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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이 만듭시다 (시128:1-6)

본문

당신의 가정은 천국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 중에 최대의 문제가 가정의 문제입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요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정의 파괴는 사회악의 근원입니다. 건강한 가정이 있을 때 건전한 사회가 형성되고, 건전한 사회로 이루어진 국가에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앞으로 가정을 세울 청년들에게는 선택의 결단을 함에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가정을 이루신 분들은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세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가장 으뜸 되는 기관입니다. 세상에서 가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괴함으로 죄가 들어왔고, 죄는 일차적으로 가정을 허물어지게 만듭니다. 아담이 범죄 이전에 하와를 보았던 것과 범죄 이후에 보았던 것이 달랐습니다(창세기 2:23; 3:12). 자신의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기고, 아내는 그 책임을 뱀에게 전가시킵니다. 나중에 이 죄악은 형제간에 무서운 살인극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주님은 이 땅 위에 교회를 건설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부패된 가정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없고,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고서는 교회 봉사를 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바로 세우는 길은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기독교적 가정관은 어떠한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과 보이는 배우자의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우리는 흔히 집(house)을 가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이란 돈으로 좋은 건축 자재와 기술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home)은 그렇게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란 진리 되신 하나님 언약의 말씀과 돕는 배필의 사랑으로 건설됩니다. 그러면 가정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첫째:가정에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1-2) 복된 가정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남편 중심이 되어서도 안되고, 아내 중심이 되어서도 안되고, 자식 중심이어서도 안됩니다. 가정은 질서상 남편을 앞세운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가정관은 어떠한가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아내나 자식이나 종들에게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12)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신앙이 없을 경우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때로는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때 아내의 지혜로운 내조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영적인 파수군은 사단 권세가 가정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된 가정에는 하나님의 법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정을 세우는 법도를 주셨습니다. 세마교육은 가정 학습 훈련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4-9)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전인적인 인격교육이요,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적 생활 교육이요, 가르침을 통해서 가능한 교육 훈련입니다. 복된 가정은 수고하는 노동의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손이 수고한 만큼 얻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로소득으로 살려고 하지 마시고 수고한 대가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회악은 수고하지 않고 얻으려 하는데서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건이나 창조 질서는 노동의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가르쳐 줍니다(창세기 1:31). 기독교는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노동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을 주실 때도 안식 이전에 노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출애굽기 20:9-10)고 했습니다.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로마서 12:11)고 했습니다. 수고하지 않고 원하는 기적은 미신입니다. 기도는 노동같이 하고 노동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가나안 농군 학교 창설자 김용기 장로님은 한끼 식사를 위하여 반드시 4시간 일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손이 수고 한대로 얻는 복을 주십니다. 복된 가정은 형통함을 얻습니다. 형통 하다고 해서 다 복된 것이 아니라 복된 가운데서 형통함을 누려야 합니다. 요셉이나 바울은 옥중에서도 형통함을 누렸습니다(창세기 39:23; 빌립보서 4:11-12).
둘째:가정에는 사랑과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읽을말씀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니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3-4) 가정이란 언약의 기초 위에 사랑으로 연합하여 세워진 건물입니다. 건축물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싸인이 있습니다. 먼저 벽에 금이 갑니다. 다음에는 그 사이에 이물질이 끼여듭니다. 그 다음에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균열의 강도가 심해져 서로 밀어내어 저마다 제 위치를 이탈합니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하중을 이기지 못하여 무너져 내립니다. 가정이란 건물도 이렇게 무너집니다. 처음 만날 때 주고받은 뜨거운 첫 사랑이 점점 식어져 금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 사이에 세속적인 온갖 정욕의 이물질이 들어가 그 사이를 밀어냅니다. 그러다가 가정을 버티는 기둥이 자리를 이탈하면 가정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화목을 깨는 사단 권세를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부부 관계가 온전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포도나무 비유를 잘 깨 닫아야 합니다. 포도나무는 어디까지가 나무이며, 어디까지가 줄기인지 구별이 분명치 않습니다. 부부 관계의 비밀이 바로 그러합니다. 포도나무에 중요한 것은 줄기도 아니고 잎도 아닙니다. 주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포도 열매가 서로 엉겨 있습니다. 다른 과일은 많이 붙으면 속음을 하나 포도 열매는 많이 붙을 수록 상품의 가치가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엉겨서 붙어 있는 포도 열매와 같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위치나 사역이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연합하여 만들어 낸 열매가 중요합니다. 부부는 서로 엉겨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음은 자녀들입니다. 자식들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소망의 상징입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이 물러간 후에 비둘기를 내어 보내었더니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이것은 땅을 보기 위한 노아가 바라고 소원했던 꿈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은 부모의 소망이요 꿈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울타리요, 힘입니다. 전투에 나가는 장수에게 전통에 화살이 가득할 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27:3-5)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이런 복을 받습니다.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요나단 에드워드는 경건한 후손들은 이러합니다. 그 가문의 729명 가운데 목사가 300명이며, 교수가 69명이며, 저술가가 50명이며, 국회의원이 3명이며, 부통령이 1명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살았던 막스 쥬크스누의 1026명의 후손들 중에는 300명은 조산으로 죽고, 100명은 13년간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190명은 매춘부이며, 100명은 알콜중독자이며, 이들을 위해 뉴욕주가 해마다 120만불을 부담해야 하는 사회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셋째:가정은 사회에 봉사하고 교회에 헌신해야 합니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5-6) 여기 나오는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같은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온성이라는 다윗성을 사회와 국가로 볼 때 예루살렘은 성전으로 볼 수 있으며, 오늘날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오늘 성도가 사회나 교회를 보는 안목이 어떠해야 하는가 사회를 위해서는 창조 질서를 지키면서 봉사해야 하고, 교회를 위해서는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회와 교회를 떠날 수도 없고 떠나서도 안돼는 그 시대적인 사명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 우지 못하리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가는 수도원 주의나 염세주의 사랑은 복음적인 정신이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은 그리스도인이요, 성도의 중심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성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시편 121:1-2)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니엘은 이러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고 했습니다. 그는 이방에 포로로 잡혀 올 때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을 것과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을 것과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기로 그 마음에 작정했습니다(다니엘 1:8). 당신은 자손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러 주기를 원하십니까 디모데가 그 부모로부터 물러 받은 청결한 양심과 눈물의 기도와 거짓 없는 기도야말로 지상 최고의 유산입니다(디모데후서 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답고 복된 가정은 신앙고백이 분명한 가정입니다.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가정입니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피난처요 안식처인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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