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전9:1-27)
본문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고 복음의 열매를 통해 자신 의 사도됨과 그리스도인됨을 증명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창피해서 속장, 집사, 권사 못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를 하나님이 대학에 붙여 주시든지 아니면 제가 이 교회를 떠나든지 어떻 게 승부를 내야지 창피해서 예수 못 믿겠습니다.목사님, 저는 창피해서 권사 못하겠습니다. 우리 남편을 하나님이 승진을 시켜주시든지 아니면 제가 이 교회를 떠나든지 해야하지 창피 해서 교회 못다니겠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못들어간 것이, 남편이 승진 못한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도답게 살지 못한 것이 창피한 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하나님의 사도인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이렇 습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 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 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 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 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우리가 아무리 연약해져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약하게 된 것을 자신의 기쁨과 자랑이라고 고 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목표가 무엇입니까 내가 남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남보다 좀 낫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까 내 가 남다르게 기도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내가 신령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공부 안해도 다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헛된 자랑입니다. 자녀가 대학에 못가거나, 질병으로 앓거나 할 때, 주위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쉽 게 단정 짓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마치 신앙이 강한 것처럼 생각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기도 안해서 그렇지 뭐야.기도 안해서" 이것보다 교만하고 이것보다 상처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은 없습니다.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기고만장한 모습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은 이것입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 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 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 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이렇게 써 주시는 것, 그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불 러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장 미련했던 것, 부끄러운 사실들을 가지고 도 하나님이 자기를 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 의 하나님되심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자기를 불러 써 주신 것, 그래서 그 결과로 죽어가는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결과가 생기는 것, 이것이 그의 유일한 자랑입니다. 바울이 갖고 있는 그의 자랑, 그의 기쁨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께서 영광받으시고 주의 은혜가 드러나는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든지 오 해받아도 좋고 나는 얼마든지 모멸과 능력과 오해와 괄시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절대 아 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대부분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드렸는데 이것이 무슨 망 신살입니까"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은 개인적인 자존심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 사역이 얼마나 많이 방해를 받고 있는지를,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 애가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사람이 혹시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런 태도는 스스로의 잘못은 없어도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꺼내 놓은 자세와 분위기와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얼굴에 찬 기운이 돌거나 똑 소리나게 생긴 모습보다는 좀 순진하게 보이고 좀 어리숙한 모습, 세련되고 멋있고 화려한 모 습보다는 좀 수수하고 근검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가 사도 바울이 가졌던 태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몸에 거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얼마든지 약해지겠다는 자세인 것 입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 복음의 장애가 될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제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와 어떻게 이야기하다가 신자라른 것이 탄로 가 났습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한 말씀 물어 봅시다.예, 하시죠.예수믿는 사람 왜 그래요왜요" 한번은 어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넷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다음에는 차비 때문에 두 시간 동안이나 싸웠다는 것입니다.
2.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로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도로서 자신이 누 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고전9: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고전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 이 없겠느냐 (고전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 냐." 여기 본문에 보면 첫째, 먹고 마시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로부터 생활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권 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 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육적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 기간 동안 장막을 제작하는 육체적 인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복음 전하는 사역에만 할애할 권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굳이 천막을 만들 필요 가 없었습니다. 자신은 일하지 아니 할 권리, 즉 교회에서 녹(祿)을 받 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로 신명기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 지 아니하느냐 (고전9:9)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 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고전9:10)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또한 유대적 관습으로서 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 들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눈다는 사실을 들어 그 당연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민18:8)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인하여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영한 응식 으로 주노라 (민18:9)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은 네 것이라 그들 이 내게 드리는 모든 예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은 다 지 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신18: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 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신18:2) 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 여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신18:3) 제사장 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 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신18:4) 또 너의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너의 처음 깎은 양털 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이처럼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중요한 제사들을 통해 제물의 몫을 나 누어 받아 생활을 했었습니다. 번제를 통해서 동물의 가죽을,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서 고기 전부를, 소제를 통해서 대부분의 가루와 포도주 와 기름을, 화목제를 통해서 동물의 가슴과 오른 편 어깨를 몫으로 나 누어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열매, 벌 꿀 등 일곱가지의 처음 익은 열매는 제사장들의 것이었습니다. '테루 마'라고 해서 가장 좋은 농작물 수확의 50분의 1을 취할 권리를 가지 고 있었고 십일조 또한 레위인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배경이 되 어서 사도 바울은 교회로부터 당연히 녹(祿)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원조도 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원조를 거부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항상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보통 유대인 가정에서는 고기를 겨우 1주에 한번 정도밖에 먹지 못했는데 제사장들은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직업병에 걸려 고통당할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권리, 특권, 사치, 강한 욕심은 악명이 높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제사장들이 신앙을 빙 자하여 자기 살만 찌운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사 장들의 악업과 악평 때문에 교회로부터 어떤 원조도 거부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 일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 복음의 씨를 뿌린 전도자들이 영적 밭인 성도들로부터 물질적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예수님께서도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눅10:8) 어느 동 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마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두 번째, 베드로 등을 비롯하여 당시 사도들이 자신의 아내들과 더불 어 복음 사역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들어 바울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위하여 그러한 자유와 권 리를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물질축복을 여러분 자신을 위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으나 복음을 위해 그 권리와 자유 를 절제하며 희생하며, 때로는 포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복음 전도자의 영광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주어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하며 희생하며 포기하는 물질 생활을 "물질의 성화(聖化)"를 이룩한 삶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을 내는 사람들과 은사나 체험을 권 면하는 사람들이 종종 결례를 범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보통 결례를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어떤 신우회에서 한 분이 그 모임에 오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왔는 데 택시 운전사가 불교방송을 틀더라는 것입니다. 오다가 속상해서 "아 저씨 불교 믿으세요믿지는 않지만 즐겨 듣습니다.아저씨 그런 것은 왜 들으십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라고 말하고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영적 싸움에서 벌써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 앙이 옳다는 것을 말하거나 싸울 문제가 아니라 겸손과 자비, 사랑과 온유로 대하고 내가 지는 것같이 대해야 합니다. 마치 내가 그 사람에 게 빚진 사람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2:2) 내가 너희 중 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 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님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 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들의 영혼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지혜, 내 방법, 내 학력, 내 열심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 몸을 쳐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쳐 복종하는" 절제를 배워야 하고, 십자가에 죽 기까지 복종하는 신앙생활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남들이 예수를 믿을 려면 적어도 저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9:21) 율법 없는 자 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 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 고자 함이라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전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위치에 섰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지만 더 많은 사람을 복음으로 구원받게 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습니다.(19 절) 바울이 모든 사람의 종노릇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 이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정신, 십자가의 사랑에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 사람들을 섬기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기 까지 그 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인들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그의 제자된 우리들도 모든 사람들을 섬길 때에야만 그들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보여 주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종교, 문화의 패턴 들을 존중하는 것은, 그리고 유대인들의 관습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은 거기에 어떤 궁극적인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복음 전파 의 적응성을 얻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패턴과 관습을 인정 해야 그들을 복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적응성의 원 리를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원리이며, 성육신의 원리입니다. 선교사가 된 사람이 그가 선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의식주를 혐 오하고 그들처럼 살기를 싫어한다면 그는 선교사될 자격이 없는 사람 입니다. 선교 대상 지역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종교와 관습 등을 이해 하고 익혀야만 그들에게 복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서양 선교사들 가운데 한국인의 옷을 입고 한국말을 하며 한국 인의 음식을 먹기를 싫어하고 선교지에서 별장 짓고 외제차 몰고 다니 며 한국말을 배우기는커녕 통역자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 서양음식만 먹고 다니던 사람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을 멸시하고 낮 게 보며 마치 군주처럼 그들을 종 부리듯 하기를 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적어도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자신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적응시킨 것은 결국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아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낮고 천한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 타나셨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빌 2:7-8) 바로 이것이 성육신의 원리, 사랑의 원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고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정신이 없으면 복음 전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치 경기하는 자처 럼 자기를 쳐 복종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희생적인 절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복음을 전한 후에 버림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 라….(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경기한다는 사람이 절제하지도 못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 고 싶은 것 다 먹을 때 그는 훌륭한 경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경 기자는 경기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달리거나 적을 보지도 않고 무작정 공중을 치는 권투선수도 아닌 것입니다.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성도는 자신의 삶과 복음 전파의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만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조 코치로서 벨라 카롤리가 있습니다. 그는 루 마니아의 체조 코치로 나디아 코마네치를 길러낸 사람입니다. 그는 미 국으로 망명하여 휴스턴에서 미국의 체조 선수 300명을 길러 냈습니다. 그는 선수들을 연습시킬 때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합니다.
첫째는 개인적 평안을 포기하고 코치의 훈련 방향에 순종할 것,
둘째는 생활의 우선순 위 중 체조를 1위에 둘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 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체조에 헌신할 것 등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평안을 포기 하고 자기 희생적인 절제 생활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삶의 우선 순 위를 항상 복음 전파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훌륭한 경기자,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성결하게 보존해야만 복음을 전한 후에 버림받지 않 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는 복음을 위하여 태어났고 복음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며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은혜와 은사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은 계속해서 증언합니다. "(롬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으며 여러분의 존재 가치도 복음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 주어진 모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 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우리가 아무리 연약해져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약하게 된 것을 자신의 기쁨과 자랑이라고 고 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목표가 무엇입니까 내가 남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남보다 좀 낫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까 내 가 남다르게 기도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내가 신령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공부 안해도 다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헛된 자랑입니다. 자녀가 대학에 못가거나, 질병으로 앓거나 할 때, 주위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쉽 게 단정 짓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마치 신앙이 강한 것처럼 생각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기도 안해서 그렇지 뭐야.기도 안해서" 이것보다 교만하고 이것보다 상처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은 없습니다.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기고만장한 모습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은 이것입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 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 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 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이렇게 써 주시는 것, 그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불 러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장 미련했던 것, 부끄러운 사실들을 가지고 도 하나님이 자기를 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 의 하나님되심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자기를 불러 써 주신 것, 그래서 그 결과로 죽어가는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결과가 생기는 것, 이것이 그의 유일한 자랑입니다. 바울이 갖고 있는 그의 자랑, 그의 기쁨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께서 영광받으시고 주의 은혜가 드러나는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든지 오 해받아도 좋고 나는 얼마든지 모멸과 능력과 오해와 괄시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절대 아 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대부분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드렸는데 이것이 무슨 망 신살입니까"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은 개인적인 자존심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 사역이 얼마나 많이 방해를 받고 있는지를,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 애가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사람이 혹시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런 태도는 스스로의 잘못은 없어도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꺼내 놓은 자세와 분위기와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얼굴에 찬 기운이 돌거나 똑 소리나게 생긴 모습보다는 좀 순진하게 보이고 좀 어리숙한 모습, 세련되고 멋있고 화려한 모 습보다는 좀 수수하고 근검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가 사도 바울이 가졌던 태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몸에 거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얼마든지 약해지겠다는 자세인 것 입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 복음의 장애가 될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제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와 어떻게 이야기하다가 신자라른 것이 탄로 가 났습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한 말씀 물어 봅시다.예, 하시죠.예수믿는 사람 왜 그래요왜요" 한번은 어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넷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다음에는 차비 때문에 두 시간 동안이나 싸웠다는 것입니다.
2.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로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도로서 자신이 누 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고전9: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고전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 이 없겠느냐 (고전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 냐." 여기 본문에 보면 첫째, 먹고 마시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로부터 생활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권 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 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육적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 기간 동안 장막을 제작하는 육체적 인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복음 전하는 사역에만 할애할 권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굳이 천막을 만들 필요 가 없었습니다. 자신은 일하지 아니 할 권리, 즉 교회에서 녹(祿)을 받 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로 신명기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 지 아니하느냐 (고전9:9)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 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고전9:10)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또한 유대적 관습으로서 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 들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눈다는 사실을 들어 그 당연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민18:8)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인하여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영한 응식 으로 주노라 (민18:9)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은 네 것이라 그들 이 내게 드리는 모든 예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은 다 지 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신18: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 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신18:2) 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 여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신18:3) 제사장 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 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신18:4) 또 너의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너의 처음 깎은 양털 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이처럼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중요한 제사들을 통해 제물의 몫을 나 누어 받아 생활을 했었습니다. 번제를 통해서 동물의 가죽을,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서 고기 전부를, 소제를 통해서 대부분의 가루와 포도주 와 기름을, 화목제를 통해서 동물의 가슴과 오른 편 어깨를 몫으로 나 누어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열매, 벌 꿀 등 일곱가지의 처음 익은 열매는 제사장들의 것이었습니다. '테루 마'라고 해서 가장 좋은 농작물 수확의 50분의 1을 취할 권리를 가지 고 있었고 십일조 또한 레위인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배경이 되 어서 사도 바울은 교회로부터 당연히 녹(祿)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원조도 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원조를 거부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항상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보통 유대인 가정에서는 고기를 겨우 1주에 한번 정도밖에 먹지 못했는데 제사장들은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직업병에 걸려 고통당할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권리, 특권, 사치, 강한 욕심은 악명이 높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제사장들이 신앙을 빙 자하여 자기 살만 찌운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사 장들의 악업과 악평 때문에 교회로부터 어떤 원조도 거부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 일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 복음의 씨를 뿌린 전도자들이 영적 밭인 성도들로부터 물질적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예수님께서도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눅10:8) 어느 동 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마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두 번째, 베드로 등을 비롯하여 당시 사도들이 자신의 아내들과 더불 어 복음 사역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들어 바울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위하여 그러한 자유와 권 리를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물질축복을 여러분 자신을 위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으나 복음을 위해 그 권리와 자유 를 절제하며 희생하며, 때로는 포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복음 전도자의 영광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주어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하며 희생하며 포기하는 물질 생활을 "물질의 성화(聖化)"를 이룩한 삶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을 내는 사람들과 은사나 체험을 권 면하는 사람들이 종종 결례를 범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보통 결례를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어떤 신우회에서 한 분이 그 모임에 오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왔는 데 택시 운전사가 불교방송을 틀더라는 것입니다. 오다가 속상해서 "아 저씨 불교 믿으세요믿지는 않지만 즐겨 듣습니다.아저씨 그런 것은 왜 들으십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라고 말하고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영적 싸움에서 벌써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 앙이 옳다는 것을 말하거나 싸울 문제가 아니라 겸손과 자비, 사랑과 온유로 대하고 내가 지는 것같이 대해야 합니다. 마치 내가 그 사람에 게 빚진 사람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2:2) 내가 너희 중 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 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님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 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들의 영혼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 지혜, 내 방법, 내 학력, 내 열심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 몸을 쳐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쳐 복종하는" 절제를 배워야 하고, 십자가에 죽 기까지 복종하는 신앙생활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남들이 예수를 믿을 려면 적어도 저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9:21) 율법 없는 자 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 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 고자 함이라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전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위치에 섰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지만 더 많은 사람을 복음으로 구원받게 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습니다.(19 절) 바울이 모든 사람의 종노릇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 이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정신, 십자가의 사랑에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 사람들을 섬기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기 까지 그 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인들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그의 제자된 우리들도 모든 사람들을 섬길 때에야만 그들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보여 주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종교, 문화의 패턴 들을 존중하는 것은, 그리고 유대인들의 관습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은 거기에 어떤 궁극적인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복음 전파 의 적응성을 얻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패턴과 관습을 인정 해야 그들을 복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적응성의 원 리를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원리이며, 성육신의 원리입니다. 선교사가 된 사람이 그가 선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의식주를 혐 오하고 그들처럼 살기를 싫어한다면 그는 선교사될 자격이 없는 사람 입니다. 선교 대상 지역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종교와 관습 등을 이해 하고 익혀야만 그들에게 복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서양 선교사들 가운데 한국인의 옷을 입고 한국말을 하며 한국 인의 음식을 먹기를 싫어하고 선교지에서 별장 짓고 외제차 몰고 다니 며 한국말을 배우기는커녕 통역자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 서양음식만 먹고 다니던 사람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을 멸시하고 낮 게 보며 마치 군주처럼 그들을 종 부리듯 하기를 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적어도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이 자신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적응시킨 것은 결국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아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낮고 천한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 타나셨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빌 2:7-8) 바로 이것이 성육신의 원리, 사랑의 원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고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정신이 없으면 복음 전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치 경기하는 자처 럼 자기를 쳐 복종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희생적인 절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복음을 전한 후에 버림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 라….(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경기한다는 사람이 절제하지도 못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 고 싶은 것 다 먹을 때 그는 훌륭한 경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경 기자는 경기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달리거나 적을 보지도 않고 무작정 공중을 치는 권투선수도 아닌 것입니다.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성도는 자신의 삶과 복음 전파의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만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조 코치로서 벨라 카롤리가 있습니다. 그는 루 마니아의 체조 코치로 나디아 코마네치를 길러낸 사람입니다. 그는 미 국으로 망명하여 휴스턴에서 미국의 체조 선수 300명을 길러 냈습니다. 그는 선수들을 연습시킬 때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합니다.
첫째는 개인적 평안을 포기하고 코치의 훈련 방향에 순종할 것,
둘째는 생활의 우선순 위 중 체조를 1위에 둘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 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체조에 헌신할 것 등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평안을 포기 하고 자기 희생적인 절제 생활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삶의 우선 순 위를 항상 복음 전파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훌륭한 경기자,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성결하게 보존해야만 복음을 전한 후에 버림받지 않 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는 복음을 위하여 태어났고 복음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며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은혜와 은사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은 계속해서 증언합니다. "(롬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으며 여러분의 존재 가치도 복음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 주어진 모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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