 계속해서 여러분 마음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생명이 이것이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라 믿는 이것, 이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의 진리가 우리 속에 있어야 우리가 생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24절 후반절에서 말하고 있는 진리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복음을 한번 들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하고 지엽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 라 항상 머무르게 해야 됩니다.머무르도록 하라. 그런데 그것이 현재 명령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가 나의 주님인 것을,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신 것을, 그래서 우리를 이 험악한 죄악에서 구원해 내셨다고 하는 진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는 이 진리를 우리 마음에 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 이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이요, 그것이 우리가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가 이와 같은 능력을 받아야 잘될 줄 알고, 능력을 입을 줄로 아는데, 정말 이것은 큰 오해 이고 잘못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예수와 별도로 그리스도와 별도로 특별한 새로운 능력을 받아야 될 줄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능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내가 그것을 늘 반복해서 말하였거니와) 십자가의 권능, 그리고 부활의 권능 그 것이 성령님의 권능이요. 다른 권능을 성령님께서 가져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무슨 능력을 우리에게 행사하시고 적용시키느냐 십자가의 권세와 부활의 권능을 우리에게 적용시킨다.
성령님의 권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이 구원의 사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이, 그것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권능의 능력의 원천이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 되심 을 머무르도록 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우리와 함께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주 되심을 늘 믿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도 사실 많은 경우에 실수와 죄과를 많이 범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참 주님이 내 안에 거하게 하고, 예수가 주님으로서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있는 자로서 내 안에 거하게 하시지 못하게 한다. 늘 염려와 이 시름을 혼자 괴로와 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원망하고, 가슴을 치고 괴로와하고, 그러니까 건강이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째 서 주님이 주님으로 계시는데 그분과 의논하지 못하고 그분에게 내맡기지 못하는가 기도 할 때 다 갖다가 문제를 내맡기고 혼자 살면서 또 문제가 괴로울 때는 혼자 그냥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저 밖이 해결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그 문제를 일 으킨 사람을 어떻게 해결하며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번민하고, 그리고 마음을 편치 않게하고, 이런 정말 패역한 삶을 사는 그런게 아닌데, 문제가 있을 때마다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께만 맡겨만 놓으며는 주님과 의논하면 주님이 다 마음의 편안을 주 시고 문제를 해결시켜 주시고 마음을 돌이키시는데, 아, 이것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으 로 알고, 저 바깥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저 밖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해결되지 않 은 것을, 큰 한탄하고 염려하고 주와 함께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떤 때는 분노도 하고 그리고 적개심도 일으키고, 정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복음의 도를 이 마음안에 모시고 사는 생활을 못한다. 그러니 문제지요. 그러니까 가서 별다른 능력을 받으며는 이게 일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하여튼 방언만 할 수 있게 되면(예를 들자면) 다 해결됐으니 아, 그것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애를 쓰는데, 그렇게 되면은 별도로 큰 권능이 있는 줄로 아는데 별 도로 큰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별도의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 한다면,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성령님이 오셔서 가져오신 권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와 부활의 권능이요, 그 외에 다른 권능이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오순절파가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분리시키셔서 성령님의 역사 가 성령님의 권능이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르치고, 별도의 능력을 방언 이라고 하는 것을 표징으로 그 확실한 증거로 하는 그와 같은 별도의 능력이 있어야 할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사도요한이 여기서 늘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다. 사실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저 태 초에 계신 그 하나님 그런 의미로 받아도, 지금 우리를 구속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구속주 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바로 알면 우리가 다 해결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단지 그럴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냥 구세주로만 계신 것이 아 닙니다. 왜 너 예수 믿었느냐 믿었으니 지금 그렇게 살다가 끝날에 가면 영생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주님이 되신다.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인 최초의 공식칭호가 무엇이냐 주 예수라. 이것을주 예수 라 할 것인지 혹은예수가 주 라고 할 것인지 물론 해석을 달리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최초의 공식칭호는 예수가 주라 혹은 주가 예수다. 이 말은 주님이라는 말은 이 란 말은, 늘 반복했지마는 사실은 이 것이 구약의 야웨가 70인경에서 로 번역되므로 구약이 말한 그 하나님을 예수에 게 적용하므로 그가 바로 언약의 주이시고 모든 것을 담당하신 주재이심을 말합니다. 그러 니 우리의 모든 문제의 책임자가 누구시냐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 우리가 모든 문제의 해 결을 볼 것이 있는 길이 무엇이냐 복음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 주님이 우리에게 주 님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러니까 현재진행형, 명령형이요항상 머물게 해야 된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김현봉 목사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늘 하시는 말씀 이 꿈에도, 잠자면서도, 오매불망 주님을 부르라. 그 때는 제가 주님을 부르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일이 다 해결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김 목사님도 거기까지만 가르 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부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른다는 것은 주님과 교제 를 한다는 뜻이지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주님하고 의논을 해야지요. 함께 살도록 한다. 거 하게 한다. 주님을 부르는 것만 아니라 문제를, 주여 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 맡으시옵소서. 주님에게 내맡긴다. 문제를 내가 이제 걸머지고 내가 애쓰는 것이 아니고 주님에게 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 사도가 명령하고 있는 교훈에 함께 포함된 내용입니다.
후반절 그런데 너희 안에 너희들이 처움부터 들었던 것이 머무른다면, 인제동사에는 그 부사로 된 것을 과거완료 시제로 썼습니다. 가정법을 썼습니다.너희들이 처음부터서 들었던 것을 너희안에 거하게 만 한다면여기 가정법이 aorist를 썼기 때문에 한번만 거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고, 거하 기만 한다면,처음부터서 너희들이 처음부터 들었던 것을 너희안에 머무르게만 한다면, 여기에는 시제 의 의미만 아니고 가정법의 의미만 들어 있어요. Aorist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여기여러분이 여러분 안에 들었던 것을 거하게만 한다면 . 여러분들은 아들 안에 그 리고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들 안에 거하는 법, 그리고 아들 안에 거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인데, 그 법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우리가 들었던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 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었던 복음으로,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으로 우리 안에 살게 하 면 좀 쉽게 말하면 우리가 그 복음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살면은, 그분에게 모든 문제 있는 때마 다 내어맡기면, 사는 것이 그냥이 아니고라!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말의 거한다는 말은 잘 번역된 말이다. 그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일이 되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의 길이 되게 하면, 복음이 그러면 우리가 아들 안에 머물게 되고, 살게 되고, 아버지 안에 있게 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사는 길이 아버지 안에 살고 아들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안에가 문제고,아버지 안 이 다음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만나는 일이 아들 안에서요. 그리고 아들 안에 머무름이 곧 아버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삶이라! 만일에 사도요한이 조금 고급의 통상의 희랍어 문법을 따라 썼으면 다음에 를 쓸게 아니고 영어의so .that용법을 써서라고 하지 않고so .that용법을 써서 그러면 너희들이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했을 것 입니다마는 지금 히브리어 용법대로 .문장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 들 안에 사는 길이 예수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사는 길이 아버지 안에 사는 길이고, 그것이 아들 안에 사는 길이고, 그것이 바로 아버지 안에 사는 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항상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항상 아버지는 아 들을 통해서만 이고 아버지를 아는 일도 아들을 통해서만 이고, 아버지 안에 거하는 일도 아들을 통해서만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해서 아들 에게 와있고, 아들에게 와있는 생명이 아버지의 생명 자체다. 또 아들이 하나님의 생명 자 체요,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아들 안에 머무르고 아 버지 안에 머무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가 특이한 어법으로로 로 함께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사도요한이 라는 말로 요 앞에서도 말했고 27절 에도 말했지마는 성령님이란 말을 그렇게 언급하지 아니하면서 항상 성령님을 함께 말하고 있다. 요한의 글에 의하면 아들과 아버지를 함께 말할 때는 늘 성령님이 거기 와 계심을 전제하 고 있다. 그러면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함이 어떻게 이루어지냐 바로 영을 통 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러니 우리가 아들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아들 안에 우리가 주를 모시고 사는 것도 성령님을 통해서 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입니다. 바로 영을 모심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와 계시는 것 입니다. 그러니 아들과 영을 분리시켜서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은 위격 적인 동일을 늘 말하느냐 그런 뜻은 아니지마는, 그러나 분리하여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 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말할 때는 항상 이 둘을 묶는 띠가, 끈이 성령님 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을 말할 때는 항상 성령님으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들 안에 살므로 아버지 안에 사는데 이 일은 다 성령님으로 이루어지고 성령님께서 이루 십니다. 지금 우리가 성령님으로 사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을 모심입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 자신과 성령님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후반절, 하나님이 아들 안에 머무르는 것을 미래사로 썼어요.너희들이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르게 되리라 .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는 것을 미래로 썼는데 거기 에 약속과 연관시켜서 영생을 말할려고 미래를 썼습니다. 우리가 종말에 이르러서 아버지와 아들 안에 온전하게 머무를 것이지마는 지금 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바로 아버지 와 아들 안에 머물러 있음이 종말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여기 미래사를 씀 으로, 사도요한은 그런 용어로 쓰지는 않지만 와을 여기서 함께 반 추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성령님안에 머무름이 첫열매로서 하나님 안에 머무름이요,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심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온전하게 거할 것에 대한 보장이다.
지금 우리가 성령님으로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거하는데, 지금 그렇게 거하는 것은 완전하게 영적 으로 우리가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머무를 것에 대한 맛배기요 첫열매요! . 그 렇게 아버지와 아들 안에 온전하게 머무를 것에 대한 보증이 바로 보장들이 보장들이 무엇이냐 성령님이시다. 온전하게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거할 것을 지시하기 위 해서 사도요한은 여기서 미래를 썼습니다. 너희들이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머무는 이것이 무엇이냐 25절, , . 바로 이것이 그가 그 자식들과 친히 약속하신 약속인데 영생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오래 오래 참 무궁복락을 누리며 잘먹고 잘입고,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게 무궁복락을 누리는 것이 영생인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머무는 이것이 그 자신이 친히 약속하신 약속이다. 약속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 그것이 영생이다. 영생이 무엇이요 하나님 안에 사는 것, 그것이 영생이다. 그런 영생은 우리 한국 사람에게 별 재미가 없어요. 그건 너무 추상적이고 먼 일이어서 별 재미가 없어요. 좀 돈이 많아가지고 하고 싶은 것 좀 잘하고 먹고 싶은 것 잘먹고. 나는 이제 뷔페정도 밖에 못먹어봐서 그 이상의 무슨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상에 500만원짜리도 있다고 그러는 소리가 있는데. 나도 한번 그런 것 구경좀 시 켜주면. 그렇게 잘먹고 잘입고 안심해서 죄를 많이 짓고 그래도 은혜가 있으니까 다 구원 을 얻을 것 아니요 그렇지요 완전히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게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데. 영생이 무엇이냐 그가 친히 약속하심이다.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영생이다. 여기다가 지금 사도가를 넣어 놨습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약속 하신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이요. 왜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있는 약속이라. 복음이라 하지 않고 약속이라 했는데 거기에는 깊은 뜻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가 바로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머무르는 것, 사는 것을 위해서 왔다. 영생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 지요. 우리가 神的으로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해서 그 일부를 받아가지고 내가 영구히 살게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가져왔다. 그가 친히 약속하셨다. 오늘의 복음이 이라 하지 아니하고라 했느냐 여기 에도 이제 앞에서 말한과 가 들어 있습니다. 그가 지금 우리에게 아 들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함을 가져오셨지만 그 완전한 거함은 미래사로 표시함 으로 저 마지막 때에 완전함이 이루어질 것을 지시한 것처럼 그가 친히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한 것을 가져 오셨지마는 완전하게 거함은 종말에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가져왔다. 그러니이지마는 그가 훗날에 미래 만의 사건으로만 약속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면서 종말 에 가서 완성될 그런 복음입니다. 그런 약속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구약의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복음인데, 그가 아버지 안에, 자신 안에 그리고 아버 지 안에 사람들을 머물게 함을 이루시고 가져 오셨다. 그것이 바로 영생다. 지금 우리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언제 완성될 것이냐 마지막에! 그러니 사도가를 썼습니다. 바로 이어서그냥 라고 하지 않고바로 이것이, 우리말 로 뭐라고 했는지,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 바로 이것이 그 자신이 약 속하신 약속이다. 곧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내가 보기에는, 이 아니고 물론 문법적으로 보면 格과 數가 性이 性과 數가 을 지시하지마는 문맥상으로 보면은, 내가 보기에는 .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름,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가 져오신 선물이고 약속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사적 섭리에서 보면 구원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구속에로 가 고 있지요. 그런 의미에 있어서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지요. 약속이 구약에만 속하는게 아니라 신약에도 약속이 함께 있다. 약속은 구약에만 있고 신약에는 다 성취돼 버려서 더이 상 약속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약속이 복음에 들어있다. 지금 이미 우리에게 와 있 지마는 그것은 또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생이 무엇이냐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과 거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 종말에 가면 하나님을 쳐다보고, 그리고 로마교회가 말하는 식의 神化되고 그런 경지가 아니고, 작은 神 들이 모여서 神들의 축제를 벌이는 그런 희랍 神들의 세계에서와 같은 것이 진행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충만하게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목표 입니다. 그 교제는 그러면 왕을 맞으러 가는 것이냐 여러가지 다 포함하지마는 정말 우리가 온 전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은혜 아래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바로 가질 교 제이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우리가 그 생명에 동참하지요. 그 아들의 생명에의 동참을 위 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 생명의 동참을 그가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24절로 되돌아 가서, , . 여러분들이 처음부터 들었던 것을 여러분 안에 머무르게 하면 여러분은 정녕코 아들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자기 것으로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인정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요, 이것이 성령님으로 사는 삶입니다. 너무 많은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님으로 사는 법이 다른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主를 主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 그가 내 모든 것의 소유권을 담당하시는 분으로 인정하면, 또 그분 으로 믿음으로 해결하며 사는 그것이 성령님으로 사는 길이요! 그냥 사도가 여기서 성령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들과 아버지 안에라고 함으로 성령님 안에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언급돼 있는데는 항상 성령님이 함께 와 있습니다. 성령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글에!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구속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자기의 것으로 권리주 장하시는 그 구원에 이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함 께 사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성령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거는 별도 의 능력과 희한한 느낌이 와서 나를 꾀할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맡기고 사는 것, 바로 그 것이 성령님으로 삶이요, 성령님으로 응답받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여러분들이 받 은 이 복음을 계속해서 여러분 속에 역사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성령님 안에서 생명의 법을 좇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런데 이 복음은 계속해서, 계속해서 여러분 마음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생명이 이것이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라 믿는 이것, 이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의 진리가 우리 속에 있어야 우리가 생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24절 후반절에서 말하고 있는 진리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복음을 한번 들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하고 지엽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 라 항상 머무르게 해야 됩니다.머무르도록 하라. 그런데 그것이 현재 명령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가 나의 주님인 것을,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신 것을, 그래서 우리를 이 험악한 죄악에서 구원해 내셨다고 하는 진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는 이 진리를 우리 마음에 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 이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이요, 그것이 우리가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가 이와 같은 능력을 받아야 잘될 줄 알고, 능력을 입을 줄로 아는데, 정말 이것은 큰 오해 이고 잘못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예수와 별도로 그리스도와 별도로 특별한 새로운 능력을 받아야 될 줄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능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내가 그것을 늘 반복해서 말하였거니와) 십자가의 권능, 그리고 부활의 권능 그 것이 성령님의 권능이요. 다른 권능을 성령님께서 가져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무슨 능력을 우리에게 행사하시고 적용시키느냐 십자가의 권세와 부활의 권능을 우리에게 적용시킨다.
성령님의 권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이 구원의 사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이, 그것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권능의 능력의 원천이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 되심 을 머무르도록 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우리와 함께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주 되심을 늘 믿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도 사실 많은 경우에 실수와 죄과를 많이 범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참 주님이 내 안에 거하게 하고, 예수가 주님으로서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있는 자로서 내 안에 거하게 하시지 못하게 한다. 늘 염려와 이 시름을 혼자 괴로와 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원망하고, 가슴을 치고 괴로와하고, 그러니까 건강이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째 서 주님이 주님으로 계시는데 그분과 의논하지 못하고 그분에게 내맡기지 못하는가 기도 할 때 다 갖다가 문제를 내맡기고 혼자 살면서 또 문제가 괴로울 때는 혼자 그냥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저 밖이 해결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그 문제를 일 으킨 사람을 어떻게 해결하며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번민하고, 그리고 마음을 편치 않게하고, 이런 정말 패역한 삶을 사는 그런게 아닌데, 문제가 있을 때마다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께만 맡겨만 놓으며는 주님과 의논하면 주님이 다 마음의 편안을 주 시고 문제를 해결시켜 주시고 마음을 돌이키시는데, 아, 이것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으 로 알고, 저 바깥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저 밖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해결되지 않 은 것을, 큰 한탄하고 염려하고 주와 함께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떤 때는 분노도 하고 그리고 적개심도 일으키고, 정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복음의 도를 이 마음안에 모시고 사는 생활을 못한다. 그러니 문제지요. 그러니까 가서 별다른 능력을 받으며는 이게 일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하여튼 방언만 할 수 있게 되면(예를 들자면) 다 해결됐으니 아, 그것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애를 쓰는데, 그렇게 되면은 별도로 큰 권능이 있는 줄로 아는데 별 도로 큰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별도의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 한다면,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성령님이 오셔서 가져오신 권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와 부활의 권능이요, 그 외에 다른 권능이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오순절파가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분리시키셔서 성령님의 역사 가 성령님의 권능이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가르치고, 별도의 능력을 방언 이라고 하는 것을 표징으로 그 확실한 증거로 하는 그와 같은 별도의 능력이 있어야 할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사도요한이 여기서 늘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다. 사실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저 태 초에 계신 그 하나님 그런 의미로 받아도, 지금 우리를 구속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구속주 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바로 알면 우리가 다 해결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단지 그럴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냥 구세주로만 계신 것이 아 닙니다. 왜 너 예수 믿었느냐 믿었으니 지금 그렇게 살다가 끝날에 가면 영생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주님이 되신다.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인 최초의 공식칭호가 무엇이냐 주 예수라. 이것을주 예수 라 할 것인지 혹은예수가 주 라고 할 것인지 물론 해석을 달리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최초의 공식칭호는 예수가 주라 혹은 주가 예수다. 이 말은 주님이라는 말은 이 란 말은, 늘 반복했지마는 사실은 이 것이 구약의 야웨가 70인경에서 로 번역되므로 구약이 말한 그 하나님을 예수에 게 적용하므로 그가 바로 언약의 주이시고 모든 것을 담당하신 주재이심을 말합니다. 그러 니 우리의 모든 문제의 책임자가 누구시냐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 우리가 모든 문제의 해 결을 볼 것이 있는 길이 무엇이냐 복음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 주님이 우리에게 주 님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러니까 현재진행형, 명령형이요항상 머물게 해야 된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김현봉 목사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늘 하시는 말씀 이 꿈에도, 잠자면서도, 오매불망 주님을 부르라. 그 때는 제가 주님을 부르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일이 다 해결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김 목사님도 거기까지만 가르 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부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른다는 것은 주님과 교제 를 한다는 뜻이지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주님하고 의논을 해야지요. 함께 살도록 한다. 거 하게 한다. 주님을 부르는 것만 아니라 문제를, 주여 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 맡으시옵소서. 주님에게 내맡긴다. 문제를 내가 이제 걸머지고 내가 애쓰는 것이 아니고 주님에게 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 사도가 명령하고 있는 교훈에 함께 포함된 내용입니다.
후반절 그런데 너희 안에 너희들이 처움부터 들었던 것이 머무른다면, 인제동사에는 그 부사로 된 것을 과거완료 시제로 썼습니다. 가정법을 썼습니다.너희들이 처음부터서 들었던 것을 너희안에 거하게 만 한다면여기 가정법이 aorist를 썼기 때문에 한번만 거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고, 거하 기만 한다면,처음부터서 너희들이 처음부터 들었던 것을 너희안에 머무르게만 한다면, 여기에는 시제 의 의미만 아니고 가정법의 의미만 들어 있어요. Aorist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여기여러분이 여러분 안에 들었던 것을 거하게만 한다면 . 여러분들은 아들 안에 그 리고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들 안에 거하는 법, 그리고 아들 안에 거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인데, 그 법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우리가 들었던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 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었던 복음으로,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으로 우리 안에 살게 하 면 좀 쉽게 말하면 우리가 그 복음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살면은, 그분에게 모든 문제 있는 때마 다 내어맡기면, 사는 것이 그냥이 아니고라!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말의 거한다는 말은 잘 번역된 말이다. 그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일이 되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의 길이 되게 하면, 복음이 그러면 우리가 아들 안에 머물게 되고, 살게 되고, 아버지 안에 있게 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사는 길이 아버지 안에 살고 아들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안에가 문제고,아버지 안 이 다음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만나는 일이 아들 안에서요. 그리고 아들 안에 머무름이 곧 아버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삶이라! 만일에 사도요한이 조금 고급의 통상의 희랍어 문법을 따라 썼으면 다음에 를 쓸게 아니고 영어의so .that용법을 써서라고 하지 않고so .that용법을 써서 그러면 너희들이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했을 것 입니다마는 지금 히브리어 용법대로 .문장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 들 안에 사는 길이 예수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사는 길이 아버지 안에 사는 길이고, 그것이 아들 안에 사는 길이고, 그것이 바로 아버지 안에 사는 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항상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항상 아버지는 아 들을 통해서만 이고 아버지를 아는 일도 아들을 통해서만 이고, 아버지 안에 거하는 일도 아들을 통해서만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해서 아들 에게 와있고, 아들에게 와있는 생명이 아버지의 생명 자체다. 또 아들이 하나님의 생명 자 체요,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아들 안에 머무르고 아 버지 안에 머무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가 특이한 어법으로로 로 함께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사도요한이 라는 말로 요 앞에서도 말했고 27절 에도 말했지마는 성령님이란 말을 그렇게 언급하지 아니하면서 항상 성령님을 함께 말하고 있다. 요한의 글에 의하면 아들과 아버지를 함께 말할 때는 늘 성령님이 거기 와 계심을 전제하 고 있다. 그러면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함이 어떻게 이루어지냐 바로 영을 통 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러니 우리가 아들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아들 안에 우리가 주를 모시고 사는 것도 성령님을 통해서 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입니다. 바로 영을 모심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와 계시는 것 입니다. 그러니 아들과 영을 분리시켜서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은 위격 적인 동일을 늘 말하느냐 그런 뜻은 아니지마는, 그러나 분리하여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 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말할 때는 항상 이 둘을 묶는 띠가, 끈이 성령님 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을 말할 때는 항상 성령님으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들 안에 살므로 아버지 안에 사는데 이 일은 다 성령님으로 이루어지고 성령님께서 이루 십니다. 지금 우리가 성령님으로 사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을 모심입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 자신과 성령님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후반절, 하나님이 아들 안에 머무르는 것을 미래사로 썼어요.너희들이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르게 되리라 .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는 것을 미래로 썼는데 거기 에 약속과 연관시켜서 영생을 말할려고 미래를 썼습니다. 우리가 종말에 이르러서 아버지와 아들 안에 온전하게 머무를 것이지마는 지금 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바로 아버지 와 아들 안에 머물러 있음이 종말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여기 미래사를 씀 으로, 사도요한은 그런 용어로 쓰지는 않지만 와을 여기서 함께 반 추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성령님안에 머무름이 첫열매로서 하나님 안에 머무름이요,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심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온전하게 거할 것에 대한 보장이다.
지금 우리가 성령님으로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거하는데, 지금 그렇게 거하는 것은 완전하게 영적 으로 우리가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머무를 것에 대한 맛배기요 첫열매요! . 그 렇게 아버지와 아들 안에 온전하게 머무를 것에 대한 보증이 바로 보장들이 보장들이 무엇이냐 성령님이시다. 온전하게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거할 것을 지시하기 위 해서 사도요한은 여기서 미래를 썼습니다. 너희들이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머무는 이것이 무엇이냐 25절, , . 바로 이것이 그가 그 자식들과 친히 약속하신 약속인데 영생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오래 오래 참 무궁복락을 누리며 잘먹고 잘입고,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게 무궁복락을 누리는 것이 영생인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머무는 이것이 그 자신이 친히 약속하신 약속이다. 약속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 그것이 영생이다. 영생이 무엇이요 하나님 안에 사는 것, 그것이 영생이다. 그런 영생은 우리 한국 사람에게 별 재미가 없어요. 그건 너무 추상적이고 먼 일이어서 별 재미가 없어요. 좀 돈이 많아가지고 하고 싶은 것 좀 잘하고 먹고 싶은 것 잘먹고. 나는 이제 뷔페정도 밖에 못먹어봐서 그 이상의 무슨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상에 500만원짜리도 있다고 그러는 소리가 있는데. 나도 한번 그런 것 구경좀 시 켜주면. 그렇게 잘먹고 잘입고 안심해서 죄를 많이 짓고 그래도 은혜가 있으니까 다 구원 을 얻을 것 아니요 그렇지요 완전히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게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데. 영생이 무엇이냐 그가 친히 약속하심이다.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영생이다. 여기다가 지금 사도가를 넣어 놨습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약속 하신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이요. 왜 아버지 안에 아들 안에 있는 약속이라. 복음이라 하지 않고 약속이라 했는데 거기에는 깊은 뜻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가 바로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머무르는 것, 사는 것을 위해서 왔다. 영생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 지요. 우리가 神的으로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해서 그 일부를 받아가지고 내가 영구히 살게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가져왔다. 그가 친히 약속하셨다. 오늘의 복음이 이라 하지 아니하고라 했느냐 여기 에도 이제 앞에서 말한과 가 들어 있습니다. 그가 지금 우리에게 아 들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함을 가져오셨지만 그 완전한 거함은 미래사로 표시함 으로 저 마지막 때에 완전함이 이루어질 것을 지시한 것처럼 그가 친히 아들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한 것을 가져 오셨지마는 완전하게 거함은 종말에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가져왔다. 그러니이지마는 그가 훗날에 미래 만의 사건으로만 약속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면서 종말 에 가서 완성될 그런 복음입니다. 그런 약속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구약의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복음인데, 그가 아버지 안에, 자신 안에 그리고 아버 지 안에 사람들을 머물게 함을 이루시고 가져 오셨다. 그것이 바로 영생다. 지금 우리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언제 완성될 것이냐 마지막에! 그러니 사도가를 썼습니다. 바로 이어서그냥 라고 하지 않고바로 이것이, 우리말 로 뭐라고 했는지,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 바로 이것이 그 자신이 약 속하신 약속이다. 곧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내가 보기에는, 이 아니고 물론 문법적으로 보면 格과 數가 性이 性과 數가 을 지시하지마는 문맥상으로 보면은, 내가 보기에는 .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름,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가 져오신 선물이고 약속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사적 섭리에서 보면 구원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구속에로 가 고 있지요. 그런 의미에 있어서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지요. 약속이 구약에만 속하는게 아니라 신약에도 약속이 함께 있다. 약속은 구약에만 있고 신약에는 다 성취돼 버려서 더이 상 약속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약속이 복음에 들어있다. 지금 이미 우리에게 와 있 지마는 그것은 또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생이 무엇이냐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과 거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 종말에 가면 하나님을 쳐다보고, 그리고 로마교회가 말하는 식의 神化되고 그런 경지가 아니고, 작은 神 들이 모여서 神들의 축제를 벌이는 그런 희랍 神들의 세계에서와 같은 것이 진행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충만하게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목표 입니다. 그 교제는 그러면 왕을 맞으러 가는 것이냐 여러가지 다 포함하지마는 정말 우리가 온 전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은혜 아래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바로 가질 교 제이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우리가 그 생명에 동참하지요. 그 아들의 생명에의 동참을 위 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 생명의 동참을 그가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24절로 되돌아 가서, , . 여러분들이 처음부터 들었던 것을 여러분 안에 머무르게 하면 여러분은 정녕코 아들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자기 것으로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인정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요, 이것이 성령님으로 사는 삶입니다. 너무 많은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님으로 사는 법이 다른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主를 主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 그가 내 모든 것의 소유권을 담당하시는 분으로 인정하면, 또 그분 으로 믿음으로 해결하며 사는 그것이 성령님으로 사는 길이요! 그냥 사도가 여기서 성령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들과 아버지 안에라고 함으로 성령님 안에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언급돼 있는데는 항상 성령님이 함께 와 있습니다. 성령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글에!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구속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자기의 것으로 권리주 장하시는 그 구원에 이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함 께 사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성령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거는 별도 의 능력과 희한한 느낌이 와서 나를 꾀할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맡기고 사는 것, 바로 그 것이 성령님으로 삶이요, 성령님으로 응답받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여러분들이 받 은 이 복음을 계속해서 여러분 속에 역사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성령님 안에서 생명의 법을 좇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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