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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말미 암은 자유인 (갈1:11-24)

본문

갈라디아서의 전체 주제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유가 되시는 그리스도 " 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리스도를 알았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된 이 참된 복음의 자유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갈라디아서 전체의 가장 중요한 관심입니다. 본문은 복음으로 자유를 얻은 바울이 자기의 삶을 고백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다른 복음을 증거하던 가짜 사도들, 소위 율법 주의자들에 의해서 바울이 받았던 도전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진리가 잘못되었다고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바울을 사도로 세우신 일이 없다고 하면서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바울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배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탄은 전달자를 공격하지 않고서는 멧세지를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고 있습니다. 말씀을 증거 하는 사람을 불신하게 되면 그가 전하는 말씀 그 자체 도 불신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여기에 사단이 멧센저를 공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무 엇 보다도 말씀을 증거 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 로 성도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멧센저가 흔들리게 되면 그가 전하는 말씀을 성도 가 받을 수 없고, 말씀을 받지 못하게 되면 성도의 신앙 생활 그 자체에 커다 란 혼란과 위기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 면 성도 개인의 신앙이나 삶 자체도 혼돈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탄의 공격의 화살은 그 당시에 말씀을 통해서 영향력 있게 사람들의 영혼 을 인도하고 또 성도들의 삶을 키우고 있었던 바울에게로 향했습니다. 여기에 바울 의 고독한 싸움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스스로 자기의 사도 적 권위를 옹호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변호를 위해서가 아 니 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전하는 영광스런 복음의 빛을 가리우지 않기 위해 서 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자기의 삶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잠시 증거 하기를 원합니다. 그 리 하여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복음으로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모습 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1:11-12)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 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 니 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바울은 먼저 자기의 멧세지의 신적 근원을 주장합니다. 즉, 바울의 멧세지가 바울의 생각이나 주관적인 철학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 라, 그것은 근 복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음 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이 복음의 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밝힙니다. 복음의 촛점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에는 교주가 없이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도들에게는 석가모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의 교훈이 더 중요합 니다. 유교도들에게는 공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가르침이 더 중요합니다. 교주가 있고 없고 가 그들에게는 별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론 그리스도의 교훈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고 핵심 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하고 그리스도의 인격에 우리의 사 활이 달려 있습니다. 교회당이나 교파나 목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독교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라는 한 인격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계시로"라는 것은 복음이 전달된 방법을 말합니다. 복음은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본래 "계시"라는 말의 의미는 " 뚜 껑을 열다"입니다.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되면, 그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 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계시란 말을 산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 이 나 받을 수 있는 어떤 특별하고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계시 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처럼, 계시란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알리 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복음이 인간의 사색이나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이 인간에 게 계시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율법 주의자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을 공격하고 있는 율법 주의자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을 공격하고 있는 율법 주의자들은 그 가르침을 언제나 그들의 전통에서 찾 으려고 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 모세는 이렇게 했다. 우리의 전통은 이렇다." 등으로 그들은 전통으로 모든 가르침을 일관했습니다. 물론 기독교에도 하나의 전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통은 귀한 것 입니다. 귀한 전통과 아름다운 미덕을 우리는 간수할 줄 아는 지혜도 있어야 합 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 둘 것은 아무것도 복음보다 더 중요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만약 우리들의 전통이 우리들의 제도가, 우리들의 헌장이, 우리들 의 규범이 복음의 진리를 막고 있다면 우리는 거침없이 그 모든 것을 뜯어버리지 않 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날부터 이렇게 해 왔으니까"하는 사고 때 문 에, 관습 때문에 성경이 어떻게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하는 복음을 보려고 하 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했습니다."라는 사실 앞에는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성경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만약 성경이 없다면 저마다 자기의 종교나 가르침을 하나씩 만들어 내도 그것을 객관 적 으로 선별할 수 있는 근거가 무너지고 맙니다. 기독교는 성경과 함께 섭니다. 그만큼 기독교의 모든 것은 바로 성경 그 자체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그가 어느날 성경을 보기 시 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가 성경에 있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사실 을 그는 단순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횃불을 당기기 시작한 것 입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교회의 모든 형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비추어 생각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사생활이, 우리의 모든 교제 가, 우리의 고 백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 가" 라는 질문을 우리는 언제나 이 말씀 앞에 돌아와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가 전하는 멧세지는 조상 때부터 받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발 견해 낸 것도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영광스러운 계시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의 멧세지는 복음입니까 복음이 없을 때 기독교도같이 소멸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 기가 전하고 있는 멧세지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탁하시고 계시를 통해서 허락 하 신, 그리스도가 초점인 바로 그 복음 자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울 의 간 증 (갈 1:13-17 ) '갈 1:13-17'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 자보다 유 대 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 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 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 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 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이 부분에서 바울은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과거에 복음과 그리 스 도 인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박해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는 그리스도 인이 되었고, 이제 전도하는 사람 이 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영광 스러운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간증입니다. 우리 나라 성도들에 게 "간증해 보십시오"하면 못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짧게 하는 것을 못하십 니다. 이력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간증이 아닙니다. 간증의 포인트는 '1그리스도를 만 나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2내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만났으며, 3그 리 스도를 만나고 내 삶 속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가' 이 세가지 입니다. 자기 간증을 부끄러워하면 그리스도 인이 아닙니다. 간증의 초점은 그리스도입 니다. 바울이 여기서 자기의 간증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 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 자보다 유 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서 교회를 핍박하고 전통에 대해서 다른 이보다 더욱 열 심이 있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르는 전통은 깡 통 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이지 전통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아직 구원받지 못한 바울의 비극적인 상태를 하나님은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 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바울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역사가 어떻 게 시작되었는가를 15 절은 말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구원의 계획은 어머니의 태, 아니 더가면 만세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건물 을 하나 짓는데도 설계도가 필요한데,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생명을 내보내시면서 하나님께서 계획이 없으셨겠습니까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스런 계획은 바울이 스스로 이성적인 생각 과 논리적 사고를 하기 이전부터 이미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그 사실만 강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그 사실이 참으로 사실 이라면, 그 다음에 따라 오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 하 신다는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기 대문에 어느날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그리 스 도를 믿는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바울을 구원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16절).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바울 속에 나타내셨다는 것이 바울의 간 증입니다. 15절부터의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의 출발 택정,이것이 내 구원의 출발입니다. 이 말은 곧 구원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된 것 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 기 뱃속에서 말한바도 그렇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욘 2:9).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구원은 출발된 것입니다. 거기에 택정 곧 선 택의 의미의 힘이 있습니다. 구원의 소명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하나의 위치에 우리는 서 있 지 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 로 은혜입니다. 은혜로 ! 이것이 구원의 대가입니다. 값없이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 게 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 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 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하나님은 구원을 값없이 주십니다. 그러나 이 값없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대단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흘리셨다는 이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 야 합니다. 그분이 대가를 다 지불하시고 우리를 은혜로, 값없이 구원하기를 원하 셨 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를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에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 은 고요히 혼자서 묵상하다가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 은 돌발적인 사고에 접하여 갑자기 주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방 법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구원의 소명,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 님은 우리를 소명하십니다. 구원의 역사 구원의 역사는 내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 도다." 이 찬송의 고백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 인 이 아니지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 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나를 구원하신 놀라우신 주님이 내 속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보 이지 않던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이렇게 말합 니다. "그분을 내 속에 나타내셨다 !" 주님이 내 속에 나타나는 그 순간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구원의 결과 내 속에 나타난 주님을 전파한다는 것이 구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구원의 주님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묻습니다. 전도하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지요. 그렇게 되면 전도가 구원의 조 건 이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전도를 하게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구원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해서 '구원의 서정'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정하시고, 은 혜 로 어느 날 불러 주시고, 그래서 내 속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고, 그 다음에 내 가 붙잡은 그리스도를 온 세계에 전하도록 하십니다. 이 구원의 위대한 사실 이 이루어진 사람 이라면 이 말씀에 가슴과 심장이 막 뛰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광스런 주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안에서 늘 숭리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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