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를 원하나이다. (막10:46-52)
본문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라 하는 것은 하지 않은 탓이지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오 쉽고 간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도를 잘 못하고 주님이 받지 않을 법한 기도를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기도에 관해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도시의 목회자가 부흥회를 인도하며 경험한 것이랍니다. 주일 낮예배 대표 기도를 하러 강단에 올라온 한 장로가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마침내 “우야꼬 우야꼬” 하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답니다. 순간 그 장면이 얼마나 숙연하고 간절했던지 지켜보던 교인들도 모두 따라 울고 말았답니다. 비록 그 장로는 아무말 하지 못하였지만 섧게 울던 그 장로의 마음을 온 교인들도 알아 그들의 통성기도는 눈물이 되어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것이지요. 이 일화는 한 도시 목회자가 경상도 어느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경험했던 것이랍니다.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근엄한 얼굴로 올라가 “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시며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이곳에 오셔서…….”를 길게 나열하며 드리는 기도에만 익숙해 있던 도시 교회 목회자에겐 이 시골 교회의 ‘우야꼬 우야꼬’ 기도가 참으로 신선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도는 이처럼 소박하고 간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슨 말이 많이 필요하겠는가 도리어 하나님 앞에 경건의 모양만 내는 꼴이 하나님을 역겹게 할뿐이랍니다. 성경에도 기도는 말만 무성하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친히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또한 기도는 우리의 영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본문에 보면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아무말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만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이 바디메오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기만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예수님이 그 바디매오를 보고 멈춰 서고는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어 봤습니다. (막10:51-52)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이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 이 바디매오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 해 보며 우리는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알아 봐야 하겠습니다.
'1'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관심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고 남이 기도를 들으면 어쩌나 남이 흉보면 어쩌나 하고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기도는 진정 바디 매오 같은 기도가 아니오 시골 장로님의 우야꼬 우야꼬 하는 기도와 다른 기도인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에 우야꼬 하는 이 기도가 얼마나 어설프게 생각이 듭니까 그러나 이 기도는 주님만을 바라본 기도요 주님의 응답을 받을 기도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눈물로 울며 기도하게 되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기도에 좀더 솔직해야 하겠습니다.
(1)우리는 주님만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르지 주님과 나만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사람들은 잘못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본문을 보면(막10:47)“ 나사렛 예수 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매오는 주위의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 본 것입니다. 만약에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작은 소리로 그것도 말을 예쁘게 꾸며 말을 했다고 합시다 아마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눈을 뜨는 사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기도의 순서 일 것입니다.
1)주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르지 “산 속에서 나혼자 기도하려고 하고 있다” 하고 생각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에게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는 주님만이 아시는 문제로서 남 모르는 눈물 나는 사건을 기도할 때“우야꼬 우야꼬” 하는 기도와 같은 기도가 참으로 합당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2)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는데 자기 마음을 속이고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정직한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2)주님은 우리 사정을 이미 다 아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문제와 해결책까지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롬8:2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 할 것을 알고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1)우리의 문제를 아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도 모를 경우가 있으나 주님은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픈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꼭 말하지 못할 경우가 있는데 의사는 당신 여기 여기가 지금 아픕니다. 하고 말하는 것보다도 주님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2)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주님이 주님으로 알고 주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ㄱ. 생활을 주님을 향한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ㄴ.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이것은 가증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3)기도는 성령님으로 기도하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령님이 친히 우리 위해 기도한다고 했고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양한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 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 과 같습니다.
4)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 성령님 충만을 구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기도가 합심이 되어 더욱 힘이 되도록 서로가 의지가 되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ㄱ. 서로 서로가 의지 하며 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와 힘으로 악한 영을 막을려면 서로가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ㄴ.
그러므로 기도하는 모든이가 성령님 충만하기를 구해야 하고 더불어 기도하는 기도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2)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몇 번 기도하고 그만 두었다면 아마 응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위의 기도를 막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기도는 주위의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있다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보면 통성기도 하라 해도 기도가 들리 않고 혼자 기도하는데도 들리지 않고 마치 별일 없는 사람이 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성령님께서 왔다가 그냥 가고 말 것같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하지만 끈기 있게 기도 하는 것이고 사력을 다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보고 주님을 위해 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정석입니다.”
1)끈기 있는 기도는 한 번 고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가 짧은 것은 기도를 한 번 한 것은 안하는 것으로 알아요, 그러나 성경에 보면 보편적으로 그렇게 한번 고한 것을 한번에 마친 경우가 극히 드물고 또 여러말을 많이 늘어놓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단순하고 짧고 그러면서도 그 기도가 몇 분이 걸리지도 않을 기도를 수많은 시간을 기도했고 예수님도 기도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 할 때 간단한 말을 3차래 나기도 했습니다.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는 이 간단한 기도를 얼마나 힘써 기도했던지 천사가 와서 도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천사가 도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다. 예수님은 동시에 인간 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힘써 기도 하니까 천사가 도운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자는 것을 봅니다. 견디지 못한 제사들은 다 시험에 들려 예수님을 부인 하거나 예수님 겯을 떠나 예수님이 다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눅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2)주님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 하는 것입니다.
ㄱ.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심과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뤄 놓으셨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ㄴ. 예수님을 바라 보는 것은 주님을 의지 하는 믿음이 분명 하라는 것입니다.
ㄷ. 그리고 예수님을 섬김에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닷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요 율법의 강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했습니다.
3)기도는 음악과 같은 것입니다. 음악소리가 듣기 좋듣이 기도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성도의 기도소리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뻐하지 않는 기도는 듣기가 거북한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리가 믿음과 확신에 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남의 기도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기도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도를 잘 못하고 주님이 받지 않을 법한 기도를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기도에 관해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도시의 목회자가 부흥회를 인도하며 경험한 것이랍니다. 주일 낮예배 대표 기도를 하러 강단에 올라온 한 장로가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마침내 “우야꼬 우야꼬” 하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답니다. 순간 그 장면이 얼마나 숙연하고 간절했던지 지켜보던 교인들도 모두 따라 울고 말았답니다. 비록 그 장로는 아무말 하지 못하였지만 섧게 울던 그 장로의 마음을 온 교인들도 알아 그들의 통성기도는 눈물이 되어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것이지요. 이 일화는 한 도시 목회자가 경상도 어느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경험했던 것이랍니다.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근엄한 얼굴로 올라가 “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시며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이곳에 오셔서…….”를 길게 나열하며 드리는 기도에만 익숙해 있던 도시 교회 목회자에겐 이 시골 교회의 ‘우야꼬 우야꼬’ 기도가 참으로 신선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도는 이처럼 소박하고 간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슨 말이 많이 필요하겠는가 도리어 하나님 앞에 경건의 모양만 내는 꼴이 하나님을 역겹게 할뿐이랍니다. 성경에도 기도는 말만 무성하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친히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또한 기도는 우리의 영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본문에 보면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아무말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만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이 바디메오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기만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예수님이 그 바디매오를 보고 멈춰 서고는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어 봤습니다. (막10:51-52)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이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 이 바디매오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 해 보며 우리는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알아 봐야 하겠습니다.
'1'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관심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고 남이 기도를 들으면 어쩌나 남이 흉보면 어쩌나 하고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기도는 진정 바디 매오 같은 기도가 아니오 시골 장로님의 우야꼬 우야꼬 하는 기도와 다른 기도인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에 우야꼬 하는 이 기도가 얼마나 어설프게 생각이 듭니까 그러나 이 기도는 주님만을 바라본 기도요 주님의 응답을 받을 기도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눈물로 울며 기도하게 되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기도에 좀더 솔직해야 하겠습니다.
(1)우리는 주님만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르지 주님과 나만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사람들은 잘못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본문을 보면(막10:47)“ 나사렛 예수 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매오는 주위의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 본 것입니다. 만약에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작은 소리로 그것도 말을 예쁘게 꾸며 말을 했다고 합시다 아마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눈을 뜨는 사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기도의 순서 일 것입니다.
1)주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르지 “산 속에서 나혼자 기도하려고 하고 있다” 하고 생각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에게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는 주님만이 아시는 문제로서 남 모르는 눈물 나는 사건을 기도할 때“우야꼬 우야꼬” 하는 기도와 같은 기도가 참으로 합당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2)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는데 자기 마음을 속이고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정직한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2)주님은 우리 사정을 이미 다 아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문제와 해결책까지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롬8:2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 할 것을 알고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1)우리의 문제를 아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도 모를 경우가 있으나 주님은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픈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꼭 말하지 못할 경우가 있는데 의사는 당신 여기 여기가 지금 아픕니다. 하고 말하는 것보다도 주님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2)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주님이 주님으로 알고 주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ㄱ. 생활을 주님을 향한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ㄴ.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이것은 가증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3)기도는 성령님으로 기도하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령님이 친히 우리 위해 기도한다고 했고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양한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 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 과 같습니다.
4)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 성령님 충만을 구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기도가 합심이 되어 더욱 힘이 되도록 서로가 의지가 되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ㄱ. 서로 서로가 의지 하며 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와 힘으로 악한 영을 막을려면 서로가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ㄴ.
그러므로 기도하는 모든이가 성령님 충만하기를 구해야 하고 더불어 기도하는 기도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2)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몇 번 기도하고 그만 두었다면 아마 응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위의 기도를 막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기도는 주위의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있다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보면 통성기도 하라 해도 기도가 들리 않고 혼자 기도하는데도 들리지 않고 마치 별일 없는 사람이 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성령님께서 왔다가 그냥 가고 말 것같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하지만 끈기 있게 기도 하는 것이고 사력을 다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보고 주님을 위해 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정석입니다.”
1)끈기 있는 기도는 한 번 고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가 짧은 것은 기도를 한 번 한 것은 안하는 것으로 알아요, 그러나 성경에 보면 보편적으로 그렇게 한번 고한 것을 한번에 마친 경우가 극히 드물고 또 여러말을 많이 늘어놓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단순하고 짧고 그러면서도 그 기도가 몇 분이 걸리지도 않을 기도를 수많은 시간을 기도했고 예수님도 기도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 할 때 간단한 말을 3차래 나기도 했습니다.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는 이 간단한 기도를 얼마나 힘써 기도했던지 천사가 와서 도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천사가 도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다. 예수님은 동시에 인간 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힘써 기도 하니까 천사가 도운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자는 것을 봅니다. 견디지 못한 제사들은 다 시험에 들려 예수님을 부인 하거나 예수님 겯을 떠나 예수님이 다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눅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2)주님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 하는 것입니다.
ㄱ.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심과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뤄 놓으셨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ㄴ. 예수님을 바라 보는 것은 주님을 의지 하는 믿음이 분명 하라는 것입니다.
ㄷ. 그리고 예수님을 섬김에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닷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요 율법의 강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했습니다.
3)기도는 음악과 같은 것입니다. 음악소리가 듣기 좋듣이 기도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성도의 기도소리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뻐하지 않는 기도는 듣기가 거북한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리가 믿음과 확신에 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남의 기도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기도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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