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보 (빌1:12-18)
본문
오늘은 1장 12절 부터 공부 1장 12절 부터 18절까지 함께 봉독. 여기서 부터 본론에 해당이 된다. 사실 빌립보 교인들은 교회와 바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지만 성도들간에는 신앙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교훈하기 전 자신의 투옥에 대한 소중한 간증을 그들에게 피력하고 있다.
1.(12절)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로마에서 투옥이 되자 빌립보 교인들중에는 뜻하지 않은 방해꾼이 등장하게 된다. 즉 바울의 투옥은 교회나 성도들에게 마이너스를 가져왔다는 것이다.-결국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의견을 내세워 복음사역을 방해 하고 있음을 바울은 알았던 것. 복음의 진보-빌립보교인들에게 유익이 된 것(신앙적으로) ㅇ 뜻하지 않은 교회의 고난을 통해 교회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었고, ㅇ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므로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히 나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고. ㅇ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성도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게 되었다는 것. 역시 교회나 성도 개인에게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진리이다.
2.(13절)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 바울이 옥에 갇힌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복음을 위해서였다.-선을 행하다가,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그런데 그러한 이유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아, 저 사람은 예수를 전하다가 옥에 갇혔데.,
그런데 그 이후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옥에 갇혔다고 해서 바울이 안절부절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소리소리지르고 야단 법썩을 떨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그러한 곳에서 인격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그것이 시위대 사람들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고 결국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었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만날때 그 진수가 나타난다.-예수그리스도, 다니엘(사자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뜨거운 불구덩이)
3.(14절)형제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 이제 감옥안에서의 유익을 넘어서 그 영향이 밖으로까지 번져갔다. 바울이 옥에 갇히자 복음을 전하던 자들은 아마도 그 기세가 위축이 되었거나 지하로 두려워서 숨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감옥안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바울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고 거기에다 온 시위대 사람들까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힘을 내어 다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다는 것.-우리도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믿음의 용기를 얻는다.-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인하여 돌에 맞아 죽을때 그 모습을 바울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어쩌면 그 뇌리에 남아있는 스데반의 그러한 모습이 바울로 하여금 용기를 갖고 복음을 위해 일하도록 했는지 모른다.
4.(15절-17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복음을 전하는 사람가운데서도 네가 잘 전하느냐 아니면 내가 더 잘 전하느냐. 네가 전도 많이 했느냐. 아니면 내가 많이 했느냐하면서 투기심을 갖고 일하는 자가 있다는 것,-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 또 놀랍게도 자신들이 열심히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전도하고 부흥시키면 바울은 감옥안에서 자신의 탑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괴로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즉, 평소에 교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전도를 해도 바울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질투. 교회에서 상석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들, =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고 말겠다는 생각. 하나님은 항상 겸손한 자를 쓰신다.
5.(18절)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참으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자신에 대하여 악한 감정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자기는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무슨 일로든지 그리스도 예수만 높혀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만일 누가 나를 단순히 앞지르기 위해서 전도를 한다면 아마 우리는 추월 당하지 않을려고 이런 마음을 품고 안간힘을 쓸것이다.-"저 사람이 전도할 땐 아무 열매도 맺히지 말고 내가 전도할 때는 주렁주렁 맺어야 돼. 그래서 내가 일등해야 돼. 오직 나만 전도도 잘하고,봉사도 잘해서 나만 인정받고 대접받으면 돼." =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지니고 사는 사람은 그 반대. 바울은 오로지 그리스도만 전해지면 그것으로 행복해 하고 기뻐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소원은 무엇인가 =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그것도 좋지만, 우리의 소원은-'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고,교회가 잘 되고, 또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복음 증거는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능력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견디는 힘이다. = 바울은 우리가 알기에는 불행한 처지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감옥에서 행복해 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이렇게 외쳤다.아주 행복한 얼굴로 그리고 자신있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손해보는 일이라해도,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님에 대한 참된 헌신을 통해서 그 헌신의 영광과 기쁨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다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 그는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절에서 21절까지 함께 봉독. 이제 바울은 자신의 살고 죽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가 그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명은 주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19절)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할 줄 아는고로. = 여기에서 '이것'은 바울의 현재 처지를 말한다. 복음을위해 감옥에 갇힌것이 오히려 유익되었지만 그러나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바울은 결코 자신이 했다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자기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할 만큼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얼마나 보잘것이 없는 사람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 세례요한도 그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하고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15:5-7) = 우리에게 아무리 막강한 힘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연약한 인생 = "화무십일홍" = 교회의 부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주의종이 훌륭해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성도들의 땀방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도들의 기도의 힘 =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밤새기도. =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 베드로를 구해 주신다.
2.(20절-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되게 하려하나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바울이 외적인 환경이 굴하지 않고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던 소망 때문이었다.-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 그 자체였다. 딤전1:1에서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라고 말한다. = 그리고 두번째로 그가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것이다.-하나님앞에서 부끄러운 사람들,. = '내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나를 인하여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살면 산 재물이고 (롬12:1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재사로 드리라고 말씀) 죽으면 영광의 재물이 되고자 했던 결연한 믿음.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일반 성도들의 믿음처럼 "주를 위해서"라는 차원이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삶의 동기요, 힘이요 목적이요, 그의 생각이요, 이상이요,전부였다,-그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고, 사후 세계를 보장해 주지도 못한다. 석가모니와 어느 노파(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했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가 계신다. 무엇이 두려운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말자. 우리는 세상과 그리스도, 둘 다 소유할 수는 없다.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맺는다면 세상을 위해 살아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정한 소망은 그리스도 에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이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1.(12절)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로마에서 투옥이 되자 빌립보 교인들중에는 뜻하지 않은 방해꾼이 등장하게 된다. 즉 바울의 투옥은 교회나 성도들에게 마이너스를 가져왔다는 것이다.-결국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의견을 내세워 복음사역을 방해 하고 있음을 바울은 알았던 것. 복음의 진보-빌립보교인들에게 유익이 된 것(신앙적으로) ㅇ 뜻하지 않은 교회의 고난을 통해 교회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었고, ㅇ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므로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히 나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고. ㅇ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성도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게 되었다는 것. 역시 교회나 성도 개인에게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진리이다.
2.(13절)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 바울이 옥에 갇힌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복음을 위해서였다.-선을 행하다가,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그런데 그러한 이유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아, 저 사람은 예수를 전하다가 옥에 갇혔데.,
그런데 그 이후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옥에 갇혔다고 해서 바울이 안절부절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소리소리지르고 야단 법썩을 떨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그러한 곳에서 인격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그것이 시위대 사람들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고 결국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었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만날때 그 진수가 나타난다.-예수그리스도, 다니엘(사자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뜨거운 불구덩이)
3.(14절)형제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 이제 감옥안에서의 유익을 넘어서 그 영향이 밖으로까지 번져갔다. 바울이 옥에 갇히자 복음을 전하던 자들은 아마도 그 기세가 위축이 되었거나 지하로 두려워서 숨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감옥안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바울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고 거기에다 온 시위대 사람들까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힘을 내어 다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다는 것.-우리도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믿음의 용기를 얻는다.-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인하여 돌에 맞아 죽을때 그 모습을 바울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어쩌면 그 뇌리에 남아있는 스데반의 그러한 모습이 바울로 하여금 용기를 갖고 복음을 위해 일하도록 했는지 모른다.
4.(15절-17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복음을 전하는 사람가운데서도 네가 잘 전하느냐 아니면 내가 더 잘 전하느냐. 네가 전도 많이 했느냐. 아니면 내가 많이 했느냐하면서 투기심을 갖고 일하는 자가 있다는 것,-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 또 놀랍게도 자신들이 열심히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전도하고 부흥시키면 바울은 감옥안에서 자신의 탑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괴로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즉, 평소에 교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전도를 해도 바울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질투. 교회에서 상석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들, =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고 말겠다는 생각. 하나님은 항상 겸손한 자를 쓰신다.
5.(18절)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참으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자신에 대하여 악한 감정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자기는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무슨 일로든지 그리스도 예수만 높혀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만일 누가 나를 단순히 앞지르기 위해서 전도를 한다면 아마 우리는 추월 당하지 않을려고 이런 마음을 품고 안간힘을 쓸것이다.-"저 사람이 전도할 땐 아무 열매도 맺히지 말고 내가 전도할 때는 주렁주렁 맺어야 돼. 그래서 내가 일등해야 돼. 오직 나만 전도도 잘하고,봉사도 잘해서 나만 인정받고 대접받으면 돼." =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지니고 사는 사람은 그 반대. 바울은 오로지 그리스도만 전해지면 그것으로 행복해 하고 기뻐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소원은 무엇인가 =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그것도 좋지만, 우리의 소원은-'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고,교회가 잘 되고, 또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복음 증거는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능력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견디는 힘이다. = 바울은 우리가 알기에는 불행한 처지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감옥에서 행복해 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이렇게 외쳤다.아주 행복한 얼굴로 그리고 자신있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손해보는 일이라해도,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님에 대한 참된 헌신을 통해서 그 헌신의 영광과 기쁨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다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 그는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절에서 21절까지 함께 봉독. 이제 바울은 자신의 살고 죽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가 그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명은 주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19절)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할 줄 아는고로. = 여기에서 '이것'은 바울의 현재 처지를 말한다. 복음을위해 감옥에 갇힌것이 오히려 유익되었지만 그러나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바울은 결코 자신이 했다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자기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할 만큼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얼마나 보잘것이 없는 사람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 세례요한도 그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하고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15:5-7) = 우리에게 아무리 막강한 힘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연약한 인생 = "화무십일홍" = 교회의 부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주의종이 훌륭해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성도들의 땀방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도들의 기도의 힘 =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밤새기도. =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 베드로를 구해 주신다.
2.(20절-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되게 하려하나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바울이 외적인 환경이 굴하지 않고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던 소망 때문이었다.-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 그 자체였다. 딤전1:1에서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라고 말한다. = 그리고 두번째로 그가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것이다.-하나님앞에서 부끄러운 사람들,. = '내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나를 인하여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살면 산 재물이고 (롬12:1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재사로 드리라고 말씀) 죽으면 영광의 재물이 되고자 했던 결연한 믿음.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일반 성도들의 믿음처럼 "주를 위해서"라는 차원이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삶의 동기요, 힘이요 목적이요, 그의 생각이요, 이상이요,전부였다,-그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고, 사후 세계를 보장해 주지도 못한다. 석가모니와 어느 노파(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했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가 계신다. 무엇이 두려운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말자. 우리는 세상과 그리스도, 둘 다 소유할 수는 없다.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결국 우리가 세상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맺는다면 세상을 위해 살아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정한 소망은 그리스도 에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이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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