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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들의 치유 (마15:29-31)

본문

I. 병자들을 데리고 옴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을 만난 두로와 시돈 지방을 떠나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고 하셨다. 같은 내용에 대한 마가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에서 데가볼리라는 이방 지역을 거쳐서 오셨다고 하였다. 이 데가볼리는 이방 지역이다.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신 후에 이방 지역을 통과하셨다는 사실에서 이방에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되 부스러기 같은 빛이 아니라 세상의 참 빛되시는 예수님이심을 보게된다. 그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 ‘산’위에 앉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산위에 앉으셨을 때 큰 무리가 동원되어 각색 병든 자들 즉 절름발이 불구자와 소경 벙어리와 기타 병든 자를 데리고 왔다. 이때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기록하기를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사천 명이었다. 성경의 기록 속에서 보여주고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각색 병든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랑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육신적 불구자도 많이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영적 불구자가 많이 있다. 주님은 오늘도 큰 무리가 동원되기를 바라고 계신 것이다. 병들고 불구된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사람들이란 유대인들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 되심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기에 마가복음에서는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들 것에 메고 와서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에 놓을 때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일으키셨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 역사를 보면 믿음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도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러한 멋있고 후회 없는 수고와 믿음의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II. 예수님의 치유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예수님의 삼대 사역을 마태복음 4:23에 기록하기를 ‘가르침’‘천국 복음의 전파’‘병과 약한 것 고침’이라고 하였다. 실재로 예수님의 생애 중에 행하신 삼십칠 가지의 기적의 내용 가운데 병자를 고치신 수가 무려 이십팔회나 되는 것을 보게된다. 이러한 치료의 사건을 살펴보면 정신 신경계통의 치료가 있고 앉은뱅이 소경 같은 물리적인 질병이 있는가하면 바아러스나 감몀에의한 열병의 치료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불치의 병이라 여겼던 문둥병까지 치료하셨다. 주님은 오늘도 만병의 의사가 되셔서 모든 질병을 치료하실 수 있으시다. 예수님의 병 고치는 사역에서 보여지는 것은 온전한 치유이다.벙어리가 말을 하고 불구자가 건전하여지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더 무엇이 필요 없는 완전한 치유인 것이다. 이 완전한 예수님의 치료는 예수님께서 창조주가 되심을 입증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아 온 병자들 중에는 혈루증 앓던 여인처럼 인간의 의술을 의지하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수님은 인간 이상의 거룩한 능력자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바로 이 완전한 치료자 예수님이 오늘도 영혼과 육체를 온전히 치료할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을 일깨우셨다. 그처럼 목적이 있는 삶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병고치심의 목적은 ‘복음 전파’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그림자처럼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교회나‘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병고침의 사역을 대행케하시며 그 곳에는 복음 전파의 목적이 있음을 일깨워 주고 계시다. 또한 병고침을 받는 사람들은 그 치유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병고침 자체가 목적이되게되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III.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 무리가 보고 기이히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니라. 많은 성경 학자들이 본문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라는 부분에서 이방인들이 병고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하나님되심을 발견하고 영광을 돌리게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 본문의 병고치는 역사가 잇기 전에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여인의 딸을 고치시기도 하였으며 갈릴리로 돌아오시는 길을 이방 땅인 데가볼리를 거쳐서 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입술에서도 영광을 받으시기에 유일하고 합당하신 분이시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 본문의 전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겸손한 이들의 열매인 것이다. 언제나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역사 하는 장소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으나 그들이 모두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아니다. 어떤이들은 예수님을 귀신이 들렸다고 하기도 하였으며 비판적인 시각 자들은 사사건건 흠만 잡기에 몰두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신앙의 사람들은 은혜를 은혜로 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지으신 창조시이시기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난 후에는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서 낙오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리에서 벗어난 인간의 상태가 인간 최대의 비극이 되고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은혜를 발견하고 적합한 적격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없는 영광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셨으며 예수님만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기 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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