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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세어보는 믿음 (창15:1-7)

본문

오늘 읽은 말씀은 아브라함에 나타난 하나님의 재 확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75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하나님이 지시하는 때로 떠나 나섰습니다. 여러분 중에 일흔다섯살이 되는 분들이라면 더욱 실감 있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을 줄 압니다. 인생나이 일흔이 넘으면, 객지생활을 하던 사람도 고향이 그리운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75살이 될 때 까지 혈육이 없어 형님의 아들 조카 하나를 다려다 양 아들로 키우는 때에, 하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였는가 하면, 이제 이후에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에 모래같이 번성 하리라고 하면서, 너는 본토 일가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었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자꾸만 흘러갔지만, 소식은 없었습니다. 티끌같이 많게 하겠다던 후손은 커녕 당장 아내 사래는 나이 많아 잉태할 수 없게 되어 갔습니다. 함께 하던 롯도 이제는 삼촌과 함께 지낼 수 없다고 목자들 핑계를 대며, 갈라서 나갔습니다. 롯을 떠내 보낸 후, 아브라함은 인간적 고독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 하나님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 하신 말씀이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한 말을 자세히 보면, 굉장히 자식 때문에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뭍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 아브라함은 거의 불가능이라는 절망 중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보통 절망을 캄캄한 밤에다 비유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밤을 맞나는 경두들이 종종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여 어디에서 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그러한 절박한 현실을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 보면, 낙심하거나, 자포자기 합니다. 젊은이들도, 나이든 장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생의 밤이 오면, 모두 낙심합니다. 또 그것이 인간입니다. 제아무리 큰 소리치던 사람들도 정작 어두운 밤과 같은 현실이 자기에게 닥치면, 모두 고민하게 되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싸우게되고, 스스로 목숨까지도 버리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인간이기에 고민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나는 무자하오니, 조카놈 하나를 아들로 키우려고 했지만, 그놈도 제길 찾아 나갔으니, 이제 내 대를 이을 후사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심기가 그렇게 편하지 못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여러분에게 이러한 경우들 당해 보십시오. 언제나 마음이 편할리 없습니다. 때때로 짜증도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생길 것입니다. '왜 내게는 말 뿐이지 아직도 현실로 나타내 보여주지 아니합니까''이 다음에 보지는 것, 나 이젠 더 못 기다리겠습니다.''주실려면, 지금 당장 주셔야지, 내 아내가 생산할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이번에 까지 또 주지 않으면, 난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등등 믿는 우리들도 하나님께 이러한 불평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의 밤을 맞을 때 마다, 아버지께 원망 많이 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무조건 '걱정 마라라! 하나님이 다 주실 것이란다' 할 때 마다, 짜증을 부렸습니다. 당장에 마련해 놓은 돈이 없으면서도 걱정 말라던 아버님의 신앙을 지금 생각해 볼 때, 이제야 그것이 무엇이었던 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사랑을 무척이나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마흔 살에 얻은 막내둥이 자식이었기에 저를 품고 아버님이 주실 수 있는 좋은 것은 다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철 없는 자식은 조금만 급하면 아버지께 달려 갔습니다. 대부분 돈이지요. 공부하는 동안, 이런저런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한번더, '거 야단인데. 얘 난들 어떻게 하겠니. 네가 알아서 해라' 하지 않고, '매번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이 다 마련해 주실 것이다'라고. 나는 이 말이 제일 짜증 서러웠습니다. '하나님이 뭘 어떻게 해 준다는 것입니까 ' '감나무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낳지, 그런 말은 듣기 싫어요!' 라고.어떤 때는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울기도 했습니다. 왜남들은 다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들을 잘 만나 고생도 안하고 척척 필요할 때 마다, 걱정없이 쓰는데.나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종의 가정이라면,하나님이 왜 이렇게 언제나 모자라게 주는가 고그래서 나는 목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다 한번은 지나가야 할 과정으로 생각 됩니다. 아브라함도 솔직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향을 버리고 나왔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좀 흔들렸던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인생은 성숙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는 줄 압니다. 어떻게 완벽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은 밤 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들을 세어보았습니다. 대부분 현실속에서 낙심하는 사람들은 캄캄한 것 만 생각하고, 밤이 되었다는 그것만 보고 좌절하지만, 그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왜 밖으로 끌어내어 밤 하늘을 보게 하였겠습니까 당신의 약속이 저 별들처럼 초롱초롱 영원히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밤에 하늘을 쳐다보는 믿음과 함께 들려오는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무개 아무개야! 너 왜 낙심하느냐 너왜 밤이 되었다고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느냐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쳐다 보아라! 그리고 별들을 세어 보아라! 저 별과 같이 너를 창대케 하리라'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란 밤을 맞을 때 밤하늘을 쳐다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밤이 되었기에 문제가 아니라, 밤에 하늘을 보는 자들이 없기에 문제요,또 그 밤하늘에 빤짝이는 별들을 세어보는 비죤의 사람들이 못되기에 문제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방황할 때, 그리고 낙심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에 쳐해 있을 때, 가장 가까이 와 계시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가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였겠습니까 '네 자손이 별과 같으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별을 세는 현실은 밤입니다. 아직도 별은 손에 잡힌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별을 보면서 약속을 현실로 받아 드렸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 캄캄한 밤을 맞은 분들이 계십니까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별을 밤하늘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을 말합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에게는 참된의미에서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Chicago에 한 교도소에서는 교도소 창립일을 맞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죄수들에게 좋은
IDEA가 없는 가고 물었다고 합니다. 200명의 죄수들은 무엇인가 귀속말로 서로 연락하고 구호에 따라 일제히 강당이 떠나가라고 소리지르기를 "대문을 열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대문이 열리는 희망! 그것이 죄수들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문이 열리는 그날을 바라보는 희망이 없이는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토마스 카라일은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라고 했습니다. 어떤 희망이든 희망이 인간의 삶의 기초란 말입니다. 세계2차대전때 영국과 미국의 포로 20.000명이 수용되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무려 8.000명의 포로가 죽었는데 그 사인이 영양실조나,질병이나, 과로가 아니라 오히려 '절망'때문이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또한 나치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600만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되었을 때, 그들이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 벽에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밑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삭여져 있었습니다. 비록 태양이 우리에게 비쳐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이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우리는 이 이름 모르게 살아져 간 지하감방의 죄수의 신앙처럼, 현실의 장벽 넘어의 세계를 보는 V
IS
ION 의 눈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나 비록 지금 현실의 밤을 마지 했다 할지라도, 그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들을 셀 수 있는 마음의 희망과 용기와 확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밤을 마지 했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계십니까여러분이 맞은 밤에서 별을 보는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 몸이 이제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사망선고를 받았을찌라도, 내 영혼의 세계에서 반짝이는 저 숱한 별들을 셀 수만 있다면 그것이 위대한 승리입니다. 그 소망을 누가 뺏을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왜 신앙이 필요합니까 이렇게 때때로 자문해 보기도 합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밤이 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보통 대낮에는 별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한껏 인간적인 가능의 기분에 들떠있는 한, 신앙 같은 것은 보이질 아니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밤을 자원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생에게는 누구에게나 밤은 찾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밤이 온다는 것이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밤이 오면 의례히 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러기에 신앙으로 산다는 것이 그처럼 위대한 것입니다. 제아무리 신앙을 비방하고,쓸데 없다고 부인해도, 그도 인생의 마지막 숨결이 거칠어지는 순간!, 세상의 것은 모두 보이질 않게 될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때 그 눈에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별을 볼수있는 눈!, 그것만이 위대한 승리자일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재 확인하고 믿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밤하늘에 별을 보면서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습니다. 비록 연약한 인간이기에 밤이 오면 흔들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다음순간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칭의일 뿐입니다.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몇번이고 흔들이고, 몇번이고 좌절하고, 몇번이고 아니오! 했었을 망정,지금 이 순간, 별을 세어보는 믿음으로 다시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이 바로 여러분과 저를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시 재 확인된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이 거룩한 계절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는 성부 하나님의 아픔이 있는 사랑을 만분의 일이나마 깨달아, 다시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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