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병든 하나님의 백성 (암2:4-8)

본문

이웃 나라의 죄상을 신랄하게 고발한 아모스는 이제자기 형륙인 선민 이 스라엘의 죄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그들의 죄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하면, 선지자 자신의 조국이라는 이유로 이 스라엘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가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아모스가 1장에서부터 2장 초두까지 장황하게 다른나라의 이름을 들추게 된것은 이웃나라의 주권을 멸시하거나, 자기 나라의 결백성을 자랑하려고 하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보여주듯 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을 밝혀 드러냄으로해서, 자기 조국이 그 죄의 길에서 돌아서길 바랬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보려는 조국애의 발로에서 자기 조국의 치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수치와 허물을 알면서도 덮어주고, 입을 다물고 있는 자는 그 수 치스런 일을 하는 자보다 결코 선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자기의 수치와 허 물이 드러날까해서 그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핍박한다든지, 말을 못하도 록 위협한다든지, 잡아 가두고 죽이는 사람은 더욱 악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모스는 스스로 애국한다고 나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자신이 음페이지(리턴키) ' 살고 있는 조국의 종말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와 몸부림 친람입니다. 종말을 행해서 백성을 끌고 가는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 보려고 그는 외쳤습니다. 아모스는 양을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지만, 그의 양심에 비친 이 스라엘의 현실은 마치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여졌던 것입니다. 더욱 이 그 병은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증상으로 보였기에, 그는 평화로이 그의 목장에서 양이나 치고, 뽕나무나 재배하고 지낼 수 없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외쳤습니다. 그의 외침은 소망이 없다고, 절 망적이라고 외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떻게해야 그 중병을 고치고, 그 민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외쳤습니다. 그러면, 먼저 선지자의 양심에 비쳐진 그의 조국 유다의 죄가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레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沽 미혹하였음이라
4절 중) 유다 죄는 다른 나라의 죄와는 다릅니다. 다른 나라의 죄는 인간에게 행한 불의를 지적한 것이요, 이도주의에 역행하는 비인간적인 죄악을 지적한 것입니다. 1장 1절에 밝혀진대로 유다 왕 웃시야는 16세에 왕이되어 52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웃시야는 유다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도 유능했 던 왕이었습니다. 웃시야가 다스린 영토는 부왕 아마샤가 정복한 에돔을 계 속 주관하고, 홍해 북부 연안에 엘랏이라는 항구를 건설하여 무역정책에 힘 을 쓰면서 남방을 제압했습니다. 그는 동쪽으로는 암몬을 다스리며 그들에가 게서 조공을 받아내었고, 서쪽으로는 블레셋을 쳐서 여러 성읍들을 정복했습니다. 웃시야는 과거에 잃었던 땅들을 다시 탈환하면서 그 세력을 애굽에까 지 뻗쳐갔던 자입니다. (역대하 26:8). 또한 웃시야의 산업정책을 보면, 엘랏항구를 건설하여 홍해를 통로로 한 아라비아 무역에 힘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친 땅에 수로를 개발하여 초원을 조성하고 축산업을 진흥시키며, 산과 밭에 농부들을 두어 농업정책에 도 그는 힘썼습니다.(역대하 26:6-10) 그리고, 그의 국방정책을 살펴보면 재래적인 군사제도를 재편성하여 하나 냐 라고 하는 국방장관의 수하에 용사 2600명을 세우고, 그 예하에 30만 7천 5백명의 정예병을 두었습니다. 또 그들을 위해 당시의 무기인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맷돌까지 충분히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기술자로 하여금 신예무기를 개발케하고 그 무기를 수도 예루살렘에 배치했 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여러나라에 퍼져서 주변국가들로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웃시야는 국방과 산업에 역점을 둔 정책의 결과로 유다를 그당시 중동의 최강자로 부상시킨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웃시야는 물질우위 의 산업정책으로 백성들에게 풍부한 물질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선지자가 지금 그의 조국 유다에 대해서 따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 니까 웃시야 정부의 국방과 물질우선주의 정아책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태 평성대를 구가했으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가장 중히 여겨야 할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무시 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당대의 다른 선지자 이사야는 유다백성을 행해서 외치기를 하늘이 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히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 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 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 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사 1:2-4) 하면서 탄식했습니다. 민족정신의 구심력이 되었던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무시를 당하고 멸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지자들의 이 고발, 이 탄식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덮어버릴 수 있습니까 8.15해방이 어떻게 해서 주 어진 것입니까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쟁취한 해방입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8.15해방은 하늘이 준 축복입니다. 민족의 심장에 심어진 교회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내려주신 축복인 것입니다. 순결한 처녀와 같이 주님을 의지하고 부르짖는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이민족에게 주신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진들은 이 나라 이 조국을 생각하면서, 동해물 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를 합창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지금 이 민족의 심장에 이 하나님께 대한 감격과 감사, 그리고 그 신뢰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은혜의 감격이 이나라 백성들에게 지금 있습니까 이사야의 탄식처럼 이 민족이 자기를 구해준 여호와를 버린 것 이 아닙니까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과연 이 민족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고 개헌 국회를 개회하면서, 개헌 국회의 임시 의장 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조국의 광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자고 제 의하여 온 의원들이 그 제의에 동의하였습니다. 이에 이윤영 위원이 기도를 드리고 국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회의 공식기록은 하나님께 드린 감사기도로 시작이 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여! 이 나라 동포들이여! 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까 이 나라 국회가, 이 나라의 처음부터 관련하신 하나님께 대 한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건국초기부터 개입하시고 관련하신 하나님께 대한 예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이 나라 국회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 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여러분! 6.25민족 동란의 위 기에서 우리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지켰습니까 아닙니다. 전 국토가 공산화 되어졌을때 U.N군이 기적적으로 참전하였고, 잃었던 수도 서울을 다시 탈환 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계양하고나서, 맨 먼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당 시 총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에게 우리 다 함께 우리 주 하나님께 기도 드립시다 라고 해서 그들은 주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지금 우리 민족에 대한 감사함이 있습니까 그것이 없다면 그것을 잃어 버렸다면 이 민족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질책을 받아 야 하는 것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 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 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사 1:4-5) 이처럼 참 신앙을 잃어버린 백성은 사회적인 책임이나, 윤리적이고 도덕적 인 감각이 둔화되어 방종과 극도의 사치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을 선지자 이사야는 3장 16절 이하에서, 시온의 딸들이 교만 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여 눈으로 다니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고  장식한 발목거리와 머리의 망사와 발목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하려한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옷과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 돈으로 자기것 사서 입고 쓰고 다니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할지 모르나, 선지자의 눈에 비친 이러한 사치풍조는 망 국의 병, 나라를 망하게하는 병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사야가 지적한 웃시야 왕 시대의 사회상이 바로 우리 시대의 사회 풍조 가 아닙니까
이러한 민족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인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좀 더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 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 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칼맞은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읍은 슬퍼할 것이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사 3:24-26).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치 풍조에 자국되어 극도의 사치 로 치닫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호화로운 옷 대신에 굵은 베옷의 상복을 입게 될것이요, 남자들은 전장에서 죽게되고, 번영과 영광의 상징인 수도는 황폐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치 풍조가 그 옛날 아모스나 이스라엘 시대의 사회상일뿐만 아니 라, 바로 우리시대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주거의 사치, 치장의 사치, 장 식의 사치, 입맛의 사치등, 극도의 사치에 자극된, 그래서 끝이 없는 소비 풍조에 만연된 이것이 오늘 서울의 중병이 아닙니까 이것은 선지자 정신에 서 보면 망국적인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왕 웃시야의 실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역대한 26장은 웃시야 왕의 실록인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4절) 하나님을 구하였고 그가 하나님을 구하는 날 동안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5절)고 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방이 튼튼해지자 교만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서 무시하고 시작했습니다.
16절을 봅시다. 저가 강성하여지며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라고 했는데, 그 범죄가 어떤 것인가 하니 오직 제사장만 분향할 수 있는 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주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 제사장이 따 라 들어가 이것은 정치하는 왕이 할 바 아니요, 이 일을 위해 세움을 입은 제사장의 직무라고 만류하자, 웃시야가 노를 발했다고 했습니다(19절). 그가 제사장에게 노를 발할 때 문둥병이 발생하여, 그는 왕위에서 물러나 별궁에 서 홀로 지내게 되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올라 국민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가 하나님을 구하는 동안 그는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온 백성이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교만하여지 자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 청종치 않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교만하여지자 하나님을 무시 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 청종치 않 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교만해지면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가 들어가서는 안될 자리, 그가 만져서는 안될 것까지 만져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도전하는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 웃시야는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치 않은 것을 만지다가 비침한 종말을 맞 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이 성서의 교훈은 우리 개인, 개인이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서 게 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부가 종교에 대해서 손대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 깨위 줍니다. 정부가 민족정신, 민족뿌리 운운하면서 국민을 민족신앙으로 유도하려고 하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줄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어서 북방 이스라엘의 죄(2:6-8)을 생각해 봅시다. 아모스는 남방 유다 출신이지만 그의 예언 활동은 북방 이스라엘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서는 거의 북방 이스라엘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취급합니다. 오늘 의
본문 2:6-8은 이스라엘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제 1진단서입니다. 여기 진단서에는 병든 사람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가 라는 3 인칭 복수롤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저희가 라는 3인칭 복수는 누구를 지칭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체 국민을 나타낸다기 보다는 민족의 지도층에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백성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지도 계층의 사람을 상대해서 이루어진 진단서입니다. 아모스의 예언 대상은 일반 대중, 서민층, 저 소득층이 아니었습니다. 이 들이라고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난 그 자체가 결코 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소시민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모스가 관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하는 이상국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 나라가 서고, 망하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지도층에서 기인한다고 본 것입니다.그래서 아모스의 예언의촛점은 사회 각층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맞추고 있습니다. 결국 나라를 망치는 것은 일반 대중이 아니 라 그 대중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제 1 진단서에 나타난 병의 증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인 에 대해서, 궁핍한 자에 대해서, 가난한 자, 겸손한 자에 대해서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대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쥔 자, 가진 자가, 힘없고 가지지 못한 자를 그들의 이기적 탐욕의 대상으로 이용하 都求. 모 스가 1장부터 2장의 초두까지 주변 국가에 대해서 죄를 규탄할 때는 그들의 비인간성, 그들의 침략성, 그들의 난폭과 잔인성에 대해서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자기 동족 이스라엘에 대해서 외친 그의 예언은 국내문제, 사회적인 문제, 윤리와 종교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음을 봅니다. 아모스는 자 기 민족이 살고, 나라가 튼튼해지려고 하면, 지도자의 윤리가 바로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종교가 참되어야 한다고 확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선민 이스라엘의 윤리 기반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 문제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와 나 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민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 계약관계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떻게 그런 불의를 행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런 악을 저지를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떻게 하나님 과 맺은 계약을 그렇게 쉽게 망각하고, 불성실하게 이행 할 수 있느냐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에 역행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향해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모스가 이스라엘 지도자를 향해서 따지고 있는 내용을 하나만 생각해 봅시다.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 (6절)고 따집니다. 이것은 사 법의 질서가 금품으로 좌우되고 있는 실정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법 부의 권리와 행사가 돈을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타락상을 규탄한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도 돈이면 무죄가 되고, 반대로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이 뇌물을 못 바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 고, 진위를 공정하게 가려야할 사직당국이 돈과 권력의 압력에 판단을 흐리 게 한다면, 그 사법부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약탈자로 전략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약자의 이유있는 항의가 무시를 당하거나, 힘없고 배경이 없기 때문에 억 울함을 삼키며 한을 품고 살아가야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병든 사회요, 의 인이 돈에 팔리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요! 우리는 우리 개인의 신앙문제에 깊은 관심과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며,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패망하게 되면 우리 삶의 근거를 잃게 됩니다. 우리의 하나님 섬김의 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조국이 중요한 것 입니다. 이 조국이 바로 자손만대로 우리 주 하나님을 섬길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도자를 선택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선택된 자를 감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도자를 교회가 키워내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헌신된 정치 지도자를 교회가 배출해야 합니다. 철저히 헌신된 국 회의원을 교회가 배출해야 합니다. 사회의 부패성을 보며 탄식만 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세울 준비가 된 하나님의 사람을 교회가 생산 해내야 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48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