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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가정 (창2:18-25)

본문

가정을 잘 세웁시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운 최초의 기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상에 세운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교회는 타락한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서 완전한 가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무시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상교회가 건설될 때에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사도행전 1:13).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두 수레바퀴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불안전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섬길 수 없습니다. 가정의 연합이 사회와 국가입니다. 부부가 연합하여 일년쯤 지나면 자녀가 생깁니다. 이렇게 해서 가족이 30여년이 지나면 자식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정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해서 친족이 되고, 이러한 친족이 모여서 씨족사회를 건설합니다. 이러한 씨족이 다른 씨족과 연합하여 부족사회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족이 사상과 이념을 중심으로 하여 뭉쳐진 것이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뿌리는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곧 국가의 패망입니다. 개개인의 가정이 튼튼할 때 그 국가의 미래가 밝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세 영역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관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종교적인 존재로서 영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은 서로 돕는 배필로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과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자연관계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는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복된 가정은 어떠한가
첫째/ 영적관계: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하나님은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18),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19),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21),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22)라고 했습니다. 왜 모세가 하나님 이라고 불렀을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애굽기 3:14)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고 했습니다. 성경에 그 대표적인 인물 한 사람을 소개하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1 갈대아 우르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브리서 11:8)고 했습니다.
2 모리아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2)고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세기 22:3, 9-10)고 했습니다. 그때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22:12)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면 이러한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편 128:1-4)고 했습니다. 1 수고 한대로 얻는 복을 주십니다. 일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요, 일할 터전이 있음은 직장이 있다는 것이요, 얻을 수 있 다는 것은 수고한 댓가의 결실입니다.
2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요셉같은 삶입니다. 3 가정에 주신 평강입니다. 부부가 포도송이 같으며, 자녀들이 감람나무 같은 복을 받습니다.
둘째/ 인간관계:사랑이 풍성한 가정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고 했습니다. 1 독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특별하게 하나님이 고자로 살게 한 자를 제외하고는 독처해서는 안됩니다(마태복음 19:12).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2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돕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인생입니다. 서로 도와야 합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부부입니다. 가까운 이웃간에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남과 사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로 아끼며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세기 2:22-23)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을까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하와를 아담의 머리 뼈로 만들었다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것입니다. 반대로 아담의 발가락뼈로 만드셨다면 여자가 남자에게 밟힘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가슴으로 서로 품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남자가 힘이 있다고 해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여자가 약하다고 해서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창조질서상 남자를 앞세운 것이지 인격적으로 여자를 차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식을 주례할 때 신랑 신부가 인격적으로 서로 존경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를 바꾸어야 합니다. 서로 먼저 경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언어가 부드럽고 아름다워야 가정에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부부간의 언어는 가장 좋은 자녀교육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세기 2:24-25)고 했습니다. 가정에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움은 이해와 용서입니다. 지상에서 자신의 허물과 약점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장소가 어디인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일들이 밖으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할 수 있으면 부부간의 일들은 밖으로 공개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또한 부부간의 일에 타인이 참견해서도 안됩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참된 가정의 원리는 이러합니다. 1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남녀는 독립된 개체로 모든 영역에서 성숙한 사회인으로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부부의 연합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자랐으나 연합으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3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부부간에는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부에게만 주신 신비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부끄러움이 없는 삶입니다. 부모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수치를 부부간에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것이 가정에 주신 신비입니다.
셋째/ 자연관계:문화적인 사명을 다하는 가정 인간은 문화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창세기 1:27)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지을 때 영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짐승은 육체를 가진 본능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과 육을 가진 특수한 존재로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문화적인 사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보이지 않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보이는 물질 세계를 하나님 뜻대로 관리하는 청지기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창세기1:26-28).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세기2:19)고 했습니다. 미국의 리처드 니이버(H. Richard Niebuhr) 교수는 문화에 대하여 다섯가지 유형을 말했습니다. 1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인,
2 문화에 예속된 그리스도인, 3 문화 위에 군림하는 그리스도인,
4 문화와 역설적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인 5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문화의 변혁자가 되어 세속문화를 그리스도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예배 문화는 이러합니다. 1 족장시대에는 돌단제사입니다. 자연 그대로 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창세기 12:7)했습니다.
2 출애굽시대에는 성막제사입니다. 가공한 텐트문화입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애굽기 40:38)고 했습니다. 3 왕국시대는 성전제사입니다. 철기를 동원한 건축양식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열왕기상 9:1-2)고 했습니다.
4 포로시대에는 회당교육입니다. 흩어진 무리(Diaspora)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문화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23)고 했습니다. 5 신약시대 나타난 예배문화입니다. 공간적인 의식보다는 영적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고 했습니다. 이들은 성령님강림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사도행전 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풍성하며, 자연질서 속에서 문화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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