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 주시는 대로 사는 새해 (창13:8-18)
본문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가질 때마다 후회와 기대가 교 차됩니다. 결국 인생은 후회하며 사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어차피 인생은 유한하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완전과 완벽 이 아 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 했는가', '믿음으로 살았는가', '작은 일에 진실하였는가'를 확인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란트 비유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받은 자들은 마25:16 절 이 하는 '장사하여 배나 남기었다'고 했으나, 한 달란트받은 자는(마25:18)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다'는 차이를 비교해서 교훈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 며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장사이거나 실물 장사이거나 늘 장사가 잘 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장사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또 잘 되어서 이익을 남길 수도 있는 것 이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가르치신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남긴 것에 관심을 가지 고 계시다는 것을 물론 알 수 있지만 장사를 했다는 데에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 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장사를 하다가 손해되어 혹 망하게 되어도 주님이 책망하시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25장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잘못된 자세가 24절에 나타나는데,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 이라 심지 아니한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아니한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 여 나 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장사를 아예 포 기한 사람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시각대로 판단함이
첫째 잘못이요, 주인이 자기에 게 이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잘못은 당신의 달란트 라고 자기에 준 것으로 인정하지 않음 에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렇듯 땅을 파고 숨겨 둔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다면 이는 주 님 앞 에 책망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충성에 관계된 것이요, 오늘 우리가 상고하 고자 하는 것은 열심과 충성은 필요한 것이지만 과연 무엇에 대해 우리가 충성하고 우리가 무엇 을 위하여 살 것인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과의 관계 를 나 타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12월에 이 본문으로 "무엇을 선택하오리이까" 라는 제목으 로 설교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피할까 하다가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우리 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씀으로 주어짐으로 다시 한 번 담대한 마음으로 본문을 선택하였습니다. 여 기에는 무엇을 보며 사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롯과 같이 인간적으로 정확하게 보고 사는 사람 과 아 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사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갈대 아 우르에서부터 데리고 나왔고, 늘 같이 생활해 왔고, 항상 같은 생업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면 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서로 갈라 서기로 결심하고 행하는 내용입니다. 서로 갈라선다고 해서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감정이 상해서 다투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단지 상황이 갈라서야 하기 때문에 갈 라서는 모습일 뿐입니다. 이러한 본문 속에서 우리가 교훈 받아야 할 것이 있는데 1996년 을 보 내고 1997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고자 하며 새롭게 전진하기를 결 심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마음 깊숙이 받으십시다.
1. 무엇을 누구에 의하여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제 아브라함이 중대한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하면서 롯에게 먼저 선택할 것을 말했습니다. 10 절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 를 '네 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하자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것은 요단들 을 보면서 소알의 넉넉한 물까지를 보았습니다. 롯의 눈 즉 롯의 땅을 평가하는 기준이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정확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면 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약 성경 벧후2:6-8은 롯을 평가하기를 의인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의로운 심령을 가진 자로 아주 놀라운 평가를 내려 주었습니다. 이는 복음적 안목에서 본 평가요, 은혜로서 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되었든지 롯도 우리와 같은 성도의 반열에 포함되는 것이 마땅 할진대 같은 성도의 시각이 너무나 크게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롯은 결국 우리 를 상 징해 주는데 롯이 무엇을 보면서 살았는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이미 말씀한 바와 같이 10절에서 롯은 요단 들과 넉넉한 물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목축하는 자로서는 필수 불가결 한 조건이요, 축복된 조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성공의 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기를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곳이라고 평 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즉 에덴 동산에 비유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당시 세상에 서 가장 비옥하다는 애굽 땅에 비유될 정도였으니 그 땅의 효용도는 더 이상 설명할 말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롯의 눈은 과연 정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 을 경외하며 살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세상적 조건만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라고 할진대 이러한 세상적 조건만을 바라고 살 수는 없습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소돔 사람은 악하고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고 증거합니다. 땅은 좋은 데 사람이 악하고, 자원은 풍부한데 죄악이 극심한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야 성도에게는 실패 가 없 습니다. 다시 설명하면 성도는 영적인 조건과 세상적인 조건을 아울러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이 롯과 같이 보면서 그저 보이는 조건이 좋아서 나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살고 있습니다. 롯이 결국 성공했습니까 물론 앞서 인용한 벧후2:16 이 하를 보 면 롯도 구원받은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 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의 재산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식에게나 또는 누구 에게 남겨 주어서 유익하게 쓰도록 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와의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때에 다 불탔습니다. 영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신앙 생활은 어떠했습니 까 편 안하며 은혜롭게 여호와를 경배하며 살 수 있었습니까 벧후 2:7에서는, 롯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하는 신앙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거합니다. 벧후2:8에서는, 날마 다 불 법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을 상하는 신앙 생활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 것만을 보고 택했더니 신앙적으로도 이와 같은 어려움이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가정도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딸들이 자기에게 술을 먹여 후손을 전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증되 이 여기셔서 그들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의 10대 손까지뿐 아니라 영원토록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시는 저주를 받았으니 얼마나 큰 비극이 연이어졌습니까 롯은 아울러 보아 야 마 땅했습니다. 최소한 아브라함이 좌, 우를 선택하도록 말했을 때, 아브라함의 신앙에 의지하 여 한 번쯤 물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번쯤은 하나님께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살 것입니까 주 님 앞 에서 고요히 머리 숙여 숙고하며 회개하며 결심하는 시간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볼 것을 보며 주님 앞에 헌신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이 새해에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역시 아브라함도 성도의 모형입니다. 아브 라함은 화평을 위해 포기하거나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목축업자요, 큰 짐승 의 떼를 거느리고 있는 자로서 어찌 롯이 택한 그 곳이 자기의 목축업에 필요한 곳임을 몰 랐겠습 니까 그러나 위하여 포기할 줄 알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왜 소돔과 고모라 가 땅은 좋지만 사람들이 악하다는 것을 롯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아브라함을 비난할 수 없 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이 롯을 잘못되도록 일부러 그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롯의 시각이 온전히 물질적인 것에 먼저 치중되어 있음을 볼 때에 또한 선택권을 먼저 주었 기 때문에 롯이 먼저 묻지 아니하면 말하기가 곤란했다는 것 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 라함은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자기의 눈에 보이는 대로 결정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여주심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14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 을 바 라 보라 보이는 곳을 다 네게 주리라'는 주님의 축복된 말씀을 듣습니다. 롯도 물론 동서 남북을 다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11절에서처럼 동쪽 만을 차지했습니다. 아브 라함은 하나님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을 때 그는 동서남북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조 그마한 것을 포기했더니 하나님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을 그에게 보여주시고 축복으로 허락해 주 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축복은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은 영원한 것임을 15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올해 우리가 무엇을 보면서 살고 충성하며 살아야 하 겠습니 까 세상적인 것에 치우친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때는 귀한 것이지만 양보와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보여주시는 것에 온전 히 만족함 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이 바로 이 길입니다. 주님께 맡기우 고 포 기할 줄도 알고 눈에 보이지만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분 명하게 주님이 보여 주심을 믿고 나아가는 여유와 담대함을 가지고 살았던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한 해를 살았으면 합니다. 바울은 갈3:7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 다 라 고 강조했으니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을 자격이나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 브라함 의 믿음의 위대함이 무엇입니까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 하여 장 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라고 한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무능해 보일 정도로 포기와 양보를 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저 인간적인 성품으로 그렇 게 했다면 아무 유익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와 같은 결정을 했을 때에 주님 이 보여주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포기한 후에 하나님은 아브 라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창15:5에서는 하늘을 보 여주셨 습니다. 이는 대단히 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써 귀한 것을 올해에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넘치는 축복이 가득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 며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장사이거나 실물 장사이거나 늘 장사가 잘 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장사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또 잘 되어서 이익을 남길 수도 있는 것 이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가르치신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남긴 것에 관심을 가지 고 계시다는 것을 물론 알 수 있지만 장사를 했다는 데에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 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장사를 하다가 손해되어 혹 망하게 되어도 주님이 책망하시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25장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잘못된 자세가 24절에 나타나는데,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 이라 심지 아니한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아니한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 여 나 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장사를 아예 포 기한 사람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시각대로 판단함이
첫째 잘못이요, 주인이 자기에 게 이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잘못은 당신의 달란트 라고 자기에 준 것으로 인정하지 않음 에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렇듯 땅을 파고 숨겨 둔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다면 이는 주 님 앞 에 책망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충성에 관계된 것이요, 오늘 우리가 상고하 고자 하는 것은 열심과 충성은 필요한 것이지만 과연 무엇에 대해 우리가 충성하고 우리가 무엇 을 위하여 살 것인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과의 관계 를 나 타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12월에 이 본문으로 "무엇을 선택하오리이까" 라는 제목으 로 설교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피할까 하다가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우리 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씀으로 주어짐으로 다시 한 번 담대한 마음으로 본문을 선택하였습니다. 여 기에는 무엇을 보며 사는 문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롯과 같이 인간적으로 정확하게 보고 사는 사람 과 아 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사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갈대 아 우르에서부터 데리고 나왔고, 늘 같이 생활해 왔고, 항상 같은 생업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면 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서로 갈라 서기로 결심하고 행하는 내용입니다. 서로 갈라선다고 해서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감정이 상해서 다투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단지 상황이 갈라서야 하기 때문에 갈 라서는 모습일 뿐입니다. 이러한 본문 속에서 우리가 교훈 받아야 할 것이 있는데 1996년 을 보 내고 1997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고자 하며 새롭게 전진하기를 결 심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마음 깊숙이 받으십시다.
1. 무엇을 누구에 의하여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제 아브라함이 중대한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하면서 롯에게 먼저 선택할 것을 말했습니다. 10 절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 를 '네 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하자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것은 요단들 을 보면서 소알의 넉넉한 물까지를 보았습니다. 롯의 눈 즉 롯의 땅을 평가하는 기준이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정확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면 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약 성경 벧후2:6-8은 롯을 평가하기를 의인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의로운 심령을 가진 자로 아주 놀라운 평가를 내려 주었습니다. 이는 복음적 안목에서 본 평가요, 은혜로서 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되었든지 롯도 우리와 같은 성도의 반열에 포함되는 것이 마땅 할진대 같은 성도의 시각이 너무나 크게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롯은 결국 우리 를 상 징해 주는데 롯이 무엇을 보면서 살았는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이미 말씀한 바와 같이 10절에서 롯은 요단 들과 넉넉한 물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목축하는 자로서는 필수 불가결 한 조건이요, 축복된 조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성공의 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기를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곳이라고 평 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즉 에덴 동산에 비유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당시 세상에 서 가장 비옥하다는 애굽 땅에 비유될 정도였으니 그 땅의 효용도는 더 이상 설명할 말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롯의 눈은 과연 정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 을 경외하며 살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세상적 조건만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라고 할진대 이러한 세상적 조건만을 바라고 살 수는 없습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소돔 사람은 악하고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고 증거합니다. 땅은 좋은 데 사람이 악하고, 자원은 풍부한데 죄악이 극심한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야 성도에게는 실패 가 없 습니다. 다시 설명하면 성도는 영적인 조건과 세상적인 조건을 아울러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이 롯과 같이 보면서 그저 보이는 조건이 좋아서 나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살고 있습니다. 롯이 결국 성공했습니까 물론 앞서 인용한 벧후2:16 이 하를 보 면 롯도 구원받은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 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의 재산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식에게나 또는 누구 에게 남겨 주어서 유익하게 쓰도록 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와의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때에 다 불탔습니다. 영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신앙 생활은 어떠했습니 까 편 안하며 은혜롭게 여호와를 경배하며 살 수 있었습니까 벧후 2:7에서는, 롯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하는 신앙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거합니다. 벧후2:8에서는, 날마 다 불 법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을 상하는 신앙 생활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 것만을 보고 택했더니 신앙적으로도 이와 같은 어려움이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가정도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딸들이 자기에게 술을 먹여 후손을 전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증되 이 여기셔서 그들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의 10대 손까지뿐 아니라 영원토록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시는 저주를 받았으니 얼마나 큰 비극이 연이어졌습니까 롯은 아울러 보아 야 마 땅했습니다. 최소한 아브라함이 좌, 우를 선택하도록 말했을 때, 아브라함의 신앙에 의지하 여 한 번쯤 물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번쯤은 하나님께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살 것입니까 주 님 앞 에서 고요히 머리 숙여 숙고하며 회개하며 결심하는 시간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볼 것을 보며 주님 앞에 헌신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이 새해에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역시 아브라함도 성도의 모형입니다. 아브 라함은 화평을 위해 포기하거나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목축업자요, 큰 짐승 의 떼를 거느리고 있는 자로서 어찌 롯이 택한 그 곳이 자기의 목축업에 필요한 곳임을 몰 랐겠습 니까 그러나 위하여 포기할 줄 알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왜 소돔과 고모라 가 땅은 좋지만 사람들이 악하다는 것을 롯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아브라함을 비난할 수 없 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이 롯을 잘못되도록 일부러 그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롯의 시각이 온전히 물질적인 것에 먼저 치중되어 있음을 볼 때에 또한 선택권을 먼저 주었 기 때문에 롯이 먼저 묻지 아니하면 말하기가 곤란했다는 것 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 라함은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자기의 눈에 보이는 대로 결정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여주심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14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 을 바 라 보라 보이는 곳을 다 네게 주리라'는 주님의 축복된 말씀을 듣습니다. 롯도 물론 동서 남북을 다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11절에서처럼 동쪽 만을 차지했습니다. 아브 라함은 하나님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을 때 그는 동서남북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조 그마한 것을 포기했더니 하나님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을 그에게 보여주시고 축복으로 허락해 주 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축복은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은 영원한 것임을 15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올해 우리가 무엇을 보면서 살고 충성하며 살아야 하 겠습니 까 세상적인 것에 치우친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때는 귀한 것이지만 양보와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보여주시는 것에 온전 히 만족함 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이 바로 이 길입니다. 주님께 맡기우 고 포 기할 줄도 알고 눈에 보이지만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분 명하게 주님이 보여 주심을 믿고 나아가는 여유와 담대함을 가지고 살았던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한 해를 살았으면 합니다. 바울은 갈3:7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 다 라 고 강조했으니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을 자격이나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 브라함 의 믿음의 위대함이 무엇입니까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 하여 장 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라고 한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무능해 보일 정도로 포기와 양보를 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저 인간적인 성품으로 그렇 게 했다면 아무 유익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와 같은 결정을 했을 때에 주님 이 보여주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포기한 후에 하나님은 아브 라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창15:5에서는 하늘을 보 여주셨 습니다. 이는 대단히 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써 귀한 것을 올해에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넘치는 축복이 가득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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