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1:29-34)
본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는 처음 빛 이라고 증거. 두 번째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세 번째 너희 가운데 서 계신다. 그리고 오늘 네 번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양파를 벗기듯 점점 점진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본다. 오늘 네 번째 증거는 26절, 27절에 대한 답변이기도 한다. 26절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 " 그 한 사람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 이라는 것. 27 절 "내 뒤에 오시는 그 이 " 그 분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 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세례요한의 증거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에서 멈추지 않고 더 놀라운 증거를 한다. 그 분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실 것을 증거 한다. 더욱 놀라운 증거는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한다. 이것은 곧 메시야, 구세주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성령님이 충만한 자 아니고서는 이 놀라운 폭탄 선언을 할 수 없다. 광야에 33세살 먹은 볼품없는 노총각의 이 선언은 자기의 목숨을 내놓고 하는 선언이었다.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에,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가, 세례요한이 왜 그렇게 했는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땅에 왔고 예수를 위해서 살다가 죽기로 작정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 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 어떤 권세도, 하늘을 찌를 듯한 종교세력도 그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예수라는 그 분이 세례요한을 그렇게 만들었다.
29 절 "이튿날 .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세례요한은 지금 예수님을 세 번째 만나게 된다. 첫 번째 어머니 엘리사벳 배속에서 두 번째 앞 절 내용에서 세 번째 오늘. 세 번째 만나는 날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다가오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군중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보고만 계시던 예수님이 오늘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튿날 연속적인 날 이었음을 강조한다. 세상 죄 인류의 모든 죄. (나의 죄, 너의 죄) 지고가는 옮기다, 치워 버리다, 파괴시키다, 없애 버리다. 어린 양 구약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가지고 나갔던 재물이다 구약에 하나님을 그냥 만났다가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죽었다. 반드시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하나님을 만났고 죄가 사함 받았다. 출 29:38 매일 어린양 2마리를 하나님께 드렸다 1 마리는 아침에, 또 1 마리는 저녁에. 또 이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죽여서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그 어린양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예수를보고 소리쳤다. "보라 !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어제 까지만 해도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안 가르쳐 주었다. 마치 "이놈들아 너희는 모르지 나는 안다! " 하는 식으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만 세례요한이 지금 미쳐 버리고 있다. 정신이 확 돌아 버린 것처럼 지금 소리치고 있다. "보라 ! 보라 !보라 !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수 없이 하고 싶다) 왜 이렇게 갑자기 세례요한이 소리치는가 (다 같이) " 피를 보았다 " ' 예 화 ' 어느 정신과 의사 말이 인간은 피를 보면 미쳐 버린다고 한다. 월남전에 갔다온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까 적하고 싸우기 전에는 다 두려워한다.
그런데 막상 싸움이 붙고 옆에서 전우가 총을 맞고 피를 토하고 죽으면 그때부터는 부모님 얼굴도 안 보이고 애인도 안보이고 죽음도 안 두렵고 한다고 한다 왜 피를 보면 미쳐 버리는가 살인도 사람이 피를 보면 미쳐 버리기 때문에 한다고 한다. 인간도 이런 죄악의 피만 보아도 미치는데. 지금 세례 요한은 인간의 피가 아니다 어린양의 속죄의 피를 본 것이다. 구약의 그 수많은 짐승의 피가 바로 예수 였다는 것을 지금 세례요한은 보고 만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안 미쳐 버릴 수가 있겠는가 2000 년전의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피가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느껴져야 한다. 이 십자가의 뜨거운 피와 내가 만남이 없이는 우리의 죄는 사함 받을 길이 없다. 이 예수 피와 내가 영적 체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구원이 확신이 있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예수 피와 영적 체험이 있어야만 죽음도 두렵지 않고, 환경이 어두워도 두렵지 않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 그리스도 피는 능력의 피다. 귀신들이 예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하지만 예수 피를 더욱 무서워한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머리가 십자가에서 예수가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박살났기 때문이다. 귀신들린 자들을 붙잡고 기도하면 예수 피를 말하면 무서워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피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란다. 세례요한은 지금 구약의 죄없이 죽어갔던 그 어린양이 바로 예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영적으로 보고 소리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저와 여러분의 더러운 죄가 예수 십자가의 피로 사해졌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어떻게 주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례요한보다도 우리는 더 놀라고 소리쳐야 한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역사적으로 알고 보았기 때문에 더 소리쳐야만 한다. 내 죄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이 놀라운 사실, 역사적 사실만 진실로 믿으면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귀신의 더러운 처소들은 지금 이 시간 떠나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내가 진실로 믿기만 하면 우리는 세례요한보다 더 많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예수를 위해 살게 될 것이다. 30 .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본문은 15절을 다시 반복. 왜 반복 하고있는가 전에 자신이 증거 했던 그 분이 오늘 자신 앞에 나타나신 바로 그 분을 두고 한 말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대통령이 외국을 가거나 이 작은 신례원에 온다 할지라도 먼저 청와대에서 선발대가 온다. 마찬가지로 만 왕의 왕이 보내기 전 하나님은 수많은 선발대를 보냈다. 이제 마지막 선발대원인 세례요한을 보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증거케 하고 계신 것이다.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야가 올 것이다 예언을 하고 죽어갔다. 세례요한 역시 그 사명으로 이 땅에 보내진 자였다. 내 뒤에 오는 사람 그냥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 사람은 (헬) 안드로프스 인데 여기에서는 "아네르" 을 쓰고 있다. 아네르는 남성을 가리키는 용어다. 즉 남성이 여성의 머리가 됨을 뜻하는 용어로 썼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사람이라는 말이 두 번. 여기에서도 역시 그냥 사람으로 (안트로프스) 로 보면 안됨.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이것은 예수가 창조주라는 것을 뜻. 세례요한 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하여 보내진 자 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세례요한은 바로 내가 그 동안 너희에게 오시리라고 하신 분이 바로 이 분을 가리킨 것이다. 증거하고 있다. 우리 또한 이 땅에 왜 보내주셨습니까 이 땅에 잘살고 잘 먹고 지내기 위해 보내 주었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 십자가의 피를 영적으로 체험한자라면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는 너의 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의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
' 찬 양 185장 '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하느냐. 세례요한처럼 세상에 나가서 회개하라 . 꼭 그렇게 외치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있는 곳에서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세요. 그 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답니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기쁨의 삶을 삽시다" 세례요한처럼 목숨을 내 놓고 전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피를 영적으로 체험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밖에 없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그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며 어찌 그분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짐승들도 자기를 돌보아 주면 은혜를 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모르면 짐승보다 나을게 뭐 있겠는가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오늘날 은혜를 받으려는 자는 많은데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사는 자가 드문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 하지만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 은혜 받기는 어려워도 은혜를 잊으며 사는 것은 너무 쉽다는 것을 깨닫자.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전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31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 세례요한이 하는 일은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는 것. 물세례를 주는 이유는 백성들을 위함이 먼저가 아니라 예수님을 백성들이 영접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대하고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메시야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백성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우리 교회들도 이 점을 배워야 한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시키기 전에 반드시 먼저 회개를 시켜야한다. 물론 회개도 마음대로 안된다. 성령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어야만 이루어지지만 그래도 먼저 믿는 자들이 해야 할 것은 회개 할려는 마음 자세가 먼저 되어야 만이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신다. 그 회개 할려는 마음을 주의 종들이 해야한다. 즉 죄를 지적 해주고 먼저 회개가 이루어져야 함을강조. 세례요한은 그렇게 했다. 세례요한 앞에 나오는 백성들에게 죄를 지적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촉구했다.
회개 한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다. 눅 3:7-14 세례요한이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 회개가 없다면 아찔하다. 얼마나 이 은혜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인가 그러나 이 회개도 언제까지 계속 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온다. 계 9장 16장 회개치 아니한다고 했다. 회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거다. 그런데 이제 회개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회개의 삶을 지금부터라도 살아야 한다 경건의 이르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딤전 4:7) 경건할 수 있는 것은 곧 회개의 삶을 살 때 생긴다. 그러므로 회개의 삶이 우리 몸에 배어야 한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온 자를 기뻐하신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회개 없는 기도 헛된 기도다. 예배 예배다. 찬양 찬양. 우리에게 회개가 충만할 때 또한 성령님도 충만하게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재 하신다. 교회가 말씀 가르치는 것 중요하다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회개가 없는 말씀공부는 머리만 키우게 하고 회개가 없는 찬양은 스트레스 해소 역할 하는 꼴이다. 마지막 때 교회가 회개하는 신앙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죄를 더럽게 여기고 몸서리치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죄악이 없는 곳이 없다. 안방에까지도, 학교에까지도, 어디를 마음놓고 갈 때도 없다. 온통 죄악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가 죄를 먹고 마시고 사는데 회개의 삶이 철저히 안되어진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느 날 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하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 회개를 주신 것은 예수님 앞에 떳떳이 나타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벌거벗고 사는 자는 회개의 삶을 못 산 자다. 회개의 삶을 산 자는 자기 옷을 잘 지킨 자다. 산 자에게는 주님이 도적 같이 오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회개의 삶을 못산 자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회개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회개가 될 수도 있다. 회개만큼은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회개가 늦어진 만큼 우리는 주님을 그만큼 늦게 만나는 것이다. 범죄자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죄를 빨리 자백하면 편히 쉴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안했다고 발뺌을 한다거나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얻어맞고 심지어는 고문까지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회개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저 원수 마귀에게 계속 놀림 당하고, 계속 죄에 대해 억압받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죄를 토해 버리면 얼마나 시원하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사탄의 죄악의 사슬에 묶여있다면 그 사슬을 끓을 수 있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 내가 죄만 고백하면 그때부터 예수가 간섭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가 나를 맘대로 못한다. 죄악이 나를 유혹 할 때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다 이 더러운 죄야 물러가라" 소리치자. 그래도 계속 유혹이 오면 성령님께 S.O.S 치시기 바란다. " 성령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어요 성령님 저를 " 간절히 그렇게 속으로나 소리내서 외치면 성령님께서 신기하게 우리의 마음에서 죄의 더러운 생각을 걷어가 주시고 평강을 주신다.
"오직 예수 " 32-33 성령님을 증거하고 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증거한 세례요한은 이제 이어서 성령님을 증거 한다. 32절 세례요한이 목격한 것을 증거 한다 33 세례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증거 한다. 목격한 게 무엇인가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머물렀다. 왜 성령님이 예수 위에 머무르는 게 세례요한 눈에 보였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게 내려졌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그 위에 머무르는 자가 바로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자라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가 메시야인지 세례요한도 몰랐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메시야를 아는 길은 하나님의 계시대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 계시는 성령님이 머무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세례요한 영적 눈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유대인들에게 비둘기는 성결한 새다. 머물렀더라 이제껏 성령님이 사람에게 머무른 적이 없었다. 구약에서 성령님의 역사는 그때그때 강림하셨지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는 안했다.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자라는 것이다 성령님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고 또 사람들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 것을 말한다. 성령님세례는 성령님 안에서 이제 예수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함께 거듭나는 경험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요 3:5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회개하는 심령이 될 때 진정한 믿음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믿음은 내 죄가, 더러운 내 죄가, 흉악한 내 죄가, 예수 피로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게되고 그 믿음 위에는 성령님의 세례가 뒤따르게 되고 성령님 세례 받은 자는 예수를 위해서 살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믿음에는 회개와 성령님의 역사가 뒤따른다.
그러므로 그러한 믿음이 구원 받는 것이지 적당히 믿는 믿음이 구원받는다는 아기가 아니다. 이 시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 것이다.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자가 성령님과 함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님이 머물렀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다. 그 동안 예수께 방패만 들려주었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는 방패와 칼이 들려진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원수 마귀에게 당하며 살아 왔던가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어서 마귀를 대적하고 이길 수 있도록 손에 칼을 주어주었는데 그 칼이 곧 성령님의 칼이다.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성령님세례를 받어야만 된다. 많은 믿는 자들이 성령님세례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신앙에 기쁨이 없고 힘이 없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면 성령님세례을 반드시 받어야만 한다. 안 받은 다면 종교인으로만 살게 될 것이다. 종교로는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받은다. 롬 8:9 누구든지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성령님 세례를 받으면 이제 그리스도 인이다. 그리스도인 답게 살라고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 것이다 이 땅에 예수 믿는 자들은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 인들은 보기 힘들다. 왜 그런가 예수 믿고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리스도 인이 되는데 왜 그리스도인들 보기가 힘들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령님세례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받고나서가 더 중요하다. 성령님세례를 받았으면 이제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을 성령님께 물어보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어야만 한다. 주님을 보라 ! 모든 일을 성령님의 인도함대로 따르며 살으셨다. 성령님에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가 40일 금식을 하셨다. 성령님의 인도는 곧 하나님 말씀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을 보자 ! 성령님세례를 받고도 아직도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성령님보다도 더 앞서고 있고 내 주장을 더 내세우고 있다.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성령님 세례에서 만족하지 마시고 그 다음 단계인 성령님 충만을 받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히 받지 않으니까. 내 생각이 나오고 내 고집이 나오고 판단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다가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 받어야 만이 성령님을 세례로 주신 분의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살수가 있다. (마3:11)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성령님 충만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자!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의 이 증거는 그냥 막연한 추측으로 한게 아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을 생생하게 반복 한 것이다.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내가 보고 세례요한이 영안으로 본 것을 말한다. 영안 뿐만 아니라 영적 귀도 열려서 하늘에서 난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 요 1:18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느니라 이것은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한 것은 보았기 때문이다. 요 1장 보았다는 용어만 18 번이 나온다. 보았기 때문에 중거할수 있었던 것이다. 또 들었기 때문에 증거 할 수 있었다. 보는 것, 듣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귀로 듣느냐가 중요하다. 육적인 눈은 육적인 세계만 본다. 육적인 귀는 하늘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세례요한은 영적인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눈도 영안이 열려야만 한다. 영적인 귀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예수를 증거 하는 자가 될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 시고 성령님이 곧 예수의 영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삼위가 한분 이시라는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육적인자가 아니라 영적인 자 임을 말한다. 우리는 영적 세계를 보고있고 듣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해야 한다. 증거케 하기 위해서 우리 눈과 귀를 열어 주신 것이다. 예수를 믿어도 영적 소경인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증거할수 없다. 예수를 믿어도 영적으로 귀머거리인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증거할수 없다. 증거할수 있는 자는 반드시 본 자만이 할 수 있다. 들은 자만이 증거할수 있는 것이다. '예화' 세상 법정에서도 증인 석에 설 수 있는 자는 그 사건을 목격한자거나 들었던 자만이 설 수 있다. 목격도 안했는데도 증인 석에 섰다면 그 사람은 위증죄로 구속된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자 이십니까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았습니까 들었습니까 하늘의 소리를 . 우리 모두는 이 놀라운 사실들을 다 본 자들이다. 또 하늘의 소리를 들은 자들이다. 믿습니까 우리 모두는 성령님 안에서 모두 거듭났기 때문에 영안이 열려있고 영의 귀가 열려있다. 이제 우리에게 할 일은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길이다. 행 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뜻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자. '결론' 조 베일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광고 회사에 복음을 맡기지는 않으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맡기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광고판을 세우고 광고 용지를 돌리라 명령하시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그 젊은 삶을 온전히 바친 세례요한 . 본 그대로 , 들은 그대로 세례요한은 증거 했다. 우리 또한 본 그대로, 들은 그대로 증거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 24장 에서 주님은 마지막 때 거짓 증거자가 많이 생길 거라고 하셨다. 반면에 그 거짓 소리에 많은 사람이 미혹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거짓 소리에 우리가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되고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서 하늘의 소리인지 거짓 소리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세례요한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증거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오직 예수 한 분만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증거 하실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뿐이다. 참된 증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오직 예수 ! 만을 증거 하시기 바람. 오직 예수가 세례요한의 전부였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예수가 우리의 전부가 되시기를 축원함. 시대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 시대 참된 증인들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시고,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시고 성령님으로 충만케 한 것은 우리들이 참된 증인들이 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레5:1)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29 절 "이튿날 .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세례요한은 지금 예수님을 세 번째 만나게 된다. 첫 번째 어머니 엘리사벳 배속에서 두 번째 앞 절 내용에서 세 번째 오늘. 세 번째 만나는 날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다가오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군중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보고만 계시던 예수님이 오늘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튿날 연속적인 날 이었음을 강조한다. 세상 죄 인류의 모든 죄. (나의 죄, 너의 죄) 지고가는 옮기다, 치워 버리다, 파괴시키다, 없애 버리다. 어린 양 구약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가지고 나갔던 재물이다 구약에 하나님을 그냥 만났다가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죽었다. 반드시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하나님을 만났고 죄가 사함 받았다. 출 29:38 매일 어린양 2마리를 하나님께 드렸다 1 마리는 아침에, 또 1 마리는 저녁에. 또 이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죽여서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그 어린양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예수를보고 소리쳤다. "보라 !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어제 까지만 해도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안 가르쳐 주었다. 마치 "이놈들아 너희는 모르지 나는 안다! " 하는 식으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만 세례요한이 지금 미쳐 버리고 있다. 정신이 확 돌아 버린 것처럼 지금 소리치고 있다. "보라 ! 보라 !보라 !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수 없이 하고 싶다) 왜 이렇게 갑자기 세례요한이 소리치는가 (다 같이) " 피를 보았다 " ' 예 화 ' 어느 정신과 의사 말이 인간은 피를 보면 미쳐 버린다고 한다. 월남전에 갔다온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까 적하고 싸우기 전에는 다 두려워한다.
그런데 막상 싸움이 붙고 옆에서 전우가 총을 맞고 피를 토하고 죽으면 그때부터는 부모님 얼굴도 안 보이고 애인도 안보이고 죽음도 안 두렵고 한다고 한다 왜 피를 보면 미쳐 버리는가 살인도 사람이 피를 보면 미쳐 버리기 때문에 한다고 한다. 인간도 이런 죄악의 피만 보아도 미치는데. 지금 세례 요한은 인간의 피가 아니다 어린양의 속죄의 피를 본 것이다. 구약의 그 수많은 짐승의 피가 바로 예수 였다는 것을 지금 세례요한은 보고 만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안 미쳐 버릴 수가 있겠는가 2000 년전의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피가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느껴져야 한다. 이 십자가의 뜨거운 피와 내가 만남이 없이는 우리의 죄는 사함 받을 길이 없다. 이 예수 피와 내가 영적 체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구원이 확신이 있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예수 피와 영적 체험이 있어야만 죽음도 두렵지 않고, 환경이 어두워도 두렵지 않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 그리스도 피는 능력의 피다. 귀신들이 예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하지만 예수 피를 더욱 무서워한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머리가 십자가에서 예수가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박살났기 때문이다. 귀신들린 자들을 붙잡고 기도하면 예수 피를 말하면 무서워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피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란다. 세례요한은 지금 구약의 죄없이 죽어갔던 그 어린양이 바로 예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영적으로 보고 소리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저와 여러분의 더러운 죄가 예수 십자가의 피로 사해졌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어떻게 주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례요한보다도 우리는 더 놀라고 소리쳐야 한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역사적으로 알고 보았기 때문에 더 소리쳐야만 한다. 내 죄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이 놀라운 사실, 역사적 사실만 진실로 믿으면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귀신의 더러운 처소들은 지금 이 시간 떠나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내가 진실로 믿기만 하면 우리는 세례요한보다 더 많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예수를 위해 살게 될 것이다. 30 .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본문은 15절을 다시 반복. 왜 반복 하고있는가 전에 자신이 증거 했던 그 분이 오늘 자신 앞에 나타나신 바로 그 분을 두고 한 말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대통령이 외국을 가거나 이 작은 신례원에 온다 할지라도 먼저 청와대에서 선발대가 온다. 마찬가지로 만 왕의 왕이 보내기 전 하나님은 수많은 선발대를 보냈다. 이제 마지막 선발대원인 세례요한을 보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증거케 하고 계신 것이다.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야가 올 것이다 예언을 하고 죽어갔다. 세례요한 역시 그 사명으로 이 땅에 보내진 자였다. 내 뒤에 오는 사람 그냥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 사람은 (헬) 안드로프스 인데 여기에서는 "아네르" 을 쓰고 있다. 아네르는 남성을 가리키는 용어다. 즉 남성이 여성의 머리가 됨을 뜻하는 용어로 썼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사람이라는 말이 두 번. 여기에서도 역시 그냥 사람으로 (안트로프스) 로 보면 안됨.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이것은 예수가 창조주라는 것을 뜻. 세례요한 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하여 보내진 자 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세례요한은 바로 내가 그 동안 너희에게 오시리라고 하신 분이 바로 이 분을 가리킨 것이다. 증거하고 있다. 우리 또한 이 땅에 왜 보내주셨습니까 이 땅에 잘살고 잘 먹고 지내기 위해 보내 주었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 십자가의 피를 영적으로 체험한자라면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는 너의 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의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
' 찬 양 185장 '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하느냐. 세례요한처럼 세상에 나가서 회개하라 . 꼭 그렇게 외치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있는 곳에서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세요. 그 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답니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기쁨의 삶을 삽시다" 세례요한처럼 목숨을 내 놓고 전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피를 영적으로 체험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밖에 없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그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며 어찌 그분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짐승들도 자기를 돌보아 주면 은혜를 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모르면 짐승보다 나을게 뭐 있겠는가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오늘날 은혜를 받으려는 자는 많은데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사는 자가 드문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 하지만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 은혜 받기는 어려워도 은혜를 잊으며 사는 것은 너무 쉽다는 것을 깨닫자.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전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31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 세례요한이 하는 일은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는 것. 물세례를 주는 이유는 백성들을 위함이 먼저가 아니라 예수님을 백성들이 영접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대하고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메시야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백성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우리 교회들도 이 점을 배워야 한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시키기 전에 반드시 먼저 회개를 시켜야한다. 물론 회개도 마음대로 안된다. 성령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어야만 이루어지지만 그래도 먼저 믿는 자들이 해야 할 것은 회개 할려는 마음 자세가 먼저 되어야 만이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신다. 그 회개 할려는 마음을 주의 종들이 해야한다. 즉 죄를 지적 해주고 먼저 회개가 이루어져야 함을강조. 세례요한은 그렇게 했다. 세례요한 앞에 나오는 백성들에게 죄를 지적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촉구했다.
회개 한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다. 눅 3:7-14 세례요한이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 회개가 없다면 아찔하다. 얼마나 이 은혜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인가 그러나 이 회개도 언제까지 계속 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온다. 계 9장 16장 회개치 아니한다고 했다. 회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거다. 그런데 이제 회개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회개의 삶을 지금부터라도 살아야 한다 경건의 이르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딤전 4:7) 경건할 수 있는 것은 곧 회개의 삶을 살 때 생긴다. 그러므로 회개의 삶이 우리 몸에 배어야 한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온 자를 기뻐하신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회개 없는 기도 헛된 기도다. 예배 예배다. 찬양 찬양. 우리에게 회개가 충만할 때 또한 성령님도 충만하게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재 하신다. 교회가 말씀 가르치는 것 중요하다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회개가 없는 말씀공부는 머리만 키우게 하고 회개가 없는 찬양은 스트레스 해소 역할 하는 꼴이다. 마지막 때 교회가 회개하는 신앙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죄를 더럽게 여기고 몸서리치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죄악이 없는 곳이 없다. 안방에까지도, 학교에까지도, 어디를 마음놓고 갈 때도 없다. 온통 죄악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가 죄를 먹고 마시고 사는데 회개의 삶이 철저히 안되어진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느 날 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하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 회개를 주신 것은 예수님 앞에 떳떳이 나타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벌거벗고 사는 자는 회개의 삶을 못 산 자다. 회개의 삶을 산 자는 자기 옷을 잘 지킨 자다. 산 자에게는 주님이 도적 같이 오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회개의 삶을 못산 자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회개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회개가 될 수도 있다. 회개만큼은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회개가 늦어진 만큼 우리는 주님을 그만큼 늦게 만나는 것이다. 범죄자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죄를 빨리 자백하면 편히 쉴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안했다고 발뺌을 한다거나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얻어맞고 심지어는 고문까지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회개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저 원수 마귀에게 계속 놀림 당하고, 계속 죄에 대해 억압받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죄를 토해 버리면 얼마나 시원하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사탄의 죄악의 사슬에 묶여있다면 그 사슬을 끓을 수 있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 내가 죄만 고백하면 그때부터 예수가 간섭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가 나를 맘대로 못한다. 죄악이 나를 유혹 할 때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다 이 더러운 죄야 물러가라" 소리치자. 그래도 계속 유혹이 오면 성령님께 S.O.S 치시기 바란다. " 성령님 저를 도와주세요 이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어요 성령님 저를 " 간절히 그렇게 속으로나 소리내서 외치면 성령님께서 신기하게 우리의 마음에서 죄의 더러운 생각을 걷어가 주시고 평강을 주신다.
"오직 예수 " 32-33 성령님을 증거하고 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증거한 세례요한은 이제 이어서 성령님을 증거 한다. 32절 세례요한이 목격한 것을 증거 한다 33 세례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증거 한다. 목격한 게 무엇인가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머물렀다. 왜 성령님이 예수 위에 머무르는 게 세례요한 눈에 보였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게 내려졌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그 위에 머무르는 자가 바로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자라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가 메시야인지 세례요한도 몰랐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메시야를 아는 길은 하나님의 계시대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 계시는 성령님이 머무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세례요한 영적 눈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유대인들에게 비둘기는 성결한 새다. 머물렀더라 이제껏 성령님이 사람에게 머무른 적이 없었다. 구약에서 성령님의 역사는 그때그때 강림하셨지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는 안했다.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자라는 것이다 성령님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고 또 사람들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 것을 말한다. 성령님세례는 성령님 안에서 이제 예수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함께 거듭나는 경험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요 3:5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회개하는 심령이 될 때 진정한 믿음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믿음은 내 죄가, 더러운 내 죄가, 흉악한 내 죄가, 예수 피로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게되고 그 믿음 위에는 성령님의 세례가 뒤따르게 되고 성령님 세례 받은 자는 예수를 위해서 살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믿음에는 회개와 성령님의 역사가 뒤따른다.
그러므로 그러한 믿음이 구원 받는 것이지 적당히 믿는 믿음이 구원받는다는 아기가 아니다. 이 시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 것이다.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자가 성령님과 함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님이 머물렀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다. 그 동안 예수께 방패만 들려주었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는 방패와 칼이 들려진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원수 마귀에게 당하며 살아 왔던가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어서 마귀를 대적하고 이길 수 있도록 손에 칼을 주어주었는데 그 칼이 곧 성령님의 칼이다.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성령님세례를 받어야만 된다. 많은 믿는 자들이 성령님세례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신앙에 기쁨이 없고 힘이 없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면 성령님세례을 반드시 받어야만 한다. 안 받은 다면 종교인으로만 살게 될 것이다. 종교로는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받은다. 롬 8:9 누구든지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성령님 세례를 받으면 이제 그리스도 인이다. 그리스도인 답게 살라고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 것이다 이 땅에 예수 믿는 자들은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 인들은 보기 힘들다. 왜 그런가 예수 믿고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리스도 인이 되는데 왜 그리스도인들 보기가 힘들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령님세례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받고나서가 더 중요하다. 성령님세례를 받았으면 이제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을 성령님께 물어보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어야만 한다. 주님을 보라 ! 모든 일을 성령님의 인도함대로 따르며 살으셨다. 성령님에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가 40일 금식을 하셨다. 성령님의 인도는 곧 하나님 말씀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을 보자 ! 성령님세례를 받고도 아직도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성령님보다도 더 앞서고 있고 내 주장을 더 내세우고 있다.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성령님 세례에서 만족하지 마시고 그 다음 단계인 성령님 충만을 받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히 받지 않으니까. 내 생각이 나오고 내 고집이 나오고 판단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다가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 받어야 만이 성령님을 세례로 주신 분의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살수가 있다. (마3:11)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성령님 충만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자!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의 이 증거는 그냥 막연한 추측으로 한게 아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을 생생하게 반복 한 것이다.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내가 보고 세례요한이 영안으로 본 것을 말한다. 영안 뿐만 아니라 영적 귀도 열려서 하늘에서 난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 요 1:18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느니라 이것은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한 것은 보았기 때문이다. 요 1장 보았다는 용어만 18 번이 나온다. 보았기 때문에 중거할수 있었던 것이다. 또 들었기 때문에 증거 할 수 있었다. 보는 것, 듣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귀로 듣느냐가 중요하다. 육적인 눈은 육적인 세계만 본다. 육적인 귀는 하늘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세례요한은 영적인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눈도 영안이 열려야만 한다. 영적인 귀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예수를 증거 하는 자가 될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 시고 성령님이 곧 예수의 영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삼위가 한분 이시라는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육적인자가 아니라 영적인 자 임을 말한다. 우리는 영적 세계를 보고있고 듣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해야 한다. 증거케 하기 위해서 우리 눈과 귀를 열어 주신 것이다. 예수를 믿어도 영적 소경인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증거할수 없다. 예수를 믿어도 영적으로 귀머거리인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증거할수 없다. 증거할수 있는 자는 반드시 본 자만이 할 수 있다. 들은 자만이 증거할수 있는 것이다. '예화' 세상 법정에서도 증인 석에 설 수 있는 자는 그 사건을 목격한자거나 들었던 자만이 설 수 있다. 목격도 안했는데도 증인 석에 섰다면 그 사람은 위증죄로 구속된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자 이십니까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았습니까 들었습니까 하늘의 소리를 . 우리 모두는 이 놀라운 사실들을 다 본 자들이다. 또 하늘의 소리를 들은 자들이다. 믿습니까 우리 모두는 성령님 안에서 모두 거듭났기 때문에 영안이 열려있고 영의 귀가 열려있다. 이제 우리에게 할 일은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길이다. 행 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뜻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자. '결론' 조 베일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광고 회사에 복음을 맡기지는 않으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맡기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광고판을 세우고 광고 용지를 돌리라 명령하시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그 젊은 삶을 온전히 바친 세례요한 . 본 그대로 , 들은 그대로 세례요한은 증거 했다. 우리 또한 본 그대로, 들은 그대로 증거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 24장 에서 주님은 마지막 때 거짓 증거자가 많이 생길 거라고 하셨다. 반면에 그 거짓 소리에 많은 사람이 미혹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거짓 소리에 우리가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되고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서 하늘의 소리인지 거짓 소리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세례요한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증거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오직 예수 한 분만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증거 하실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뿐이다. 참된 증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오직 예수 ! 만을 증거 하시기 바람. 오직 예수가 세례요한의 전부였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예수가 우리의 전부가 되시기를 축원함. 시대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 시대 참된 증인들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시고,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시고 성령님으로 충만케 한 것은 우리들이 참된 증인들이 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레5:1)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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