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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 (요14:16-17)

본문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입니다. 자신의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다 떠나 보내고 홀로 자신 밖에는 없는 아픔, 바로 그 고독이 우리의 인생에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가장 무서운 벌은 독방에 갇어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고독’을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고독, 나를 사랑하는 자도 다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그 진한 고독.
사람은 중년이 되면 불현듯 이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청년기의 고독은 인생의 허무와 철학을 위한 고독이지만, 중년의 고독은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던져주고 싶은 그런 고독이 깃듭니다.
예)이 고독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여자는 어느말 집안을 다 정리하고 홀로 텅빈 집에 있을 때에 불현듯 자신은 혼자라는 것, 이제껏 살아온 것이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라는 고독한 질문이 자신을 괴롭힙니다. 자식은 자기들의 길을 가고 있고, 남편은 자신에게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자신은 시대에 뒤쳐져있는 느낌이며 헛된 인생을 산 것 같은 아픔이 자신을 압박합니다.
남편은 직장에서 스트레쓰를 받고 피곤한 몸을 쉬지 못합니다. 어느날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며 예전같지 않음을 느낍니다.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 둘 죽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차례도 언제 올지 모른 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경쟁사회에서 자신은 자꾸만 뒤로 쳐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고 자신은 홀로라는 생각에 고독감을 느낍니다.
이 고독은 삶의 용기를 앗아가며, 이제껏 살아온 삶에 기쁨을 상실합니다. 이 고독의 순간을 잘 극복하지 못하면 세상의 타락에 쉽게 동화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는 중년입니다. 이 중년의 시기는 약 35세이후를 말하고 있는데 이 위험한 중년의 시기가 신앙적으로는 가장 성숙될 수있는 기회입니다. 이 중년의 고독을 통하여 진실한 신앙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중년의 때에 만나는 ‘고독’이 제2의 인생을 살게 합니다. 사람이 급격히 바뀔 수있는 시기입니다. 이 ‘고독’을 신앙으로 이겨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어지는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불안과 고독감속에서 고통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이 이제 당신의 때가 되어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3년의 공생애를 통하여 서로가 깊은 애정과 친밀감을 갖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떠나가신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놀람과 당혹감에 걱정과 염려에 빠집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서 당신대신 함께 있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다른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다른 보혜사’란
그렇다면 예전의 보혜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전의 보혜사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혜사 이셨습니다.
그 분이 제자들 곁에서 친히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며, 위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이제 떠나가십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두 이 땅에 남겨두시고 가십니다. 이 세상은 험합니다. 말로할 수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제자들을 홀로 두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밖에서 일하셨지만 성령은 이제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일하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강하게 하다’라는 말과 ‘곂에서서’라는 말의 복합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곁에 오셔서 강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위로자’ ‘돕는자’ ‘변호인’ ‘상담자’등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독을 느끼고, 고통과 쓰라린 아픔 속에서 괴로워 할때에 그래서 마음은 지치고 피곤하고, 마음이 약하여져서 흔들리고 있을 때에-
성령이 우리의 곁에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사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강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도록, 물러서지 않도록, 실패하지 않도록, 다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셔서 도전하게 하시고 새로운 출발을 갖게 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기쁨 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육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신앙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이냐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성령 보혜사 께서 이러한 모든 인생의 문제를 대처해 갈 수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16절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우리 믿는자는 최고의 축복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신약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임마누엘”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성령님이 이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독하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에)어느 여자 선교사의 이야기-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실의에 빠져 포기 해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독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무개야’하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 다시 ‘아무개야’하기로 놀라 생각해보니 그 분은 바로 자신의 마음에 계시는 보혜사성령님 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힘을 얻어서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의 사역을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 하면 흔히 어떤 신비로운 경험이나 이상한 현상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의 삶에서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어려운 인생의 문제를 대처해 나가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나의 등뒤에서 나를 부르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 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나를 도와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보혜사 성령님은 어떻게 도우십니까
1.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의 인생에서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용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책망하시며 범죄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말씀을 적절한 때에 우리에게 계시는 성령님이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셔서 그 순간들을 대처하게 하십니다.
오래전에 들었던 말씀, 읽었던 말씀, 이미 나는 잊어 버린것 같은 말씀이 어느날 기억이 나서 나를 새롭게 하는 경험을 한번씩은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잊어버리더라도 열심히 말씀을 들어야 하며, 읽어야 하고, 묵상하여야 합니다.
더구나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성경의 말씀을 이해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을 많이 알고 배웠다고 할지라도 성령이 깨닫게 아니하시면 알수가 없습니다.
시험의 때에 성령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시련과 역경의 때에도 말씀을 기억나게 하셔서 새힘을 주십니다. 고독과 싸울 때에도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주님을 보게 하십니다.
2.기도해 주십니다.
롬 8: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기보니 ‘성령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도 도와주시는데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도 함꼐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무엇인데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모두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길수가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길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미련함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데 안타깝기만 하고 기도가 되지 않는 경험을 다하셨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런데 성령님이 이러한 우리를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중보의 기도를 하시며,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 할 수있도록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실려고 하시면 기도시키십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서라도 기도하게 하십니다.
예)꿈 속에서 기도하는 경험을 많이합니다. 조금 후에 보면 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데 곧 이깁니다. 축복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뿐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아십니다. 그러니 우리 성령님의 기도는 우리의 삶을 승리케하는 최고의 기도인 것입니다.
3.어려울 때에 주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할 때에 그 문제만을 본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패배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문제를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본다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것을 보고”
그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에 그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기쁨과 감사를 외치며 순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고독하고 괴롭고 답답할 때에 절망하고 낙심하여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슬퍼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한 없이 커보이고 자신은 작아 보일 때에 성령님은 우리의 곁에서서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를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십니다.
거기에 새로운 능력과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은 약합니다. 가장 강한 자 같지만 가장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예)그리스 신화중에 트로이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스 장군-그의 아버지는 아들인 아킬레스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의 신은 그를 죽음의 강인 스킥스강에다가 잠그라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거기에다가 담급니다. 그러나 발목을 잡고 담거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발뒤꿈치는 담그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헤파이스토스’라는 갑옷을 입힙니다. 그는 최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발뒤꿈치였습니다. 적장인 페리스왕자가 이것을 알고는 화살을 쏘아 아킬레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지금도 의학자들은 인간의 발뒤꿈치 근육을 ‘아키레스 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간은 약접투성이이며 연약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결점주에서 가장 큰 결점은 자기 자신은 결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고 영국의 철학자 카알라일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읋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이 세상의 삶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도우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도 보혜사 성령님을 주시고 이 성령님의 도움 속에서 이 세상의 삶을승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인생이 만나는 위기를 대처해 나가며 이기도록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지금 만나고 있는 우리의 위기를 대처하며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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