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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계시는 하나님 (창6:5-12)

본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 인간들과 얼마든지 교통하실 수 있으신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오늘날 도시화로 인한 이농 현상으로 시골에 그대로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한 논밭처럼 무관심하게 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1)(신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 을 보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2)(시3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 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라고 한 말씀과 같이 세상 모든 만물은 물론 그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모든 인간들을 다 보고 계시며
3) 시편 기자는 (시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살펴 보시며 4)특별히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기도를 보고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 하면서 (왕상8:52)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 소서 라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상9:3)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 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하나님앞에 비춰진 오늘의 세상은 어떠하며, 또한 오늘 성전에 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나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은 어떤 눈으로 보고 계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이 보신 세상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아담의 범죄는 마치 메마른 겨울 산을 태 우는 산불처럼 그 시작은 미미한 것 같았으나 점차 거세게 타들어 가서 가인의 가정 을 죄악으로 불살라 버리고 더나아가서 셋의 후손에까지 그 죄악의 불길이 옮겨 붙 기 시작하였습니다.
1).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창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라는 말씀 과 같이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며,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편에 살고 있는 가인의 후 손이며, 그들보다 1 세기나 뒤늦게 출발한 셋의 후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의 자손만이 아니라 가인의 자손까지 번성하게 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신자들만 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 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부인하 고 무신론 문명을 건설하며 살아가는 가인과 같은 불신자들에게도 여전히 번성토록 은혜를 공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2).하나님의 자녀들의 타락
그렇다면 가인의 자손들도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은 물론 뒤늦게 출 발하였음에도 번성의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셋의 자손들은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만 하였을 것인데 가인의 자손들은 더욱 악하여졌을 뿐만 아니라 셋의 자손 들마져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근심케 하였습니다. 그것은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 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셋의 자손들이 신앙이 없는 가인의 딸들임에 불구하고 그 미모에 빠져 그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같은 행위가 가인의 자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셋의 후손들의 타락이 인류에게 결 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컫는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이라고 일컫는 가인의 딸들의 미모에 사로잡혀 아내로 맞이하는 일이 별로 큰 문제가 아니며 얼마 든지 그럴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 결과 점차 시간이 흘러 갈 수록 그 결과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딸들에게 신앙 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죄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그들의 삶은 과거 그의 조상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모든 관심은 인간 중심, 육신의 쾌락 중심의 삶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 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마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 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라고 하신 말씀과도 같습니다. 마침내 세상은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는 말씀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였습니다.
3)타락의 결과 노아 당시 세상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으실 정도로 죄악이 차고 넘쳤으며 외부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그 근원이 되는 내면 생각까지 전 적으로 부패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더불어 사치, 향락, 방종, 우상 숭배, 죄에 대한 무감각증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중병에 걸려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습니다. 가).죄는 자식이 범하지만 그것을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그를 낳아 기른 부모인 것처럼 노아 당시 죄는 인간들이 범하였지만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창6:6) 땅위 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는 말씀처럼 탕자를 보는 어머니 의 마음처럼 창조주 하나님은 한탄하고 근심하셨습니다. 타락한 아담 이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죄가 없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시대의 어두움을 밝히고 부패를 지연시키며 정화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하기 위하여 믿음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의 자손들을 땅위에 번성케 하 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탄하고 근심하게 한 사람들은 가인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어야만 할 셋의 후손들로 그들이 세속화되고 가인 문화에 빠져들때 하나님은 그것 을 근심하고 한탄 하시는 것입니다 나).또한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라는 말씀처럼 마침내 하나님의 신은 떠나가고 그들에게는 죽음의 심판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창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 라 하시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면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로 작정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근심케하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셋의 후 손들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속화되고 종교 혼합주의에 빠지는 신자들 의 타락이며 바로 그 때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문제는 (신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신8: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 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신8: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고 하신 말씀과 같이 땅위에서 번성하게 될 때 하나님의 축복 을 남용하고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좋은 영향을 줄 지언 정, 노아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처럼 세속의 영향을 받은채 하나님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2.하나님이 보신 노아 그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는 다수의 사람들만을 보시고 한탄만 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실 생각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소수이지만 믿음의 사람 노아를 보시고 그와 그 가족을 구원하실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1)믿음의 사람 노아를 보신 하나님 누구를 막론하고 그같은 세상을 살아 가게 된다면 무엇보다 믿음을 지켜 나가기 어 려웠을 것인데도 노아는 그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 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라는 말씀처럼 그 시대에 오염되지 않은채 꿋꿋이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 로 오늘 성경의 노아였습니다. 더구나 노아는 우리와 성정이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세 아들을 났고 가정 생활을 할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결코 평범하지 아 니하였으니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불완전하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음에도 불구 하고 이처럼 노아를 가리켜 의인이며 완전한 자라고 하심은 노아가 본질적으로 우리 와 다른 완전한 의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아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지만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 혜를 입었더라 고 하신 말씀처럼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완전하시며 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의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분명히 (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3:12)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믿기 전에는 노아 당시의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 혜로 말미암아 의롭고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그로 말미암아 의롭다 일컬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2)순종의 사람 노아를 보신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 결코 무질서나 방종을 용납하는 말이 아닙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패역한 세대에 믿음을 지켜 나갔지만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충성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노아의 믿음은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지만 그 내면적 인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노아의 온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노아가 얼마나 의롭고 완전한 믿음의 소유자인가 하는 것이 입증되어졌습니다. 가). 하나님의 명령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부분적인 구원의 역사와 병행되었는데 하나님은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고 하신 말씀과 같 이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만 하시는 무자비한 하나님이 아니라 자그만치 120년 간의 유예기간을 주시면서 노아로 하여금 (창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 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고 하신 말씀과 같이 구원 의 방주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나).노아가 만든 방주 방주는 노아가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창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라고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대로 만 들었습니다.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 규모는 길이가 171, 넓이가 28, 높이가 17미터로 배 수량이 자그만치 32,000천 톤 정도의 크기로 콘테이너와 같은 크기의 객차가 522량 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의 구조는 역학적으로 뒤집힘이 없이 엄청난 화물을 싣도록 설계 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모세를 애굽의 나일강에 뛰웠던 갈대 상자와 같은 모양의 큰 상자였습니다. 방주에 들어간 각 종의 동물들은 18000 종이나 되는 것으로 정결한 짐승 일곱과 부 정한 짐긍 둘씩 이라면 그 수는 75000마리와 일년간의 양식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정 도의 크기입니다. 과거에 그와 같은 홍수가 내린적이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방주를 만 든다는 것은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하는 온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개의치 않고 일 이년이 아니라 기나긴 세월 동안에 걸쳐 (창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는 말씀처럼 방주를 다 완성한 것입니다.
3)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이같은 노아는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고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으로 말미암아 가) 믿음으로 온 가족을 구원하며 나) 믿음을 배반한 세상을 정죄하고 나) 믿음으로 의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 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3.이 시대의 노아 하나님은 노아 당시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던 믿음없는 세상을 지켜 보셨을 뿐 아니라 선조들이 물려 준 믿음을 배반하고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빠 져 믿음을 배반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을 지켜 보시고 탄식하며 근심하시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보시고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사람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 소원이지만 바로 그 때 신앙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면 겉잡을 수 없는 방탕과 타락의 길로 질주하게 되기 쉬운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경계하신 말세의 특징은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마24:39) 홍수가 나서 저희 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고 하신 말씀처 럼 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1)이 시대의 죄악 과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노아 당시의 세상과 얼마나 다릅니까 오늘도 변합없이 불신앙의 사람들은 인본주의에 빠져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 나간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 고 모든 사고와 행동과 삶의 전 목적은 어느 한 부분도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일 에 매우 인색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이토록 무관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관심을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문화적으로 번영케 하시면서 모든 것을 지켜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패역한 세대에 대해 심판을 지연하시면 마치 하나님이 죄악을 용납하시는 것처럼 오해하고 하나님이 심판을 집행하시면 무자비하신 것처럼 비난하는 것이 패 역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경고된 심판 하나님은 노아 당시 만이 아니라 그 이상 죄악이 관영한 말세에 대해 (벧후3:6) 이 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 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고 한 말씀과 같이 역시 동일하게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경고는 더딘 것 같지만 자연적인 재해를 통해서 자주 경고 되었 기 때문에 우리는 그같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노아와 같은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일본의 지진을 통해 신사참배와 과학의 나약함을 나 타내시고 유럽의 홍수를 통해서 변질된 유럽 교회들의 각성을 촉구하시며, 유래없는 겨울 가믐을 통하여 한국 교회를 기도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 당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아니하는 다수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심판의 경고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 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 느니라 그러나 노아와 같은 믿음의 성도들은 그같은 일들을 보면서 또한 양심의 소리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속삭여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소리에 믿음의 귀를 기울여야 만 할 때입니다.
3)이 시대의 노아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셋의 후손들과 같은 신자들 마져 세속화되 어 버림으로 노아처럼 진실하게 믿고자 하는 성도들이 외로워지는 시대가 바로 노아 때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시대이며 또한 성도들에게는 무엇보다 하나님 의 은혜가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만 출입하는 것으로 만족해 서는 안되며 가)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님을 깨닫고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 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처럼 믿음 없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나) 노아를 가리켜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한 것은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았기 때문에 의롭고 흠잡힐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고 항상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야만 합니다. 다) 노아가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말은 당시 세상이 온통 부패와 불의로 가득차 있었던 세상에서 노아는 나무랄데가 없는 자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 을 정도로 법에 어긋나지 않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삶을 산것처럼 하나님과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굳게 결심을 해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악된 세상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씀처럼 오늘 우리들 도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며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야만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라)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으나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방주를 완성하여 예비해 놓으셨음을 감사하면서 나와 내집 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하는 믿음으로 내 가족을 구원하며 이웃과 친구를 예비된 방주안으로 인도하는 한 영혼 구원하는 일에 전력을 투구해야만 합니다. 그 방주의 문이 항상 열려져 있는 것은 아니며 때가 되면 반드시 문이 닫히게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 믿음의 씨를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믿음의 조상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모이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던 셋의 후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망 각하고 세상 물질과 향락에 눈이 어두워서 천국을 보지 못하고 사는 현실 주의자들 인 가인의 후손들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 했을 때 함께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선과 악이 혼합이 되면 선이 피해를 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무시한 솔로몬은 타락하고 말았으며 그 결과 나라 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교회와 성도들을 세속화시켜 약화시키고 자멸하게 하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오늘도 이 두 세력의 영적인 전투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에 순종하고 살아야 합니다. (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 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육신은 보는 것에 따라 지배를 받고 믿음은 말씀에 따라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미 께서 노아에게은혜를 베푸어 주신 것은 노아가 그같은 세상에서 정직하고 경건하게 살며 성실하게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 그 시대를 건지는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없는 시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보여 준 사람입니다. 결론 세상 죄악은 노아 시대를 뺨칠 정도로 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며 교회와 성도들은 셋 의 자손들처럼 급속하게 세속화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하나님을 근심 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면 과연 오늘의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 근거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벧전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4:18) 또 의인 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종말론 자들처럼 도피처를 찾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 원하는 모습입니다. (욘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 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갈수록 세상은 (계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 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는 말씀처럼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운 밤일 수록 별빛이 더욱 찬란하게 느껴짐과 같이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할 까닭은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의인이며 완전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 행한 결과가 바로 의인이며 그 시대 사람들과 비교할 때 도덕적으로 흠없는 완전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노아와 같이 패역을 더해가고 교회와 성도들의 세속화가 급속해 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노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시며 또한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37:37)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 이로다 (잠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 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노아처럼 보다 거룩하게 사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1)셋의 자손들처럼 사람의 딸들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추 하게 볼 줄아는 안목을 가져야만 하며
2)불신자는 접어두고 라도 교회와 성도들의 세속화를 하나님의 심정으로 걱정하며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3)방주를 예비하여 온 가족을 들어가게 하였던 노아처럼 구원의 방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구원을 받도록하며 4)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있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 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5)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며 원수를 맺지 말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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