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떡 운동을 일어 킵시다 (마14:13-21)
본문
우리는 보리떡 인생입니다. 지난 시절에 우리에게도 보릿고개 란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잊어버린 옛말 같으나 불과 삼십 여전에만 해도 이 민족의 삶의 현장에 피할 수 없는 생의 한 고비였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북한이 식량난으로 얼마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이르렀는지 기순자들의 한결같은 배고픈 증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996년 8월 16일에 귀순한 북한군 장철봉 하사의 허약한 모습은 북한의 실상을 더욱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장성한 23세 군인의 신장이 160㎝이며, 체중이 42㎏이라고 하니 식욕이 왕성한 군인의 체력이 그 정도라면 국력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배부른 우리에게는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이북에서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삶의 현장에서 보리떡 하나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픈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앞서 이웃의 배고픔에 동참하여 자신의 만족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헌납할 수 있는 결단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결단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는 선한 도구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성과 지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비밀한 것을 보리떡으로 한 조각으로 해결해 드립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복서 전체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복음 14:13-21; 마가복음 6:30-44;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4) 동일한 사건을 계속하여 언급한 것은 이 본문이 구원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건임을 가르쳐 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훈이 무엇인가 기독교의 구원은 전인 구원입니다. 주님은 영육간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일으킨 보리떡 운동 이 무엇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보리떡 운동은 빈들에서 일어난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 간지라”(13) 이 운동은 빈들에서 일어났습니다. 빈들은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문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러한 빈들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배고픈 무리들에게 빵이 넘쳐 났습니다. 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났는가 주님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언제나 풍성하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신의 삶의 현장에 주님이 계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빈들의 역사입니다.
1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위에 선포되기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는가 무질서한 혼돈이요, 텅빈 공허요, 캄캄한 어두움이었습니다. 이곳에 말씀이 역사 하니 혼돈한 무질서가 질서의 세계로, 텅빈 공허한 세계가 가득하게 채워지는 충만한 세계로, 흑암이 깊이 깔린 어두움이 빛의 세계로 전환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현장에 역사 하시면 빈들이 풍요로와집니다.
2 주님의 구원 역사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물질로 만족하려 했던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하므로 모든 것을 토설하고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율법적인 세상 지식으로 마음에 평안이 없던 니고데모도 주님을 만나고는 중생하여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쾌락에 빠졌던 수가성 여인도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나고 가슴에서 넘치는 생수로 만족한 삶을 누렸습니다. 3 성령님 보혜사의 손길도 그러합니다. 성령님은 빈들에 고아와 같이 버려진 인생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기억나게 해서 두려움을 내어 좇고 평안을 주십니다. 당신은 환경 앞에서 탄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처한 환경이 빈들이라도 주님이 계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항상 빈들에서 훈련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같은 자들을 항상 빈들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처한 환경에 인간적으로 기댈 언덕이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버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니라”(고린도후서 12:10)고 했습니다.
둘째:보리떡 운동은 저물 때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5) 이 온동은 시간적으로 저물은 때입니다. 창조 질서를 따라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어두운 밤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사려 갈 수도 없거니와 무엇을 사 올 수도 없는 없는 빈들입니다. 이미 모든 일손이 끝난 해가 저물은 때입니다. 이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으로 이미 늦은 저물은 때라고 생각할 그때가 바로 시작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저물었을 때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자들 중에 때가 저물은 인간이 많습니다. 1 아브라함은 청춘이 다 지나간 저물었던 인생입니다. 백세가 되기까지 자식을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 역사를 일으키는 복의 근원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2 출애굽을 한 모세도 저문 인생입니다.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을 때가 저물었던 팔십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출애굽의 기수로 세우신 것입니다.
3 주님의 십자가 우편에 달린 강도는 피를 흘려 숨이 넘어가는 직전의 저물었던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주님을 부르고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했습니다. 당신도 저물은 인생이라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배움의 기회를 다 놓쳐서, 이제 나의 사업은 회생이 불가능해 . , 이제 나의 모든 재능은 다 녹슬었서 . 하고 저문 인생이라고 낙심하지 맙시다. 주님은 오후 세시의 인간도 부르셔서 기회를 주시고, 오전의 인생과 동일한 대우를 하시며, 먼저 불러서 대우하십니다.
셋째:보리떡 운동은 오병이어로 일어킨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뿐이니이다”(17) 당신은 오병이어라고 무시하지 맙시다. 그 당시 그 무리를 위해 제공한 오병이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장정이 오천명이요, 부녀자를 합치면 수백만이 넘는 무리들을 위한 양식으로 오병이어를 가져왔다는 것은 평범한 상식으로 볼 때 조금 모자라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자라는 인간을 쓰십니다. 당신의 손에 있을 때 오병이어지 주님의 손으로 옮겨지는 순간에 거대한 식품공장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 운동은 오병이어의 역사입니다.
1 모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는 하찮은 보리떡입니다. 그러나 그 모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 지팡이는 홍해를 갈랐으며, 반석을 깨뜨렸으며, 아말렉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2 다윗의 손에 잡힌 물맷돌 역시 보리떡입니다. 그것이 개울가에 버려져 있을 때는 아무런 가치 없는 돌맹이 한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다윗의 장중에 들어갈 때 블레셋의 골리앗 장수를 넘어뜨리는 구국운동의 핵 폭탄이 된 것입니다.
3 오늘 벳세다 들녁에 오병이어는 한끼의 도시락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하여 드린 보리떡은 주님의 장중에서 거대한 식품 공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자를 쓰시는가 보리떡 같은 인간을 쓰십니다. 나의 소유로있을 때는 하찮은 보리떡이지만 주님의 장중에 맡길 때는 거대한 빵공장으로 역사하여 나의 지각밖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을 들어서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26-31).
넷째:보리떡 운동은 배불리 먹고도 남는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20) 당신이 주님 앞에 오면 주리는 법이 없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아서 거두는 것이 주님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목전에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풍성해서 남는여유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낭비하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거두게 하십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축사한 성물은 하나도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성물을 헛되게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창조 질서를 파괴하지 않은 철저한 자연보호 운동이요 거둔 것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았습니까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습니다. 주님을 따라 의(義)의 말씀을 사모한 심령들은 영적인 말씀으로 영혼의 갈증도 해갈함을 얻고 육신의 주린 배도 채우는 영육간에 풍성함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과 육체를 구원하는 전인 구원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한 자만이 압니다. 수백만의 무리들이 그 떡을 먹으면서 어디서 그렇게 많은 떡이 나왔는지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보리떡을 받친 소년과 주님의 제자 안드레만이 알았던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함은 당신이 가진 오병이어를 주님의 손에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드린 자는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한 사람도 주림이 없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작이 열두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그 이후의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저는 이렇게 추측해 봅니다. 주님은 그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이 빵을 제공한 손길은 바로 이 어린 소년이다 그 남은 광주리를 어린 소년에게 드리면서 누구든지 남을 위하여 베풀라 그리하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채워 주리라고 하시면서 벳세다 성회를 마쳤을 것입니다. 당신은 생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주님을 당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면 절대로 주리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연회장으로 안방에 앉아 있고 주님이 손님으로 밖에서 서서 계시면 당신의 삶에는 항상 모자라는 삶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당신의 삶의 가장자리에 주님을 모십시오 맹물 인생이 값진 포도주 인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베셋다 들녘에 오병이어를 손에 쥔 보리떡 인생입니다. 당신이 소유한 오병이어는 한끼의 도시락에 지나지 않은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의 장중에 맡길 때 당신의 생애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장소가 빈들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때가 저물은 때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가진 것이 오병이어라고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으로 주님은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는 것을 거두게 하는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첫째:보리떡 운동은 빈들에서 일어난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 간지라”(13) 이 운동은 빈들에서 일어났습니다. 빈들은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문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러한 빈들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배고픈 무리들에게 빵이 넘쳐 났습니다. 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났는가 주님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언제나 풍성하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신의 삶의 현장에 주님이 계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빈들의 역사입니다.
1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위에 선포되기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는가 무질서한 혼돈이요, 텅빈 공허요, 캄캄한 어두움이었습니다. 이곳에 말씀이 역사 하니 혼돈한 무질서가 질서의 세계로, 텅빈 공허한 세계가 가득하게 채워지는 충만한 세계로, 흑암이 깊이 깔린 어두움이 빛의 세계로 전환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현장에 역사 하시면 빈들이 풍요로와집니다.
2 주님의 구원 역사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물질로 만족하려 했던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하므로 모든 것을 토설하고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율법적인 세상 지식으로 마음에 평안이 없던 니고데모도 주님을 만나고는 중생하여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쾌락에 빠졌던 수가성 여인도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나고 가슴에서 넘치는 생수로 만족한 삶을 누렸습니다. 3 성령님 보혜사의 손길도 그러합니다. 성령님은 빈들에 고아와 같이 버려진 인생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기억나게 해서 두려움을 내어 좇고 평안을 주십니다. 당신은 환경 앞에서 탄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처한 환경이 빈들이라도 주님이 계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항상 빈들에서 훈련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같은 자들을 항상 빈들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처한 환경에 인간적으로 기댈 언덕이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버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니라”(고린도후서 12:10)고 했습니다.
둘째:보리떡 운동은 저물 때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5) 이 온동은 시간적으로 저물은 때입니다. 창조 질서를 따라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어두운 밤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사려 갈 수도 없거니와 무엇을 사 올 수도 없는 없는 빈들입니다. 이미 모든 일손이 끝난 해가 저물은 때입니다. 이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으로 이미 늦은 저물은 때라고 생각할 그때가 바로 시작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저물었을 때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자들 중에 때가 저물은 인간이 많습니다. 1 아브라함은 청춘이 다 지나간 저물었던 인생입니다. 백세가 되기까지 자식을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 역사를 일으키는 복의 근원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2 출애굽을 한 모세도 저문 인생입니다.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을 때가 저물었던 팔십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출애굽의 기수로 세우신 것입니다.
3 주님의 십자가 우편에 달린 강도는 피를 흘려 숨이 넘어가는 직전의 저물었던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주님을 부르고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했습니다. 당신도 저물은 인생이라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배움의 기회를 다 놓쳐서, 이제 나의 사업은 회생이 불가능해 . , 이제 나의 모든 재능은 다 녹슬었서 . 하고 저문 인생이라고 낙심하지 맙시다. 주님은 오후 세시의 인간도 부르셔서 기회를 주시고, 오전의 인생과 동일한 대우를 하시며, 먼저 불러서 대우하십니다.
셋째:보리떡 운동은 오병이어로 일어킨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뿐이니이다”(17) 당신은 오병이어라고 무시하지 맙시다. 그 당시 그 무리를 위해 제공한 오병이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장정이 오천명이요, 부녀자를 합치면 수백만이 넘는 무리들을 위한 양식으로 오병이어를 가져왔다는 것은 평범한 상식으로 볼 때 조금 모자라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자라는 인간을 쓰십니다. 당신의 손에 있을 때 오병이어지 주님의 손으로 옮겨지는 순간에 거대한 식품공장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 운동은 오병이어의 역사입니다.
1 모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는 하찮은 보리떡입니다. 그러나 그 모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 지팡이는 홍해를 갈랐으며, 반석을 깨뜨렸으며, 아말렉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2 다윗의 손에 잡힌 물맷돌 역시 보리떡입니다. 그것이 개울가에 버려져 있을 때는 아무런 가치 없는 돌맹이 한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다윗의 장중에 들어갈 때 블레셋의 골리앗 장수를 넘어뜨리는 구국운동의 핵 폭탄이 된 것입니다.
3 오늘 벳세다 들녁에 오병이어는 한끼의 도시락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하여 드린 보리떡은 주님의 장중에서 거대한 식품 공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자를 쓰시는가 보리떡 같은 인간을 쓰십니다. 나의 소유로있을 때는 하찮은 보리떡이지만 주님의 장중에 맡길 때는 거대한 빵공장으로 역사하여 나의 지각밖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을 들어서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26-31).
넷째:보리떡 운동은 배불리 먹고도 남는 역사입니다. 읽을 말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20) 당신이 주님 앞에 오면 주리는 법이 없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아서 거두는 것이 주님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목전에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풍성해서 남는여유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낭비하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거두게 하십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축사한 성물은 하나도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성물을 헛되게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창조 질서를 파괴하지 않은 철저한 자연보호 운동이요 거둔 것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았습니까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습니다. 주님을 따라 의(義)의 말씀을 사모한 심령들은 영적인 말씀으로 영혼의 갈증도 해갈함을 얻고 육신의 주린 배도 채우는 영육간에 풍성함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과 육체를 구원하는 전인 구원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한 자만이 압니다. 수백만의 무리들이 그 떡을 먹으면서 어디서 그렇게 많은 떡이 나왔는지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보리떡을 받친 소년과 주님의 제자 안드레만이 알았던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함은 당신이 가진 오병이어를 주님의 손에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드린 자는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한 사람도 주림이 없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작이 열두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그 이후의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저는 이렇게 추측해 봅니다. 주님은 그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이 빵을 제공한 손길은 바로 이 어린 소년이다 그 남은 광주리를 어린 소년에게 드리면서 누구든지 남을 위하여 베풀라 그리하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채워 주리라고 하시면서 벳세다 성회를 마쳤을 것입니다. 당신은 생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주님을 당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면 절대로 주리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연회장으로 안방에 앉아 있고 주님이 손님으로 밖에서 서서 계시면 당신의 삶에는 항상 모자라는 삶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당신의 삶의 가장자리에 주님을 모십시오 맹물 인생이 값진 포도주 인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베셋다 들녘에 오병이어를 손에 쥔 보리떡 인생입니다. 당신이 소유한 오병이어는 한끼의 도시락에 지나지 않은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의 장중에 맡길 때 당신의 생애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장소가 빈들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때가 저물은 때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가진 것이 오병이어라고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으로 주님은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는 것을 거두게 하는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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