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를 질그릇에 (고후4:1-18)
본문
1. 1947년 2월에 사해 서쪽 여리고 남방 14km 지점에 있는 쿰란 마을 에서 보물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소년이 잃어버린 산양을 찾기 위하여 절 벽에 위치한 자연동굴에 들어갔습니다. 무서우니까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은 이 굴에서 십여 개의 옹기 단지 곧 큼직한 질그릇들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양피지에 글이 쓰여진 두루마리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의 첫 발견이었습니다. 사해문 서는 기원전 2세기 경에 복사된 성경사본으로서 이사야서, 시편 등이 들 어 있는 획기적인 성경연구사료입니다. 그후 고고학자들은 이 근방의 자 연동굴 2백개 이상을 파헤쳤으며, 그 중 11개의 동굴에서 옛 성경사본들 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두가 높이 65cm 정도의 질그릇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 발견한 목동 소년은 고물상에게 두루말이 한 개당 20파운드씩 받고 횡재한 줄 알았는데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가 고물상으로부터 한 개 25만 달러씩 주고 사들인 보물이었습니다. 가장 값싼 토기 속에 보물 이 들어있을 때, 이 질그릇은 엄청난 빛과 값어치를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을 질그릇, 곧 깨어지기 쉽고, 약하고, 가치없는 존재로 비유하고,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깃들일 때 새로운 존재 가 된다는 것입니다. 보물이 질그릇 속에 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가 능력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 같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할 때 가치있는 인 생, 보배로운 질그릇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남미 아마존 밀림에 평화봉사단으로 갔던 마이클 그리피드의 경험담입니다. 숲 속에서 이상한 그릇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인데 배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옛 원주민의 부엌도구 같기도 해서 일단 숙소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보아도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릇으로 쓰기엔 너무 길쭉하고 이미 썩어 빛깔도 나빴습니다. 더럽게 보 여 식기로 쓸 마음은 안 생겼습니다. 문밖에 버려 놓았더니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졌습니다. 그것으로 그 물건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후 1개월 뒤 계곡 마을에서 음악연주가 있었습니다. 옛 원주민의 악기를 연주하는 민속음악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이클 그 리피드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을의 한 소녀가 악기를 가지고 나와 옛 가락을 연주하는데 옛 하프였습니다. 놀란 것은 아름다운 그 음 악보다 하프 통이 자기가 내버린 그 쓸모없는 나무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체험에서 그리피드는 수필을 썼는데 그 제목이 '언제 너의 창조 자로 그의 음악을 너를 통해 연주시킬 것인가'입니다. 내가 무가치한 밥 통으로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고, 훌륭한 악기로서 아름다운 음악을 이웃 에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 갈래길은 나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당신의 음악을 연주하시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때 가치있는 한 인간의 생애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삶의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는 보배롭고 가치 있는 그릇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함받은 질그릇이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이 받은 직분은 복음 전도의 직분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영광스러운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복음 전도의 직분은 사람에게 생명과 구원과 의(義)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며, 또한 복음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 전도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사람 됨 됨이나 우리가 행한 어떤 공로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물로, 거 저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복음 전도의 영광스런 직분을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 백했습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 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 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 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이 교회에서 받은 직분과 사명은 영광스런 것입니다. 자기가 받 은 직분과 사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바울은 이 복음 전도의 직분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 도 낙심하지않았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으로 인해 살 소망 까지 거의 끊어졌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백했습니다.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 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 어지고." 바울은 큰 은사를 받고 다방면에 걸쳐 많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인간이었고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맡기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어느 설교자가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가인 알렉산더 휘트에게 자신의 직분을 포기하고 싶다는 편지를 써 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에 대해 휘트는 "설교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마오! 하늘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조차 당신의 위대한 일을 부러 워하고 있소!" 라고 답장을 써보냈습니다. 참으로 이 구원의 복음은 천사 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전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 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 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 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받은 직분은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복음, 그 복음의 중심이 되는 예수를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지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고후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의 종된 것을 전파했 습니다. 그는 오직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종으로써 사명에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예수를 전파하기만 하면 빛이 비추기 시작했 습니다. 마치 창세기 1장을 보는 듯 했습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 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 가운데 처한 인생들이 복음을 전해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창조의 빛으로 말미암아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사라지고 빛과 어두움이 나뉘어 질서가 회복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 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피플즈(Peaples)잡지에 가수 앤디 기브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1977년 19세의 청년이 호주로부터 미국에 와서 그의 레코드가 힛트했습니다. 첫 해에 2백만 달러, 이듬해엔 1백만 달러를 벌고, 그래미 상에 두 번 추천 되었습니다. 그의 음반이 1천 5백만 매 팔릴 때 겨우 21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마약을 시작했습니다. 기울어지는 것도 빨랐습니다. 85년에 병들고 86년에 파산하고 87년에 1백 5십만 달러의 빚을 진 채 외로히 죽 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망했는가 왜 약물을 의지했는가 그의 친구들 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공허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텅빈 마음, 이 공허를 무엇으로 채워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눈에 보이는데서 찾으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 면, 더 많이 가지면 채워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도서 지혜자는 행복 을 눈에 보이는데서 잡아보려는 인간은 일평생을 바람을 잡는 헛수고를 하며 걱정하다가 병들어 앓다가 화내다가 죽고 말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5:16)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 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전5: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 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이 세상에서 갖출 것 다 갖추었는데 왜 공허한 것인가 무엇이 빠져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빛 곧 예수 그리스도가 네 마음에 비취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나를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그 분에게서 너희는 사람이 보고 알 수 있는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3. 성도는 복음 전도의 영광스런 직분을 받았지만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이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그릇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그 질그릇 안에 담겨 있는 보배입니다. 사도 바울 은 복음을 가리켜 바로 보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가리켜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 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릇이 중요하고 가치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깨끗해야하며 주인의 쓰 임에 합당해야만 합니다.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 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우리는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도록 무엇보다 마음과 영혼의 그릇 을 깨끗하게 보존(성결 보존)해야만 합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귀히 쓰임받는 그릇"일지라도 어디까지나 '흙으로 만든 질그릇'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시말해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아니 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만 주인의 쓰임에 예비함이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으로서 겸손하지 아니하면 결국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 안에 담겨진 복음이 보배인 것이지, 질그릇이 보배가 아님을 끝까지 명심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보배로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질그 릇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자신이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환난이나 박해,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질 그릇이지만 보배인 복음을 담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실 것이 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그릇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 선 교의 문을 연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사람들은 모두가 연약한 사람들이었으나, 그들 은 하나님께서 늘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기에 그분을 위해 큰 일 을 할 수 있었다." 고난과 환난, 시련은 사람의 연약함을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의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전1:25).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1:26) 형제들 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 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 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 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으로써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두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복음이 드러나기 위해서 때로 질그릇이 부 서지고 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그 속에 있는 그리스도 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되고 성실한 복음 전도의 사역을 했는지 의 여부는 박수갈채와 명성(stars)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난으로 말미암은 상처(scars)에 의해 평가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받은 흔적이 있 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흔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후6: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 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고후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 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고후6: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고후6:6) 깨끗 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님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고후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고후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 을 가진 자로다.(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 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11:24) 유대인들에 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 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 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어떠한 경우에는 이 영광스런 직분을 낙심하지 아니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비록 질그릇일지라도 복음의 보배를 지니고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가치인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 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 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아브라함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하늘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소 돔성을 포기했지만, 롯은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대로 행했 기 때문에 소돔성을 택했습니다. "(히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 니라." 믿음을 가진 성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는 것같이 참을 수 있습니다. "(히11:27) 믿음으로.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 으며." 어떤 사람이 그가 날마다 외양간의 오물 속에서 일하는 것을 동정하여 어떻게 그런 일을 날마다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노인은 이 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 너머의 것을 가진 사람은 조금도 피곤치 않다구요." 질그릇같은 우리 인생이 육체적으로 보면 점점 죽음에 가깝고 날로 후 패해져 가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보다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세월은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를 가까이 이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브라우닝은 "젊은이여, 나와 함께 늙어가자 더 좋은 것은 미래 에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연설했습니다. 늙어 간다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얻는 과정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 때가 좋았다 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더 좋은 것이 앞에 있 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노년에 세상을 떠날 것을 예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 웠도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 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 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받는 어떠한 환난도 다음 세상에서 영원토록 기쁘게 누릴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하늘에서 누릴 영광 속에서 얼마든지 잊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열정을 쏟아 선교 사역 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큰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회의를 느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선교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는 휴가를 얻 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을 보았습니다. 배 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소 리와 함께 부둣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오자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 은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 히고 군악대의 나팔 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는 홀로 초라하게 내려왔습니다. 그는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 은 아무도 없구나' 라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거리를 걸었습니다. 깊은 고독감과 절망감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때 마음으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은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아니라 황금길을 깔아 너를 마중해 주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말씀을 들은 선교사는 충성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발길을 돌이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영광스러운 복음 전도의 보배를 질그릇에 담으시고 열심과 충성을 다 하심으로 가정과 나라, 세계를 변화시키며 하늘 나라에 예비된 영광의 면 류관과 상급이 풍성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미 아마존 밀림에 평화봉사단으로 갔던 마이클 그리피드의 경험담입니다. 숲 속에서 이상한 그릇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인데 배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옛 원주민의 부엌도구 같기도 해서 일단 숙소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보아도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릇으로 쓰기엔 너무 길쭉하고 이미 썩어 빛깔도 나빴습니다. 더럽게 보 여 식기로 쓸 마음은 안 생겼습니다. 문밖에 버려 놓았더니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졌습니다. 그것으로 그 물건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후 1개월 뒤 계곡 마을에서 음악연주가 있었습니다. 옛 원주민의 악기를 연주하는 민속음악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이클 그 리피드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을의 한 소녀가 악기를 가지고 나와 옛 가락을 연주하는데 옛 하프였습니다. 놀란 것은 아름다운 그 음 악보다 하프 통이 자기가 내버린 그 쓸모없는 나무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체험에서 그리피드는 수필을 썼는데 그 제목이 '언제 너의 창조 자로 그의 음악을 너를 통해 연주시킬 것인가'입니다. 내가 무가치한 밥 통으로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고, 훌륭한 악기로서 아름다운 음악을 이웃 에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 갈래길은 나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당신의 음악을 연주하시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때 가치있는 한 인간의 생애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삶의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는 보배롭고 가치 있는 그릇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함받은 질그릇이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이 받은 직분은 복음 전도의 직분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영광스러운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복음 전도의 직분은 사람에게 생명과 구원과 의(義)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며, 또한 복음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 전도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사람 됨 됨이나 우리가 행한 어떤 공로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물로, 거 저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복음 전도의 영광스런 직분을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 백했습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 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 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 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이 교회에서 받은 직분과 사명은 영광스런 것입니다. 자기가 받 은 직분과 사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바울은 이 복음 전도의 직분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 도 낙심하지않았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으로 인해 살 소망 까지 거의 끊어졌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백했습니다.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 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 어지고." 바울은 큰 은사를 받고 다방면에 걸쳐 많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인간이었고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맡기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어느 설교자가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가인 알렉산더 휘트에게 자신의 직분을 포기하고 싶다는 편지를 써 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에 대해 휘트는 "설교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마오! 하늘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조차 당신의 위대한 일을 부러 워하고 있소!" 라고 답장을 써보냈습니다. 참으로 이 구원의 복음은 천사 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전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 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 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 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받은 직분은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복음, 그 복음의 중심이 되는 예수를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지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고후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의 종된 것을 전파했 습니다. 그는 오직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종으로써 사명에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예수를 전파하기만 하면 빛이 비추기 시작했 습니다. 마치 창세기 1장을 보는 듯 했습니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 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 가운데 처한 인생들이 복음을 전해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창조의 빛으로 말미암아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사라지고 빛과 어두움이 나뉘어 질서가 회복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 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피플즈(Peaples)잡지에 가수 앤디 기브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1977년 19세의 청년이 호주로부터 미국에 와서 그의 레코드가 힛트했습니다. 첫 해에 2백만 달러, 이듬해엔 1백만 달러를 벌고, 그래미 상에 두 번 추천 되었습니다. 그의 음반이 1천 5백만 매 팔릴 때 겨우 21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마약을 시작했습니다. 기울어지는 것도 빨랐습니다. 85년에 병들고 86년에 파산하고 87년에 1백 5십만 달러의 빚을 진 채 외로히 죽 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망했는가 왜 약물을 의지했는가 그의 친구들 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공허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텅빈 마음, 이 공허를 무엇으로 채워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눈에 보이는데서 찾으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 면, 더 많이 가지면 채워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도서 지혜자는 행복 을 눈에 보이는데서 잡아보려는 인간은 일평생을 바람을 잡는 헛수고를 하며 걱정하다가 병들어 앓다가 화내다가 죽고 말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5:16)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 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전5: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 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이 세상에서 갖출 것 다 갖추었는데 왜 공허한 것인가 무엇이 빠져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빛 곧 예수 그리스도가 네 마음에 비취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나를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그 분에게서 너희는 사람이 보고 알 수 있는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3. 성도는 복음 전도의 영광스런 직분을 받았지만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이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그릇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그 질그릇 안에 담겨 있는 보배입니다. 사도 바울 은 복음을 가리켜 바로 보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가리켜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 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릇이 중요하고 가치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깨끗해야하며 주인의 쓰 임에 합당해야만 합니다.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 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우리는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도록 무엇보다 마음과 영혼의 그릇 을 깨끗하게 보존(성결 보존)해야만 합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귀히 쓰임받는 그릇"일지라도 어디까지나 '흙으로 만든 질그릇'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시말해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아니 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만 주인의 쓰임에 예비함이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으로서 겸손하지 아니하면 결국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 안에 담겨진 복음이 보배인 것이지, 질그릇이 보배가 아님을 끝까지 명심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보배로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질그 릇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자신이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환난이나 박해,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질 그릇이지만 보배인 복음을 담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실 것이 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그릇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 선 교의 문을 연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사람들은 모두가 연약한 사람들이었으나, 그들 은 하나님께서 늘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기에 그분을 위해 큰 일 을 할 수 있었다." 고난과 환난, 시련은 사람의 연약함을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의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전1:25).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1:26) 형제들 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 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 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 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으로써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두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복음이 드러나기 위해서 때로 질그릇이 부 서지고 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그 속에 있는 그리스도 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되고 성실한 복음 전도의 사역을 했는지 의 여부는 박수갈채와 명성(stars)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난으로 말미암은 상처(scars)에 의해 평가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받은 흔적이 있 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흔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후6: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 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고후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 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고후6: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고후6:6) 깨끗 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님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고후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고후6: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 을 가진 자로다.(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 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11:24) 유대인들에 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 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 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어떠한 경우에는 이 영광스런 직분을 낙심하지 아니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비록 질그릇일지라도 복음의 보배를 지니고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가치인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 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 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아브라함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하늘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소 돔성을 포기했지만, 롯은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대로 행했 기 때문에 소돔성을 택했습니다. "(히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 니라." 믿음을 가진 성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는 것같이 참을 수 있습니다. "(히11:27) 믿음으로.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 으며." 어떤 사람이 그가 날마다 외양간의 오물 속에서 일하는 것을 동정하여 어떻게 그런 일을 날마다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노인은 이 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 너머의 것을 가진 사람은 조금도 피곤치 않다구요." 질그릇같은 우리 인생이 육체적으로 보면 점점 죽음에 가깝고 날로 후 패해져 가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보다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세월은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를 가까이 이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브라우닝은 "젊은이여, 나와 함께 늙어가자 더 좋은 것은 미래 에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연설했습니다. 늙어 간다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얻는 과정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 때가 좋았다 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더 좋은 것이 앞에 있 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노년에 세상을 떠날 것을 예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 웠도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 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 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받는 어떠한 환난도 다음 세상에서 영원토록 기쁘게 누릴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하늘에서 누릴 영광 속에서 얼마든지 잊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열정을 쏟아 선교 사역 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큰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회의를 느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선교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는 휴가를 얻 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을 보았습니다. 배 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소 리와 함께 부둣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오자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 은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 히고 군악대의 나팔 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는 홀로 초라하게 내려왔습니다. 그는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 은 아무도 없구나' 라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거리를 걸었습니다. 깊은 고독감과 절망감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때 마음으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은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아니라 황금길을 깔아 너를 마중해 주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말씀을 들은 선교사는 충성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발길을 돌이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영광스러운 복음 전도의 보배를 질그릇에 담으시고 열심과 충성을 다 하심으로 가정과 나라, 세계를 변화시키며 하늘 나라에 예비된 영광의 면 류관과 상급이 풍성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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