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1:27-30)
본문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 싸움을 잘한다고 합니다. 흥분을 잘하고, 논리보다 지나치게 감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2) 속이는 것을 잘한다고 합니다.
거짓말은 아주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3) 예수님 믿는 것을 잘한다고 합니다.
사실상 믿는 확률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믿음의 열정은 한국 기독교인을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잘하는 것이 뒤엉킨 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소리도 들립니다.
'한국 사람은 예수님도 잘 믿지만 싸움도 잘한다'는 소리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잘 믿으면 싸움도 줄고, 거짓말도 줄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 구절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어떤 생활을 말할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1. 믿음과 생활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믿음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할렐루야가 충만하면 가정에서도 할렐루야가 충만해야 하고, 세상에서도 할렐루야가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장로 떼고, 집사 떼고 신앙생활 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2. 성도의 삶에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삶의 스타일의 변화, 인격의 변화, 성품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가 힘들다면 적어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은 있어야 합니다. 영국에서 존 웨슬리가 부흥회를 하고난 다음에는
그 지역에 술집 주인이 처음에는 환영하다가 나중에는 망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환영한 이유는 외상 술값을 청산했기 때문이고 나중에 망한 이유는 술집에 사람들이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무소도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3. 성도의 언어가 순화되는 것입니다.
말할 때 논리보다는 따뜻한 감정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얻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마귀야 물러가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남편은 절대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언어는 우리의 삶과 인격을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당연히 언어가 순화되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성도의 성도다운 태도는 언어생활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해서는 언어생활을 잘 다듬어야 합니다. 이처럼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 세 가지를 더 발견하게 됩니다.
4.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2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가보나 너희를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는 '사단'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위험한 줄 알지만 '자기'는 위험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히 세 가지를 버려야 한다.
그 세 가지란 '자기 욕심, 자기 열심, 자기 고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열정, 협력의 정신으로 채워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서는 참나무 같이 꼿꼿한 사람보다는 버드나무 같이 허리를 굽힐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5.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대적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초대교회 당시에는 도처에 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대적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하나님이 대적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6.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감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흔히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너무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그리스도를 참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깐의 고난은 당연히 있는 것이고, 고난을 감수하려는 자세까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축복이 변장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무조건 힘들어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싸움을 잘한다고 합니다. 흥분을 잘하고, 논리보다 지나치게 감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2) 속이는 것을 잘한다고 합니다.
거짓말은 아주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3) 예수님 믿는 것을 잘한다고 합니다.
사실상 믿는 확률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믿음의 열정은 한국 기독교인을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잘하는 것이 뒤엉킨 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소리도 들립니다.
'한국 사람은 예수님도 잘 믿지만 싸움도 잘한다'는 소리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잘 믿으면 싸움도 줄고, 거짓말도 줄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 구절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어떤 생활을 말할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1. 믿음과 생활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믿음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할렐루야가 충만하면 가정에서도 할렐루야가 충만해야 하고, 세상에서도 할렐루야가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장로 떼고, 집사 떼고 신앙생활 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2. 성도의 삶에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삶의 스타일의 변화, 인격의 변화, 성품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가 힘들다면 적어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은 있어야 합니다. 영국에서 존 웨슬리가 부흥회를 하고난 다음에는
그 지역에 술집 주인이 처음에는 환영하다가 나중에는 망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환영한 이유는 외상 술값을 청산했기 때문이고 나중에 망한 이유는 술집에 사람들이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무소도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3. 성도의 언어가 순화되는 것입니다.
말할 때 논리보다는 따뜻한 감정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얻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마귀야 물러가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남편은 절대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언어는 우리의 삶과 인격을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당연히 언어가 순화되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성도의 성도다운 태도는 언어생활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해서는 언어생활을 잘 다듬어야 합니다. 이처럼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 세 가지를 더 발견하게 됩니다.
4.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2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가보나 너희를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는 '사단'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위험한 줄 알지만 '자기'는 위험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히 세 가지를 버려야 한다.
그 세 가지란 '자기 욕심, 자기 열심, 자기 고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열정, 협력의 정신으로 채워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서는 참나무 같이 꼿꼿한 사람보다는 버드나무 같이 허리를 굽힐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5.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대적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초대교회 당시에는 도처에 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대적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하나님이 대적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6.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감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흔히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너무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그리스도를 참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깐의 고난은 당연히 있는 것이고, 고난을 감수하려는 자세까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축복이 변장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무조건 힘들어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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