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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을 자는 누구인가 (렘17:5-11)

본문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계시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떠난 자는 저주를 받고, 여호와를 의지하며 사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26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선지자가 되어 40년간 활동했는데 그 당시 앗수르, 바벨론, 애굽이 세계 제패의 삼파전을 벌이는 틈바구니에서 유다는 몹시 허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유다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주전 606년과 597년과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침략을 당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당시에 유다 백성들의 죄악은 점점 더 심각해 갔습니다. 하나님을 열망하는 대신에 우상을 열망하고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에 토지나 재산도 약탈당하고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옮겨질 것을 예레미야는 예언했습니다. 당시 유다의 왕과 정치가들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대 과거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 40년 광야 생활에서 먹이시며 입히시며 마시게 하며, 승리케 하시던 능력의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일찍이 자기들을 노예로 삼아 괴롭혔던 애굽 나라와 동맹을 맺어 원조를 구했습니다. 유다 왕 시드시야는 자기의 마음을 따라 애굽왕을 의뢰하고 애굽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의뢰했습니다. 유다 왕으로는 타당성과 합리성이 있는 애국적 태도요, 처사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눈에는 정반대로 보였습니다. 그것은 비신앙적 태도요, 반신앙적 태도요 그리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인간을 의뢰하고 인간의 부와 권력(경제력과 군사력)을 의지하는 민족은 마치 사막의 떨기나무 같고 좋은 일(축복)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민족은 마른 광야의 메마른 사막에 거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의 상태를 말합니다.
1. 저주를 받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특별히 5-13절에는 인간을 의지하는 사람(5절), 자기 마음을 의지하는 사람(9절), 부를 의지하는 사람(11절), 이런 사람들은 저주를 당하게 될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할 것을 예레미야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람을 의지했었고, 거품 경제속에서 아시야의 용이라고 자신을 믿었었고, 외환보유도 없는 부를 의지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저주를 받을 사람들이 받을 형벌은 무엇입니까
1. 건조한 땅, 사막에 거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렘17: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막의 떨기나무는 너디에 사용합니까 열매를 얻을 수 없고 재목으로도 쓰지 못하고 아궁이 속 땔감으로도 사용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문화나 문명은 모두 사막의 떨기 나무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래바람만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볼품없이 기시덩굴만 내뻗치는 한 그루 관목과 같은 신세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갈은 그 주인 사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떠나간 여인이었습니다. 하갈은 자기의 마음을 믿다가 광야로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인간의 도움을 의지하가 이스마엘을 의지하다가 광야로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정막한 사막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정막한 사막 한 가운데 홀로 기금, 갈증, 불안 그리고 공포에 떨며 방향감각이 없이 서 있습니다. 한번 이와 같은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물이 없는 곳에 뭐가 있습니까 물이 없는 곳에는 인간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 나무가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창21:15)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창21:16)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곳은 죽음뿐이며 자식의 장래도 보장받지 못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입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 없는 인생, 하나님 없는 가정, 하나님 없는 민족과 국가는 그 결국이 무엇인가요 건조한 사막일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부재, 신앙 부재의 현대인의 모습이요, 현대 분명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민족이나 세계사의 방향이 어디입니까 사막의 떨기나무 길이요, 하나님의 축복이 보이지 않는 길이요, 건조한 사막의 길입니다.
2.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맹세까지 하시면서 언약하신 그 축복을 그 백성이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맹인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은총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일이 없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며, 미래가 없는 인생이요 꿈이 없고 희망이 없고 비전이 없는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니의 계시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은즉 그 언약을 믿지 않고 축ㅂ고을 바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싸르트르는 “현대인은 나갈 길이 없다. 절망뿐이다.”라고 말했거니와 현대인은 영적 맹인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려는 큰 축복을 보지 못하고 그리고 인간의 영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 제일주의로 현실적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복을 받을 사람은 누구입니까 “(렘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므로 그 분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렘17: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께 신앙의 뿌리를 박은 사람은 더위와 같은 시험이 오더라도, 가뭄과 같은 환난이 올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생생케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청청한 나무가 되어 계속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극한 상황 속에 있던 하갈과 이스마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던 그들, 기근과 갈증과 불안과 공포 속에 떨며 방향감각이 없이 주저앉아 방성대곡하던 그들 모자는 하나님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뢰하며 찾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청청한 나무로 자라게 하시며 그 후손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창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영적 눈을 뜨게 하사 생명의 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창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신뢰하는 개인과 민족은 반드시 시냇가의 나무처럼 영원히 그 영적 생명이 청청하며 성령님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아름다운 문화를 계속 창조케 될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창조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능력을 부여하시므로 역사의 방향을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사람은 성령님충만한 사람이며,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늘 청청한 나무와 같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좋은 때가 옵니다.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복받을 때가 옵니다. 그들에게는 물 댄 동산에서 자라는 과일나무와 같이 항상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수로를 향하여 뿌리를 내뻗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길고 지루한 가뭄도 무섭지 않습니다. 경제위기도 무섭지 않습니다. 여름철의 뙤약볕도 두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불황이 없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기 때문입니다. 샘물 근원을 보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마시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나무의 잎사귀는 언제나 푸르고 싱싱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도, 그에게는 전혀 고통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선지자 엘리야와 함께 있으면, 하나님께 의뢰하는 자는 결코 떡 반죽 그릇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무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영적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이 말씀의 맛을 알게 될 때에 비록 그 육신은 쇠해도 그 영혼은 늘 푸르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새로워만 가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뢰하여 말씀에 뿌리를 깊이 박읍시다. 믿음과 기도에 뿌리를 깊이 내립시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늘 청청해질 수 있으며 행사가 다 형통할 것입니다. 본문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자라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소는 그 외양간을 알고 제 주인을 압니다. 천체들은 정한 우주의 법칙을 따라 운행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거짓되고 부패하며 패역합니다.
중국의 장자는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없다. 육체의 죽음은 그 다음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육체의 죽음보다 마음의 거짓됨과 부패함을 더욱 아프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심장을 살피십니다. 인간이 발명한 엑스레이가, 혹은 내시경이 체내의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거짓없는 마음, 진실한 마음을 가집시다. 세상에는 부패하여 냄새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먹다남은 찌꺼기를 버린 시궁창에서 나는 냄새는 견딜 수 없게 합니다.
그런데 시궁창의 찌꺼기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겉으로는 온갖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었지만 그 마음에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증거, 훼방, 시기, 미움 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마 15:19). 이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사람의 심장을 샅샅이 살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번개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우리가 지극히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생각까지도 살피십니다. 아주 교묘하게 위장되거나 은폐된 의도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의식 세계 뿐 아니라 무의식 세계까지도 살피시는 하나님은 그 행위아 행실까지도 철저하게 보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눈초리 앞에서 진실되고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렘17: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또한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사람이나 물질, 권력을 의지하지 말고 생수의 근원이시며 환난의 피난처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때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음 같을 것입니다. 지금 이 예레미야의 영감어린 시구 중에서 인간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의뢰하는 인간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간, 이 두 부류의 인간과 그 운명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앞에 이 두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갈림길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선택은 회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도 회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건에 있어서 이 선택 앞에 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신뢰하는 편을 선택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얻은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그 구원얻은 상태에 있어서 마귀는 날마다 우리를 유혹하며 우리로 하여금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강요해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편을 택하기 원하면서도 때로는 연약하여 자아중심적이 되어 인간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신뢰하는 편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성령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 선택은 개인적으로는 생을 다한 선택이요, 이 선택은 민족적 선택이요, 역사적 선택이요, 인류사적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그만큼 책임이 무거운 선택이며 생과 사를 가름하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 선택 앞에 서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박아 과거 수천년의 인류 역사를 거울삼아, 예레미야 시대를 거울삼아서 하나님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고 빈손을 높이 들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맏겨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고 부흥이 있고, 앞에 있는 축복을 보게 되며 축복된 언약이 성취되며 언제나 잎이 청청함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 내일 한국은 잎이 청청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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