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렘1:11-19,고후4:16-18)
본문
요즈음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 가운데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들이 쓴 영화평을 보았습니다. 트루먼이란 30살 난 남자가 있는데, 간호사인 아내와 살고, 보험회사에 서 일을 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익사현장을 목격한 뒤 물에 대한 공포증 이 생겼지만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죽은 아버 지가 살아오고, 난데없이 하늘에서 조명등이 떨어지는 등 이상한 일들이 일 어나면서 트루먼은 의심해 본 적 없는 일상에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니 트루먼은 태어날 때부터 방송사에 의해 길러져왔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까지 조정되는 거대한 스튜디오 마을에 갇혀 곳곳에 숨겨진 5 천여 대의 카메라를 통해 그의 24시간이 365일 전세계에 생중계 되어 왔습니다. 무려 30년을 애인, 친구들, 길거리 행인까지 모두 연기자들 속에 진 짜이자 가짜인 생을 살아온 셈입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트루먼 쇼란 TV프로그램이었습니다. 트루먼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과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 든 것은 철저하게 연출된 것들입니다.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조작되고 다듬 어진 모습일 뿐입니다. 트루먼 자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가공된 상 황에서 사는 트루먼,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 그 사이에서 진실은 무엇이 며 어디에 존재하는가 상황을 연출하는 자는 누구인가 영화 평론가 조희문 교수는 "주인공 이름이 '트루먼' 즉 '진실한 인간'(True man)인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진실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 미 디어가 생활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시대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자 아를 찾는 일이 가능한가 꿈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트루먼이 란 주인공을 통해 던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하였습니다. 또 다른 영화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는 포화상태에 이른 매스미디어에 대한 풍자가 돋보이는 이색적인 코미디물이다. 피터 위어 감독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모 든 것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 미디어의 자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었 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란 무대 위의 주인공이란 말을 비틀어놓은 것 같은 영화의 설정은 극단적이면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전혀 딴 세상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텔레비전, CCTV, 케이블, 몰래카메라, 위성… 등등 사람들은 지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디어를 만들었지만, 이젠 미디어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고 있다. 이 영화가 결코 웃기지마는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시대 우리는 흔히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대인의 이런 맹신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 진 현대인을 속이기는 더욱 쉬운 것입니다.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보여주기 만 하면 덮어놓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현대인의 약점을 100% 이용하여 미디어를 조작하여 여론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이 끌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인들은 이런 약점을 적극 활용하여 광고에 수십 억씩의 돈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진실인가 컴퓨터나 그 밖의 특수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실상인지 허상인지를 가리기조차 어렵고 무엇이 진실인가를 분별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주라기 공원이나 타이타닉같은 영화들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진짜'라는 확신을 가볍게 뒤집어버린 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TV에서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가짜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미디어를 조정하고 있는 사람에 따라 우리는 웃고 울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신문을 보고 TV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수 없는 광고판과 전광판을 보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 드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결국은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 라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조작되고 조정되고 있는 삶을 살 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최근에 "총풍"(銃風)이라는 괴상한 용어를 자주 듣고 보고 있습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기기 위해 북한 사람들에게 판문 점에서 총격사건을 일으켜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과거 우리 역사 속에서 국내에 정치적 어려 움이 있을 때마다 북한의 도발적 사건들이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조작된 것인지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 같은 힘있는 언론들이 대통령 만들기를 한다든 지 우리 사회의 보수적 경향을 더욱 부추기면서 장사하기 위하여 과거 독재 자들을 미화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양 꾸미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언론의 장사 속에 말려들어 그 매체를 살찌게 만들어 주 고 그들의 조정에 의해 우리는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강준만은 언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위선과 기만. 그게 오늘날 한국 언론의 본질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바로 언론이다. 언론은 겉으로는 늘 고상한 말씀을 하고 이 사회를 꽤나 걱정하는 것 같지만, 속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가 강한 보수적 이념성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애국하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조선일보가 제 딴엔 애국적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상업적이면서 보수적이 라는 건 모순이다. 어느 나라든 보수 신문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재력에 의존 해 살아가지, 우리 나라처럼 시장에 기대어 살아가지는 않는다. 조선일보 에겐 이념마저도 팔아먹을 수 있는 상품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 데칼트라는 철학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진실인가, 아니 보이는 것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게 의 심하기 시작하니까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진짜 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던 철학자는 마침내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의심 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거기서 나온 유명한 말이 "cogito ergo sum" 즉 "내가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철학자처럼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살 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그냥 의심 없 이 받아 드리면서 살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 주인공 트루먼 과 같이 우리는 조정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 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실이 아닌 가짜의 삶을 산다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 니까 더구나 그것이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에 조정에 의해서 꾸며진 삶이라 면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마술을 구경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눈속임의 기술입니다. 감쪽같이 눈속임을 하여 진짜처럼 보이게 만 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런 마술의 속임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눈은 속기 쉽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술(魔術)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사실들이 진짜가 아닌 마귀가 진짜처럼 믿 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름입니다. 잃어버린 진실을 찾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의 보이는 삶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은 인간이 타락하면서부터입니다. 진짜 혹은 진실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원 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진실이 있는데 그 하나님을 떠날 때 우리는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타락하게 한 이후 우리는 진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거짓 위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우리의 삶은 사실상 모두가 허상(虛像)이었습니다. 우리로 진실이라고 믿게 하였던 모든 것이 결국은 진실이 아닌 가짜였던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을 찾게 하시 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요, 생명"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그에게 연결될 때 우리의 삶은 진실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고린도후서 말씀에 보면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 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는 것'은 대체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당하는 고난을 뜻합니다. 그러나 결국 고난으로 일관된 우리의 삶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시 적이란 말입니다. 일시적이란 것은 결국 진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진짜는 일시적일 수 없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진짜인데, 보이는 것은 일시 적인 것 즉 진실이 아닌 가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는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 거기에 진실이 있으며, 거기에 진정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참되게 하는 영의 세계,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앞에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 보이지 않지만 우리 속에 역사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드릴 대 우리는 진실을 되찾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가짜가 아닌 진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신앙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삶이 보이는 것에 의해 지배되고 조정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에 돌려지지 않고 보이는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 4:18을 공동번역으 로 보면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 예언자로 불러 세우신 예레미야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는 두 가지 환상을 보았습니다. 북쪽에서 기운 끓는 가마솥과 살구나 무 가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대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내다본 것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의 꿈에 젖어 있을 때 예레미야는 닥쳐오는 환 난의 시대를 내다 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무엇을 보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경제위기 시대의 어려운 상 황만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정신 차리지 못하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문명을 바라보고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TV와 신문을 비롯한 온갖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이미지를 보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지를 묻고 계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작은 것 작은 자가 귀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큰 길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그 길로 나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작은 길에 생명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부자 가 좋은 것이라고 믿고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하여 지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가난한 자들이 것이라고 하셨 습니다. 우리는 권력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 방 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가 우리의 삶의 전부라고 믿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원 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제까지 보이는 것에만 고정되었 던 우리의 눈을 들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를 가두어 놓았던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보다 넓은 영의 세계를 바라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매스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진짜 같은 가짜에 속 지 말고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영적 환상을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에 길들여진 우리의 머리로 성경을 볼 때 가짜처럼 보이고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 아 거듭나면 거꾸로 보이는 세계가 가짜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진짜임 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철야를 하 면서 밤에 기도하는 것은, 밤은 모든 보이는 세계를 어둠 속에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우리는 비로소 그 보이는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여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없었던 깜깜한 시절의 사람들이 보다 영적이었지 않았나 생각 해 봅니다. 오늘날처럼 불을 밝히고 TV를 켜 놓은 상태에서 우리의 영은 보 이는 것에 의해 지배되면서 점점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깜깜한 밤에 철야를 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전에 보지 못하였던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 주시며,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보이는 세계가 얼마나 허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이제까지의 관념을 바꾸십시 오. 보이는 세계는 잠깐이요, 거기에는 온갖 거짓이 깃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특히 온갖 매체들에 의해 우리의 삶이 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무한한 영의 세계를 보도록 힘써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그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진실 해지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이 땅의 재물과 권력이 얼마나 무상하 고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 땅의 거짓과 허상과 불 의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진실을 이 땅에 밝혀 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결국은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 라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조작되고 조정되고 있는 삶을 살 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최근에 "총풍"(銃風)이라는 괴상한 용어를 자주 듣고 보고 있습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기기 위해 북한 사람들에게 판문 점에서 총격사건을 일으켜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과거 우리 역사 속에서 국내에 정치적 어려 움이 있을 때마다 북한의 도발적 사건들이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조작된 것인지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 같은 힘있는 언론들이 대통령 만들기를 한다든 지 우리 사회의 보수적 경향을 더욱 부추기면서 장사하기 위하여 과거 독재 자들을 미화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양 꾸미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언론의 장사 속에 말려들어 그 매체를 살찌게 만들어 주 고 그들의 조정에 의해 우리는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강준만은 언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위선과 기만. 그게 오늘날 한국 언론의 본질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바로 언론이다. 언론은 겉으로는 늘 고상한 말씀을 하고 이 사회를 꽤나 걱정하는 것 같지만, 속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가 강한 보수적 이념성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애국하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조선일보가 제 딴엔 애국적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상업적이면서 보수적이 라는 건 모순이다. 어느 나라든 보수 신문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재력에 의존 해 살아가지, 우리 나라처럼 시장에 기대어 살아가지는 않는다. 조선일보 에겐 이념마저도 팔아먹을 수 있는 상품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 데칼트라는 철학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진실인가, 아니 보이는 것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게 의 심하기 시작하니까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진짜 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던 철학자는 마침내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의심 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거기서 나온 유명한 말이 "cogito ergo sum" 즉 "내가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철학자처럼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살 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그냥 의심 없 이 받아 드리면서 살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 주인공 트루먼 과 같이 우리는 조정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 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실이 아닌 가짜의 삶을 산다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 니까 더구나 그것이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에 조정에 의해서 꾸며진 삶이라 면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마술을 구경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눈속임의 기술입니다. 감쪽같이 눈속임을 하여 진짜처럼 보이게 만 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런 마술의 속임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눈은 속기 쉽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술(魔術)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사실들이 진짜가 아닌 마귀가 진짜처럼 믿 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름입니다. 잃어버린 진실을 찾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의 보이는 삶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은 인간이 타락하면서부터입니다. 진짜 혹은 진실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원 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진실이 있는데 그 하나님을 떠날 때 우리는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타락하게 한 이후 우리는 진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거짓 위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우리의 삶은 사실상 모두가 허상(虛像)이었습니다. 우리로 진실이라고 믿게 하였던 모든 것이 결국은 진실이 아닌 가짜였던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을 찾게 하시 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요, 생명"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그에게 연결될 때 우리의 삶은 진실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고린도후서 말씀에 보면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 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는 것'은 대체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당하는 고난을 뜻합니다. 그러나 결국 고난으로 일관된 우리의 삶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시 적이란 말입니다. 일시적이란 것은 결국 진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진짜는 일시적일 수 없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진짜인데, 보이는 것은 일시 적인 것 즉 진실이 아닌 가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는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 거기에 진실이 있으며, 거기에 진정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참되게 하는 영의 세계,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앞에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 보이지 않지만 우리 속에 역사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드릴 대 우리는 진실을 되찾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가짜가 아닌 진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신앙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삶이 보이는 것에 의해 지배되고 조정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에 돌려지지 않고 보이는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 4:18을 공동번역으 로 보면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 예언자로 불러 세우신 예레미야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는 두 가지 환상을 보았습니다. 북쪽에서 기운 끓는 가마솥과 살구나 무 가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대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내다본 것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의 꿈에 젖어 있을 때 예레미야는 닥쳐오는 환 난의 시대를 내다 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무엇을 보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경제위기 시대의 어려운 상 황만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정신 차리지 못하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문명을 바라보고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TV와 신문을 비롯한 온갖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이미지를 보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지를 묻고 계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작은 것 작은 자가 귀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큰 길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그 길로 나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작은 길에 생명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부자 가 좋은 것이라고 믿고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하여 지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가난한 자들이 것이라고 하셨 습니다. 우리는 권력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 방 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가 우리의 삶의 전부라고 믿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원 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제까지 보이는 것에만 고정되었 던 우리의 눈을 들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를 가두어 놓았던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보다 넓은 영의 세계를 바라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매스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진짜 같은 가짜에 속 지 말고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영적 환상을 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에 길들여진 우리의 머리로 성경을 볼 때 가짜처럼 보이고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 아 거듭나면 거꾸로 보이는 세계가 가짜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진짜임 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철야를 하 면서 밤에 기도하는 것은, 밤은 모든 보이는 세계를 어둠 속에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우리는 비로소 그 보이는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여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없었던 깜깜한 시절의 사람들이 보다 영적이었지 않았나 생각 해 봅니다. 오늘날처럼 불을 밝히고 TV를 켜 놓은 상태에서 우리의 영은 보 이는 것에 의해 지배되면서 점점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깜깜한 밤에 철야를 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전에 보지 못하였던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 주시며,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보이는 세계가 얼마나 허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이제까지의 관념을 바꾸십시 오. 보이는 세계는 잠깐이요, 거기에는 온갖 거짓이 깃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특히 온갖 매체들에 의해 우리의 삶이 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무한한 영의 세계를 보도록 힘써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그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진실 해지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이 땅의 재물과 권력이 얼마나 무상하 고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 땅의 거짓과 허상과 불 의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진실을 이 땅에 밝혀 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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