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자를 위한 사랑의 표현 (약5:13-21)
본문
1. 서론적으로 7주에 걸쳐서 하려고 한 강해가 9주가 되었습니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세분하여 살펴야 분명한 뜻을 찾을 것인데, 정해진 기간 안에 마치려니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간 야고보서를 공부하였는 데, 생각이 제대로들 나십니까 아마도 거의 다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오늘 어느 권사님과 대화하는데, '세 치 혀를 잘 놀려야 한다고 했는데.'하 시는 것으로 보아, 아마 혀를 조심하라는 말씀은 생각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콩나물은 물이 그대로 흘려 내려도 잘만 자랍니다. 우리도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어도 그간 성령님의 물로써 그때 마다 씻겨지며, 적셔졌기에 많이 성장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모르지만, 그러나 생활을 할 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야고보서 말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 말씀들이 내 안에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준비해 주신 성령님의 말씀 잔치에 참여합시다. 특수한 환경에 처한 3 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 취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13-14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 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첫째 사람, 어떤 환경에 처한 사람입니까 고난 당하는 자! 이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기도할 것이요! 고난 당한 사람은 울고불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닐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길 고난 당한 사람은 기도하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맛봅니다. 하나님의 위로! 맛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쓰이는 '위로'라는 단어는 단순히 '안됐습니다'라 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곁에서 힘을 주다'라는 뜻으로, 하나님 의 위로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힘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고난 속에 눈 물 흘리며 기도할 때, 모두들 내 곁을 떠나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내 곁에 계시며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해 봤으면 그 맛을 알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게 됩니다. 고난의 의미를 몰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아, 주님의 뜻이 이것이군요'라는 뜻을 알게 되고, 그러면 내 스스로 믿음의 자 세를 바로 잡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고난 당함을 동네방네 다니며 선전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위로와 주님의 뜻을 깨달아 자신의 믿음을 견 고히 하십시오.
둘째 사람, 즐거워하는 자! 즐거워하는 자는 뭘 하라고 하십니까 찬송 하라! 왜 찬송 속에 즐거움이 배가되고, 육적 즐거움이 영적 즐거움, 신령 한 즐거움으로 발전합니다. 아들이 취직이 되었습니다. 와 이리 좋노! 그것 을 찬송하면,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그 아들이 취직 되 었다는 육적 즐거움은 단번에 내 영의 즐거움으로 변합니다. 육적인 기쁨이 신령한 기쁨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십시오!
셋째 사람, 병든 자!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장로들을 청하라! 왜 장로들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란 뭡니까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입니까 그 교회를 오래 나온 사람 순서대로 되는 것 이 장로입니까 아닙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말씀에 근접하여 사는 사람,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 가장 희생적인 분, 가장 모범적인 분, 가장 사랑이 많은 분, 가장 기도를 많이 하는 분, 가장 베풀기를 즐겨 하는 분, . 이런 이들이 장로가 아닙니까! 이런 장로님들이 병든 자를 찾 아가서 기도해 준다면 그 역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 말씀입니다. 물론 본문의 장로는 목회자를 포함한 장로를 말하는 것이요, 교회의 대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만 병든 자를 찾아가 기도해야 낫는 것이 아니라, 장로 님들도 병든 자를 찾아가 기도하면, 말씀대로 의인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 이 많으니라!
2. 자, 서론적인 것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육체가 병든 이를 위 한 말씀이 더 나열되어 있습니다.
1) 그전에 하나 묻겠습니다. 아플 때 약 먹고 병원 가는 것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전의 교회에서 심방을 할 때 감기가 걸려서 감기 약을 먹었더니, 어느 집사님이, 눈이 둥그래져서 묻습니다. "아니, 목사님도 약을 드세요" 그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단번에 내가 큰 죄인이 되 어 버렸습니다. 그래, 아픈 데 약을 먹는 것은 믿음이 있는 건가 없는 것입 니까 여러분 대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2) 교회 장로들이 몸이 병든 이를 찾아가 하는 일을 살펴보십시오.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 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ㄱ. 주의 이름으로-병든 자를 찾아가서 자기 이름으로 하지 마십시오. 자기 권세를 내세우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이름, 예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십시오!
ㄴ. 기름을 바르고-왜 기름을 바를까요 성경을 영해 한다는 이들은 기름을 성령님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바르듯이 '솰라 솰라' 방언 기도하라고 합니다. 정말일까요 기름이 성령님이라면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사람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기름은 말 그대로 기름, 그 중에도 올리브 기름입니다. 이 기름은 당 시 치료약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라는 것은 약을 쓰라는 것입니다. 갖고 있는 의술을 사용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약, 기름만 바르면 다 됩니까 아닙니다. 그 다음 요구 사항이 있습니다. 뭡니까
ㄷ. 위하여 기도하라!-최선을 다하고, 그리고는 간절한 기도, 간절한 치유 자세를 가지란 것입니다. 약만 먹었다고, 수술만 했다고 다 나 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의술로 최선을 다하고는 그리곤 간절히 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든 자를 위해선 쓸 수 있는 약, 의술을 다 쓰고, 그리곤 겸허히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3) 15절 상반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 키시리라." 누가 병든 자를 구원하고 일으킨다고 하십니까 믿음의 기도, 그리고 주께서! 그러니까 주께서, 최선을 다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 믿음 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병든 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병든 자를 일으키는 것은 최선을 다함과 그것을 포함한 겸허한 믿음의 기도 를 통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해서 병자가 낫게 되었다면 그것을 이력서에 달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마치 자기 종처럼 자기를 따라다니게 합니다. 자기가 낫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경에 보면, 병자를 고치시곤 그 병자가 당신을 따르려고 할 때마다 말리시면서 그러셨습니다.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양 목사는 기도해서 병자를 고칠까요 못 고칠까요 주님의 뜻대로! 난 그것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고친 것도 아닌데 내가 확인할 필 요 뭐 있습니까 괜히 시험거리요, 교만해지거나 의기 소침해 지지. 다만 그 사람의 믿음이 주님께로 바로 향하면 되는 것이요, 실지로 그 사람을 치 료한 것은 주님이십니다! 나야 도구에 불과한데, 도구가 잘 난 체 해봐야 꼴불견 아니겠습니까! 4)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병과 죄는 관계 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15절 하반 절과 16절을 보십시오. "혹시 죄를 범하 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관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두 경우가 다 나타 납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라는 말씀으로 보아, 죄와 무관한 병이 있고, 또 그 뒤를 따르는 말씀으로 보아 죄로 인한 병도 실상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언제나 이것은 이렇게 또 렷이 구분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41:3-4절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내가 병이 들 었습니다.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 든 간에 나는 기도합니다. '주님 고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다보니, 하나님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나를 붙드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내가 죄를 지은 것을, 그래서 육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내 영혼의 병, 죄까지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 병은 스스로 온 것이건, 죄로 인한 것이건 그 병상에서 기도하는 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합니다. 그러니 때로는 병도 좋은 것입니다. 인생이 겸허해 질 수 있는 약 이 바로 병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아픈 것도 감사하십시오. 내 영혼을, 내 인생을 사랑하시기에 주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바른 자리를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병까지 긍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왕 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느 목사님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 결과 암이랍니다. 절망 속에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수술하면 살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늦었답니다. 어떻게 살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니까, 의사 말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답니다. 충격 속에 목사 님은 교회로 돌아와, 기도실로 올라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기도해 야 할 지 몰라하는데, 성령님의 감동이 오는데, 이 목사님, 어떻게 되었을까 요 주님이 고쳐 주었을까요 안 고쳐 주었을까요 안 고쳐 주셨습니다. 도리어, 마치 이사야가 병든 히스기야를 찾아가서, '너는 유언이나 해라. 네가 죽으리라'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응답은 묵묵부 답(不答)이었습니다. 오랜 기도를 마치고 목사님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마음에 결심을 했답니다. "그래요, 하나님, 그걸 원하시는군요. 이제 얼마 남은 기간, 목사답게 죽어가렵니다."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무조건 살려고만 하는 세태에, 자기를 살려주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인 양 고집 부리는 신앙의 세태에, 충격적이지만 신선한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 었습니다. "목사답게 죽어가렵니다!" 그것이 죄로 인한 것이든, 태만으로 인한 것이든 고침 받든지 그냥 불려가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사 답게, 장로답게, 성도답게 살다가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모습이리라 생각됩니다.
3. 육이 병든 이 뿐만 아니라 영이 병든 이가 마지막으로 나옵니다, 봅시다.
1) 어떤 이가 영이 병든 이입니까 19절,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 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 이단 사이비에 빠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그 영이 병든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들은 고집이 셉니다.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 영이 병들었 기에! 정상 컨디션이라면 들으려 하고, 듣고 또한 성경 말씀을 상고하며, 판단하려고 하는데, 정상이 아니기에 이성이 마비되고, 고집만 피웁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귀한 것입니다. 판단 할 수 있는 기능!
그런데 영이 병들면 이 이성이 마비되고 고집만이 강조됩니다. 이 영 이 병든 이는 매우 위험한 이입니다. 모든 것을 일시에 포기할 수도 있고, 심지어 파리 하나 잡지 못하던 이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죽 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영이 건강해야지 영이 병들면 일시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한다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키 위해 서는 영이 잘됨 같이! 요삼2절!
2) 이렇게 영이 병든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합니까 20절,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 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돌아서게 해야 합니까 찾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말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에서 허다한 죄 를 덮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면, 벧전 4:8이 대답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해야 합니다. 찾아가고, 인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입니다. =' 자, 말씀을 정리합시다. 오늘 말씀에서 야고보는 결국 두 형태의 병든 사람을 말하며,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이렇게 말해 줍니다. '육 체가 병든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름을 바르고 위해서 기도해 주라. 영혼 이 병든 사람에게 찾아가서 돌아서게 해 주라.' 결국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구체적 행위입니다. 구체적으로 찾아가십시오. 구체 적으로 기름을 발라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돌아서게끔 하십시오. 그것 이 진정 병든 자를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정말이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행함 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란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믿음에 근거한 여러분의 신앙 행위들이 여러분의 삶을 더욱 견고케 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사람, 어떤 환경에 처한 사람입니까 고난 당하는 자! 이 사람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기도할 것이요! 고난 당한 사람은 울고불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닐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길 고난 당한 사람은 기도하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맛봅니다. 하나님의 위로! 맛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쓰이는 '위로'라는 단어는 단순히 '안됐습니다'라 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곁에서 힘을 주다'라는 뜻으로, 하나님 의 위로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힘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고난 속에 눈 물 흘리며 기도할 때, 모두들 내 곁을 떠나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내 곁에 계시며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해 봤으면 그 맛을 알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게 됩니다. 고난의 의미를 몰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아, 주님의 뜻이 이것이군요'라는 뜻을 알게 되고, 그러면 내 스스로 믿음의 자 세를 바로 잡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고난 당함을 동네방네 다니며 선전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위로와 주님의 뜻을 깨달아 자신의 믿음을 견 고히 하십시오.
둘째 사람, 즐거워하는 자! 즐거워하는 자는 뭘 하라고 하십니까 찬송 하라! 왜 찬송 속에 즐거움이 배가되고, 육적 즐거움이 영적 즐거움, 신령 한 즐거움으로 발전합니다. 아들이 취직이 되었습니다. 와 이리 좋노! 그것 을 찬송하면,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그 아들이 취직 되 었다는 육적 즐거움은 단번에 내 영의 즐거움으로 변합니다. 육적인 기쁨이 신령한 기쁨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십시오!
셋째 사람, 병든 자!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장로들을 청하라! 왜 장로들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란 뭡니까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입니까 그 교회를 오래 나온 사람 순서대로 되는 것 이 장로입니까 아닙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말씀에 근접하여 사는 사람,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 가장 희생적인 분, 가장 모범적인 분, 가장 사랑이 많은 분, 가장 기도를 많이 하는 분, 가장 베풀기를 즐겨 하는 분, . 이런 이들이 장로가 아닙니까! 이런 장로님들이 병든 자를 찾 아가서 기도해 준다면 그 역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 말씀입니다. 물론 본문의 장로는 목회자를 포함한 장로를 말하는 것이요, 교회의 대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만 병든 자를 찾아가 기도해야 낫는 것이 아니라, 장로 님들도 병든 자를 찾아가 기도하면, 말씀대로 의인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 이 많으니라!
2. 자, 서론적인 것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육체가 병든 이를 위 한 말씀이 더 나열되어 있습니다.
1) 그전에 하나 묻겠습니다. 아플 때 약 먹고 병원 가는 것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전의 교회에서 심방을 할 때 감기가 걸려서 감기 약을 먹었더니, 어느 집사님이, 눈이 둥그래져서 묻습니다. "아니, 목사님도 약을 드세요" 그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단번에 내가 큰 죄인이 되 어 버렸습니다. 그래, 아픈 데 약을 먹는 것은 믿음이 있는 건가 없는 것입 니까 여러분 대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2) 교회 장로들이 몸이 병든 이를 찾아가 하는 일을 살펴보십시오.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 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ㄱ. 주의 이름으로-병든 자를 찾아가서 자기 이름으로 하지 마십시오. 자기 권세를 내세우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이름, 예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십시오!
ㄴ. 기름을 바르고-왜 기름을 바를까요 성경을 영해 한다는 이들은 기름을 성령님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바르듯이 '솰라 솰라' 방언 기도하라고 합니다. 정말일까요 기름이 성령님이라면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사람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기름은 말 그대로 기름, 그 중에도 올리브 기름입니다. 이 기름은 당 시 치료약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라는 것은 약을 쓰라는 것입니다. 갖고 있는 의술을 사용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약, 기름만 바르면 다 됩니까 아닙니다. 그 다음 요구 사항이 있습니다. 뭡니까
ㄷ. 위하여 기도하라!-최선을 다하고, 그리고는 간절한 기도, 간절한 치유 자세를 가지란 것입니다. 약만 먹었다고, 수술만 했다고 다 나 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의술로 최선을 다하고는 그리곤 간절히 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든 자를 위해선 쓸 수 있는 약, 의술을 다 쓰고, 그리곤 겸허히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3) 15절 상반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 키시리라." 누가 병든 자를 구원하고 일으킨다고 하십니까 믿음의 기도, 그리고 주께서! 그러니까 주께서, 최선을 다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 믿음 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병든 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병든 자를 일으키는 것은 최선을 다함과 그것을 포함한 겸허한 믿음의 기도 를 통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해서 병자가 낫게 되었다면 그것을 이력서에 달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마치 자기 종처럼 자기를 따라다니게 합니다. 자기가 낫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경에 보면, 병자를 고치시곤 그 병자가 당신을 따르려고 할 때마다 말리시면서 그러셨습니다.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양 목사는 기도해서 병자를 고칠까요 못 고칠까요 주님의 뜻대로! 난 그것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고친 것도 아닌데 내가 확인할 필 요 뭐 있습니까 괜히 시험거리요, 교만해지거나 의기 소침해 지지. 다만 그 사람의 믿음이 주님께로 바로 향하면 되는 것이요, 실지로 그 사람을 치 료한 것은 주님이십니다! 나야 도구에 불과한데, 도구가 잘 난 체 해봐야 꼴불견 아니겠습니까! 4)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병과 죄는 관계 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15절 하반 절과 16절을 보십시오. "혹시 죄를 범하 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관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두 경우가 다 나타 납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라는 말씀으로 보아, 죄와 무관한 병이 있고, 또 그 뒤를 따르는 말씀으로 보아 죄로 인한 병도 실상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언제나 이것은 이렇게 또 렷이 구분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41:3-4절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내가 병이 들 었습니다.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 든 간에 나는 기도합니다. '주님 고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다보니, 하나님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나를 붙드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내가 죄를 지은 것을, 그래서 육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내 영혼의 병, 죄까지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 병은 스스로 온 것이건, 죄로 인한 것이건 그 병상에서 기도하는 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합니다. 그러니 때로는 병도 좋은 것입니다. 인생이 겸허해 질 수 있는 약 이 바로 병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아픈 것도 감사하십시오. 내 영혼을, 내 인생을 사랑하시기에 주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바른 자리를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병까지 긍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왕 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느 목사님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 결과 암이랍니다. 절망 속에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수술하면 살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늦었답니다. 어떻게 살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니까, 의사 말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답니다. 충격 속에 목사 님은 교회로 돌아와, 기도실로 올라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기도해 야 할 지 몰라하는데, 성령님의 감동이 오는데, 이 목사님, 어떻게 되었을까 요 주님이 고쳐 주었을까요 안 고쳐 주었을까요 안 고쳐 주셨습니다. 도리어, 마치 이사야가 병든 히스기야를 찾아가서, '너는 유언이나 해라. 네가 죽으리라'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응답은 묵묵부 답(不答)이었습니다. 오랜 기도를 마치고 목사님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마음에 결심을 했답니다. "그래요, 하나님, 그걸 원하시는군요. 이제 얼마 남은 기간, 목사답게 죽어가렵니다."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무조건 살려고만 하는 세태에, 자기를 살려주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인 양 고집 부리는 신앙의 세태에, 충격적이지만 신선한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 었습니다. "목사답게 죽어가렵니다!" 그것이 죄로 인한 것이든, 태만으로 인한 것이든 고침 받든지 그냥 불려가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사 답게, 장로답게, 성도답게 살다가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모습이리라 생각됩니다.
3. 육이 병든 이 뿐만 아니라 영이 병든 이가 마지막으로 나옵니다, 봅시다.
1) 어떤 이가 영이 병든 이입니까 19절,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 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 이단 사이비에 빠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그 영이 병든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들은 고집이 셉니다.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 영이 병들었 기에! 정상 컨디션이라면 들으려 하고, 듣고 또한 성경 말씀을 상고하며, 판단하려고 하는데, 정상이 아니기에 이성이 마비되고, 고집만 피웁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귀한 것입니다. 판단 할 수 있는 기능!
그런데 영이 병들면 이 이성이 마비되고 고집만이 강조됩니다. 이 영 이 병든 이는 매우 위험한 이입니다. 모든 것을 일시에 포기할 수도 있고, 심지어 파리 하나 잡지 못하던 이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죽 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영이 건강해야지 영이 병들면 일시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한다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키 위해 서는 영이 잘됨 같이! 요삼2절!
2) 이렇게 영이 병든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합니까 20절,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 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돌아서게 해야 합니까 찾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말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에서 허다한 죄 를 덮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면, 벧전 4:8이 대답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해야 합니다. 찾아가고, 인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입니다. =' 자, 말씀을 정리합시다. 오늘 말씀에서 야고보는 결국 두 형태의 병든 사람을 말하며,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이렇게 말해 줍니다. '육 체가 병든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름을 바르고 위해서 기도해 주라. 영혼 이 병든 사람에게 찾아가서 돌아서게 해 주라.' 결국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구체적 행위입니다. 구체적으로 찾아가십시오. 구체 적으로 기름을 발라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돌아서게끔 하십시오. 그것 이 진정 병든 자를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정말이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행함 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란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믿음에 근거한 여러분의 신앙 행위들이 여러분의 삶을 더욱 견고케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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