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시1:1-6)
본문
영국의 한 신문사가 현상모집을 통하여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를조사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첫째가 모래성을쌓는 아이였고, 둘째가 집안일을 마치고 어린 아기를목욕시키는 어머 니요, 셋째가 대수술을 성공적으로마친 의사와 작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콧노래를부르는 예 술가로 선정이 되었다는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중에 아마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복을받기를 원하고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요즈음 기독교 신앙 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너나 할것없이 복을 받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이른바 기복신앙을 꼬집 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축복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세상의모든 종교가 인간의 축복과 행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구약 성경도 따지고 보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메세지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의핵심은 일반종교나 세상 사람들이말하는 복에 대한 개념이 성경이 말하는 축복과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까 물질적 풍요, 사업의 성공,건강과 장수, 혹은 명예나 지위 등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물론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하나의 조건 이 될른지 모르겠지만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분명한사실은 행복의 조건은 환경이나조건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보십시요. 에덴 동산과 같이 좋은 곳이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고 복된 곳입니다. 한마디로 낙원이었습니다. 만약 행복의 조건이 주위 의 환경이나 외적인 조건에있다면 아담과 하와야말로 가장 복된 사람이 되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살고 있었던아담과 하와는 복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낙원을 잃 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십시요.그는 억울하게 형님들의 미움을받고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거기서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갖가지 어려움을 다 당합니다. 결코 복된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애굽이라는 큰 나라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는 어떤 곳 이든 어떤 환경이든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으로 여겼습니다. 그랬더니행복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환경속에서 사람들이 당하는일은 다 당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서고통을 당하 지 않거나 질병에 시달리지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시험에빠지고 죄 에 빠집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그들은 전혀 복스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복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할메세지의 촛점 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의 거울에 우리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내 자신이 복 있는 사람인지, 아 니면 복이 없는 사람인지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비록 우리의 환경이복 되 지 못하다 할지라도 복된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1.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소극적인 면에서 죄악된 삶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 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먼저 복 있는 자는 불의한 자들이 도모하는 악한 꾀 를 절대로 좇지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악인의 꾀가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는것처럼 필경은 망하게 될 것이라는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악인의 꾀를 좇다가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 있는 자는 죄인의길에 서 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불의하고 부도덕한 자라면 죄인은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자로서 악인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자들입니다. 마지 막으로 복 있는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는바로 사단의 나라에서 으뜸가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수종 드는 천사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앉을려고 하다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여러분! 특별히우리는 1절에나타난 세개의동사를 주의해보아야합니다. 좇다 (walk), 서다(stand), 앉다(sit)가 바로그것입니다. 이 세 단어는 우리 인간이죄악으로 빠져들어 가는 단계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떤 죄를지을 때에 처음부터 죄를 짓 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맨먼저 악한자들과 함께 따라 다닙니다. 그 다음에 그들과 함께 어떻게 죄를 지을까 서성거립니다. 그러다가 결국죄의 자리에 안주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악인이 죄 에 빠지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마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였던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잡혀 가실 때에 베드로는차마 도망은 가지 못하고멀찍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뜰에서 불을 쬐고 있다가결국은 계집종 앞에서 세번 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가예수님을 부인하는 과정을 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복음서를 잘 관찰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악인의 무리들을 좇아가다가 첫번째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죄인들과 함께서서 불을 쬐다가 예수님 을 부인합니다. 세번째로 베드로는아예 그들과 함께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서자신은 나사렛 예수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복 있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될 길로 갔습니다. 그는 악인의 꾀 를 좇아갔고, 죄인의 길에 서 있었고,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생에 있어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저질렀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가 그러한 길로 걸어가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러한 길을거부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모든것들을 준다 해도 그것이 신앙적으로는 내리막길이요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알기에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세상에서 모든 불의와 악을 물리치고 복 있는 자의 길로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적극적인 면에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복있는 사람은 소극적으로는 각종불의와 죄악을 거부하지만, 적극적으로는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복 있는 자의 삶을 여호와의 율법에 결부시키고 있습니다.왜 그렇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여호와의율법 이라고 하면 복과 결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거추장스럽고우리를 속박하며 정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율법은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것이 율법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 인간을 자유케하고 진정한 축복을가져다 주기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하여자신을 계시하시고, 또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를 분명하게 계시해 주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뜻을 이해하 고, 나아가서 그 뜻에 순종하게될 때에 우리에게는 복된 삶이 나타나게 되는 줄로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두가지 처방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 율법을 주야로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이율법으로 인하여 즐거움을 맛보라는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전심으로이 율법을 따르고 순종하게된다면 이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을가져다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은 진리이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나깨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어떤 자가 복 있는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가 하루종일 성경책만 붙들고 있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묵상을 통 해 깨달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율법의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일치 시키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대로삶이 나타나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만약 저속한 잡지의 내용을 머리에 채우게 된다면무의식 중에 그러한 삶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살아가게 될때에 자연적 으로 말씀의 열매가 맺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또한 앞으로 어떠한 삶을사시 렵니까 무엇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축복 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축복, 행복이란 외적인 조 건에 좌우되는 것은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이축복된 상태, 행복한 상태가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십시오. 그율법을 주야로 묵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여러분은 축복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3. 셋째로 복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의 열매들은 무엇입니까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복있는 사람이 받을 행복에 대하여 이토록 아름답고 절묘하게 표현한곳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냇가에 심어진상록수, 우리에 게 있어서는 그렇게 감동적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끝없는 광야가펼쳐있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시 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행복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완전한 시적 표현이 아 닐 수 없습니다. 가뭄이 오고계절이 바뀌어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의 열매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나무와 뿌리와 열매의 함수관계입니다. 아무리 땅 이 건조하고 가믐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나무의 뿌리가 시냇가에 심겨져 있다면 그 나무는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서 많은 열매를맺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무엇을 비유하는 것입니까 앞절 말씀과 연결해 볼 때에시냇가 에 심은 나무는 곧 복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나무는 곧 우리인생을 비유합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말씀대로 실천하는삶을 살게 될 때에 풍 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열매를 맺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 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의문 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리라봅니다. 저는 지금까지 평생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나름대 로 하나님 앞에서바른 양심을 가지고 말씀대로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나에게는 시냇가에 심어진 상록수 처럼풍성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행사가 다형통한다고 했는데 무슨 일을 해도 도무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 된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세상적으로 박복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문제로 늘 괴로워하고, 자녀 문제로 늘 가슴앓이를 하고있고, 물질적인 문제 때문에 항상 위축되어 살고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형 편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형편을치유해 주시고 싸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입니까 지금 당장은 풍성한열매, 복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복 있는 자로서의 삶을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삶에 복된 열매가 풍성하게 맺 게 될 줄로 믿습니다.그리 아니하실지라도무슨 말입니까 비록우리가 평생을 박복하게 살아 간다 할지라도 지금내 중심에 주님이 계시고, 그 주님을위해서 평생을 살아간다면, 훗날 주님 앞에 서는 날,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것 까지 보상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달았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 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고후6:10) 아멘입니까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한결같이자기 중심 적이며 향락추구적이며 현세적입니다.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가르쳐주는 복이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적이고말씀 중심적입니다. 죄악된 삶을 거부하고 말씀에 따라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 의 모습을 곰곰히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오늘 우리는 벌써이러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제는 그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처럼 물질적으로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건강하지못하고 질 병으로 고통당한다 할지라도, 환경을돌이켜 볼 때에 소망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내 마음에모시고, 악을 멀리하면서 말씀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그 사람 이야말로 복 있는사람이요, 모든 것을 가진행복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이러한 축복을 누리면서 날마다 기쁨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가 모래성을쌓는 아이였고, 둘째가 집안일을 마치고 어린 아기를목욕시키는 어머 니요, 셋째가 대수술을 성공적으로마친 의사와 작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콧노래를부르는 예 술가로 선정이 되었다는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중에 아마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복을받기를 원하고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요즈음 기독교 신앙 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너나 할것없이 복을 받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이른바 기복신앙을 꼬집 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축복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세상의모든 종교가 인간의 축복과 행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구약 성경도 따지고 보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메세지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의핵심은 일반종교나 세상 사람들이말하는 복에 대한 개념이 성경이 말하는 축복과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까 물질적 풍요, 사업의 성공,건강과 장수, 혹은 명예나 지위 등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물론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하나의 조건 이 될른지 모르겠지만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분명한사실은 행복의 조건은 환경이나조건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보십시요. 에덴 동산과 같이 좋은 곳이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고 복된 곳입니다. 한마디로 낙원이었습니다. 만약 행복의 조건이 주위 의 환경이나 외적인 조건에있다면 아담과 하와야말로 가장 복된 사람이 되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살고 있었던아담과 하와는 복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낙원을 잃 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십시요.그는 억울하게 형님들의 미움을받고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거기서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갖가지 어려움을 다 당합니다. 결코 복된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애굽이라는 큰 나라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는 어떤 곳 이든 어떤 환경이든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으로 여겼습니다. 그랬더니행복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환경속에서 사람들이 당하는일은 다 당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서고통을 당하 지 않거나 질병에 시달리지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시험에빠지고 죄 에 빠집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그들은 전혀 복스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복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할메세지의 촛점 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의 거울에 우리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내 자신이 복 있는 사람인지, 아 니면 복이 없는 사람인지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비록 우리의 환경이복 되 지 못하다 할지라도 복된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1.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소극적인 면에서 죄악된 삶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 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먼저 복 있는 자는 불의한 자들이 도모하는 악한 꾀 를 절대로 좇지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악인의 꾀가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는것처럼 필경은 망하게 될 것이라는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악인의 꾀를 좇다가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 있는 자는 죄인의길에 서 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불의하고 부도덕한 자라면 죄인은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자로서 악인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자들입니다. 마지 막으로 복 있는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는바로 사단의 나라에서 으뜸가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수종 드는 천사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앉을려고 하다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여러분! 특별히우리는 1절에나타난 세개의동사를 주의해보아야합니다. 좇다 (walk), 서다(stand), 앉다(sit)가 바로그것입니다. 이 세 단어는 우리 인간이죄악으로 빠져들어 가는 단계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떤 죄를지을 때에 처음부터 죄를 짓 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맨먼저 악한자들과 함께 따라 다닙니다. 그 다음에 그들과 함께 어떻게 죄를 지을까 서성거립니다. 그러다가 결국죄의 자리에 안주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악인이 죄 에 빠지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마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였던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잡혀 가실 때에 베드로는차마 도망은 가지 못하고멀찍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뜰에서 불을 쬐고 있다가결국은 계집종 앞에서 세번 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가예수님을 부인하는 과정을 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복음서를 잘 관찰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악인의 무리들을 좇아가다가 첫번째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죄인들과 함께서서 불을 쬐다가 예수님 을 부인합니다. 세번째로 베드로는아예 그들과 함께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서자신은 나사렛 예수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복 있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될 길로 갔습니다. 그는 악인의 꾀 를 좇아갔고, 죄인의 길에 서 있었고,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생에 있어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저질렀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가 그러한 길로 걸어가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러한 길을거부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모든것들을 준다 해도 그것이 신앙적으로는 내리막길이요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알기에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세상에서 모든 불의와 악을 물리치고 복 있는 자의 길로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적극적인 면에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복있는 사람은 소극적으로는 각종불의와 죄악을 거부하지만, 적극적으로는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복 있는 자의 삶을 여호와의 율법에 결부시키고 있습니다.왜 그렇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여호와의율법 이라고 하면 복과 결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거추장스럽고우리를 속박하며 정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율법은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것이 율법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 인간을 자유케하고 진정한 축복을가져다 주기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하여자신을 계시하시고, 또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를 분명하게 계시해 주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뜻을 이해하 고, 나아가서 그 뜻에 순종하게될 때에 우리에게는 복된 삶이 나타나게 되는 줄로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두가지 처방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 율법을 주야로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이율법으로 인하여 즐거움을 맛보라는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전심으로이 율법을 따르고 순종하게된다면 이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을가져다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은 진리이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나깨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어떤 자가 복 있는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가 하루종일 성경책만 붙들고 있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묵상을 통 해 깨달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율법의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일치 시키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대로삶이 나타나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만약 저속한 잡지의 내용을 머리에 채우게 된다면무의식 중에 그러한 삶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살아가게 될때에 자연적 으로 말씀의 열매가 맺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또한 앞으로 어떠한 삶을사시 렵니까 무엇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축복 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축복, 행복이란 외적인 조 건에 좌우되는 것은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이축복된 상태, 행복한 상태가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십시오. 그율법을 주야로 묵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여러분은 축복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3. 셋째로 복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의 열매들은 무엇입니까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복있는 사람이 받을 행복에 대하여 이토록 아름답고 절묘하게 표현한곳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냇가에 심어진상록수, 우리에 게 있어서는 그렇게 감동적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끝없는 광야가펼쳐있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시 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행복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완전한 시적 표현이 아 닐 수 없습니다. 가뭄이 오고계절이 바뀌어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의 열매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나무와 뿌리와 열매의 함수관계입니다. 아무리 땅 이 건조하고 가믐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나무의 뿌리가 시냇가에 심겨져 있다면 그 나무는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서 많은 열매를맺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무엇을 비유하는 것입니까 앞절 말씀과 연결해 볼 때에시냇가 에 심은 나무는 곧 복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나무는 곧 우리인생을 비유합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말씀대로 실천하는삶을 살게 될 때에 풍 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열매를 맺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 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의문 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리라봅니다. 저는 지금까지 평생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나름대 로 하나님 앞에서바른 양심을 가지고 말씀대로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나에게는 시냇가에 심어진 상록수 처럼풍성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행사가 다형통한다고 했는데 무슨 일을 해도 도무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 된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세상적으로 박복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문제로 늘 괴로워하고, 자녀 문제로 늘 가슴앓이를 하고있고, 물질적인 문제 때문에 항상 위축되어 살고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형 편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형편을치유해 주시고 싸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입니까 지금 당장은 풍성한열매, 복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복 있는 자로서의 삶을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삶에 복된 열매가 풍성하게 맺 게 될 줄로 믿습니다.그리 아니하실지라도무슨 말입니까 비록우리가 평생을 박복하게 살아 간다 할지라도 지금내 중심에 주님이 계시고, 그 주님을위해서 평생을 살아간다면, 훗날 주님 앞에 서는 날,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것 까지 보상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달았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 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고후6:10) 아멘입니까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한결같이자기 중심 적이며 향락추구적이며 현세적입니다.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가르쳐주는 복이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적이고말씀 중심적입니다. 죄악된 삶을 거부하고 말씀에 따라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 의 모습을 곰곰히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오늘 우리는 벌써이러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제는 그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처럼 물질적으로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건강하지못하고 질 병으로 고통당한다 할지라도, 환경을돌이켜 볼 때에 소망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내 마음에모시고, 악을 멀리하면서 말씀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그 사람 이야말로 복 있는사람이요, 모든 것을 가진행복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이러한 축복을 누리면서 날마다 기쁨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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