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느끼는 것 (눅24:28-35)
본문
국민학교를 거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 늘 뛰면서 정릉 골목길,그런데 喪家가 있는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언제 이렇게 좁아졌단 말인가 30여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다 낡은 한옥과 촘촘히들어찬 주택들,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월은 30여년이 흘러 사람들은 주름이 깊이 패었는데, 주변 환경은 정지된 듯 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날 줄은 미쳐 몰랐다. 글로바와 그의 친구 두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본문의줄거리이다. 다른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데 왜 두 제자만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갔는가에 대해, 오수스테 제는 "예수의 죽음이 수치스럽게 끝나 버렸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구원 얻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졌기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갔다는 것은좌절의 결과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낯선 동행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와 함께엠마오에 도착해서 음식을 나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헤어진 다음에 일어났다. 본문은 예수와 헤어진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1. 눈이 밝아져 예수이신 줄 알게 되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미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는 곁에 게시면서 당신이 예수이심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밝혀 주더니 일단 그들의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자. 예수는 그들 곁에 계시지 않았다. 식사 이전까지는 예수가 낯선 타인으로 보였다. 또 이들의 눈이 갑자기 열려진 것이아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받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뜨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낯선 길손을 애써 대접하려는 마음이 예수를 알아보게 했다 (31). 어린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이나 놀이기구가 있는 곳에 가면 아이들은 소리지르며 좋아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저 덤덤하게 보고 나온다. 왜 그런가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실물접근 방법으로 교육하여야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코끼리 그림을 그려 주거나, 사자그림을 보여 줄 필요는 없다. 예수께서는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알아보는순간, 의심에 휩싸여 고민하는 또 다른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떠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눈이 밝아졌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이다. 두 종류의 눈 / 육체의 눈,영혼의 눈. 영혼의 눈은 죄를 범하면 어두워진다. 일단 어두워진 눈은 '믿음이라는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원과 천국을 볼 수 있다.-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자, 몇가지 변한 것들이 있다.
(1) 일하는 목적이 달라졌다. 타락하기 전에도 일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일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타락한 후부터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땀흘리며 일해야 한다.
(2)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졌다.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았지만,타락한후부터는 '수치'와 '절망' 그리고 '죄'를 보며 살게 되었다. 창3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지자, 벌거벗은 수치를 보게 되었지만, 본문의 두 제자는 눈이 밝아지자 다시 사신 예수를 보게 되었다. '밝아졌다'는 표현은 같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이 차이처럼 크다. 아담과하와는 영혼의 눈은 감기고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고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불신앙의 눈이 감기고 신앙의 눈이 열려졌다는 뜻이다. 민수기 20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이 기록되어 있다. "이 광야에는 파종할 땅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물도 없다"다누불신자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기 때문에 '없다,없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모세에게는 같은 광야인데, 물도, 만나도 메추라기도 보였다.-어떤 눈이 복된 눈인가-하나님을 보는 눈,진리를 보는 눈, 정의를 보는 눈, 사랑을 보는 눈, 형제의 장점을 보는 눈 그리고 다시 사신 주님, 내곁에 계시는 주님을 보는 눈이 복된 눈이다.-바르게 보는 자들의 복-
(1)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려고 오셨다 (요9:39).
(2)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마5:8).
(3)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요 6:40).
(4) 천국에서는 주를 온전히 보고 알게 될 것이다 (고전 13:12).
2. 마음이 뜨거워졌다 (32)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존재로 감격하고 감동하는 존재로 느끼고 깨닫고 행동하는존재로 창조하셨다.그러나 사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다음부터사람의 마음은 식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예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예수는 사라지고 두 사람은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회고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던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었던 것은 예수께서들려주었던 가르침 때문이었다. 특히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32,7)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라고 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만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뜨거워지지 않았던가'는 어떤 심적인 충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일반적 마음의 변화라기 보다는 밖으로부터 어떤 이끌림을 감지하고 감격적인 기쁨과 황홀감을 체험하는 초월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계시다.
그러므로 성경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계시를 받을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두 제자가 뜨거운 마음,즉 열린 마음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아라본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역시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서만 부활한 예수님의 임재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이유-둘이서만 계속해서 황혼 길을 걸었다면 그들의 마음은 더 차가워지고, 경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를 만났기 때문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기적을경험할 수 있었다. 스탈린의 최후 순간-딸의 증언 "아버지는 최후 순간이 가까웠을 때 눈을 갑자기 뜨고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노한 눈이었다. 그 눈을 보는 것은 무서웠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 무엇을 가리키는 듯했다.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 예수 없는 죽음은 두렵고 떨리는 죽음이다. 아프리카에서 여러 해를 보낸 후, 리빙스턴은 옥스포도를 돌아가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아프라키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아 불구가 된 한쪽팔을 옆구리 아래로 늘어뜨린 채, 검은 대륙에서의 경험을 설교하였다. "학생 여러분! 내가 어떻게 지탱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지탱하게 해 준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렇다, 예수님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을 끝가지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이영광을 얻을 수 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황혼길,그 길은 천만명이 걸어도외롭고 괴로운 길이다.그러나 주와 함께 걷는 길이라면 비록 나 혼자 걸을지라도 뜨겁고,멋진 길이 아닐 수 없다.
(2)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통제와 인도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잘못할 때는 야단도 치고, 타이르며 막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갈 길을밝히고, 보여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주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생애에異變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경청하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주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와 빛을 준다. 약한 자에겐 힘을 준다. 죄인에게는 구원의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얼어붙은 심령을 녹이고, 불을붙여 뜨겁게 해준다. 제임스 도브슨의 이념 /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속박한다는 이유로 학교 운동장의 울타리를 모조리 철거해 버렸다.
그런데 울타리를 철거한 이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울타리가 있을 때는 운동장이 좁은 것처럼, 흩어져 뛰어 놀던 아이들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모여서 조용하게 노는 것이었다. 이 실험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울타리는 속박의 요인이 아니라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밝혀내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즉, 울타리를 철거하고살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말씀이 울타리가 필요하다 간섭과통제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말씀이 임하지 않았었다면, 그들의 영혼은싸늘하게 식고 말았을 것이다. 뜨거워진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즉시 돌아갔다. 그리고 자기들의 길에서 만난 예수에 대해서 또 뜨거워졌던 자신들의체험을 큰 소리로 털어놓았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 단 한번의 뜨거움을 경험하자,사람이 달라지고,일터가 달라졌으며, 삶이 달라졌다. 뜨거워진 사람들이라야 역사와 세계와 교회를 뜨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헤어진 다음에 일어났다. 본문은 예수와 헤어진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1. 눈이 밝아져 예수이신 줄 알게 되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미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는 곁에 게시면서 당신이 예수이심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밝혀 주더니 일단 그들의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자. 예수는 그들 곁에 계시지 않았다. 식사 이전까지는 예수가 낯선 타인으로 보였다. 또 이들의 눈이 갑자기 열려진 것이아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받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뜨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낯선 길손을 애써 대접하려는 마음이 예수를 알아보게 했다 (31). 어린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이나 놀이기구가 있는 곳에 가면 아이들은 소리지르며 좋아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저 덤덤하게 보고 나온다. 왜 그런가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실물접근 방법으로 교육하여야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코끼리 그림을 그려 주거나, 사자그림을 보여 줄 필요는 없다. 예수께서는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알아보는순간, 의심에 휩싸여 고민하는 또 다른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떠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눈이 밝아졌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이다. 두 종류의 눈 / 육체의 눈,영혼의 눈. 영혼의 눈은 죄를 범하면 어두워진다. 일단 어두워진 눈은 '믿음이라는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원과 천국을 볼 수 있다.-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자, 몇가지 변한 것들이 있다.
(1) 일하는 목적이 달라졌다. 타락하기 전에도 일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일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타락한 후부터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땀흘리며 일해야 한다.
(2)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졌다.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았지만,타락한후부터는 '수치'와 '절망' 그리고 '죄'를 보며 살게 되었다. 창3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지자, 벌거벗은 수치를 보게 되었지만, 본문의 두 제자는 눈이 밝아지자 다시 사신 예수를 보게 되었다. '밝아졌다'는 표현은 같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이 차이처럼 크다. 아담과하와는 영혼의 눈은 감기고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고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불신앙의 눈이 감기고 신앙의 눈이 열려졌다는 뜻이다. 민수기 20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이 기록되어 있다. "이 광야에는 파종할 땅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물도 없다"다누불신자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기 때문에 '없다,없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모세에게는 같은 광야인데, 물도, 만나도 메추라기도 보였다.-어떤 눈이 복된 눈인가-하나님을 보는 눈,진리를 보는 눈, 정의를 보는 눈, 사랑을 보는 눈, 형제의 장점을 보는 눈 그리고 다시 사신 주님, 내곁에 계시는 주님을 보는 눈이 복된 눈이다.-바르게 보는 자들의 복-
(1)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려고 오셨다 (요9:39).
(2)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마5:8).
(3)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요 6:40).
(4) 천국에서는 주를 온전히 보고 알게 될 것이다 (고전 13:12).
2. 마음이 뜨거워졌다 (32)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존재로 감격하고 감동하는 존재로 느끼고 깨닫고 행동하는존재로 창조하셨다.그러나 사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다음부터사람의 마음은 식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예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예수는 사라지고 두 사람은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회고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던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었던 것은 예수께서들려주었던 가르침 때문이었다. 특히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32,7)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라고 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만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뜨거워지지 않았던가'는 어떤 심적인 충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일반적 마음의 변화라기 보다는 밖으로부터 어떤 이끌림을 감지하고 감격적인 기쁨과 황홀감을 체험하는 초월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계시다.
그러므로 성경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계시를 받을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두 제자가 뜨거운 마음,즉 열린 마음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아라본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역시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서만 부활한 예수님의 임재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이유-둘이서만 계속해서 황혼 길을 걸었다면 그들의 마음은 더 차가워지고, 경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를 만났기 때문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기적을경험할 수 있었다. 스탈린의 최후 순간-딸의 증언 "아버지는 최후 순간이 가까웠을 때 눈을 갑자기 뜨고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노한 눈이었다. 그 눈을 보는 것은 무서웠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 무엇을 가리키는 듯했다.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 예수 없는 죽음은 두렵고 떨리는 죽음이다. 아프리카에서 여러 해를 보낸 후, 리빙스턴은 옥스포도를 돌아가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아프라키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아 불구가 된 한쪽팔을 옆구리 아래로 늘어뜨린 채, 검은 대륙에서의 경험을 설교하였다. "학생 여러분! 내가 어떻게 지탱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지탱하게 해 준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렇다, 예수님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을 끝가지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이영광을 얻을 수 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황혼길,그 길은 천만명이 걸어도외롭고 괴로운 길이다.그러나 주와 함께 걷는 길이라면 비록 나 혼자 걸을지라도 뜨겁고,멋진 길이 아닐 수 없다.
(2)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통제와 인도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잘못할 때는 야단도 치고, 타이르며 막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갈 길을밝히고, 보여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주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생애에異變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경청하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주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와 빛을 준다. 약한 자에겐 힘을 준다. 죄인에게는 구원의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얼어붙은 심령을 녹이고, 불을붙여 뜨겁게 해준다. 제임스 도브슨의 이념 /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속박한다는 이유로 학교 운동장의 울타리를 모조리 철거해 버렸다.
그런데 울타리를 철거한 이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울타리가 있을 때는 운동장이 좁은 것처럼, 흩어져 뛰어 놀던 아이들이 운동장 한가운데로 모여서 조용하게 노는 것이었다. 이 실험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울타리는 속박의 요인이 아니라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밝혀내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즉, 울타리를 철거하고살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말씀이 울타리가 필요하다 간섭과통제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말씀이 임하지 않았었다면, 그들의 영혼은싸늘하게 식고 말았을 것이다. 뜨거워진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즉시 돌아갔다. 그리고 자기들의 길에서 만난 예수에 대해서 또 뜨거워졌던 자신들의체험을 큰 소리로 털어놓았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 단 한번의 뜨거움을 경험하자,사람이 달라지고,일터가 달라졌으며, 삶이 달라졌다. 뜨거워진 사람들이라야 역사와 세계와 교회를 뜨겁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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