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복음을 전하려 오신 예수님 (눅4:31-44)

본문

지난 강해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받으시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바쁜 하루의 생활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바라옵기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명인의 하루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4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심(31-37) 2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심(38-39) 3 예수께서 각생병을 고쳐 주심(40-41)4 그리고 전도자 예수님(42-44)을 말씀드리겠습니다.
I.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심(31-37)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당신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시고,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 후 나사렛에서 갈릴리 가버나움에 내려 오셨습니다.(31) 갈릴리 호반에서 디베리아스가 대표적인 로마의 도시인 것처럼 가버나움은 대표적인 유대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나사렛 전도가 서론적이었다면 가버나움 전도는 본론이 되겠습니다. 이 가버나움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던 곳이요,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의 대부분을 이 가버나움에서 보내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은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사람들의 반응은 그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32) 여기 놀랐다는 말은 (they were amazed at his teaching)“정신을 잃었다”, “어안이 벙벙하다”, “넋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했습니다.(막1:22) 당시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치지 않고 까다로운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 전통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고 멍에가 되었습니다. 종교란 무거운 짐을 벗겨 주고 자유 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까다로운 율법이나 전통보다 양 떼들을 괴롭히고 있는 죄 문제와 삶과 죽음의 문제들을 권세 있는 말씀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런 이 권세 있는 말씀을 하시게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시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니다” 했습니다.(막1:24) 이 말은 더러운 귀신들이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보면 귀신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Evil Spirit라고 합니다. Evil Spirit는 더러운, 불결한, 순결하지 않은 것(UNCLEAN)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성령님(HOLY SPIRIT)은 HOLY SPIRIT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영입니다. 귀신은 독립된 인격(PERSON)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대화도 됩니다. 지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관해서도 잘 압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거룩한 자라는 것을 압니다. 귀신은 하나님도 압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도 압니다. 그래서 “때가 이르기 전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9) 또, 예수님이 자기들을 멸하러 오신 것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1요3:8) 요한 복음 17:3절에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했는데 이 귀신들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지만 인격적이 못되므로 순종을 못합니다. 알기는 아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못합니다. 주의 성령님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귀신들(EVIL SPIRIT)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시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귀신들은 사단에게 속한 악한 영들(EVIL SPIRIT)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가 하나님은 아들이요, 거룩한 자이심을 알았습니다. 또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멸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과 상대를 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했습니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란 말은 구약성경에서 전쟁을 배경으로 자주 나타나는 방어의 셩격을 띤 말입니다.(삿11:12, 삼하16;10, 황상17;18, 왕하9;18) 그러므로 예수님과 상관을 하려 하질 않습니다. 아예 상대를 않으려 합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나 악한 영들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예수를 거룩한 자로 알고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이 되심도 알지만 순종하려 들지 않습니다. 도리어 반항하고, 맞서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못되므로 순종을 못하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에 사로잡히고 악령에 잡힌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 들지 않습니다. 순종을 못하는 것이 귀신들린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들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때로는 거부 반응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만, 곧 순종합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10:27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양은 주님과 그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이므로 따르고 순종합니다. 성경에서 귀신을 말할 때마다 그 앞에 더러운(evil)을 넣습니다. 복음서 가운데 더러운 귀신(46번), 더러운 영(18번)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귀신은 더러운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인격을 가진 귀신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 더러운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더러운 생각을 하게 하고 더러운 짓을 하게 합니다. . 귀신들은 더러운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추잡한 일을 하게 합니다. 허영심과 이기심을 불어넣습니다. .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병도 갔다 줍니다. 성격적으로 볼 때 귀신들은 사단의 졸개들로서 항상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합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합니다. 이놈은 간교하기 때문에 사람을 속이고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사람처럼 예배라 보러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더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귀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귀신의 생각인지 알지 못하게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귀신에 들렸는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도 있고, 또 어렴풋이 알아도 자신이 귀신에 들린 사실은 시인하기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은 평소에는 멀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발짝을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두 배척자가 나옵니다. 1 하나는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시다는 것을 압니다. 아는 것 때문에 믿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2 다른 하나는 귀신들린 자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거룩한 자요, 심판의 주가 되심을 압니다. 알면서 이들은 믿거나 순종치 않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신뢰하거나 믿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정체를 빨리 알려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그것을 보고 빨리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데 순종심이 전혀 없거나, 말씀이 주어지는 대로 순종하려 들지 않고 반항하고, 피하고, 거부한다면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는 귀신들린 자와 다를 바 없으므로 예수님처럼 꾸짖어야 합니다. 이놈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더러운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시하고 받아 드리지 않고 꾸짖으면 떠납니다. 우리 나라 무속 신앙에서는 귀신을 어떻게 쫓아냅니까 무당을 불러 굿을 합니다. 무당이 귀신에게 빌고, 또 복채를 많이 주고 귀신을 노염을 달래서 나가 주시도록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나간 귀신은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보면 무당 푸닥거리하는 집을 보면 항상 푸닥거리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을 달래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 권세로서 명령을 하시고 꾸짖으십니다. 잠잠 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꾸짖으시니 귀신이 쫓겨 낫습니다.
그러므로 36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은 다 놀라서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시매 나가는 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더러운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의 권세의 말씀을 덧입는 길밖에 없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속에 숨어 있는 귀신의 정체를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2 그리고 불순종하고 더러움에 끌리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면 귀신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그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면 마귀나 귀신은 접근을 못합니다.
Ⅱ.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예수님(38-39) 일이 잘 되고, 형편이 풀리고 건강하다고 해서 다 축복은 아닙니다. 밭을 샀으니, 소를 샀으니, 장가들었으니(눅14:15-24)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떠났으니 복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불행입니다. 그러나 약해졌다고, 병들었다고, 가난해졌다고 다 저주받은 것이나 불행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요한 복음 9장에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 소경으로 난 것이 자기 죄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 부모의 죄오니이까 했을 때, 예수님은 그 부모 죄도 아니요, 자기 죄도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경된 것이 불행입니까 아닙니다. 더 없는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또 요한 복음 11장에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46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