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두렙돈 (눅21:1-4)
본문
오늘 본문의 내용은 참 아름다운 장면이고 간단한 사건이 우리들에게는 아주 큰 뜨거운 격동을 주는 모습입니다. 오늘 사건에서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작고 약하고 가난한 자를 향하신 주님의 그 인자하심이 아주 잘 나타나 있고, 또 하나는 그와 대조적인 면인데 우리의 마음을 떨리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엄숙한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 마음은 항상 두 가지 마음이 있어요. 은혜와 진리 또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 끝없는 사랑과 엄한 심판 이렇게 대조적인 두마음이 있습니다. 시편 89편 14절에 "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에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또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 사실 우리들도 부모로서 사랑하는 자녀를 대할 때 이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한없는 긍휼, 인자함으로 자녀를 대하지만 또한편 아주 엄하게 대하는 두 가지 뜨겁고 찬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사건은 이러한 두 가지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두 모습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두 렙돈을 바친 가난한 과부를 지켜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그 한없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이 아주 철철 흘러 넘칩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바쳤다 " 그러면서 " 이 과부는 자기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바쳤다 " 하시는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긍휼이 넘치는 그런 모습입니다. "두 렙돈" 이라는 화폐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가 렙돈이라는 돈은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그리고 두 렙돈은 헌금할 수 있는 최저의 액수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규정이 두 렙돈 이상 헌금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렙돈은 우리 나라 화폐로 계산해 보면 한 데나리온의 128분의 1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 노동자 하루 일당이 5만원이라면 한 렙돈은 약 400원 됩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했는데 800원 입니다. 이런 작은 액수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고 "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바쳤다" 이렇게 알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칭찬하고 계십니다. 이 황금만능주의, 물량 주의 시대에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비록 바치는 과부에게는 생활비 정도였지만은 이런 작은 액수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이런 과부 천명이 이 두 렙돈을 마친들 80만원밖에 안됩니다. 때문에 참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교회에서도 이런 작은 헌금은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눈에 안들어와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까지도 "돈이 있어야 예수 믿겠더라" 그런 말을 합니다. 왜요 가난하면 교회에서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렙돈의 작은 헌금을 진심으로 뜨겁게 "생활비 전부를 바쳤다" 안타까워하시면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바쳤다" 인정해 주시고, 귀히 여겨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이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3절에 보면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4절에 " 이 과부는 어려운 살림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 하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무시 받고 흔적도 없는 이런 가난한 과부,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은 인정해 주시고, 알아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이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제가 오늘까지 버티고 살 수 있는 이유가 사람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내 형편을 아신다. 누가 내 속을 알겠습니까 누가 내 은밀한 사정을 알겠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아시는구나! 그리고 아실 뿐 아니라 그때그때 마다 위로해 주시고, 세워 주시고, 힘 주십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볼 때 마음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담임 목사로써 여러분을 몰라요.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떤 눈물이 있는지 지금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참 부끄럽고 죄송한 말이지만은 얼굴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름은 몰라요. 그러니까 어느 분이 "목사님! 우리 교회가 조그만 했을 때가 참 좋았어요. " 그래요. 그때는 제가 어느 성도 가정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참 마음이 허전하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담임 목사님이 집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시고 그러면 사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위로가 되고 그런 것인데 어느 집사님은 저에게 그런 말을 해요. "목사님! 목사님 얼굴 5년만에 이렇게 마주 앉아 뵙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이 얼마나 마음이 외로우실까 때로는 무척 섭섭하시겠구나!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저를 얼마나 아시겠습니까 모른단 말이지요. 그러니 이 목사의 심정과 은밀한 사정 아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니 저도 그 예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삽니다. 의지할 때가 없으니까! 때로는 외로워서 못 견디겠어요. 마음이 아파도 목사가 어디다 이야기하겠습니까 누구 붙잡고 울고 싶어도 누굴 붙잡고 울겠습니까 집에서 제 안 사람 붙잡고 울겠습니까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예수님을 꽉 붙잡고 의지합니다. 마찬가지예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은 이런 가난한 자, 이런 과부, 이런 작은 자들을 예수님은 살펴 주시고 품어 주시는 분이시니까 "나 같이 가난한 자를 알겠나! 나같이 약하고 이름도 없는 자를 하나님이 알아주시겠나! 그러지 마시고 주님만을 붙잡고 나아가시기를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특별히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이런 예수님을 꽉 의지하고 살았어요. 그것이 제 힘이었고, 삶의 버팀 목이라고 할까요! 그랬어요. 마찬가지에요. 성도 여러분! 목사가 몰라주고 누가 몰라주더라도 괜찮아요. 사람 사는 사회이니까 예수님은 외로우실 때 또 마음이 아플 때, 괴로울 때, 때로는 부끄러울수록 더 꽉 붙잡고 사실 때에 반드시 우리 예수님이 성도 여러분을 세워 주실 것입니다. 강하게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절대 물러가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시고 우리의 사는 길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셔서 승리하시고 복되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이 가난한 과부의 그 마음을 들여다 보라는 것입니다. 바치는 헌금의 액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바친 1000원도 못되는 800원 금액을 보시는 게 아니고 이 두 렙돈을 바치는 과부의 중심,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비록 이 과부가 두 렙돈밖에 못 바쳤지만 이 두 렙돈을 바치는 과부의 마음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자기 가진 것 전부를 바쳤다 " 드리는 헌금 자체는 얼마안되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소중히 보시고 기뻐하시고 안타깝게 여기신 것은 이 과부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들이 이 과부와 나를 나란히 놓고 볼 때 가진 것으로 비교하겠습니까 나는 과부보다 더 부자지요. 과부가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가진 재물로 보나, 내가 가진 지식으로 보나, 세상의 지위로 보나 이 가난한 과부와 비할 바가 못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에서, 하나님을 향한 중심에서 그것을 내 놓고 볼 때 이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과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내 마음은 어떤가요 바로 예수님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장면을 행하셨고 이것을 일부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1절에 보면 "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왜 이 과부는 자기 가진 것을 다 바쳤을까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이 부분에서 두 가지를 우리가 교훈을 받습니다.
(1).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나는 이 과부와 비할 때 나는 뭐냐 분명히 나는 이 과부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과부보다 가진 것 많고, 가족이 있어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이 가난한 과부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가 하면 가난한 과부가 그러는 거예요. " 손 목사님! 나처럼 하나님 섬겨 봤어요 나처럼 하나님 섬기는 마음이 있어요 나 비록 가난한 과부지만 나의 하나님께 모든 것 아낌없이 쏟아 부어서 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면 손 목사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각자 각자가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어떻게 섬기는가 바로 그 부분이 우리를 찌릅니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요. 누구 만나러 다니고 산에도 잘만 가던데 하나님 앞에서는 시간이 없다. 그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부스러기 같은 시간이 있으면 그때는 하나님께 바치고 다른 데는 시간을 쓰면서도 시간이 없다. 당신의 하나님은 그 정도밖에 못되는 하나님이냐 얼마나 못났으면 얼마나 초라한 하나님이면 내가 부스러기를 바치는 얼마나 볼품없는 하나님이냐는 겁니다. 형편없는 하나님을 나는 모시고 대접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 하나님이 나한테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내가 남은 것 그것이라도 감지덕지 얻어먹는 하나님이 나의 영혼과 나의 삶속에서 위대한 일을 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각자가 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과부하고 비할 때 감히 그래도 조금 밀리지 않는게 하나 있어요.
왜냐하면 " 자매님! 나도요 자매님 같이 못했지만 내 하나님을 정말로 마음을 다해서 정말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 왔습니다. 그것이 내 생명이었습니다. 나 가진 것 없었고, 배운 것 별로 없었고, 못난 사람이지만 그거 한 가지가 나의 생명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늘 여기 온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나 하나님 잘 섬기고 싶어요. 정말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닌까! 그렇게 내 하나님을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높여 드릴 때에 그 하나님도 내 안에 위대한 일을 행해 주셨습니다. " 이것이 또 우리를 다시 한번 격동시키게 합니다.
왜냐하면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높은 지식 없으나 나 뛰어난 재능 없으나 못난 사람이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이 과부처럼 나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이 가난한 과부의 섬김, 이 가난한 과부의 중심을 주님은 뜨겁게 받으셨다. 그처럼 " 아 나도 길이 있구나! 많이 가져야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과부처럼 해도 되는구나!" 그럼 나도 할 수 있잖아요 "이것이 나의 소망이구나!" 나도 한 번 그렇게 가진 것 없다고 서러워하지 말고, 못 배웠다고 물러가지 말고, 부끄럽다고 숨지 말고 나도 이 과부처럼 마음으로 하는 거야 못하겠냐 정성으로 하는 거야 못하겠냐 또 하나님은 그것을 더 받으시는 것인데. 이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이 다시 한번 뜨겁게 불이 붙게 되시길 원합니다.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이 뭡니까 이 어려운 세상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다른 데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내가 이왕 믿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이상은 이 위대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정말 힘껏 섬겨 봐야 겠구나! 지금까지 부스러기 드렸던 것 부끄럽구나! 그래서 내가 이 모양이구나! 이것이 문제였구나!" 어느 가정에 아들이 둘인데 그 엄마가 밥을 담아 주는 것이 조금 달랐대요. 한 아들은 밥이 수북히 올라오고 한 아들은 표는 안 나지만 수북히 안 올라와요. 그걸 아무도 몰라요! 그 밥을 담아 준 엄마만 알아요. 그리고 그 밥그릇을 받아먹는 두 아들이 알아요. 차이가 있구나! 왜 아들 둘 있는데 하나는 이복 자식이에요. 그러니까 엄마가 밥을 좀 깎아요. 그 얼마나 서러운 밥입니까 그 얼마나 찬밥입니까 "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을 어떻게 했나 " 살아 생전에 제 아버님이 그랬다고요. "아들아! 밥 조금만 가져와 왜 그러세요" 밥을 먹으면 누우신 체로 일을 보시니까 " 네가 고생하잖아 ! 냄새나고 그러니 밥을 조금만 가져오너라 한 숟가락만." 진짜 한 숟가락 갔다 드렸다고요. 그게 어찌 가슴이 아픈지 떠나신 다음에. 설령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도 수북히 갔다 드렸을 것인데. 사실 또 일 보신 것이 싫었어요. 내가 그걸 다 해야 되니까 나의 하나님을 오늘까지 내가 어떻게 섬겼나! 가난한 과부가 우리를 무척 울게 만듭니다. 우리를 무척 부끄럽게 만듭니다. 가난해서 부끄러운것이 아니라 못 배워서 부끄러운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마음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이 과부가 말합니다. "다른 것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없는 것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섬기는데서 일어서세요. 길이 있습니다. 우리 가난하니까 더 열심히 하나님 섬깁시다. 그것이라도 일등 하세요. 다른 것 못하니까 나 혼자 살고 있으니 혼자 산다고 하나님이 못 섬깁니까 더 섬기는 거지! 하나님 섬기는데 우리 한 번 일등 해봅시다. "하고 말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그렇게 삽시다.
1. 두 렙돈을 바친 가난한 과부를 지켜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그 한없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이 아주 철철 흘러 넘칩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바쳤다 " 그러면서 " 이 과부는 자기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바쳤다 " 하시는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긍휼이 넘치는 그런 모습입니다. "두 렙돈" 이라는 화폐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가 렙돈이라는 돈은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그리고 두 렙돈은 헌금할 수 있는 최저의 액수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규정이 두 렙돈 이상 헌금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렙돈은 우리 나라 화폐로 계산해 보면 한 데나리온의 128분의 1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 노동자 하루 일당이 5만원이라면 한 렙돈은 약 400원 됩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했는데 800원 입니다. 이런 작은 액수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고 "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바쳤다" 이렇게 알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칭찬하고 계십니다. 이 황금만능주의, 물량 주의 시대에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비록 바치는 과부에게는 생활비 정도였지만은 이런 작은 액수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이런 과부 천명이 이 두 렙돈을 마친들 80만원밖에 안됩니다. 때문에 참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교회에서도 이런 작은 헌금은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눈에 안들어와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까지도 "돈이 있어야 예수 믿겠더라" 그런 말을 합니다. 왜요 가난하면 교회에서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렙돈의 작은 헌금을 진심으로 뜨겁게 "생활비 전부를 바쳤다" 안타까워하시면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바쳤다" 인정해 주시고, 귀히 여겨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이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3절에 보면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4절에 " 이 과부는 어려운 살림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 하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무시 받고 흔적도 없는 이런 가난한 과부,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은 인정해 주시고, 알아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이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제가 오늘까지 버티고 살 수 있는 이유가 사람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내 형편을 아신다. 누가 내 속을 알겠습니까 누가 내 은밀한 사정을 알겠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아시는구나! 그리고 아실 뿐 아니라 그때그때 마다 위로해 주시고, 세워 주시고, 힘 주십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볼 때 마음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담임 목사로써 여러분을 몰라요.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떤 눈물이 있는지 지금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참 부끄럽고 죄송한 말이지만은 얼굴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름은 몰라요. 그러니까 어느 분이 "목사님! 우리 교회가 조그만 했을 때가 참 좋았어요. " 그래요. 그때는 제가 어느 성도 가정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참 마음이 허전하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담임 목사님이 집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시고 그러면 사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위로가 되고 그런 것인데 어느 집사님은 저에게 그런 말을 해요. "목사님! 목사님 얼굴 5년만에 이렇게 마주 앉아 뵙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이 얼마나 마음이 외로우실까 때로는 무척 섭섭하시겠구나!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저를 얼마나 아시겠습니까 모른단 말이지요. 그러니 이 목사의 심정과 은밀한 사정 아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니 저도 그 예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삽니다. 의지할 때가 없으니까! 때로는 외로워서 못 견디겠어요. 마음이 아파도 목사가 어디다 이야기하겠습니까 누구 붙잡고 울고 싶어도 누굴 붙잡고 울겠습니까 집에서 제 안 사람 붙잡고 울겠습니까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예수님을 꽉 붙잡고 의지합니다. 마찬가지예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은 이런 가난한 자, 이런 과부, 이런 작은 자들을 예수님은 살펴 주시고 품어 주시는 분이시니까 "나 같이 가난한 자를 알겠나! 나같이 약하고 이름도 없는 자를 하나님이 알아주시겠나! 그러지 마시고 주님만을 붙잡고 나아가시기를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특별히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이런 예수님을 꽉 의지하고 살았어요. 그것이 제 힘이었고, 삶의 버팀 목이라고 할까요! 그랬어요. 마찬가지에요. 성도 여러분! 목사가 몰라주고 누가 몰라주더라도 괜찮아요. 사람 사는 사회이니까 예수님은 외로우실 때 또 마음이 아플 때, 괴로울 때, 때로는 부끄러울수록 더 꽉 붙잡고 사실 때에 반드시 우리 예수님이 성도 여러분을 세워 주실 것입니다. 강하게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절대 물러가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시고 우리의 사는 길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셔서 승리하시고 복되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 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이 가난한 과부의 그 마음을 들여다 보라는 것입니다. 바치는 헌금의 액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바친 1000원도 못되는 800원 금액을 보시는 게 아니고 이 두 렙돈을 바치는 과부의 중심,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비록 이 과부가 두 렙돈밖에 못 바쳤지만 이 두 렙돈을 바치는 과부의 마음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자기 가진 것 전부를 바쳤다 " 드리는 헌금 자체는 얼마안되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소중히 보시고 기뻐하시고 안타깝게 여기신 것은 이 과부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들이 이 과부와 나를 나란히 놓고 볼 때 가진 것으로 비교하겠습니까 나는 과부보다 더 부자지요. 과부가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가진 재물로 보나, 내가 가진 지식으로 보나, 세상의 지위로 보나 이 가난한 과부와 비할 바가 못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에서, 하나님을 향한 중심에서 그것을 내 놓고 볼 때 이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과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내 마음은 어떤가요 바로 예수님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장면을 행하셨고 이것을 일부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1절에 보면 "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왜 이 과부는 자기 가진 것을 다 바쳤을까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이 부분에서 두 가지를 우리가 교훈을 받습니다.
(1).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나는 이 과부와 비할 때 나는 뭐냐 분명히 나는 이 과부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과부보다 가진 것 많고, 가족이 있어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이 가난한 과부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가 하면 가난한 과부가 그러는 거예요. " 손 목사님! 나처럼 하나님 섬겨 봤어요 나처럼 하나님 섬기는 마음이 있어요 나 비록 가난한 과부지만 나의 하나님께 모든 것 아낌없이 쏟아 부어서 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면 손 목사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각자 각자가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어떻게 섬기는가 바로 그 부분이 우리를 찌릅니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요. 누구 만나러 다니고 산에도 잘만 가던데 하나님 앞에서는 시간이 없다. 그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부스러기 같은 시간이 있으면 그때는 하나님께 바치고 다른 데는 시간을 쓰면서도 시간이 없다. 당신의 하나님은 그 정도밖에 못되는 하나님이냐 얼마나 못났으면 얼마나 초라한 하나님이면 내가 부스러기를 바치는 얼마나 볼품없는 하나님이냐는 겁니다. 형편없는 하나님을 나는 모시고 대접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런 하나님이 나한테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내가 남은 것 그것이라도 감지덕지 얻어먹는 하나님이 나의 영혼과 나의 삶속에서 위대한 일을 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각자가 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과부하고 비할 때 감히 그래도 조금 밀리지 않는게 하나 있어요.
왜냐하면 " 자매님! 나도요 자매님 같이 못했지만 내 하나님을 정말로 마음을 다해서 정말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 왔습니다. 그것이 내 생명이었습니다. 나 가진 것 없었고, 배운 것 별로 없었고, 못난 사람이지만 그거 한 가지가 나의 생명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늘 여기 온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나 하나님 잘 섬기고 싶어요. 정말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닌까! 그렇게 내 하나님을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높여 드릴 때에 그 하나님도 내 안에 위대한 일을 행해 주셨습니다. " 이것이 또 우리를 다시 한번 격동시키게 합니다.
왜냐하면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높은 지식 없으나 나 뛰어난 재능 없으나 못난 사람이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이 과부처럼 나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이 가난한 과부의 섬김, 이 가난한 과부의 중심을 주님은 뜨겁게 받으셨다. 그처럼 " 아 나도 길이 있구나! 많이 가져야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과부처럼 해도 되는구나!" 그럼 나도 할 수 있잖아요 "이것이 나의 소망이구나!" 나도 한 번 그렇게 가진 것 없다고 서러워하지 말고, 못 배웠다고 물러가지 말고, 부끄럽다고 숨지 말고 나도 이 과부처럼 마음으로 하는 거야 못하겠냐 정성으로 하는 거야 못하겠냐 또 하나님은 그것을 더 받으시는 것인데. 이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이 다시 한번 뜨겁게 불이 붙게 되시길 원합니다.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이 뭡니까 이 어려운 세상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다른 데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내가 이왕 믿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이상은 이 위대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정말 힘껏 섬겨 봐야 겠구나! 지금까지 부스러기 드렸던 것 부끄럽구나! 그래서 내가 이 모양이구나! 이것이 문제였구나!" 어느 가정에 아들이 둘인데 그 엄마가 밥을 담아 주는 것이 조금 달랐대요. 한 아들은 밥이 수북히 올라오고 한 아들은 표는 안 나지만 수북히 안 올라와요. 그걸 아무도 몰라요! 그 밥을 담아 준 엄마만 알아요. 그리고 그 밥그릇을 받아먹는 두 아들이 알아요. 차이가 있구나! 왜 아들 둘 있는데 하나는 이복 자식이에요. 그러니까 엄마가 밥을 좀 깎아요. 그 얼마나 서러운 밥입니까 그 얼마나 찬밥입니까 "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을 어떻게 했나 " 살아 생전에 제 아버님이 그랬다고요. "아들아! 밥 조금만 가져와 왜 그러세요" 밥을 먹으면 누우신 체로 일을 보시니까 " 네가 고생하잖아 ! 냄새나고 그러니 밥을 조금만 가져오너라 한 숟가락만." 진짜 한 숟가락 갔다 드렸다고요. 그게 어찌 가슴이 아픈지 떠나신 다음에. 설령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도 수북히 갔다 드렸을 것인데. 사실 또 일 보신 것이 싫었어요. 내가 그걸 다 해야 되니까 나의 하나님을 오늘까지 내가 어떻게 섬겼나! 가난한 과부가 우리를 무척 울게 만듭니다. 우리를 무척 부끄럽게 만듭니다. 가난해서 부끄러운것이 아니라 못 배워서 부끄러운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마음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이 과부가 말합니다. "다른 것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없는 것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섬기는데서 일어서세요. 길이 있습니다. 우리 가난하니까 더 열심히 하나님 섬깁시다. 그것이라도 일등 하세요. 다른 것 못하니까 나 혼자 살고 있으니 혼자 산다고 하나님이 못 섬깁니까 더 섬기는 거지! 하나님 섬기는데 우리 한 번 일등 해봅시다. "하고 말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그렇게 삽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