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있는 수고 (행13:42-52)
본문
사람이 하는 일에는 보상 있는 보람된 일에 일생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방향이 잘못 설정되면 그 수 고는 헛 것이며 자신에게와 다른 사람에게도 고통을 주게 됩니다. 선교부에서 일하는 목사님 세분이 함께 타고 목적지에 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한 분은 창원에 사시는 분이라 창원입구 만남의 광장에 내려드리게 되었습니다. 동승한 후배는 차 안에서 인사하는 것이 결례일 것 같 아 내려서 악수하고 그리고 고개 숙여 차를 탈려니 웬걸요 차는 그만 달려 가 버리는 겁니다. 목사님이라고 불러 보았자 차는 가버린 겁니다. 차를 놓친 후배 목사는 별 수 없이 택시로 주차장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일 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전하시는 목사님은 한 참을 가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대답이 없어서 젊은 사람이 졸고 있는 모양이라고 약간은 섭섭한 마음으로 달리다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백미러로 뒤를 살 펴보니 사람이 없는 겁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이런 일도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1일 여 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뒷 자석에 누워자는 아내를 두고 화장실에 들려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뒤를 보 니 아내가 없는 겁니다. 당황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찾을 길도 없어서 방 으로 들어와 전화기 옆에서 기다립니다. 이 사모님은 영어도 못합니다. 지갑도 없습니다. 주소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보고 도와 달라고 할 형편도 못됩니다. 시간은 점점 흘러 자정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어떤 이방인 중년의 여자가 형편없이 힘없는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보 니 억지 웃음으로 응대하고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목사님이 무슨 연 락이 올려는가하고 기다립니다. 사모님은 전화할 돈도 없습니다. 남의 가게에 들려 이런 어렵고 급한 사정을 영어로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모습을 오랜 시간을 살펴본 여자 점원이 경찰에 자신의 기게 앞에 서성거리는 어떤 여자가 있는데 떠나지 아니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달 려와서 묻습니다. 대답을 안하는 겁니다. 사실은 대답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찰도 약간 눈치를 채고 '홈'이 어디냐고 '텔레폰 넘버'를 묻습니다. 그것도 연세가 드셨다 보니 영어로 말을 못합니다. 이것도 안 되니까 펜과 종이를 주어서 적게 합니다. 드디어 전화번호를 적어 연락이 되고 주소를 알아 집으로 돌아 왔다는 겁니다. 우리의 일이 이렇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놓치고 목적지까지 간들 그 마음 이 편할 리 없습니다. 그 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건조한 타이타닉호는 한 부호의 자랑이요 영국의 자 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호화 유람여객선의 처녀항해에서 수많은 고귀한 생 명은 재산과 함께 바닷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음을 기억합니다. 성수대교 붕괴를 기억합니다. 이런 일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는 수고에 아무런 결실도 없었습니다. 그 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어떤 보람과 유익이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하는 그 일이 보상없는 헛된 수고라 면 이 시간 결단해야 합니다. 중단하기를 결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 을 모색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수고에는 진정한 보상이 없습니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서는 그 일의 결국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직업 그 일의 결국은 보수를 받습니다. 그 보수로 생활합니다. 그 결국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죽 기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수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총회 장소 로 제공한 울산시민교회 성도들의 섬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봉사는 참으로 감격적이었습니다. 안내위원들이 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차량을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에도 그리고 마친 후에도 인사를 하는 겁니다. 누가 위치를 물어면 보통의 사람들은 절로(저리로) 가세요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교인들이 길을 가르쳐 주면서 절로 가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은 저리로 가라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 장소까지 모시고 가서 여기라 고 안내하는 겁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런데도 한복을 입은 여성도들이 도열하여 서서 꽃을 달아주고 인사를 하는 거예 요. 주차장까지 가는 분들에게도 차량봉사를 합니다. 모든 일에 세밀하게 섬기는 겁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이 무엇을 바라고 저렇게 봉사하고 있는 가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고 생명까지도 바쳐 드리기를 소원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해하는 수고의 이유는 구원받은 은총의 감격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하는 모든 일에 진정한 보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보상이 있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이 일에는 진정한 보람이 있습니다. 이 일에는 삶에 엄청난 의미를 제공 합니다. 이 일에는 살아야 한다는 의욕과 동기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보상있는 수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 속에도 45절에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 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그 놀라운 구원의 사역은 공격 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초청은 공격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와는 동족입니다. 이방 나라에 사는 그들이 동족의 권 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선입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사55:11 의 말씀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 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심처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 속은 이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수고에는 반드시 그 일에 상 응한 보상이 있습니다.
1. 수고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디에서든지 복음 을 전해야 합니다(행13:42-44). 딤후4:1-2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고하기를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 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계속하여 3-4 절에서 말하기를 때가 되면 사람들은 진리에서 돌아서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스승 두기를 싫어합니다. 교훈을 받으 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유익을 좇는 일에만 스승을 둔다고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은 사실 허탄한 일임에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이 가는 길로 가서는 안될 디모데의 일은 5절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요20:21에 보면 주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행1:8에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개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를 놓 치면 안됩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불신자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는 기회가 됩니다. 사람도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그 사람의 장점을 이야기하 면 좋아합니다. 하물며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주께서 이루신 구원의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침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구 속의 도리를 만나는 사람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다는 것은 그 복음을 그렇게 믿는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복음을 자랑할 수 없는 겁니다. 바라기 로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이 귀중한 복음을 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세요. 나는 지금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이건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만유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다윗이 전장터에 아버지 심부름을 갔습니다. 가서보니 적군 중에 거대한 한 사람이 나와서 고함을 지르는데 하나님을 욕합니다. 다윗은 비록 나이가 어렸지 만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감히 이방인이 하나님을 욕하다니 이것은 그 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은 비록 어리고 싸움에 능하 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징계하리라는 용기로 칼도 들지 않은 맨몸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지금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을 하세요. 그럴 때 보람이 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일 때 즐거움이 있고 용기가 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보상있는 수고이지만 전도자에게는 방해가 따릅니다(행13:45-46). 고전1:22-24의 말씀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은 예수를 전하니 이방인에게는 미련하여 보이는 것이고 유대 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므로 핍박과 배척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 대하 여 버려두라고 하십니다(호4:11). 성도들의 삶에도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일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를 향한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인 줄 알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 여 매진하셔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6:10에서 예언하기를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 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 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처럼 복음의 전하는 일에는 수많은 방해가 따릅니다(요12:39-40). 저들이 이 놀라운 복음의 사 실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왜 깨닫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롬11:8에서 말하기를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 습니다. 비록 우리가 전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말씀을 받지 않고 방해하고 핍박할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저들의 머리에는 죄를 쌓지만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상급으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신실된 종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수고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헌신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져 나아가기 때문입니다(행13:47-49, 51). 전도자가 행한 일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마다 많은 박해와 도전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전 진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47절에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 지 구원하게 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통하여 전통의 아집에 찌들어 있던 유대인을 변화시킬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당대에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의 제자를 삼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 어설픈 제자들을 통하여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하다고 자처하는 콧대높은 그들을 변화시켜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었 을까요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일군들은 그들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주님의 권능의 역사가 일군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함으로 그들이 쳐져 있을 때 권고하 셨습니다. 주의 일군들이 주저앉아 있을 때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의 일군들의 앞 길에 감당치 못할 장애가 있을 때 치워 주셨습니다. 그들 앞에 사람의 힘으 로 열 수 없는 닫힌 문이 있을 때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포기하 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시고야 맙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목적은 그 렇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이방인의 빛입니다. 빛을 통하여 어둠을 물리칩니다. 빛 으로 저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가 하는 것을 이방인에게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인내함으로, 우리가 섬길 수 없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더욱 충성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 47절 이하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지에 대한 새로운 전개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전에는 유대인에 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46절에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선언하고난 이후 이 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48절에 기록 하기를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들의 생각 에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오 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주관하심을 생각하여 보세요. 복음 확장 의 순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고 했습니다. 이 순서 에 따라 복음이 전파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의 생각은 아직 여 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은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에 매이 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들의 생각과 환경을 지배합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증거를 핍박하고 시기함으로 전도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이나 판단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인도하 심이 배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나타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약속의 성취,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47절에서 인용하는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사49:6 에서 예언한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전도자들에 의해서 구체화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어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는 52절에서 기록하기를 "기쁨과 성령님이 충만"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수고하였으되 보상없는 일이 너무 많 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 일에 따라 주시는 보 상이 있습니다. 그 첫째 보상은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도가 받는 수고의 보상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될 그 날을 앙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가 누리는 보상은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만 이루어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수고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십니다. 그렇게 하여 합력하여 주의 뜻을 이루십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전도의 열정, 믿음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다 접수하시고 기억하시며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일군들에게 일방적인 수고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무기를 보상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나 활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된 일군만이 이 특권을 마음껏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지런히 아뢰는 분은 자신의 특권을 잘 활용하는 분입니다. 죠지 뮬러는 이 특권을 십분 활용한 일군이었습니다. 앞서간 승리의 삶을 살 아간 성도들은 모두다 이 특권을 잘 활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어렵고 힘듭니다. 우리가 이 힘든 세상에서 주의 일 한다고 수고하는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특권을 주신 겁니다. 우리 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이 하나님께서 주신 보상인 줄 알고 잘 활용하여 넉넉하 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보상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용기입니다.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이 쉽지 않습니다. 굉장한 어려움에 부딪쳐 진퇴양난의 딱한 형편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은총은 이러한 주의 일군들에게 용기를 주시는 겁니다. 마치 다윗 앞에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괴물같은 장수가 버티고 섰을지라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같은 겁니다. 요셉도 그러하였 습니다. 그 마음 속에 용기를 심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과감하게 떨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많은 핍박 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였지만 요셉의 마음 속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하였 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가 없다면 어떤 일에도 도전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선교와 전도, 예배당 건축, 주일학교 확 장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수행할 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가 있기 에 우리 앞에 당한 어떤 일도 이길 수 있다는 도전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보상은 승리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군의 몫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당대에 혹은 땅 위에서 모든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살펴 보세요. 누가 승리자인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세상의 무수한 영웅호걸들이 이 땅에 왔다가 사라져 갔습니다. 그들의 보상은 무엇이었습니다. 한 때의 권좌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이름이 두고두고 추한 이름, 기억되어서는 안 될 악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지위를 지 워버리고 싶은 업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의 일군들이 쏟은 수고는 주의 나라와 그 생명책에 기록하여 주십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헌 신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이 전하여지는 곳마다 여인의 행한 일도 증 거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헌신은 보상받고도 남는 은총을 입은 겁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를 주께서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승리 그 자체입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평생이 얼마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수고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낙심말며 충성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뒤를 보 니 아내가 없는 겁니다. 당황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찾을 길도 없어서 방 으로 들어와 전화기 옆에서 기다립니다. 이 사모님은 영어도 못합니다. 지갑도 없습니다. 주소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보고 도와 달라고 할 형편도 못됩니다. 시간은 점점 흘러 자정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어떤 이방인 중년의 여자가 형편없이 힘없는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보 니 억지 웃음으로 응대하고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목사님이 무슨 연 락이 올려는가하고 기다립니다. 사모님은 전화할 돈도 없습니다. 남의 가게에 들려 이런 어렵고 급한 사정을 영어로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모습을 오랜 시간을 살펴본 여자 점원이 경찰에 자신의 기게 앞에 서성거리는 어떤 여자가 있는데 떠나지 아니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달 려와서 묻습니다. 대답을 안하는 겁니다. 사실은 대답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찰도 약간 눈치를 채고 '홈'이 어디냐고 '텔레폰 넘버'를 묻습니다. 그것도 연세가 드셨다 보니 영어로 말을 못합니다. 이것도 안 되니까 펜과 종이를 주어서 적게 합니다. 드디어 전화번호를 적어 연락이 되고 주소를 알아 집으로 돌아 왔다는 겁니다. 우리의 일이 이렇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놓치고 목적지까지 간들 그 마음 이 편할 리 없습니다. 그 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건조한 타이타닉호는 한 부호의 자랑이요 영국의 자 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호화 유람여객선의 처녀항해에서 수많은 고귀한 생 명은 재산과 함께 바닷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음을 기억합니다. 성수대교 붕괴를 기억합니다. 이런 일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는 수고에 아무런 결실도 없었습니다. 그 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어떤 보람과 유익이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하는 그 일이 보상없는 헛된 수고라 면 이 시간 결단해야 합니다. 중단하기를 결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 을 모색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수고에는 진정한 보상이 없습니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서는 그 일의 결국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직업 그 일의 결국은 보수를 받습니다. 그 보수로 생활합니다. 그 결국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죽 기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수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총회 장소 로 제공한 울산시민교회 성도들의 섬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봉사는 참으로 감격적이었습니다. 안내위원들이 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차량을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에도 그리고 마친 후에도 인사를 하는 겁니다. 누가 위치를 물어면 보통의 사람들은 절로(저리로) 가세요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교인들이 길을 가르쳐 주면서 절로 가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은 저리로 가라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 장소까지 모시고 가서 여기라 고 안내하는 겁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런데도 한복을 입은 여성도들이 도열하여 서서 꽃을 달아주고 인사를 하는 거예 요. 주차장까지 가는 분들에게도 차량봉사를 합니다. 모든 일에 세밀하게 섬기는 겁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이 무엇을 바라고 저렇게 봉사하고 있는 가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고 생명까지도 바쳐 드리기를 소원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해하는 수고의 이유는 구원받은 은총의 감격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하는 모든 일에 진정한 보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보상이 있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이 일에는 진정한 보람이 있습니다. 이 일에는 삶에 엄청난 의미를 제공 합니다. 이 일에는 살아야 한다는 의욕과 동기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보상있는 수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 속에도 45절에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 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그 놀라운 구원의 사역은 공격 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초청은 공격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와는 동족입니다. 이방 나라에 사는 그들이 동족의 권 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선입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사55:11 의 말씀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 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심처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 속은 이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수고에는 반드시 그 일에 상 응한 보상이 있습니다.
1. 수고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디에서든지 복음 을 전해야 합니다(행13:42-44). 딤후4:1-2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고하기를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 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계속하여 3-4 절에서 말하기를 때가 되면 사람들은 진리에서 돌아서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스승 두기를 싫어합니다. 교훈을 받으 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유익을 좇는 일에만 스승을 둔다고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은 사실 허탄한 일임에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이 가는 길로 가서는 안될 디모데의 일은 5절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요20:21에 보면 주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행1:8에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개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를 놓 치면 안됩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불신자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는 기회가 됩니다. 사람도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그 사람의 장점을 이야기하 면 좋아합니다. 하물며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주께서 이루신 구원의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침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구 속의 도리를 만나는 사람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다는 것은 그 복음을 그렇게 믿는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복음을 자랑할 수 없는 겁니다. 바라기 로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이 귀중한 복음을 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세요. 나는 지금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이건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만유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다윗이 전장터에 아버지 심부름을 갔습니다. 가서보니 적군 중에 거대한 한 사람이 나와서 고함을 지르는데 하나님을 욕합니다. 다윗은 비록 나이가 어렸지 만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감히 이방인이 하나님을 욕하다니 이것은 그 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은 비록 어리고 싸움에 능하 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징계하리라는 용기로 칼도 들지 않은 맨몸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지금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을 하세요. 그럴 때 보람이 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일 때 즐거움이 있고 용기가 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보상있는 수고이지만 전도자에게는 방해가 따릅니다(행13:45-46). 고전1:22-24의 말씀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은 예수를 전하니 이방인에게는 미련하여 보이는 것이고 유대 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므로 핍박과 배척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 대하 여 버려두라고 하십니다(호4:11). 성도들의 삶에도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일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를 향한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인 줄 알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 여 매진하셔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6:10에서 예언하기를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 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 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처럼 복음의 전하는 일에는 수많은 방해가 따릅니다(요12:39-40). 저들이 이 놀라운 복음의 사 실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왜 깨닫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롬11:8에서 말하기를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 습니다. 비록 우리가 전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말씀을 받지 않고 방해하고 핍박할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저들의 머리에는 죄를 쌓지만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상급으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신실된 종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수고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헌신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져 나아가기 때문입니다(행13:47-49, 51). 전도자가 행한 일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마다 많은 박해와 도전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전 진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47절에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 지 구원하게 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통하여 전통의 아집에 찌들어 있던 유대인을 변화시킬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당대에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의 제자를 삼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 어설픈 제자들을 통하여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하다고 자처하는 콧대높은 그들을 변화시켜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었 을까요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일군들은 그들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주님의 권능의 역사가 일군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함으로 그들이 쳐져 있을 때 권고하 셨습니다. 주의 일군들이 주저앉아 있을 때 일으켜 주셨습니다. 주의 일군들의 앞 길에 감당치 못할 장애가 있을 때 치워 주셨습니다. 그들 앞에 사람의 힘으 로 열 수 없는 닫힌 문이 있을 때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포기하 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시고야 맙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목적은 그 렇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이방인의 빛입니다. 빛을 통하여 어둠을 물리칩니다. 빛 으로 저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가 하는 것을 이방인에게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인내함으로, 우리가 섬길 수 없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더욱 충성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 47절 이하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지에 대한 새로운 전개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전에는 유대인에 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46절에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선언하고난 이후 이 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48절에 기록 하기를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들의 생각 에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오 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주관하심을 생각하여 보세요. 복음 확장 의 순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고 했습니다. 이 순서 에 따라 복음이 전파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의 생각은 아직 여 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은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에 매이 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들의 생각과 환경을 지배합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증거를 핍박하고 시기함으로 전도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이나 판단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인도하 심이 배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나타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약속의 성취,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47절에서 인용하는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사49:6 에서 예언한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전도자들에 의해서 구체화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어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는 52절에서 기록하기를 "기쁨과 성령님이 충만"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수고하였으되 보상없는 일이 너무 많 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 수고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 일에 따라 주시는 보 상이 있습니다. 그 첫째 보상은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도가 받는 수고의 보상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될 그 날을 앙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가 누리는 보상은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만 이루어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수고를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십니다. 그렇게 하여 합력하여 주의 뜻을 이루십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전도의 열정, 믿음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다 접수하시고 기억하시며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일군들에게 일방적인 수고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무기를 보상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나 활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된 일군만이 이 특권을 마음껏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지런히 아뢰는 분은 자신의 특권을 잘 활용하는 분입니다. 죠지 뮬러는 이 특권을 십분 활용한 일군이었습니다. 앞서간 승리의 삶을 살 아간 성도들은 모두다 이 특권을 잘 활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어렵고 힘듭니다. 우리가 이 힘든 세상에서 주의 일 한다고 수고하는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특권을 주신 겁니다. 우리 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이 하나님께서 주신 보상인 줄 알고 잘 활용하여 넉넉하 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보상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용기입니다.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이 쉽지 않습니다. 굉장한 어려움에 부딪쳐 진퇴양난의 딱한 형편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은총은 이러한 주의 일군들에게 용기를 주시는 겁니다. 마치 다윗 앞에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괴물같은 장수가 버티고 섰을지라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같은 겁니다. 요셉도 그러하였 습니다. 그 마음 속에 용기를 심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과감하게 떨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많은 핍박 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였지만 요셉의 마음 속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하였 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가 없다면 어떤 일에도 도전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선교와 전도, 예배당 건축, 주일학교 확 장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수행할 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가 있기 에 우리 앞에 당한 어떤 일도 이길 수 있다는 도전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수고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보상은 승리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군의 몫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당대에 혹은 땅 위에서 모든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살펴 보세요. 누가 승리자인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세상의 무수한 영웅호걸들이 이 땅에 왔다가 사라져 갔습니다. 그들의 보상은 무엇이었습니다. 한 때의 권좌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이름이 두고두고 추한 이름, 기억되어서는 안 될 악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지위를 지 워버리고 싶은 업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의 일군들이 쏟은 수고는 주의 나라와 그 생명책에 기록하여 주십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헌 신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이 전하여지는 곳마다 여인의 행한 일도 증 거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헌신은 보상받고도 남는 은총을 입은 겁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를 주께서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승리 그 자체입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평생이 얼마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수고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낙심말며 충성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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