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고쳐주신 예수님 (눅4:38-41)
본문
우리 인간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있다면 핵무기가 아닌 바로 질병입니다. 건 강했던 사람이 한순간 병에 의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 '질병 의 문제가 정복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더더군다나 사랑하는 가족이 병이 들어서 그렇게 고통하며 우리의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절망하기도 합니다. 질병이 그렇게 인간에 위협적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병은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차라 리 죽었으면 좋겠다 할만큼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인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하찮게 생각을 하는 감 기조차 한 번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우리의 뼈마디마디가 녹아납니까 우리 의 근육 하나 하나가 얼마나 아픔에 시달립니까 제가 알레르기 비염으로 한 30년을 고생을 하다보니까 재채기라면 아주 지겹습니다. 요즘 재채기를 안하니까 살만합니다.
그런데 한 번 재채기가 일어나면 30-40번 아니면, 콧 물이 나오면서 눈에는 눈물이 나오면 정말로 사람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재채기만 여러번 해도 그 사람이 추해지고 머리에 열이 오르고 머리가 뻐개질 것 같은, 정말로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암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고통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 암세포가 온몸에 퍼지 면 정말 그 고통을 견디어 내기가 힘이 듭니다. 이를 갈아도 입술을 깨물어 도 너무나 고통스러워 진통제를 맞아도 그 순간뿐이지 바로 고통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그 암세포가 자기를 공격을 할 때 오는 고통 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을 두려워하고 삽니다. 제발 아프 지 않고 살수 있다면 행복이겠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바램과 노력에도 불구 하고 끊임없는 관심과 투자와 그리고 새로운 의학기술과 신약이 발명이 됨 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더욱 확산이 되고 인간의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 새 로운 병이 늘 생겨납니다. 이제 암과 에이즈는 거의 정복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한 2년 정도만 지나면 암은 더 이상 우리의 생명이 위협하는 질병이 되 지 못할 것이라는 단언도 있습니다. 그래요 암이나 에이즈가 없어지면 우리 인간의 질병이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까 지금도 자이르를 중심으로 아프리 카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에볼라'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름만 '에볼라'라고 붙였지 왜 이 병이 생기며 어떻게 치료를 해야하는지 그 병이 어떻게 진행 이 되는지를 모릅니다. 그렇게 급속도로 전염병처럼 퍼지는 병이 아닌데 한 번 이병에 결렸다면 100% 죽습니다. 원인을 모르니까 세계 보건기구는 이 에볼라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접촉을 금하는 일을 하 고 있습니다. 한 3년 전에 광우병 파동이 온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이름이 광우병입니다. 소에 어떤 병균이 있는데 그 병균이 있는 소고기를 먹으면 즉 시 발병이 하는 것이 아니라 10-20년이 지난 다음에 마치 미친 소처럼 살다 가 죽습니다. 그 병이 발견이 되었을 때 병든 소가 근원이라고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영국의 소들은 30개월 이상이 된 300만 마리가 한순간에 폐기 처분 되었습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르니까 그냥 그 매개체라고 생각이 되는 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들어간 돈이 3조원입니다. 이름 도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크로이츠펠트 야곱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자로 말하면 야곱병이라고 합니다. 이 야곱병은 뇌에 구멍이 생기고 그래서 우 울증과 심각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고 심각한 치매현상이 동시에 다발적으로 일어나서 3개월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100%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전병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 언제든지 걸릴 수 있는 병입니다. 이 병이 무서운 것은 진단 방법을 모릅니다. 이 병 에 들었는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그 병세가 드러나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설혹 인간의 의학이 발달되어서 이 병이 정 복된다고 할지라도 또 모르는 병이 생겨 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다 면 이제 우리는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겸손히 들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병을 고치는 분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사가 아닙니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었고 의학에 대한 상식도 없 습니다. 그러나 의사 누가가 보기에는 예수님은 의사 이상이었고 의사들이 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고쳐주지 않으시면서 또 요즘 치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처럼 요란한 방법으로 고쳐주지 않으면서 병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더더 군다나 희한한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는데 단순히 질병을 대하여 명령합니다. "열병아 떠나라!"하셨고 앉은뱅이를 보고 "일어나라!" 한마디씩 하신 것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 병이 낫고 다 시는 재발을 하지를 않습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충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정말로 힘들었는데 예수님이 그 열병을 꾸짖 으시니 병이 나았다고 그랬습니다. 너무나 희한한 사건이 되어서 제자들이 충격을 받고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동일하게 이 내용 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맨 처음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질병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 아옵니다. 오늘 이일 어떻게 일어났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가 버나움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서 권세 있는 말씀에 굴복을 하고 '참 귀한 말씀이다.'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사람이 무엇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당신의 하나님의 거 룩한 사람입니다"라고 소리를 치지 예수님은 그 귀신을 명하여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그 사람이 온전해 졌습니다. 이런 권세 있는 교 훈과 행동을 통해 충격을 받고 다 예배를 마치고 가버나움 회당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예배를 마치고 이제 시몬의 집으로 가십니다. 왜 갔습 니까 성경의 흐름을 보면 예수님과 그 일행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들 어 있는 것을 모르고 갔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 예배가 끝나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다 집으로 갑니다. 식사하시려고 집으로 갑니다. 마찬 가지로 보통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찍 회당에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또 친 교를 한 다음에 점심을 먹고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 자기 집에 초청을 하여 서 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베드로가 안드레와 함께 요한 과 야고보, 예수님을 초청을 해서 자기 집에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던 모 양입니다. 장모님도 계시고 음식솜씨가 좋으니까 예수님에게 자랑도 하고 싶 고, 은혜도 받았으니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식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그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어야할 베드로의 장모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예고 없이 병이 든 것입니다. 그 리고 그 집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부인도 있었습니다 .베드 로의 장인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처남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맞이할 때 가장 필요한 사람인 장모가 중한 열병이 들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말리리아 같은 열병을 가벼운 열병이라고 말을 하고 디프스 종류를 중한 열병이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장모가 갑자기 장티프스에 걸렸는지 고열이 나면서 구토하고 해서 사람이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병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방금까지만 해 도 멀쩡했다가도 그 다음날에는 열이 불덩이처럼 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질병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어린아이라고 안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잊지를 말아야합니다. 질병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약 한 사람에게도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여러분, 간 전문가는 간암에 안 걸립니까 걸립니다. 위암 전문가는 위암에 안 걸립니까 걸립니다. 예외 없습니다. 아무리 그 분야에 전문가고 그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라 고 해서 자기가 연구하는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예고 없이 걸릴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간이식수술의 권위자이고 간 분야에서 권위자였던 모박사 님이 간암에 걸려서 2개월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간 박사가 그것을 몰랐겠습 니까 지금도 잘못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이 드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이 병이 드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이다. 그렇게 가르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만 들면 무조건 잘못된 방향으로 정죄하고 그 사람 에게 실적인 압박감까지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육체를 찌 르는 가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어서 육체를 찌르는 가시 같은, 심지어 간질병이나 안질이 죽을 때까지 바울을 괴롭혔습니까 능력의 사람 엘리사는 능력이 없어서 죽을 때에 병들어 죽었습니까 저는 요한복음 11장을 볼 때마다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을 때 그에 두 누이는 예수님께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합니 까 '주여,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누가 병이 들어요 주님이 사랑하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예수님이 축복을 하시는데도 병이 듭니다. 주님이 보호하시는데도 병이 들었 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셔야합니다. 질병은 마귀가, 귀신이 우리에 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루시는 도구라는 말입니다. 물론 인간이 병들고 약할 때에 귀신이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질병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손길입니다. 이방사람에게는 심판의 도구로 질병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가도록 우리를 훈련시키고 때로는 우리를 징계 하시는 수단으로 병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질병은 하나님의 도구 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질병은 귀신에게 속한 것이고 치유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 까 아닙니다. 질병은 귀신에게 속한 것이고 치유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 고 가르치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가르침이 있다면 그 곳에서 뛰어 나오십시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9:3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 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 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11:4 말씀 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질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구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어 가는 나타내는 수단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 명히 알아야합니다. 병든 것도 기적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어떤 측면에서 생각합니까 기적은 희소한 것입니다. 평범하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병든 것도 기적입니다. 한 번 돌이켜 보십시다. 병든 사람이 많습니까 건강한 사람이 많습니까 아마 병든 사람이 많다면 삼천 리 금수강산이 병원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병든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병원이라는 조그마한 그 장소에 병든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지 세상에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병이 하나님이 쓰 시는 도구라면 병든 것도 기적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도구이니까요. 하나님 께서 행하시는 일은 언제나 기적이니까요. 남이 들지 않는 병이 들었다면, 1%의 확률에 내가 들었으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남이 들지 않는 질병 5%의 확률에 내가 맞았다면 그것도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질병 을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한다면 질병에 대한 무서움 은 어느 정도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라면 비록 고통스럽고 힘 들어도 그 다음에 더 좋은 것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의 의식이 여기까지 발전을 하 지 못할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복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 니라 미신적 예수님을 믿는 어리석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병이 들었다면 예수님 앞에 나와야합니다. 병이 들면 우리는 먼저 숨기려고 합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소외 당할 것 이 두렵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부담이 되 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병든 것을 알리기를 싫어합니다. 더더군다나 우리 한 국 교회의 상황에서는 병이 들면 '하나님이 매를 때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질병의 문제를 감춥니다. 여러분 누가 그렇게 가르칩니까 더 솔직히 말을 하면 하나님이 매를 때렸다면 그것은 축복이지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 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를 때렸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숨기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동부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매를 때리셨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한 은혜 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1장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버 리신 사람은 내버려둡니다. 때리지도 않습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처음부터 다듬어서 나무를 가꾸지만 아예 싹이 노 래보세요 자기 하는 대로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아서 내가 병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채찍은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오늘 이런 잘못된 의식 때문에 오늘 내가 병이 들고 잘못되어질 때에 예수님 앞 에 나와서 자기를 고백하지 않고 사람들에게조차 이 문제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질병의 문제를 내어놓을 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14-16에 하나님 무엇이 라고 말씀하십니까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 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 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여러분 질병이 있다면 모여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면서 주님의 치유하심을 기다리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병들었을 때에, 죄를 지었을 때에 함께 모여서 자기의 죄를 이야기를 하고 자기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병이 들면 질병을 감추려고 합니다. 죄악도 감 추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이 들면 우리는 능력 받은 사람을 찾아가서 그가 내 병을 치유해 주기를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줍니까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를 않고 내 주권만을 인정 을 합니다. 반드시 이 질병에서 나아야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내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강요를 합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없이 아예 질병 문제를 의학적인 판단에 맡겨 버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병이 들면 병든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와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사정이 이렇습니다."라고 고백 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보십시오, 오늘 3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든 것을 모르고 그 집에 들 어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예수께 고하였습니다. 병이 든 베드로의 장모는 꼼짝 할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병든 사실을 알고 계셨겠지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 집안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 상황이 이렇습니다"하고 이 야기 한 것을 봅니다. 본문을 더 내려가 보면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저녁때 쯤에서 각색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불치병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추한 병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각색의 그 모습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거기에 문제의 해결점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병이 들 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왜'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앞 에 자기의 문제를 고백하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이해되지 않으니까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합니까"하고 통곡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오래 계속 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 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어서 힘들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간 병든 사람이나 친구들이 기도해야할 것은 주님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합 니까 그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내가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친구가 병이 들었습니까 이렇게 기도해 보십 시오. '주님 우리 친구가 이런 병에 들었습니다. 낳게 해주십시오.' 그런 기도 도 중요합니다만 그런 기도와 함께 한 번쯤은 이렇게 해 보십시오. '주님 내 친구가 이런 병에 들었습니다. 주님 제가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 까 오늘 제가 그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은 대답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찾아가서 기도 해 주어라.' 아니면 '조그마한 책을 사서 그에게 찾아가서 위문을 하여라.' 아니면 '여기서 하루정도 금식을 하여라.' 혹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서 깨죽이라고 쑤어서 갖다 주어라.'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주님과 교제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렇 게 말씀하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얘야 나는 너를 통해 그 사람을 고치기를 원한다. 오늘 나 여호와가 너를 고친다고 기도해 주어라." 우리는 이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오늘도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한계상황 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송한 말입니다만 병들어 죽을 사람은 죽어 야합니다.
그런데 안 죽으려고 몸부림을 치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질병을 사용하셔서 그 몸을 성결케 하시고 그 영혼을 순결하게 만들어서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시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병들어 고통하는 그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 제가 어 떻게 하여야합니까" 여쭈어 보고 하나님의 의도를 그대로 표현하는 하나님 의 도구가 되어야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성결함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중한 열병에 시달리던 베드로의 장모가 어 떻게 고침을 받습니까 말씀 한마디로 병이 나았습니다. 몰려드는 각색병자 어떻게 병이 나았습니까 안수하심으로 병이 나은 것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 가 깊게 생각을 해 보아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인격으로 보 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질병을 '꾸짖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모든 병든 사람들에게 활동을 하던 귀신들에게도 예수님은 꾸짖어 서 그들을 잠잠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귀신의 입에 족쇄를 채웠다는 말입니다. 귀신이나 질병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왜 병이 들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 니까 치료받기 위해서요 아닙니다. 주님의 권세가 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인격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질병을 꾸짖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바이러스 하나를 인격으로 보시고 주님은 그 바이러스에게 명령하 시니까 그 바이러스가 순종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 아야 합니까 소위 요즘 은사가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의 바이 러스 덩어리를 인격체로 보는 분을 보셨습니까 저는 못 보았습니다. 인간의 오기와 자만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도 질병 중에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그 질병 가운데에 예수님의 권세가 임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떠한 질병도 예수님의 권세가 임하시면 본문의 베드로의 장모처럼 낫던지, 아니면 각색병이 들었던 사람들처럼 낫던지, 아니면 바울처럼 약할 그때에 강한 하나님의 권세를 통해서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든지 주님의 방법대로 우리를 다스려 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권세가 다가오면 얼마나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성질이 아 주 급한 사람들도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마음이 아주 온유 해 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흔히 옛날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흘러 내려오는 속 담이 있습니다 귀신도 병이 들면 착해진다.는 것입니다. 귀신도 병이 들 면 착해집니다. 질병이 하나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질병 중에 임한 하나님의 권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격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흘러나 옵니다. 얼마나 큰복입니까 고린도후서 12:9 말씀에 바울은 고백을 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 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 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 라" 하였습니다. 내게 약함이 있습니다. 질병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 백을 합니다. "이제는 나는 이 약한 것을 고쳐달라고 하지를 않겠다. 이 약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권세가 내게 머무시니 나는 이것이 더 귀하고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세 번째로 질병이 들었을 때에 기억해야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 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베드로의 장모는 났는 즉시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로 악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이 정복을 당하거나 힘을 쓰지를 못하면 이 제는 권세 있는 예수님을 위해 나의 힘과 시간과 몸을 다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병을 낫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 원해서 병 낫기를 원하고, 고통 없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병 낫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기억 을 하셔야 합니다. 병에서 나음을 얻었어도 삶의 중심이 내가 되면 병은 또 다시 찾아옵니다. 여러분 사람은 나만을 위해서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너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임을 성경은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병이 나았다고 한들 어떻게 금방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갑자기 찾아온 장정 다섯 명입니다. 어 떻게 갑자기 그들의 식사를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압니다. 갑자기 집에 어른 손님 다섯 명이 찾아와 보십시오. 당 황하니까 헛손질이 많아서 음식 간도 못 맞추겠고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혼 이 났다고 합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중노 동입니다.
그런데 그 중한 열병에서 탈진되어 버린 사람이 주님의 말씀으로 겨우 일어난 사람이 그 즉시 주방으로 들어가서 다섯 명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대도 주님은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십니다. "아, 좀 쉬어라."하시지 않으 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그것은 무리다. 우리는 그 냥 갈 터이니 쉬어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장소와 시간에 문제가 아닙니다. 병에서 금방 일어났어도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즉시 하여야합니다. 누구든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주님께 헌신하기를 원하고 주님을 섬겨야 온전한 강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의 조그마한 도시에 한 노인이 노환 때문에, 특별히 관절염 때문에 고생 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통증이 너무나 심하니까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아 인생은 어느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위해 서 섬겨야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주님을 위해 섬긴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 가를 생각을 해보니까 별로 할 것 없습니다. 늘 몸이 아프지요 관절염이 오 면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요
그런데 한순간 통증이 지나면 자기가 젊었을 때에 피아노를 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상쾌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방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병든 사람과 낙담한 사람에게 전화를 통하여 찬송가를 피아노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무료봉사입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이 전화로 전화를 걸어 주십시오. 하고는 전화번호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3일만에 한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사람이 원 하는 찬송가를 연주해 주었습니다. 차츰 그 소문이 퍼져가기 시작을 하는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하루에도 그저 10여명씩 전화가 오기를 시작하였 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오면 전화가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화한 사람이 자신의 속사정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속에 감추었던 이야 기, 억울한 이야기, 분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할 머니는 자기의 질병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할머 니는 수십 통씩 결려오는 그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분주했습니다. 관절염으로 고통하던 할머니 가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녀가 80살이 되어 돌아가셨을 때 온 도시는 초 상집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수백의 사람이 그의 운구 행렬을 따랐고 그녀에 게서 피아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섬김 속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결론을 짓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모든 병자를 고쳐주지 않 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사건을 통해서 질병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동부의 가족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정말 잊지를 마십시오. 질병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 생각으로 우리의 관점이 바꾸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 지만 끊임없이 절망하고 낙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질병은 분명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질병을 하나님께 아뢰고 서로 모여서 그 질병을 아뢰고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해 기도를 하는 삶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병은 숨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게 건강이 있을 때에, 혹은 내게 질병이 있어 고통이 있지만 아직 힘이 있을 때에 질병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봉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순간마다 주 님은 우리를 통해 늘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한 번 재채기가 일어나면 30-40번 아니면, 콧 물이 나오면서 눈에는 눈물이 나오면 정말로 사람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재채기만 여러번 해도 그 사람이 추해지고 머리에 열이 오르고 머리가 뻐개질 것 같은, 정말로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암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고통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 암세포가 온몸에 퍼지 면 정말 그 고통을 견디어 내기가 힘이 듭니다. 이를 갈아도 입술을 깨물어 도 너무나 고통스러워 진통제를 맞아도 그 순간뿐이지 바로 고통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그 암세포가 자기를 공격을 할 때 오는 고통 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을 두려워하고 삽니다. 제발 아프 지 않고 살수 있다면 행복이겠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바램과 노력에도 불구 하고 끊임없는 관심과 투자와 그리고 새로운 의학기술과 신약이 발명이 됨 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더욱 확산이 되고 인간의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 새 로운 병이 늘 생겨납니다. 이제 암과 에이즈는 거의 정복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한 2년 정도만 지나면 암은 더 이상 우리의 생명이 위협하는 질병이 되 지 못할 것이라는 단언도 있습니다. 그래요 암이나 에이즈가 없어지면 우리 인간의 질병이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까 지금도 자이르를 중심으로 아프리 카를 중심으로 퍼져 가는 '에볼라'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름만 '에볼라'라고 붙였지 왜 이 병이 생기며 어떻게 치료를 해야하는지 그 병이 어떻게 진행 이 되는지를 모릅니다. 그렇게 급속도로 전염병처럼 퍼지는 병이 아닌데 한 번 이병에 결렸다면 100% 죽습니다. 원인을 모르니까 세계 보건기구는 이 에볼라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접촉을 금하는 일을 하 고 있습니다. 한 3년 전에 광우병 파동이 온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이름이 광우병입니다. 소에 어떤 병균이 있는데 그 병균이 있는 소고기를 먹으면 즉 시 발병이 하는 것이 아니라 10-20년이 지난 다음에 마치 미친 소처럼 살다 가 죽습니다. 그 병이 발견이 되었을 때 병든 소가 근원이라고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영국의 소들은 30개월 이상이 된 300만 마리가 한순간에 폐기 처분 되었습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르니까 그냥 그 매개체라고 생각이 되는 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들어간 돈이 3조원입니다. 이름 도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크로이츠펠트 야곱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자로 말하면 야곱병이라고 합니다. 이 야곱병은 뇌에 구멍이 생기고 그래서 우 울증과 심각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고 심각한 치매현상이 동시에 다발적으로 일어나서 3개월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100%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전병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 언제든지 걸릴 수 있는 병입니다. 이 병이 무서운 것은 진단 방법을 모릅니다. 이 병 에 들었는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그 병세가 드러나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설혹 인간의 의학이 발달되어서 이 병이 정 복된다고 할지라도 또 모르는 병이 생겨 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다 면 이제 우리는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겸손히 들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병을 고치는 분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사가 아닙니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었고 의학에 대한 상식도 없 습니다. 그러나 의사 누가가 보기에는 예수님은 의사 이상이었고 의사들이 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고쳐주지 않으시면서 또 요즘 치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처럼 요란한 방법으로 고쳐주지 않으면서 병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더더 군다나 희한한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는데 단순히 질병을 대하여 명령합니다. "열병아 떠나라!"하셨고 앉은뱅이를 보고 "일어나라!" 한마디씩 하신 것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 병이 낫고 다 시는 재발을 하지를 않습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충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정말로 힘들었는데 예수님이 그 열병을 꾸짖 으시니 병이 나았다고 그랬습니다. 너무나 희한한 사건이 되어서 제자들이 충격을 받고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동일하게 이 내용 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맨 처음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질병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 아옵니다. 오늘 이일 어떻게 일어났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가 버나움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서 권세 있는 말씀에 굴복을 하고 '참 귀한 말씀이다.'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사람이 무엇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당신의 하나님의 거 룩한 사람입니다"라고 소리를 치지 예수님은 그 귀신을 명하여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그 사람이 온전해 졌습니다. 이런 권세 있는 교 훈과 행동을 통해 충격을 받고 다 예배를 마치고 가버나움 회당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예배를 마치고 이제 시몬의 집으로 가십니다. 왜 갔습 니까 성경의 흐름을 보면 예수님과 그 일행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들 어 있는 것을 모르고 갔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 예배가 끝나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다 집으로 갑니다. 식사하시려고 집으로 갑니다. 마찬 가지로 보통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찍 회당에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또 친 교를 한 다음에 점심을 먹고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 자기 집에 초청을 하여 서 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베드로가 안드레와 함께 요한 과 야고보, 예수님을 초청을 해서 자기 집에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던 모 양입니다. 장모님도 계시고 음식솜씨가 좋으니까 예수님에게 자랑도 하고 싶 고, 은혜도 받았으니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식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그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어야할 베드로의 장모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예고 없이 병이 든 것입니다. 그 리고 그 집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부인도 있었습니다 .베드 로의 장인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처남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맞이할 때 가장 필요한 사람인 장모가 중한 열병이 들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말리리아 같은 열병을 가벼운 열병이라고 말을 하고 디프스 종류를 중한 열병이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장모가 갑자기 장티프스에 걸렸는지 고열이 나면서 구토하고 해서 사람이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병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방금까지만 해 도 멀쩡했다가도 그 다음날에는 열이 불덩이처럼 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질병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어린아이라고 안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잊지를 말아야합니다. 질병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약 한 사람에게도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여러분, 간 전문가는 간암에 안 걸립니까 걸립니다. 위암 전문가는 위암에 안 걸립니까 걸립니다. 예외 없습니다. 아무리 그 분야에 전문가고 그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라 고 해서 자기가 연구하는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예고 없이 걸릴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간이식수술의 권위자이고 간 분야에서 권위자였던 모박사 님이 간암에 걸려서 2개월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간 박사가 그것을 몰랐겠습 니까 지금도 잘못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이 드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이 병이 드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이다. 그렇게 가르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만 들면 무조건 잘못된 방향으로 정죄하고 그 사람 에게 실적인 압박감까지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육체를 찌 르는 가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어서 육체를 찌르는 가시 같은, 심지어 간질병이나 안질이 죽을 때까지 바울을 괴롭혔습니까 능력의 사람 엘리사는 능력이 없어서 죽을 때에 병들어 죽었습니까 저는 요한복음 11장을 볼 때마다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을 때 그에 두 누이는 예수님께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합니 까 '주여,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누가 병이 들어요 주님이 사랑하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예수님이 축복을 하시는데도 병이 듭니다. 주님이 보호하시는데도 병이 들었 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셔야합니다. 질병은 마귀가, 귀신이 우리에 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루시는 도구라는 말입니다. 물론 인간이 병들고 약할 때에 귀신이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질병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손길입니다. 이방사람에게는 심판의 도구로 질병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가도록 우리를 훈련시키고 때로는 우리를 징계 하시는 수단으로 병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질병은 하나님의 도구 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질병은 귀신에게 속한 것이고 치유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 까 아닙니다. 질병은 귀신에게 속한 것이고 치유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 고 가르치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가르침이 있다면 그 곳에서 뛰어 나오십시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9:3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 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 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11:4 말씀 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질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구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어 가는 나타내는 수단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 명히 알아야합니다. 병든 것도 기적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어떤 측면에서 생각합니까 기적은 희소한 것입니다. 평범하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병든 것도 기적입니다. 한 번 돌이켜 보십시다. 병든 사람이 많습니까 건강한 사람이 많습니까 아마 병든 사람이 많다면 삼천 리 금수강산이 병원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병든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병원이라는 조그마한 그 장소에 병든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지 세상에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병이 하나님이 쓰 시는 도구라면 병든 것도 기적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도구이니까요. 하나님 께서 행하시는 일은 언제나 기적이니까요. 남이 들지 않는 병이 들었다면, 1%의 확률에 내가 들었으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남이 들지 않는 질병 5%의 확률에 내가 맞았다면 그것도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질병 을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한다면 질병에 대한 무서움 은 어느 정도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라면 비록 고통스럽고 힘 들어도 그 다음에 더 좋은 것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의 의식이 여기까지 발전을 하 지 못할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복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 니라 미신적 예수님을 믿는 어리석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병이 들었다면 예수님 앞에 나와야합니다. 병이 들면 우리는 먼저 숨기려고 합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소외 당할 것 이 두렵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부담이 되 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병든 것을 알리기를 싫어합니다. 더더군다나 우리 한 국 교회의 상황에서는 병이 들면 '하나님이 매를 때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질병의 문제를 감춥니다. 여러분 누가 그렇게 가르칩니까 더 솔직히 말을 하면 하나님이 매를 때렸다면 그것은 축복이지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12:6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 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를 때렸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숨기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동부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매를 때리셨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한 은혜 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1장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버 리신 사람은 내버려둡니다. 때리지도 않습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처음부터 다듬어서 나무를 가꾸지만 아예 싹이 노 래보세요 자기 하는 대로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아서 내가 병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채찍은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오늘 이런 잘못된 의식 때문에 오늘 내가 병이 들고 잘못되어질 때에 예수님 앞 에 나와서 자기를 고백하지 않고 사람들에게조차 이 문제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질병의 문제를 내어놓을 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14-16에 하나님 무엇이 라고 말씀하십니까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 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 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여러분 질병이 있다면 모여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면서 주님의 치유하심을 기다리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병들었을 때에, 죄를 지었을 때에 함께 모여서 자기의 죄를 이야기를 하고 자기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병이 들면 질병을 감추려고 합니다. 죄악도 감 추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이 들면 우리는 능력 받은 사람을 찾아가서 그가 내 병을 치유해 주기를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줍니까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를 않고 내 주권만을 인정 을 합니다. 반드시 이 질병에서 나아야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내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강요를 합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없이 아예 질병 문제를 의학적인 판단에 맡겨 버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병이 들면 병든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와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사정이 이렇습니다."라고 고백 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보십시오, 오늘 3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든 것을 모르고 그 집에 들 어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예수께 고하였습니다. 병이 든 베드로의 장모는 꼼짝 할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병든 사실을 알고 계셨겠지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 집안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 상황이 이렇습니다"하고 이 야기 한 것을 봅니다. 본문을 더 내려가 보면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저녁때 쯤에서 각색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불치병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추한 병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각색의 그 모습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거기에 문제의 해결점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병이 들 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왜'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앞 에 자기의 문제를 고백하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이해되지 않으니까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합니까"하고 통곡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오래 계속 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 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어서 힘들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간 병든 사람이나 친구들이 기도해야할 것은 주님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합 니까 그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내가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친구가 병이 들었습니까 이렇게 기도해 보십 시오. '주님 우리 친구가 이런 병에 들었습니다. 낳게 해주십시오.' 그런 기도 도 중요합니다만 그런 기도와 함께 한 번쯤은 이렇게 해 보십시오. '주님 내 친구가 이런 병에 들었습니다. 주님 제가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 까 오늘 제가 그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은 대답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찾아가서 기도 해 주어라.' 아니면 '조그마한 책을 사서 그에게 찾아가서 위문을 하여라.' 아니면 '여기서 하루정도 금식을 하여라.' 혹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서 깨죽이라고 쑤어서 갖다 주어라.'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주님과 교제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렇 게 말씀하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얘야 나는 너를 통해 그 사람을 고치기를 원한다. 오늘 나 여호와가 너를 고친다고 기도해 주어라." 우리는 이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오늘도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한계상황 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송한 말입니다만 병들어 죽을 사람은 죽어 야합니다.
그런데 안 죽으려고 몸부림을 치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질병을 사용하셔서 그 몸을 성결케 하시고 그 영혼을 순결하게 만들어서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시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병들어 고통하는 그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 제가 어 떻게 하여야합니까" 여쭈어 보고 하나님의 의도를 그대로 표현하는 하나님 의 도구가 되어야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성결함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중한 열병에 시달리던 베드로의 장모가 어 떻게 고침을 받습니까 말씀 한마디로 병이 나았습니다. 몰려드는 각색병자 어떻게 병이 나았습니까 안수하심으로 병이 나은 것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 가 깊게 생각을 해 보아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인격으로 보 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질병을 '꾸짖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모든 병든 사람들에게 활동을 하던 귀신들에게도 예수님은 꾸짖어 서 그들을 잠잠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귀신의 입에 족쇄를 채웠다는 말입니다. 귀신이나 질병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왜 병이 들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 니까 치료받기 위해서요 아닙니다. 주님의 권세가 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인격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질병을 꾸짖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바이러스 하나를 인격으로 보시고 주님은 그 바이러스에게 명령하 시니까 그 바이러스가 순종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 아야 합니까 소위 요즘 은사가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의 바이 러스 덩어리를 인격체로 보는 분을 보셨습니까 저는 못 보았습니다. 인간의 오기와 자만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도 질병 중에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그 질병 가운데에 예수님의 권세가 임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떠한 질병도 예수님의 권세가 임하시면 본문의 베드로의 장모처럼 낫던지, 아니면 각색병이 들었던 사람들처럼 낫던지, 아니면 바울처럼 약할 그때에 강한 하나님의 권세를 통해서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든지 주님의 방법대로 우리를 다스려 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권세가 다가오면 얼마나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성질이 아 주 급한 사람들도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마음이 아주 온유 해 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흔히 옛날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흘러 내려오는 속 담이 있습니다 귀신도 병이 들면 착해진다.는 것입니다. 귀신도 병이 들 면 착해집니다. 질병이 하나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질병 중에 임한 하나님의 권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격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흘러나 옵니다. 얼마나 큰복입니까 고린도후서 12:9 말씀에 바울은 고백을 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 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 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 라" 하였습니다. 내게 약함이 있습니다. 질병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 백을 합니다. "이제는 나는 이 약한 것을 고쳐달라고 하지를 않겠다. 이 약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권세가 내게 머무시니 나는 이것이 더 귀하고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세 번째로 질병이 들었을 때에 기억해야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 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베드로의 장모는 났는 즉시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로 악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이 정복을 당하거나 힘을 쓰지를 못하면 이 제는 권세 있는 예수님을 위해 나의 힘과 시간과 몸을 다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병을 낫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 원해서 병 낫기를 원하고, 고통 없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병 낫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기억 을 하셔야 합니다. 병에서 나음을 얻었어도 삶의 중심이 내가 되면 병은 또 다시 찾아옵니다. 여러분 사람은 나만을 위해서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너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임을 성경은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병이 나았다고 한들 어떻게 금방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갑자기 찾아온 장정 다섯 명입니다. 어 떻게 갑자기 그들의 식사를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압니다. 갑자기 집에 어른 손님 다섯 명이 찾아와 보십시오. 당 황하니까 헛손질이 많아서 음식 간도 못 맞추겠고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혼 이 났다고 합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중노 동입니다.
그런데 그 중한 열병에서 탈진되어 버린 사람이 주님의 말씀으로 겨우 일어난 사람이 그 즉시 주방으로 들어가서 다섯 명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대도 주님은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십니다. "아, 좀 쉬어라."하시지 않으 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그것은 무리다. 우리는 그 냥 갈 터이니 쉬어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장소와 시간에 문제가 아닙니다. 병에서 금방 일어났어도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즉시 하여야합니다. 누구든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주님께 헌신하기를 원하고 주님을 섬겨야 온전한 강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의 조그마한 도시에 한 노인이 노환 때문에, 특별히 관절염 때문에 고생 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통증이 너무나 심하니까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아 인생은 어느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위해 서 섬겨야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주님을 위해 섬긴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 가를 생각을 해보니까 별로 할 것 없습니다. 늘 몸이 아프지요 관절염이 오 면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요
그런데 한순간 통증이 지나면 자기가 젊었을 때에 피아노를 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상쾌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방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병든 사람과 낙담한 사람에게 전화를 통하여 찬송가를 피아노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무료봉사입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이 전화로 전화를 걸어 주십시오. 하고는 전화번호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3일만에 한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사람이 원 하는 찬송가를 연주해 주었습니다. 차츰 그 소문이 퍼져가기 시작을 하는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하루에도 그저 10여명씩 전화가 오기를 시작하였 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오면 전화가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화한 사람이 자신의 속사정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속에 감추었던 이야 기, 억울한 이야기, 분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할 머니는 자기의 질병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할머 니는 수십 통씩 결려오는 그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분주했습니다. 관절염으로 고통하던 할머니 가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녀가 80살이 되어 돌아가셨을 때 온 도시는 초 상집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수백의 사람이 그의 운구 행렬을 따랐고 그녀에 게서 피아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섬김 속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결론을 짓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모든 병자를 고쳐주지 않 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사건을 통해서 질병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동부의 가족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정말 잊지를 마십시오. 질병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 생각으로 우리의 관점이 바꾸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 지만 끊임없이 절망하고 낙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질병은 분명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질병을 하나님께 아뢰고 서로 모여서 그 질병을 아뢰고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해 기도를 하는 삶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병은 숨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게 건강이 있을 때에, 혹은 내게 질병이 있어 고통이 있지만 아직 힘이 있을 때에 질병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봉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순간마다 주 님은 우리를 통해 늘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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