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에 대한 경고 (잠6:1-5)
본문
옛날이나 오늘이나 보증에 대한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생활의 일면이다. 보증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 보증에는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약속이다. 오늘과 같이 다원사회에서 자주 발생되고 있는 경제적인 사고이면을 보면 반드시 이 문제가 얽혀서 곤란을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오늘날은 또 상부상조 해야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서로 선의에서 돕고 협력하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문제는 우리들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의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보증에는 반드시 경제적인 보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보면 몇 가지 보증에 대한 사례가 나와 있다.
첫째는 생명의 보증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가뭄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왔다. 그때 요셉은 베냐민을 데려 오라고 시므온을 담보로 잡아 두고 나머지 형제들을 돌려 보냈다. 이를테면 인질인 셈이다. 이것이 생명의 보증이다. 베냐민을 데려오면 살고 오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이같은 보증은 우리의 옛 야사에 보면 많이 나오고 있는 사례들이다. 두번째는 물품 보증도 있다. 유다가 며느에게 준 증표가 물품보증이다. 유다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다. 두 아들이 죽고
셋째 아들이 장성했는데도 애를 잇게 해 주지 않게되자 며느리 다말은 창녀촌에 위장 잠입하여 시부인 유다에게 씨를 받아내고 대신 시부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약조물로 받아 내는데 성공한다. 이것이 약조물이 되어 유다는 꼼짝없이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 여기에도 물적 증거가 보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신원 보증도 있다. 옛날 노예제도가 있을 때에는 그 노예의 몸에 도장을 찍어서 신원을 보증하였었다. 이것을 스티그마, 그 흔적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하였다. 이를테면 주인의 소유를 나태내는 낙인이요 불도장으로 찍힌 흔적이고 그 소속과 소유를 나태내고 증명되는 신원보증의 흔적인 것이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다. 그가 도둑질하여 도망치다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감화시켜 새 사사람을 만든 다음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오네시모를 보증하고 다시 주인에게로 돌려 보냈다. 말하자면 도둑놈의 신원을 보증한 셈이다. 다행히 오네시모는 감화를 받고 새 사람이 되어 후에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까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을 그것도 믿을 수 없는 출신의 사람을 신원보증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각종 직장에 사람을 추천하고 보증하는 일이 빈번한데 사람을 믿고 보증하고 신뢰한다는 문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전과 기록이 있다거나 신용이 없고 신뢰성이 없는 사람의 신원을 보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보증에는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재정보증이 있다. 상대방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보증을 서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재정적인 손실이 있을 경우 이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보증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보증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친구나 이웃을 도와야 하고 그 딱한 처지를 함께 나누어야 할 일이고 그런 면에서 이웃을 위하여 보증을 서 주는 일은 선한 일이지 악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처지를 보고 쉽게 보증을 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웃 간에도, 친구 간에도 이같은 경우로 인하여 발생되는 문제들을 우리는 아주 쉽게 보아 왔다. 본문에서 지혜자는 사고가 생길 때 실제적인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보증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적인 무절제와 만용을 경계한 것이다.
1. 보증의 의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보증이라는 말은 보증물의 의미도 포함한다. 이것은 채무자가 빚을 질 때 그 보증으로 채권자에게 넘겨 주게 되는 담보물 또는 재산상의 물건을 의미할 뿐 아니라 채무자가 빚을 지불할 만기일이 되었을 때 지불 능력이 없는 그를 대신해서 보증인이 중간에 서 대신 해결해 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보증인은 채무자의 지불이행의 책임을 지며 때에 따라서는 채무자를 대신하여 대리 채무인으로서 역할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2. 구약시대의 보증행위 구약성경에서는 보증행위에 대해서 잠언서 이외에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히브리 사회에서 채무자는 채무 이행의 보증으로 여러 가지를 담보하게 되는데 채무 불이행 시에는 채무 이행의 보증으로 자신의 자녀들까지 채권자에게 넘겨주는 경우도 있었다 (왕하4:1-7) 또한 채무자가 채무 불이행으로 보증인이 망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같은 일로 인해서 잠언은 자기 능력을 능가하는 보증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교훈은 경솔하게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이다(1-2)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로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사정을 보니 딱하고 부탁을 받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담보를 서 주고 보증을 서 주게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올무에 걸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 올무는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올무이고 만일에 경웨는 그 책음 피할 수 없는 올무인 것이다. 그래서 보증을 선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고 심지어는 옷을 벗겨 주게도 되고 그 몸이 볼모로 잡히게도 되자만(27:13) 올무에 걸리지 않은 삶은 평안이 있는 것이다.(11-15) 우리 주변에서 보면 보증을 서 준 책임 때문에 책임을 혼자서 다 뒤집어 쓰는 사람도 있고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붙여지는 모습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이렇게 졸지에 다 잃어버리고 나서 홧김에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보증 때문에 만들어진 옛 말들이 많다.
1) 잃어도 무방한 돈만을 빌려 주어라.
2) 돈을 아주 주어라 그러면 돈을 잃어도 벗은 잃지 않을 것이요 빌려 주어라, 그러면 돈은 받아도 벗은 잃을 것이다.
3) 적에게 돈을 꾸어 주면 받을 것이요 친구에게 돈을 꾸어 주면 함께 잃을 것이다.
4) 작은 돈을 꾸어 주면 채무자가 되고 큰 돈을 꾸어 주면 적이 된다. 5) 빚진 자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6) 빚을 지고 일어나기 보다는 차라리 저녁을 굶으라.
둘째 교훈은 스스로 올무에서 벗어 나라는 교훈이다(3-5)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노루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을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 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우리는 큰 돈을 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남의 이름을 빌려서 요행을 바라는 사업이나 일을 벌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돈을 억지로 벌어 보려는 유혹에서도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특히 오늘날의 투기와 모험과 과욕과 사행적인 경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큰 돈은 꾸어 주지도 말고 보증을 서는 일도 삼가해야 한다.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모험적인 투기와 과욕의 경제적인 유통이 발생되고 그것은 마침내 커다란 사고를 불러 오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이 피차에 불행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신의를 버리게 되고 친구와 이웃과 돈을 함께 잃게 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되는 일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의 지혜는 보증의 경솔함과 성급함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애정 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11:15,17:18.20:16,22:26,27:13). 만일 경솔한 마음에서 보증을 선 경웨는 그 올무에서 벗어 나기 위해 서 끈질기게 힘쓰라고 하였다. 즉 잠을 자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꼭 그 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데 마치 노루가 그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려고 하듯이 새가 그물을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쓰는 것 같이 힘쓰라고 하였다. 이같이 수고를 하지 않으려거던 그와 같은 경솔한 보증을 금하라고 암시적으로 지혜자는 교훈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마음에서 자신의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보증자가 되는 수가 있는데 아무리 마음으로 원하는 일일지라도 자기의 분수를 생각해서 신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뱀같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결론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보증을 잘못 서서 망했다고 하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 빚진자에게 보증을 서 주고 나서 당하게 되는 어려움에 대한 교훈은 굳이 잠언의 말씀 말고도 우리 생활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이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피부로 체험하게 되는 실패의 경험과 위험부담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이같은 문제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발생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보증의 문제는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없을 수가 없는 일인 것 같이 생각된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보증을 서 주지 않는다면 이웃과 친구와 어려운 이들에게 신뢰와 사랑이 무너진 사회가 되고 말것이다. 그래서 잠언의 지혜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 지혜로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증행위를 하되 무절제와 만용을 피하여 능력에 맞는 보증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성경
본문:요 1:29-34, 사 53:7 오늘 주일은 주현절 다섯째가 되는 주일이다. 현현(顯現, epiphany)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타남, 현시(顯示)를 의미한다. 아기예수가 성 전에 드려질 때 나이 많은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가리켜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리라고 예언한다(눅2:32). 주현절은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계절이며, 그 기간은 1 월 6일(주현절)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 수요일(Ash Wednesday)까 지 이어진다. 주현절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절기', 즉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 내신(계시하신)절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 말씀을 새기고 주현절의 의미를 살펴 보자. 세례요한은 세 가지 측면에서 예수님을 증거했는데,
첫째는 세상죄 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29절)으로,
둘째는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33절)로,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34절)로 증거했다. 이 중에 서 오늘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주현절의 의미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예수의 측면, 즉 요한이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증거한 말씀을 살펴 보기로 하자. 세례요한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들의 음성이 끊어지고 로마속국의 강압정책 으로 메시야의 대망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때 세례요한이 혜성처럼 광야에 나타나 회개를 외치면서 '예수님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다. 요한이 외친 회개는 메시야를 맞을 준비의 태도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어린 양'이라고 한 것은 요한이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이는 "유월절의 양,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를 보라'는 말의 의미를 양의 특성 몇 가지와 대비해 보며 그 의미를 살펴 보도록 하자.
첫째, 이 말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구약에 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그것이 양이든, 소이든, 비둘기든 할 것 없이 전부가 다 완전해야 했다. 그래서 양의 경우도 1년간 아무런 흠 이 없이 길러져야 했다. 그래야만 범죄자를 대신하여 양의 피를 흘려 죄인을 속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어린 양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 정적으로 완전한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의로운 요셉 아버지와 만 세에 복있는 자라고 칭함을 마리아 어머니 밑에서 양육받아 인격적으 로 완전하고 성장했으며 도덕적으로도 물론이려니와 사상과 생활 언어 에도 완전했다. 또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죽으신 것은 그 의 신앙의 완전성을 보여준다.
둘째, 이 말은 '온유한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이미 구약 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 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이사야53:7)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온유성을 예언하였다. 이 예언대로 그리스도는 이 땅 에서 그렇게 살았다. 그것의 증거는 그 당시 어른들이 무시했던 어린 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축복하신 것, 죄많은 여인과 세리와 죄인을 사랑으로 용납하시고 구원하신 것, 원수에게까지도 사랑과 은혜와 용서 를 베푸시고 온유로 대하신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마태 11:29) 고 말씀하셨고, 산상보훈의 8복에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 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교훈하셨던 것이다.
셋째, 이 말은 '희생한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즉 희생당 한 양이신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이다. 구약의 어린 양은 하나님 앞에 무조건 희생의 제물로 드려지는 양이었던 것이다. 본래 양은 희생하는 동물이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신 대속의 완전한 희생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체 험한 바울은 "우리중에서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롬 14:7, 12:1)고 하 였다. 결국 오늘 설교의 제목인 "보시오, 하나님의 아들을"은 인간들을 향 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정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제물로 쓰일 양을 흠이 없도록 정성을 들여 기르고 제사장의 검인을 받은 후 완전함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어린 양,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과 예비하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은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없는 의미의 속죄 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구약에서 죄인이 드려 야 하는 어린 양은 모든 사람이 다 각기 드려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양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주로 따르면 영원히 속죄와 축복과 영광을 얻게 된다.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정확히 보고 믿어서 감격으로 증거해야 한다. 그리하여 요한은 그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늘 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 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 리고 또 세례요한 자신이 제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희생의 제물, 특히 유월절 희생의 양을 잘 알고 있어서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받을 희생과 고난을 통해 그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사랑, 희생, 고난, 영광 중에 승리하실 것임을 요한이 미리 보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새로워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계시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워져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 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말씀의 계시를 통해 일어났다. 주현절을 맞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보시오, 하나님의 아들을"하고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하겠다.
첫째는 생명의 보증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가뭄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왔다. 그때 요셉은 베냐민을 데려 오라고 시므온을 담보로 잡아 두고 나머지 형제들을 돌려 보냈다. 이를테면 인질인 셈이다. 이것이 생명의 보증이다. 베냐민을 데려오면 살고 오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이같은 보증은 우리의 옛 야사에 보면 많이 나오고 있는 사례들이다. 두번째는 물품 보증도 있다. 유다가 며느에게 준 증표가 물품보증이다. 유다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다. 두 아들이 죽고
셋째 아들이 장성했는데도 애를 잇게 해 주지 않게되자 며느리 다말은 창녀촌에 위장 잠입하여 시부인 유다에게 씨를 받아내고 대신 시부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약조물로 받아 내는데 성공한다. 이것이 약조물이 되어 유다는 꼼짝없이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 여기에도 물적 증거가 보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신원 보증도 있다. 옛날 노예제도가 있을 때에는 그 노예의 몸에 도장을 찍어서 신원을 보증하였었다. 이것을 스티그마, 그 흔적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하였다. 이를테면 주인의 소유를 나태내는 낙인이요 불도장으로 찍힌 흔적이고 그 소속과 소유를 나태내고 증명되는 신원보증의 흔적인 것이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다. 그가 도둑질하여 도망치다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감화시켜 새 사사람을 만든 다음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오네시모를 보증하고 다시 주인에게로 돌려 보냈다. 말하자면 도둑놈의 신원을 보증한 셈이다. 다행히 오네시모는 감화를 받고 새 사람이 되어 후에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까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을 그것도 믿을 수 없는 출신의 사람을 신원보증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각종 직장에 사람을 추천하고 보증하는 일이 빈번한데 사람을 믿고 보증하고 신뢰한다는 문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전과 기록이 있다거나 신용이 없고 신뢰성이 없는 사람의 신원을 보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보증에는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재정보증이 있다. 상대방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보증을 서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재정적인 손실이 있을 경우 이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보증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보증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친구나 이웃을 도와야 하고 그 딱한 처지를 함께 나누어야 할 일이고 그런 면에서 이웃을 위하여 보증을 서 주는 일은 선한 일이지 악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처지를 보고 쉽게 보증을 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웃 간에도, 친구 간에도 이같은 경우로 인하여 발생되는 문제들을 우리는 아주 쉽게 보아 왔다. 본문에서 지혜자는 사고가 생길 때 실제적인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보증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적인 무절제와 만용을 경계한 것이다.
1. 보증의 의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보증이라는 말은 보증물의 의미도 포함한다. 이것은 채무자가 빚을 질 때 그 보증으로 채권자에게 넘겨 주게 되는 담보물 또는 재산상의 물건을 의미할 뿐 아니라 채무자가 빚을 지불할 만기일이 되었을 때 지불 능력이 없는 그를 대신해서 보증인이 중간에 서 대신 해결해 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보증인은 채무자의 지불이행의 책임을 지며 때에 따라서는 채무자를 대신하여 대리 채무인으로서 역할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2. 구약시대의 보증행위 구약성경에서는 보증행위에 대해서 잠언서 이외에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히브리 사회에서 채무자는 채무 이행의 보증으로 여러 가지를 담보하게 되는데 채무 불이행 시에는 채무 이행의 보증으로 자신의 자녀들까지 채권자에게 넘겨주는 경우도 있었다 (왕하4:1-7) 또한 채무자가 채무 불이행으로 보증인이 망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같은 일로 인해서 잠언은 자기 능력을 능가하는 보증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교훈은 경솔하게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이다(1-2)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로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사정을 보니 딱하고 부탁을 받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담보를 서 주고 보증을 서 주게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올무에 걸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 올무는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올무이고 만일에 경웨는 그 책음 피할 수 없는 올무인 것이다. 그래서 보증을 선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고 심지어는 옷을 벗겨 주게도 되고 그 몸이 볼모로 잡히게도 되자만(27:13) 올무에 걸리지 않은 삶은 평안이 있는 것이다.(11-15) 우리 주변에서 보면 보증을 서 준 책임 때문에 책임을 혼자서 다 뒤집어 쓰는 사람도 있고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붙여지는 모습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이렇게 졸지에 다 잃어버리고 나서 홧김에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보증 때문에 만들어진 옛 말들이 많다.
1) 잃어도 무방한 돈만을 빌려 주어라.
2) 돈을 아주 주어라 그러면 돈을 잃어도 벗은 잃지 않을 것이요 빌려 주어라, 그러면 돈은 받아도 벗은 잃을 것이다.
3) 적에게 돈을 꾸어 주면 받을 것이요 친구에게 돈을 꾸어 주면 함께 잃을 것이다.
4) 작은 돈을 꾸어 주면 채무자가 되고 큰 돈을 꾸어 주면 적이 된다. 5) 빚진 자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6) 빚을 지고 일어나기 보다는 차라리 저녁을 굶으라.
둘째 교훈은 스스로 올무에서 벗어 나라는 교훈이다(3-5)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노루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을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 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우리는 큰 돈을 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남의 이름을 빌려서 요행을 바라는 사업이나 일을 벌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돈을 억지로 벌어 보려는 유혹에서도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특히 오늘날의 투기와 모험과 과욕과 사행적인 경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큰 돈은 꾸어 주지도 말고 보증을 서는 일도 삼가해야 한다.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모험적인 투기와 과욕의 경제적인 유통이 발생되고 그것은 마침내 커다란 사고를 불러 오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이 피차에 불행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신의를 버리게 되고 친구와 이웃과 돈을 함께 잃게 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되는 일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의 지혜는 보증의 경솔함과 성급함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애정 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11:15,17:18.20:16,22:26,27:13). 만일 경솔한 마음에서 보증을 선 경웨는 그 올무에서 벗어 나기 위해 서 끈질기게 힘쓰라고 하였다. 즉 잠을 자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꼭 그 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데 마치 노루가 그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려고 하듯이 새가 그물을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쓰는 것 같이 힘쓰라고 하였다. 이같이 수고를 하지 않으려거던 그와 같은 경솔한 보증을 금하라고 암시적으로 지혜자는 교훈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마음에서 자신의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보증자가 되는 수가 있는데 아무리 마음으로 원하는 일일지라도 자기의 분수를 생각해서 신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뱀같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결론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보증을 잘못 서서 망했다고 하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 빚진자에게 보증을 서 주고 나서 당하게 되는 어려움에 대한 교훈은 굳이 잠언의 말씀 말고도 우리 생활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이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피부로 체험하게 되는 실패의 경험과 위험부담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이같은 문제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발생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보증의 문제는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없을 수가 없는 일인 것 같이 생각된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보증을 서 주지 않는다면 이웃과 친구와 어려운 이들에게 신뢰와 사랑이 무너진 사회가 되고 말것이다. 그래서 잠언의 지혜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 지혜로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증행위를 하되 무절제와 만용을 피하여 능력에 맞는 보증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성경
본문:요 1:29-34, 사 53:7 오늘 주일은 주현절 다섯째가 되는 주일이다. 현현(顯現, epiphany)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타남, 현시(顯示)를 의미한다. 아기예수가 성 전에 드려질 때 나이 많은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가리켜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리라고 예언한다(눅2:32). 주현절은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계절이며, 그 기간은 1 월 6일(주현절)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 수요일(Ash Wednesday)까 지 이어진다. 주현절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절기', 즉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 내신(계시하신)절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 말씀을 새기고 주현절의 의미를 살펴 보자. 세례요한은 세 가지 측면에서 예수님을 증거했는데,
첫째는 세상죄 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29절)으로,
둘째는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33절)로,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34절)로 증거했다. 이 중에 서 오늘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주현절의 의미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예수의 측면, 즉 요한이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증거한 말씀을 살펴 보기로 하자. 세례요한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들의 음성이 끊어지고 로마속국의 강압정책 으로 메시야의 대망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때 세례요한이 혜성처럼 광야에 나타나 회개를 외치면서 '예수님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다. 요한이 외친 회개는 메시야를 맞을 준비의 태도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어린 양'이라고 한 것은 요한이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이는 "유월절의 양,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를 보라'는 말의 의미를 양의 특성 몇 가지와 대비해 보며 그 의미를 살펴 보도록 하자.
첫째, 이 말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구약에 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그것이 양이든, 소이든, 비둘기든 할 것 없이 전부가 다 완전해야 했다. 그래서 양의 경우도 1년간 아무런 흠 이 없이 길러져야 했다. 그래야만 범죄자를 대신하여 양의 피를 흘려 죄인을 속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어린 양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 정적으로 완전한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의로운 요셉 아버지와 만 세에 복있는 자라고 칭함을 마리아 어머니 밑에서 양육받아 인격적으 로 완전하고 성장했으며 도덕적으로도 물론이려니와 사상과 생활 언어 에도 완전했다. 또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죽으신 것은 그 의 신앙의 완전성을 보여준다.
둘째, 이 말은 '온유한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이미 구약 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 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이사야53:7)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온유성을 예언하였다. 이 예언대로 그리스도는 이 땅 에서 그렇게 살았다. 그것의 증거는 그 당시 어른들이 무시했던 어린 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축복하신 것, 죄많은 여인과 세리와 죄인을 사랑으로 용납하시고 구원하신 것, 원수에게까지도 사랑과 은혜와 용서 를 베푸시고 온유로 대하신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마태 11:29) 고 말씀하셨고, 산상보훈의 8복에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 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교훈하셨던 것이다.
셋째, 이 말은 '희생한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즉 희생당 한 양이신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이다. 구약의 어린 양은 하나님 앞에 무조건 희생의 제물로 드려지는 양이었던 것이다. 본래 양은 희생하는 동물이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신 대속의 완전한 희생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체 험한 바울은 "우리중에서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롬 14:7, 12:1)고 하 였다. 결국 오늘 설교의 제목인 "보시오, 하나님의 아들을"은 인간들을 향 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정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제물로 쓰일 양을 흠이 없도록 정성을 들여 기르고 제사장의 검인을 받은 후 완전함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어린 양,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과 예비하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은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없는 의미의 속죄 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구약에서 죄인이 드려 야 하는 어린 양은 모든 사람이 다 각기 드려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양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주로 따르면 영원히 속죄와 축복과 영광을 얻게 된다.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정확히 보고 믿어서 감격으로 증거해야 한다. 그리하여 요한은 그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늘 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 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 리고 또 세례요한 자신이 제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희생의 제물, 특히 유월절 희생의 양을 잘 알고 있어서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받을 희생과 고난을 통해 그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사랑, 희생, 고난, 영광 중에 승리하실 것임을 요한이 미리 보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새로워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계시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워져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 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말씀의 계시를 통해 일어났다. 주현절을 맞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보시오, 하나님의 아들을"하고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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