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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의 신비 (창27: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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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조상들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은 허기진배를 채울 양식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날 배부르게 먹을 양식이 없 었습니다. 먹는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요, 먹고 일하기 위해서 먹었 습니다. 그러나 설날이 오면 배부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잇는 음식 을 만들어 즐기기 위해 먹었습니다. 설날이 오면 별미를 만들어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설 날이 오면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먹으며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설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에게는 별미를 먹는 즐거움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별미는 보통 일용할 양식이 아니요 즐거운 잔칫집 음식이요, 특별한 날에 만들어 먹는 음식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별미를 만들어 먹기가 어렵스빈다. 부자들은 별미를 만들어 먹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므로 별미는 출세하고 복받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요 존귀한 자가 받는 식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별미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그 식탁에 초청하십니다. 성경은 별미 축복의 신비한 말씀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별미를 알았고, 그 별미를 먹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 아산에서 별미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드린 별 미를 받으시고 만족하셨습니다. 별미의 비밀을 아는 것이 은혜와 축복이며 별미를 모르면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양의 고기로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할 때 맏아들 에서를 불러놓고 "내 아들아 나는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너는 들에 가서 사냥하 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고, 내 마음껏 너를 축복하게 하라."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에서는 들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잡아오라 하고 그것을 별미를 만들어 줄 것이니 네가 축복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이때 야 곱은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형 에서는 털 난 사람이요.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속이는 자로 탄로되어 축복은 커녕 저 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아들아 염려하지 마라."하고 양을 잡 아 오게 하여 별미를 만들어 에서의 좋은 옷을 대신 입히고 양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를 들고 아버지에게 나 아가게 한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 사냥한 고기 로 별미를 만들었사오니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하였 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가까이 오라 하고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냐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하였습니다.
야곱이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아가 니 이삭이 만지며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이 에서의 손이로다."하였습니다. 손이 에서의 손처럼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을 하였 습니다. 이삭은 야곱의 별미를 먹고 마음껏 축복을 하였습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집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내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 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 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7-29) 이와같이 야곱은 별미를 만들어 드림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았고 장자의 명분을 얻은 확증을 받은 것입니다. 별미에 대한 깊은 뜻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먹으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육신적인 별미를 만들어 먹고 힘을 얻으 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손들에게 축복할 힘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서 먹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육신의 별미는 될지언 정 하나님의 별미는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여종 리브가는 위대한 조부 아브라함의 축복이 에서에게 가서는 안 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리브가는 태중에서 두아이가 싸우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진통이 심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니 "네 태중에서 두 나라가 싸우는구나. 두 민족이 나뉘겠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두 아이가 태어난 자라는 것을 보니 큰 아들은 들사람이요 작은 아들은 장막에 거하는 것을 보니 큰 아이는 소망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서는 들사람이요 사냥꾼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단팥죽 한그릇에 팔아버 리는 이런 망령된 자를 축복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잘 알고 있 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아브라함의 가문을 망치게 될 것을 안타까이 여긴 리브가는 야곱에게 축복을 돌려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별미는 양의 고기일 뿐입니다. 양의 고기로 별미를 만 든 것은 리브가의 지혜이지만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입니다. 이삭은 양의 고 기로 만든 별미를 먹었고 양의 가죽으로 덮인 야곱을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양의 고기를 별미로 먹었습니다. 양의 고기를 먹는 것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양의 가족으로 덮인 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구속의 은총으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별미인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의 성찬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이 별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 게 주신 신비한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땅에 있는 것 중에서 흠향할 수 있는 유일한 별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양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 베풀어 준 은총은 양을 잡아서 인간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힌 일이었습니다. 성서 에 기록은 없지만 분명히 아담과 하와에게 양의 고기를 먹게 하였을 것입니다. 피흘린 어린 양의 가죽은 옷으로 입히고 고기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아담을 인류 최초의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은 계속적인 가죽옷을 입고 양의 고기를 먹는 은총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아담의 두 아 들은 이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아들 아벧 은 양의 별미를 알고 양 치는 자가 되었고 가인은 들에서 나는 농산물로 먹 고 사는 들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벧의 제사를 열납하고 가인의 제사는 외면했습니다. 에서는 들사람이 되어 들에서 나는 고기를 사냥하여 별 미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장막에 거하다가 양의 고기로 이삭 에게 별미를 만들어 드림으로 결국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양의 고기로 만든 별미를 먹고서 축복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냥한 고기를 먹고 힘을 얻어 축복한다면 들사람으로 복되게 사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 받아야 할 축복은 양의 고기 를 먹고 힘을 얻어 받아야 할 복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먹고 축복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양으로 만드러진 별미를 먹 고 축복하게 한 것입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이 말은 본질적으로 야 곱은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손을 양의 가죽으로 덮었기에 축복 을 받은 것입니다.인간은 양의 별미를 먹은 자만이 축복할 수 있고 양의 별 미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만이 별미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최대의 축복은 양의 별미를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지 못한 자는 곧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축복의 현장인 모리아 산상에서 별미의 신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는 순간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독자 이삭을 손대지 마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하셨고 눈을 들어본즉 숲속에 뿔달린 어린 양이있 어 그것을 보고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를드렸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별미로 드려질 양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브 라함의 후손은 양의 별미를 먹는 민족으로 축복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양의 별미를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 엘 민족이 받은 신비였습니다. 애굽에서 430년동안 노예살이를 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고자 이 별미를 먹게 하셨습니다. 양을 잡아 피를 흘려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 에 구원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별미를 먹고 출애 굽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난 신비한 비밀은 양의 별미를 먹는 데 있었습니다. 이 양의 별미를 먹은 사람은 바로가 손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양의 별 미를 먹는 사람을 자기 백성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축복은 이 별미를 먹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의 조부 아 브라함으로부터 별미를 먹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거기에서 맛을 잃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버렸던 것입니다. 다윗은 별미를 즐거워했으나 사울은 이 별 미의 맛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버림을 당했습니다. 별미는 하나님의 은총의 양식이요, 이 양식을 즐겨 먹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늘의 은혜 를 입고 살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 별미를 먹을 수 없느니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하늘의 별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유대인의 양식이였습니다. 그것은 박한 식물로,싫증을 느꼈습니다 (민 21:5).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으나 죽었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것도 다 죽는 양식입니다. 인간이 먹고 산 양식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들에서 자라고 들에서 만들어진 양식은 별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별미로 먹을 것이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모든 썩은 양식일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별미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2-33).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 6:51)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 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너를 살리 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4)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요, 하나님이 주신 별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별미로 먹기까지는 인간은 참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은 어 린 양의 별미요, 내가 먹을 수 있는 별미요, 내가 먹을 수 있는 별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별미로 먹는 자들이 요, 이 별미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 별미를 먹는 자들은 별세의 사람이 됩니다. 별미는 특별한 사람들이 먹는 양식입니다. 이 양식을 먹는 자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게 됩니다. 사는 맛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 별미를 먹은 사가 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별미는 인생을 즐겁게 하는 양식입니다. 만족케 하는 양식입니다. 인간이 먹음으로 힘을 얻고 살맛이 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니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 니 하니라"(요 6:35) 하였습니다. 서양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의 양식을 빵으로 표현했지만 우리의 선배들은 떡으로 표현했습니다. 떡은 별미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식 탁은 밥이나 평범한 음식으로 차려지지만 잔칫집은 반드시 별미로 만들어진 음식이 있어야 합니다. 별미에는 거의가 피흘리는 동물성의 음식이 포함되 어 있습니다. 식물성은 일용할 양식이요 별미는 하늘 양식으로 온 어린양의 생명입니다. 일상적인 음식은 배부르게 할 수 있지만 즐겁게는 못합니다. 별미를 먹어야 기분이 나고 놀 맛이 나고 즐거운 마음을 얻게 됩니다. 별미 를 먹어야 놀이에 들어갑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 먹는 양식이 있고 놀기 위해서 먹는 양식은 자체가 즐 거움을 주는 별미여야 합니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별미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 별미를 먹고 즐거움을 얻으시 기 바랍니다. 이 별미를 먹고 춤을 추며 기뻐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유교는 제삿집 같고, 불교는 초상집 같고, 기독교는 잔치집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독교는 별미를 먹기 때문입니다. 이 별미를 맛본 사람들은 인생을 즐겁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 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
3) 그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했습니다. 다 윗은 하늘의 별미로 즐거워했습니다. 세상의 환난이나 고난이 그의 즐거움 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하늘의 별미를 맛보았기에 춤을 추며 살았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별미를 얻으려 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나는 보고 싶 은 것 다 보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어 보았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다누 렸다. 그러나 내가 이 손으로 한 모든 일을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은 결국 바 람을 잡는 헛된 일이었다."고 한 솔로몬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 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3)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땅의 별미로 안된다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사 냥한 고기로는 만족할 수 없고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별미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 별미를 맛본 자는 믿음, 소망,사랑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별미 를 먹은 자로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성찬을 받 은 자로서 사는 것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자는 먹는 음식이 성찬이요, 입는 옷이 성의요, 사는 집이 천국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보니 이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는 맛 이 달라졌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백성 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초대교회 사도들을 보십시오. 저들이 3년동안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닐 때는 은혜를 받지 못하여 답답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함으로 별 미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이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는 것이 온 통 축제였습니다. 저들은 감옥에 들어가도 찬송했고,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은 별미가 되어 주셨기에 별미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별미 신앙을 마리아에게서 보았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분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만 두어라 저가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가 난한 자들은 항상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 을 다해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천하 어디서 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 라."했습니다. 마리아는 그 옥합을 깨뜨려 별미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별미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의 양식으로 받았기에 이제 그의 헌신 속에서 별미 의 신앙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 이라"하였습니다. 이렇게 별미 충성을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때 충성 하다가 곧 시들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낙심합니다. 그 이유는 별미 신앙을 갖지 못했기때문입니다. 별미를 먹은 자는 별미 충성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별미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별미를 먹었기에 별미의 맛을 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별미 신앙 고백을 한위 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 이름은 '면류 관'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님이 충만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은 천사처럼 빛이 났고, 자기를 죽이는 자들이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빌 고 원수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별미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별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에게서는 맛볼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원수까지 용서하는 사랑이 순교 현장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별미 사랑을 맛본 사람이 있었으니 곁에 있었던 청년 사울이었습니다. 청년 사울은 스데반집사가 숨질 때까지 원수를 사랑하는 그 영혼의 향기를 호흡한 이후에는 제정신이아니었습니다. 자나깨나 스데반 집사의 얼굴과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고 그 음성이 고막을 울리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은 스데반의 혼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드 디어 다메섹 도상에 거꾸러지고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별미를 먹은 사람은 그가 있는 곳마다 별미의 맛 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맛보게 합니다. 내가 사는 맛이 달아야 다른 사람 에게 좋은 맛을 보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별미의 맛으로 사는 성도가 되 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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