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복된 삶 (시1:1-6)

본문

당신은 범사에 형통합니까 요셉의 형통을 배웁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세기 39:2-3)고 했습니다. 형통(亨通)이란 한자어로 형통할 형(亨), 통할 통(通)입니다. 그 뜻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앞길이 열리는 것 을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 계시에 나타난 뜻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요셉의 육신적인 삶은 순탄하지를 못했습니다. 참된 형통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심 에 있습니다. 환경을 무론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에 형통함이 있습니다. 형들에 미움을 받든지,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가든지, 중상 모략으로 감옥살이를 하든지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인생을 복되게 삽시다. 복이란 무엇인가 찬송가1장에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입니다. 찬송가 28장에서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고 했습니다.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강림하여 오신 예수님이 복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심이 복입니다(마태복음 20:28).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시편은 성경중에 성경입니다. 성경 육십육권이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여러 시대에 걸쳐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수많은 분량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주로 시와 찬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편의 시작이 복된 삶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된 사람이 누리는 형통한 삶의 비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도 이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복 있는 사람은 부정한 것을 멀리합니다. 읽을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악인의 꾀를 멀리합시다. 여기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항상 우리에게 불의한 생각으로 우리를 미혹해 옵니다. 잠언에서 이르기를 “내 아들아 악한 자가 꾈지라도 좇지 말라”(잠언 1:10),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찌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잠언 4:14-15)고 했습니다. 하와는 뱀의 미혹으로 사단의 악한 꾀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맙시다. 길이란 목적지를 향한 방향입니다.
그러므로 길에 들어서면 목적지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죄인의 길에 들어서면 결국 멸망의 문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은 길은 들어서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민수기 22:12)고 했습니다. 발람선지가 모압왕 발락의 말을 들어 동행하다가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맙시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린도전서 15:33),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베드로후서 2:8)고 했습니다. 경건치 못한 자리에 않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그 하나님을 욕되게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것을 멀리합시다. 본문 1절에 “아니”라는 말이 세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것은 부정한 것을 용납치 않는 강한 부정의 삶입니다.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를 피하는 구별된 거룩함을 보게 됩니다.
둘째:복 있는 사람은 신령한 것을 좋아합니다. 읽을말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2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시다. 성경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입니다. 이 지식에 대한 영적인 눈이 열려야 사물을 보는 안목이 열립니다. 말씀과 더불어 삶이 즐거워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사랑을 받고, 제자가 선생의 말씀이 즐거워야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워야 복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
3,105)고 했습니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시다. 묵상 이란 규칙적으로 읽고, 연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엔드류 블랙우드 목사는 “성경을 두기에 가장 좋은 곳은 손이며, 그 보다 더 좋은 곳은 머리이며, 그보다 더 좋은 곳은 가슴이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한정웅 목사의 간증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되는 해인 1952년 4월 21일 오후 1시경에 정읍(정주시)에서 폭발물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만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정읍 역전교회(현 성광교회) 송영호 목사가 찾아와서 “눈을 뜨고 죄 짓는 것보다 눈감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 복되다”고 전도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받고 목표 은광학교(맹아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당시 점자가 귀한 때라 그 학교에 점자성경을 가진 분이 한분 있었는데 성경을 읽고 싶어서 방학 동안에 빌려 보기로 하고 선생님에게 말하니 로마서를 주었습니다. 혹시 상하고 분실할까 봐 신문에 싸고, 팬티 고무줄을 풀어서 묶고, 그것을 다시 보자기에 싸고, 다시 가방에 넣어서 이불에 싸고, 끈으로 묶어 멜망에 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학이 끝나 갈 무릎 돌려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을 생각하고 그만 통으로 외워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셋째:복 있는 사람은 형통한 삶을 삽니다. 읽을말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나무가 아닙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로서 보호와 간섭을 받은 나무입니다. 영국 테임즈 강변에 재판소가 있습니다. 그 뜰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 포도가 영국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합니다. 식물학자들이 이를 조사하여 분석한 결과 이 나무가 테임즈 강변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어 아무리 가물어도 잎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예수의 강변에 영적으로 말씀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으면 세상에 아무리 어려운 영적 가뭄이 와도 시들거나 마르거나 병들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거치지 아니함 같으리라”(예레미야 17:7-8)고 했습니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습니다. 인생은 각기 형편에 따라 여러 시절이 있습니다. 학생 시절에 공부할 때는 지혜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청년기에는 배우자를 위하여 좋은 만남이 필요합니다. 가정을 이루어 생업에 종사할 때는 재물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노년에는 강건함으로 백발의 아름다움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시절을 좇아 열매를 주십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안습니다. 잎이 무성함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젊고 푸르고 생기가 충만함을 가르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여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시편 92:12-13)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언제나 싱싱합니다. 생기가 충만합니다.
넷째:복 있는 사람은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읽을말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4-6절) 악인의 최후는 멸망입니다. 1 바람부는대로 삽니다. 지조 없는 인생입니다. 참 알맹이 되신 예수 생명이 없는 껍데기 인생이니 외부의 영향에 따라 살아가는 표리가 부동한 인간입니다.
2 겨 같이 과장됩니다. 겨는 거짓으로 충만합니다. 벼 한 가마니를 정미했는데 겨는 두 가마니가 됩니다. 겨 같은 인생은 거짓과 술수로 사는 자입니다. 3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순간은 승리하는 것 같으나 종국은 멸망입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니라”(잠언 24:1)고 했습니다. 6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악인은 의인의 반열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세기 18:25)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마태복음 13:48-49). 복 있는 자는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나에게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있고, 조금 어려움을 당하여 고난이 있다고 해도 최후에는 승리자할 것입니다. 내게 비록 의가 없지만 내가 소유한 예수의 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분이 시편을 알레고리로 풀었습니다. 시편(詩篇)이라는 한자어는 시시(詩)자와 책편(篇)인데 “시를 쓴 책”이란 말입니다. 편(篇)자가 머리에 대나무 죽(竹)자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 종이가 귀할 때 대나무 같은 흰 부분에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대나무와 유사성을 가지고 알레고리(풍유)적으로 해석했습니다. 1 대나무 속이 흰 것처럼 성도의 심령이 청결해야 합니다.
2 대나무 속이 빈 것처럼 성도의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3 대나무가 곧은 것처럼 정직해야 합니다.
4 대나무가 유연하여 잘 부러지지 않음 같이 부드럽고 온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레고리적 해석을 부분적으로 교훈 받을 수는 있으나 기독교의 모든 복음을 풍자적으로 해석하면 나중에 복음이 전설이나 동화나 예화속에 나오는 교훈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알레고리가 아닙니다. 복음에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써 예언되었고, 그것이 성취되어 이루어졌고, 또한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역사속에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형통의 비밀을 아십니다. 당신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형통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47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