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 (히11:24-31)
본문
반갑습니다. 히브리서11장 믿음의 장을 통해서 계속해서 믿음의 인물들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인물들을 살펴가면은 그 배경이 구약성경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을 동시에 공부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11장23을 통하여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24절에서 26절 말씀을 통하여 거절과선택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칭함을 거절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바로의 뒤를 이어서 애굽의 왕이되는 대권! 그 대권을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좋은 환경과 부유함을 거절했습니다. 갈대상자안에서 목이말라죽든지, 아니면 굶주려 죽든지 아니면 악어의 밥이 될지 모르는 자신을 건져서 지금까지 가르치며 교육시키며 왕자의 권위를 부여해 주었던 자기의 어머니 곁을 떠나기는 정말 어려웠지만, 그러나 그것마저도 거절한 모세였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그의 어머니 가슴에 배은망덕이라는 그런 못을 박고, 떠나야 했던 그 모세! 그러나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할수있었던 이유중에 한가지는 상주시는 이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늘의 그 큰 상급을 바라보고 이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하늘의 상급에 비교해 볼 때 비교가 되지 않으므로 상주시는 이심을 바라고보고 모세는 거절하고 선택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가 오늘 본문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27절 말씀을 같이 한 번 읽겠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애굽을 떠났다’ 이 이야기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았다라는 것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가 애굽을 떠났습니다. ‘애굽을 떠났다’이것은 세상을 떠났다 죄악을 떠났다라는 말입니다. 애굽을 떠나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우리가 죄악을 떠나기가 세상을 떠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날마다 노력하고 기도하지만 우리가 죄악된 세상을 떠나기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거기에는 마귀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모세가 애굽을 떠날려고 할 때에 바로왕이 그 백성들을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 지팡이를 통하여 모든 하수가 피가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모든 물들이 피로 변하여진 것 입니다. 그러나 강팍한 바로는 백성들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많은 재앙들을 바로왕 앞에 보여줍니다. 개구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개구리가 나타나서 침상에 떡반죽그릇에 온 지경에 개구리떼가 나타나니까 살아갈수가 없는 것 입니다. 그러할때에 바로왕은 ‘그래 내가 너희를 놓아주겠다’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그 개구리떼를 거두어 가면은 또 그 약속을 변경을 합니다. 그래서 이떼가 일어나고 독종이 일어나고 많은 생축들이 죽고 어둠이 일어나고 파리떼들이 일어나고 많은 그런 재앙을 하나님께서 바로왕 앞에 보여줬습니다. 그럴때마다 바로는 약속을 합니다. “그래 이제는 가라” “언제가면 되겠습니까” “내일가라” 가기는 가되 멀리는 가지마라 계속해서 약속은 해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의 처음 태어난 것 사람과짐승을 막론하고 처음태어난 것을 죽이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제 바로는 두손을 들고 모세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기로 결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바로가 교묘하게 이 모세에게 타협하는지, 다시말씀드리면 이 마귀의 세력이 오늘날 우리성도들을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와 타협해 오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배경이되는 출애굽기 8장 25절에 보면 이렇게 바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이 땅에서 모세가 말합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그리함은 불가합니다. 어떻게 모세가 이렇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겠나이다.” 이제 바로가 말합니다. 광야에서 희생을 드리는 것은 좋은데 너무 멀리는 가지마라 멀리 안가야 잡아올수 있으니까 너무 멀리는 가지마라 그리고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남녀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바로가 말하기를 너희 남정만 가서 너희 남자들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그렇게 또 말을 합니다. 또 이제 작전을 바꾸어서 이제 어린이는 데려가고 양과 염소는 그냥 두고가라 이렇게 합니다. 그 재앙이 있을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양보하면서 이제 바로는 모세와 타협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세가 말하기를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내와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재산 모두를 다 가지고 가겠습니다. 완전히 다 가져가겠습니다. 이렇게 바로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나니깐 바로가 하는 말이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마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죽이겠다는 위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는 지금 모세와 타협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타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은 많은 환란을 주었을 때 핍박을 주었을때는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타협에는 다 넘어갔습니다. 신사참배앞에서는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넘어간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넘어간 것이 아니라 타협에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이런 핍박보다 타협이 얼마나 무섭고 우리를 넘어뜨리는지 모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그렇게 타협하고 있습니다. 희생을 드리지 말라가 아닙니다. 희생을 드려라 희생을 드리되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똑같이 우리에게 유혹이 있습니다. 타협이 있습니다. 예수믿기는 믿어라 예수믿기는 믿되 열심히 믿지는 말아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되는대로 믿으면 되지 않나! 주일날 낮예배만 가면되지 저녁예배는 무엇이고 수요예배는 무엇이고 또 새벽기도는 무엇이냐! 거기에 심야기도는 또 무엇이냐! 이렇게 우리에게 회유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일 공예배에 모든 모임에 많이 참석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에 성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도 자발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 ! 재미가 없습니다. 피곤합니다. 우리가 모든 공적인 모임에 열심히 참석할때에 우리의 신앙에 성장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자발적인 신앙생활을 할수 있지 그렇지 아니하면은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은 우리에게 환란과 시험이 올때에 유혹이 올 때 핍박이 올 때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예배시간에 열심히 참석해서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켜나가야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받지 아니하고 교육을 받지 아니하면은 우리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영향보충을 받지아니하면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시간마다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우리가 정상적인 신앙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가 있다는 것 입니다. 바로의 첫 번째 타협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이 땅에서 드리라는 것 입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대로 예수를 믿기는 믿되 옛날에 하던 것 그대로 하라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말은 예수를 믿기전하던 것 그대로 가지고 하라는 것 입니다. 주일날 결혼식 있으면 결혼식 가라 예배는 뒷전이고 결혼식가라는 것입니다. 주일날 친구들 모임에 등산이 있으면 등산부터 가라 옛날에 하던 것 그대로 하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 입니다. 조금전에 장로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런말을 하셨죠! 제가 오늘 이런말씀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어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특히 신도시에 있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양육할때에 너무 부드럽게 양육한다고 합니다. 지옥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헌금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죄악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저 희망적인 이야기! 삶의 희망을 주는 그런 이야기들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온실속에서 자란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툭 치면은 삐짐 그러죠! 삐낀다는 이야깁니다. 삐져서 안옵니다. 다른 교회 갑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의 병이 무엇이냐하면은 어떻게하든지 부드럽게 부드럽게 해서 나중대면 신앙이 성장될 것 아니냐 그래서 죄악이나 지옥이야기나 헌금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드럽게 양육시켜 놓으니깐 조금만 건드려도 삐짐하고 안옵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그만큼 힘이드는 것 입니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봐도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안오 면 않오죠. 하나님 말씀은 있는대로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 떠나가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해가지고 떠나가면 할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책임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기는 믿되 옛날에 하던 것 그대로 가지고 하라’ 두 번째 타협안은 무엇입니까 ‘가기는 가되 멀리 가지마라’ 세상영역 가까이 있으라 세상의 것 즐기면서 세상의 부귀영화 맛보면서 깊숙히 들어가지 마라 교회에 깊숙히 들어가면 골치아프다. 골치아프지만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야만 신앙에 성장이 있고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일을 우리가 교회에서 이끌어 나가야 되지 멀리서 예배만 참석하고! 아닙니다. 골치아파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들을 정말 방위병으로 키우기를 원치않고 특공대처럼 공수부대처럼 해병대처럼 정말 그 철조망밑에서 폭탄이 날아드는 그런곳에서 포복을 하며 기어 다니는 훌륭한 군인으로 양성하시기를 원하는 것이지 동사무소에 앉아가지고 낮잠자면서 그런 방위병은 원치않는 것 입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실때에 어느것을 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타협하고 있습니까 너희 남정네만 가라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너희 남정네만 가라가 아니라 부인네만 가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회는 너희 부인네만 교회를 가라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분은 여기까지 아내를 태워주고는 너희 부인네만 가라하고 집에 가버립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은 것을 볼수 있지 않습니까 너희 부인네만 가라 예수 믿으려면 너혼자 믿지 왜 시집식구들을 다 전도할려고난리냐! 너혼자 믿게 해주는것도 고마운 일이지! 왜 자꾸 쑤시느냐! 너희 남정네만 가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양을 남겨두고 가라 ! 재산을 남겨두고 가라! 교회가는 것은 좋은데 헌금은 하지마라는 것 입니다. 헌금은 하지 마라 !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교회에는 조금 재정적으로 빚이 많으면은 부흥회를 합니다. 유명한 부흥사를 모시고 와서 은혜를 끼치고 마지막에 작정하지 않습니까 헌금작정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빚도 갚고 하는데 그걸 왜 그렇게 합니까 교회가 그렇게 헌금을 강조하면은 그건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교회목사가 헌금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스스로 헌금하는것이지 왜 외부 강사를 모셔가시고 헌금전문적인 강사를 모시고 하느냐는 말 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는 헌금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우양만 남겨두라 이런 헌금에 관계되는 본문이 나와도 슬슬 넘어가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헌금이야기하면 성도님들이 싫어 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기도하라는 말씀이 나오면 기도하라고 가르쳐야죠! 찬송하라! 설교를 열심히 들으라 ! 그런 내용들이 나오면 가르치는것과 마찬가지로 헌금이야기가 나오면은 있다고 우리는 가르쳐야 됩니다. 그걸 넘어가면은 용기있는 목회자가 못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성적인 것을 가르친다하면서 터부시하고있지 않습나까그러나 가르쳐야 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가르치면 안되죠! 그래도 처음오는 분들이 교회에 헌금하는 모습들을 보고 헌금 설교하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어서 안온다고 합니다. 안오면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말씀을 바로 가르치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아서 못오면 예수 못믿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꾸 가르치고 이렇게 설명을 시켜 줘야 되죠! 그렇다고 그것이 겁이나서 안가르치면 안된다는 것 입니다. 지옥이야기 한다고 싫어서 안오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옥이야기를 가르쳐야 되는데 그것이 핵심인데 그것을 넘어가면 어떻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가르치고 가르치다보면은 세상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말씀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할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그사람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어떠한 하나님 말씀도 다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러므로 말씀있는 그대로를 가르치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는 모세와 타협합니다. 멀리는 가지마라 이 땅에서 하여라 너희 남정네만 가라 우양만 남겨두고 가라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나의 자녀와 나의 아내와 나의 재산을 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세! 모세가 어떻게 이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믿음이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는 애굽을 떠나는 자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자입니다. 애굽을 떠나되 멀리 떠나는 자입니다. 완전히 떠나는 자입니다. 온 가족을 다 데리고 떠나는 자입니다. 우양을 가지고 떠나야 하는 것 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을 입었으면은 구석을 쫓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우리가 바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수가 없습니까 우리는 떠날 수 없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보이지 아니하는 그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떠날수가 있습니다. 모든 타협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편에 붙잡혀서 세상의 것 다 버리고 성도로써의 의무를 우리가 감당할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옵기는 우리가 세상의 모든 타협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편에 붙잡혀서 세상의 것 다 버리고 성도로서의 의무와 사명을 다 감당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자”는 두려워 하지 않는 자입니다. 우리가 느헤미야를 통해서도 이러한 내용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자”는 두려워 하지 않는 자입니다. 모세가 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분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27절을 우리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하여 참았으며, 왕 앞에 설때에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그 왕앞에 엎드려 있으면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왕의 그 화내는 모습 때문에 고개를 들수도 없고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왕앞에 있을 때에 그 위헙이 무서워서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때론 왕의 타협안에 귀가 솔깃해서 ‘그래 이정도면 되겠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중에 하나를 두려워며 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든지 사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든지 둘중에 우리는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을 겁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겁을 내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 내가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주께서 내편에 계시니 사람들이 내게 어찌할꼬” 이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홍해바다앞에서 혼란속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앞에는 홍해바다가 넘실거리고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들이 창과칼을 들고 이제 잡으러 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쌓여 있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모세여!애굽의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렇게 이 광야에 파 묻으려 하느냐! 그런 원망과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럴때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홍해바다에 넘실거리는 물결이두렵지 않습니다. 바로의 군사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보이지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아라고 이미 모세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것 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것도 두렵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소리로 자신있게 두려워 말라고 조금후에 결과가 나타날터인데 두려워 말라고 해가지고 만약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 아니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자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능력을 믿었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조금후에 결과가 들어날 일을 가지고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할려고 할 때에 우리의 인생의 향로를 통해서 우리의 배가 나아갈때에 풍랑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어떠한것도 두렵지 아니하고 승리하며 살아갈수가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편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소부제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디든지 계시고 무엇이든지 하실수 있는 전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권력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핍박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러한자를 감당치 못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엄습하는 그런 환란이 있다고 할 때에 우리에게 총,칼을 들고 와서 예수를 못 믿게 한다고 할 때에 여러분 자신 있습니까 저는 자신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승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여러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 말씀에 보면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도다”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히브리서13장6절에 보면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하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분을 바라보고 살아가는데 사람이 어찌 내게 하리요 로마서 8장 31절 말씀 “만일 하나님이 우릴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모세의 시선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모세가 바로왕의 권세를 보았더라면 바로의 군사를 보았더라면 자기를 원망하고 짜증내는 그 무지한 자기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바라보았더라면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이것으로부터 승리 할수 있었던 것 입니다.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않는 자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 세상의 어떠한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미리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 녹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저사람 존녹스는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두려워 하지않는 사람이다.‘녹스의 무릎 꿇는기도는 십만대군보다 더 무섭도다라고 했습니다. 존 웨슬레는 말했습니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는 사람 200명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세계를 주님앞에 드리겠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 200명만 있으면 이 세계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녀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자녀는 세상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정말 큰 일을 냅니다. 큰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를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는 자녀로 양육시켰을 때 그 자녀가 이 세상에서 한 번 큰 일을 낼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했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옥중에서 총,칼에 맞아 죽어서 톱에 썰려서 여러모양으로 죽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대로 루마니아에 레스코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예수믿는것 때문에 잡혀왔습니다. 많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디있냐고 고문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때에 이 고문하던 사람들이 아들 알랙산더를 데리고 왔습니다. 14살아들입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 아들을 고문합니다. 거꾸로 매달아서 채찍을 할 때에 그 참던 아버지는 그것을 보지 못해서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때에 아들이 “아버지! 아버지는 예수님의 반역자가 되진 마십시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고통도 두렵지 않습니다. ” 그리하여 아버지는 그의 아들의 용기를 보고 끝까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아들을 때립니다. 그 피가 은근히 지하 바닥에 고였다고 합니다. 결국은 거꾸로 매달려서 채찍에 맞아서 그 아들도 죽고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왜 이러한 고통 이러한 어려움을 감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답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보았기떄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두려움이 없어졌으며 고통도 사라졌으며 그 모든 것을 승리하며 견딜수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랄 바라보므로 세상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녀들을 양육하여 정말로 우리 성도의 책임을 감당하고 교회의 책임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려야 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면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자는 구원의 길을 믿습니다. 무슨말입니까 우리가 28절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귀한 은혜가 있습니다. 이제 바로가 끝까지 보내주지 아니하니깐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는 그러한 재앙을내립니다. 그래서 양들을 잡아가지고 그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놓은 집은 죽음의 신이 넘어 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양을 잡지 아니하고 피를 뿌리지 아니한 집은 죽음의 신이 들어가서 처음 태어난 것은 다 죽여버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어느집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우리 양을 잡읍시다. 양을 잡아야 됩니다. 양을 잡지 않으면 오늘 우리 철수가 죽습니다.” “허허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미신을 믿고 있느냐! 잡을려면 당신혼자 잡으라구” 그 아내의 간절한 소원들 들어주지않고 그 아버지는 양을 잡지 아니하였습니다. 아침에 그 집에는 초상이 일어났습니다. 울고불고 아들이 죽었다고난리인 것 입니다. 어느 한집은 이런 일이 있습니다. 부부가 잡을 생각을 안합니다. 그 집 맏아들이 동네에서 놀다가와서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아버지! 어머니! 우리 양을 잡았나요 ” “그건 무슨이야기야 내 친구 철수 집에는 양을 잡던데요” “왜 잡는데 잔치하느냐” “아닙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발라야 된되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데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아버지! 아니예요 정말 철수 집에는 양을 잡았어요! 피를 막 바른데요!” “그런소리하지마라! 아버지가 다 알아서하마! 아버지만 믿어라! 아버지가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똑똑한데 내 아들아! 걱정하지마라” 그 아들의 간절한 그 소원! 그 말을 들어주지아니하고 잘난 그 똑똑한 아버지 때문에 그다음날 그집에도 그 아들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낍습니까 우리 하나님 우리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바르면 살아난다는 것 보지 못했습니다. 믿을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아버지 양을 잡았나요” “그럼 잡았지!” “피를 발랐나요” “피를 발랐지!” “여보 피발랐어요” “걱정하지마”그리고 잠을 잤습니다. 얼마나 그 다음날 찬란한 태양과함께 행복의 찬송이 얼마나 넘쳐흘렀겠습니까 그러나 그집에는 양을 잡았지만 “한번 잡아나 보자! 뭐 우리가 고기는 먹어도 되니까 헛수고는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잡아놓고는 피를 바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집에도 초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는 믿되 한 번 믿어보자! 그러나 제대로 믿지 아니하고 그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전도할때에 “천천히, 이 다음에 믿을께”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마틴루터가 이런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루는 그 사탄이들이 이세상을 정복하러 내려옵니다. 기독교인들을 정복하러 내려 옵니다. 그때에 대장이 말했습니다. 쫄개들 다세워놓고 “너희 세상에 가서 어떻게 사람들을 유혹할 것 이냐” 그중에 한 마귀가 말했습니다. “대장님! 나는 세상에 내려가서 하나님이 없다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겠습니다.” “그거 별로 좋은 방법아니야! 지금 사람들은 종교심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의지할려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설득력없는 이야기야” 또한 쫄개가 이야기 했습니다.“대장님 나는 이렇게 유혹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핍박을 가하겠습니다. 고문을 하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것도 쓸데없는 일이야 예수믿는 사람들은 핍박을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예수를 믿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나니 하면서 더욱 강하게 해오기 때문에 그 방법도 쓸게못돼” 그 때에 한 마귀가 이야기 했습니다. “대장님!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 예수를 믿기는 믿되 천천히 믿어라” “그렇지! 바로그거야!” 그래서 마귀들은 왁자지껄하면서 맞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박수를 치면서 그 마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내려와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천천히 믿어라! 천천히 믿어라! 내년에 믿어라!’ 그렇게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천천히 믿을려고 마음먹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정말로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서 우리의 남편들 가운데서 아내들 가운데서 우리의 친척들 가운데서 그러한 분들이 많이 있을 것 입니다.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는 미룰수가 없습니다. 망설일수가 없습니다. 전도를 우리가 지연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선교를 우리가 연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믿으며 자기의 지성과이성을 믿는 결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제시해 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문턱오고 가고 하지만은 또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이며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을 잡아놓았지만 피를 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그 어린보혈을 나의 가슴에 뿌리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망설이며 주저하며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피흘림과 피뿌림이 다릅니다. 피흘림의 사실을 아는것만 가지고 구원받지 못합니다. 흘려진 피를 자기집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야만 구원받을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 가셨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구원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나오신 여러분들이여! 아직까지 복음을 자세히 모르는 여러분들이여! 우리 마음에 문설주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려야 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준비시켜주셨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우리와 여러분을 위해서 오래전에 이미 예비된 거룩하고 험없는 어린양인 것 입니다. 세상죄를 지건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그랬잖습니까 그분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야 되는 것 입니다. 그분의 피를 우리 가슴에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자”는 그예수를 그 구원의 진리를 확실히 믿는자인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간다고 하면 넘어가는 것 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면 구원받는 것 입니다. 의심하지 마시고 그 예수를 그 보혈을 우리가슴에 뿌리시고 우리가슴에 영접할때에 우리가 구원받을수 있는 것 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27절말씀을 보면 애굽을 떠난다 그랬습니다. 27절에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28절에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는 자라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참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애굽을 떠나는 성도인 것 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성도입니다. 죄악을 떠나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어떠한것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그 피뿌린 그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우리가슴속에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떠나라고 애굽을 떠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셨습니까 구원의 길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믿고 받아드리고 실행하는 성도인 것 입니다. 어린양의 피흘림과 피 뿌림을 믿는 성도인 것 입니다. 어린양의 보혈의 구속함을 믿는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참 믿음을 소유하셔서 하나님앞에서 성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세상의 어떠한것도 두려워하지말고 오직어린양 예수를 가슴에 모시고 늘 기쁨과 평강과 즐거워하는 행복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제 바로는 두손을 들고 모세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기로 결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바로가 교묘하게 이 모세에게 타협하는지, 다시말씀드리면 이 마귀의 세력이 오늘날 우리성도들을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와 타협해 오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배경이되는 출애굽기 8장 25절에 보면 이렇게 바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이 땅에서 모세가 말합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그리함은 불가합니다. 어떻게 모세가 이렇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겠나이다.” 이제 바로가 말합니다. 광야에서 희생을 드리는 것은 좋은데 너무 멀리는 가지마라 멀리 안가야 잡아올수 있으니까 너무 멀리는 가지마라 그리고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남녀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바로가 말하기를 너희 남정만 가서 너희 남자들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그렇게 또 말을 합니다. 또 이제 작전을 바꾸어서 이제 어린이는 데려가고 양과 염소는 그냥 두고가라 이렇게 합니다. 그 재앙이 있을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양보하면서 이제 바로는 모세와 타협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세가 말하기를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내와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재산 모두를 다 가지고 가겠습니다. 완전히 다 가져가겠습니다. 이렇게 바로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나니깐 바로가 하는 말이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마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죽이겠다는 위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는 지금 모세와 타협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타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은 많은 환란을 주었을 때 핍박을 주었을때는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타협에는 다 넘어갔습니다. 신사참배앞에서는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넘어간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넘어간 것이 아니라 타협에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이런 핍박보다 타협이 얼마나 무섭고 우리를 넘어뜨리는지 모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그렇게 타협하고 있습니다. 희생을 드리지 말라가 아닙니다. 희생을 드려라 희생을 드리되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똑같이 우리에게 유혹이 있습니다. 타협이 있습니다. 예수믿기는 믿어라 예수믿기는 믿되 열심히 믿지는 말아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되는대로 믿으면 되지 않나! 주일날 낮예배만 가면되지 저녁예배는 무엇이고 수요예배는 무엇이고 또 새벽기도는 무엇이냐! 거기에 심야기도는 또 무엇이냐! 이렇게 우리에게 회유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일 공예배에 모든 모임에 많이 참석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에 성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도 자발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 ! 재미가 없습니다. 피곤합니다. 우리가 모든 공적인 모임에 열심히 참석할때에 우리의 신앙에 성장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자발적인 신앙생활을 할수 있지 그렇지 아니하면은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은 우리에게 환란과 시험이 올때에 유혹이 올 때 핍박이 올 때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예배시간에 열심히 참석해서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켜나가야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받지 아니하고 교육을 받지 아니하면은 우리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영향보충을 받지아니하면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시간마다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우리가 정상적인 신앙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가 있다는 것 입니다. 바로의 첫 번째 타협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이 땅에서 드리라는 것 입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대로 예수를 믿기는 믿되 옛날에 하던 것 그대로 하라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말은 예수를 믿기전하던 것 그대로 가지고 하라는 것 입니다. 주일날 결혼식 있으면 결혼식 가라 예배는 뒷전이고 결혼식가라는 것입니다. 주일날 친구들 모임에 등산이 있으면 등산부터 가라 옛날에 하던 것 그대로 하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 입니다. 조금전에 장로님께서 기도하실 때 그런말을 하셨죠! 제가 오늘 이런말씀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어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특히 신도시에 있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양육할때에 너무 부드럽게 양육한다고 합니다. 지옥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헌금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죄악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저 희망적인 이야기! 삶의 희망을 주는 그런 이야기들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온실속에서 자란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툭 치면은 삐짐 그러죠! 삐낀다는 이야깁니다. 삐져서 안옵니다. 다른 교회 갑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의 병이 무엇이냐하면은 어떻게하든지 부드럽게 부드럽게 해서 나중대면 신앙이 성장될 것 아니냐 그래서 죄악이나 지옥이야기나 헌금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드럽게 양육시켜 놓으니깐 조금만 건드려도 삐짐하고 안옵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그만큼 힘이드는 것 입니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봐도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안오 면 않오죠. 하나님 말씀은 있는대로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 떠나가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해가지고 떠나가면 할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책임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기는 믿되 옛날에 하던 것 그대로 가지고 하라’ 두 번째 타협안은 무엇입니까 ‘가기는 가되 멀리 가지마라’ 세상영역 가까이 있으라 세상의 것 즐기면서 세상의 부귀영화 맛보면서 깊숙히 들어가지 마라 교회에 깊숙히 들어가면 골치아프다. 골치아프지만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야만 신앙에 성장이 있고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일을 우리가 교회에서 이끌어 나가야 되지 멀리서 예배만 참석하고! 아닙니다. 골치아파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들을 정말 방위병으로 키우기를 원치않고 특공대처럼 공수부대처럼 해병대처럼 정말 그 철조망밑에서 폭탄이 날아드는 그런곳에서 포복을 하며 기어 다니는 훌륭한 군인으로 양성하시기를 원하는 것이지 동사무소에 앉아가지고 낮잠자면서 그런 방위병은 원치않는 것 입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실때에 어느것을 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타협하고 있습니까 너희 남정네만 가라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너희 남정네만 가라가 아니라 부인네만 가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회는 너희 부인네만 교회를 가라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분은 여기까지 아내를 태워주고는 너희 부인네만 가라하고 집에 가버립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은 것을 볼수 있지 않습니까 너희 부인네만 가라 예수 믿으려면 너혼자 믿지 왜 시집식구들을 다 전도할려고난리냐! 너혼자 믿게 해주는것도 고마운 일이지! 왜 자꾸 쑤시느냐! 너희 남정네만 가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양을 남겨두고 가라 ! 재산을 남겨두고 가라! 교회가는 것은 좋은데 헌금은 하지마라는 것 입니다. 헌금은 하지 마라 !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교회에는 조금 재정적으로 빚이 많으면은 부흥회를 합니다. 유명한 부흥사를 모시고 와서 은혜를 끼치고 마지막에 작정하지 않습니까 헌금작정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빚도 갚고 하는데 그걸 왜 그렇게 합니까 교회가 그렇게 헌금을 강조하면은 그건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교회목사가 헌금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스스로 헌금하는것이지 왜 외부 강사를 모셔가시고 헌금전문적인 강사를 모시고 하느냐는 말 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는 헌금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우양만 남겨두라 이런 헌금에 관계되는 본문이 나와도 슬슬 넘어가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헌금이야기하면 성도님들이 싫어 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기도하라는 말씀이 나오면 기도하라고 가르쳐야죠! 찬송하라! 설교를 열심히 들으라 ! 그런 내용들이 나오면 가르치는것과 마찬가지로 헌금이야기가 나오면은 있다고 우리는 가르쳐야 됩니다. 그걸 넘어가면은 용기있는 목회자가 못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성적인 것을 가르친다하면서 터부시하고있지 않습나까그러나 가르쳐야 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가르치면 안되죠! 그래도 처음오는 분들이 교회에 헌금하는 모습들을 보고 헌금 설교하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어서 안온다고 합니다. 안오면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말씀을 바로 가르치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아서 못오면 예수 못믿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꾸 가르치고 이렇게 설명을 시켜 줘야 되죠! 그렇다고 그것이 겁이나서 안가르치면 안된다는 것 입니다. 지옥이야기 한다고 싫어서 안오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옥이야기를 가르쳐야 되는데 그것이 핵심인데 그것을 넘어가면 어떻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가르치고 가르치다보면은 세상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말씀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할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그사람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어떠한 하나님 말씀도 다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러므로 말씀있는 그대로를 가르치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는 모세와 타협합니다. 멀리는 가지마라 이 땅에서 하여라 너희 남정네만 가라 우양만 남겨두고 가라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나의 자녀와 나의 아내와 나의 재산을 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세! 모세가 어떻게 이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믿음이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는 애굽을 떠나는 자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자입니다. 애굽을 떠나되 멀리 떠나는 자입니다. 완전히 떠나는 자입니다. 온 가족을 다 데리고 떠나는 자입니다. 우양을 가지고 떠나야 하는 것 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을 입었으면은 구석을 쫓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우리가 바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수가 없습니까 우리는 떠날 수 없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보이지 아니하는 그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떠날수가 있습니다. 모든 타협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편에 붙잡혀서 세상의 것 다 버리고 성도로써의 의무를 우리가 감당할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옵기는 우리가 세상의 모든 타협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편에 붙잡혀서 세상의 것 다 버리고 성도로서의 의무와 사명을 다 감당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자”는 두려워 하지 않는 자입니다. 우리가 느헤미야를 통해서도 이러한 내용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자”는 두려워 하지 않는 자입니다. 모세가 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분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27절을 우리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하여 참았으며, 왕 앞에 설때에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그 왕앞에 엎드려 있으면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왕의 그 화내는 모습 때문에 고개를 들수도 없고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왕앞에 있을 때에 그 위헙이 무서워서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때론 왕의 타협안에 귀가 솔깃해서 ‘그래 이정도면 되겠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중에 하나를 두려워며 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든지 사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든지 둘중에 우리는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을 겁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겁을 내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 내가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주께서 내편에 계시니 사람들이 내게 어찌할꼬” 이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홍해바다앞에서 혼란속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앞에는 홍해바다가 넘실거리고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들이 창과칼을 들고 이제 잡으러 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쌓여 있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모세여!애굽의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렇게 이 광야에 파 묻으려 하느냐! 그런 원망과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럴때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홍해바다에 넘실거리는 물결이두렵지 않습니다. 바로의 군사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보이지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아라고 이미 모세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것 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것도 두렵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소리로 자신있게 두려워 말라고 조금후에 결과가 나타날터인데 두려워 말라고 해가지고 만약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 아니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는자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능력을 믿었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조금후에 결과가 들어날 일을 가지고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할려고 할 때에 우리의 인생의 향로를 통해서 우리의 배가 나아갈때에 풍랑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어떠한것도 두렵지 아니하고 승리하며 살아갈수가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편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소부제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디든지 계시고 무엇이든지 하실수 있는 전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권력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핍박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러한자를 감당치 못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엄습하는 그런 환란이 있다고 할 때에 우리에게 총,칼을 들고 와서 예수를 못 믿게 한다고 할 때에 여러분 자신 있습니까 저는 자신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승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여러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 말씀에 보면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도다”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히브리서13장6절에 보면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하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분을 바라보고 살아가는데 사람이 어찌 내게 하리요 로마서 8장 31절 말씀 “만일 하나님이 우릴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모세의 시선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모세가 바로왕의 권세를 보았더라면 바로의 군사를 보았더라면 자기를 원망하고 짜증내는 그 무지한 자기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바라보았더라면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이것으로부터 승리 할수 있었던 것 입니다.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않는 자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 세상의 어떠한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미리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 녹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저사람 존녹스는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두려워 하지않는 사람이다.‘녹스의 무릎 꿇는기도는 십만대군보다 더 무섭도다라고 했습니다. 존 웨슬레는 말했습니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는 사람 200명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세계를 주님앞에 드리겠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 200명만 있으면 이 세계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녀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자녀는 세상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정말 큰 일을 냅니다. 큰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를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는 자녀로 양육시켰을 때 그 자녀가 이 세상에서 한 번 큰 일을 낼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했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옥중에서 총,칼에 맞아 죽어서 톱에 썰려서 여러모양으로 죽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대로 루마니아에 레스코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예수믿는것 때문에 잡혀왔습니다. 많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디있냐고 고문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때에 이 고문하던 사람들이 아들 알랙산더를 데리고 왔습니다. 14살아들입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 아들을 고문합니다. 거꾸로 매달아서 채찍을 할 때에 그 참던 아버지는 그것을 보지 못해서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때에 아들이 “아버지! 아버지는 예수님의 반역자가 되진 마십시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고통도 두렵지 않습니다. ” 그리하여 아버지는 그의 아들의 용기를 보고 끝까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아들을 때립니다. 그 피가 은근히 지하 바닥에 고였다고 합니다. 결국은 거꾸로 매달려서 채찍에 맞아서 그 아들도 죽고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왜 이러한 고통 이러한 어려움을 감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답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보았기떄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두려움이 없어졌으며 고통도 사라졌으며 그 모든 것을 승리하며 견딜수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랄 바라보므로 세상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녀들을 양육하여 정말로 우리 성도의 책임을 감당하고 교회의 책임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려야 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면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자는 구원의 길을 믿습니다. 무슨말입니까 우리가 28절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귀한 은혜가 있습니다. 이제 바로가 끝까지 보내주지 아니하니깐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는 그러한 재앙을내립니다. 그래서 양들을 잡아가지고 그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놓은 집은 죽음의 신이 넘어 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양을 잡지 아니하고 피를 뿌리지 아니한 집은 죽음의 신이 들어가서 처음 태어난 것은 다 죽여버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어느집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우리 양을 잡읍시다. 양을 잡아야 됩니다. 양을 잡지 않으면 오늘 우리 철수가 죽습니다.” “허허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미신을 믿고 있느냐! 잡을려면 당신혼자 잡으라구” 그 아내의 간절한 소원들 들어주지않고 그 아버지는 양을 잡지 아니하였습니다. 아침에 그 집에는 초상이 일어났습니다. 울고불고 아들이 죽었다고난리인 것 입니다. 어느 한집은 이런 일이 있습니다. 부부가 잡을 생각을 안합니다. 그 집 맏아들이 동네에서 놀다가와서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아버지! 어머니! 우리 양을 잡았나요 ” “그건 무슨이야기야 내 친구 철수 집에는 양을 잡던데요” “왜 잡는데 잔치하느냐” “아닙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발라야 된되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데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아버지! 아니예요 정말 철수 집에는 양을 잡았어요! 피를 막 바른데요!” “그런소리하지마라! 아버지가 다 알아서하마! 아버지만 믿어라! 아버지가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똑똑한데 내 아들아! 걱정하지마라” 그 아들의 간절한 그 소원! 그 말을 들어주지아니하고 잘난 그 똑똑한 아버지 때문에 그다음날 그집에도 그 아들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낍습니까 우리 하나님 우리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바르면 살아난다는 것 보지 못했습니다. 믿을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아버지 양을 잡았나요” “그럼 잡았지!” “피를 발랐나요” “피를 발랐지!” “여보 피발랐어요” “걱정하지마”그리고 잠을 잤습니다. 얼마나 그 다음날 찬란한 태양과함께 행복의 찬송이 얼마나 넘쳐흘렀겠습니까 그러나 그집에는 양을 잡았지만 “한번 잡아나 보자! 뭐 우리가 고기는 먹어도 되니까 헛수고는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잡아놓고는 피를 바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집에도 초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는 믿되 한 번 믿어보자! 그러나 제대로 믿지 아니하고 그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전도할때에 “천천히, 이 다음에 믿을께”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마틴루터가 이런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루는 그 사탄이들이 이세상을 정복하러 내려옵니다. 기독교인들을 정복하러 내려 옵니다. 그때에 대장이 말했습니다. 쫄개들 다세워놓고 “너희 세상에 가서 어떻게 사람들을 유혹할 것 이냐” 그중에 한 마귀가 말했습니다. “대장님! 나는 세상에 내려가서 하나님이 없다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겠습니다.” “그거 별로 좋은 방법아니야! 지금 사람들은 종교심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의지할려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설득력없는 이야기야” 또한 쫄개가 이야기 했습니다.“대장님 나는 이렇게 유혹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핍박을 가하겠습니다. 고문을 하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것도 쓸데없는 일이야 예수믿는 사람들은 핍박을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예수를 믿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나니 하면서 더욱 강하게 해오기 때문에 그 방법도 쓸게못돼” 그 때에 한 마귀가 이야기 했습니다. “대장님!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 예수를 믿기는 믿되 천천히 믿어라” “그렇지! 바로그거야!” 그래서 마귀들은 왁자지껄하면서 맞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박수를 치면서 그 마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내려와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천천히 믿어라! 천천히 믿어라! 내년에 믿어라!’ 그렇게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천천히 믿을려고 마음먹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정말로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서 우리의 남편들 가운데서 아내들 가운데서 우리의 친척들 가운데서 그러한 분들이 많이 있을 것 입니다.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는 미룰수가 없습니다. 망설일수가 없습니다. 전도를 우리가 지연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선교를 우리가 연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믿으며 자기의 지성과이성을 믿는 결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제시해 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문턱오고 가고 하지만은 또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이며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을 잡아놓았지만 피를 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그 어린보혈을 나의 가슴에 뿌리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망설이며 주저하며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피흘림과 피뿌림이 다릅니다. 피흘림의 사실을 아는것만 가지고 구원받지 못합니다. 흘려진 피를 자기집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야만 구원받을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 가셨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구원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나오신 여러분들이여! 아직까지 복음을 자세히 모르는 여러분들이여! 우리 마음에 문설주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려야 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준비시켜주셨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우리와 여러분을 위해서 오래전에 이미 예비된 거룩하고 험없는 어린양인 것 입니다. 세상죄를 지건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그랬잖습니까 그분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야 되는 것 입니다. 그분의 피를 우리 가슴에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자”는 그예수를 그 구원의 진리를 확실히 믿는자인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간다고 하면 넘어가는 것 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면 구원받는 것 입니다. 의심하지 마시고 그 예수를 그 보혈을 우리가슴에 뿌리시고 우리가슴에 영접할때에 우리가 구원받을수 있는 것 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27절말씀을 보면 애굽을 떠난다 그랬습니다. 27절에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28절에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는 자라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참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애굽을 떠나는 성도인 것 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성도입니다. 죄악을 떠나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어떠한것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그 피뿌린 그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우리가슴속에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떠나라고 애굽을 떠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셨습니까 구원의 길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믿고 받아드리고 실행하는 성도인 것 입니다. 어린양의 피흘림과 피 뿌림을 믿는 성도인 것 입니다. 어린양의 보혈의 구속함을 믿는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바라보는 참 믿음을 소유하셔서 하나님앞에서 성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세상의 어떠한것도 두려워하지말고 오직어린양 예수를 가슴에 모시고 늘 기쁨과 평강과 즐거워하는 행복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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