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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성숙 (롬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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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아주 중요한 기독교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는 루이스(C.S. Lewis 1900-1963) "우리는 지금 알과 같은 존재들이다.그러나 그냥 무한정 평범한 보통의 알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알은 부화되거나 썩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무한정 보통의 알로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화되거나 썩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 말은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는 "하면 좋은 것"(Nice to Do)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Survial Issue)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부정적 변화가 아니라 긍정적 변화입니다. 사람은 가룟유다 처럼 변화되기도 하고 베드로 처럼 변화되기도 합니다. 사울은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한다느니 국가가 변화가 되어야 한다느니 혹은 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변화의 우선 순위는 나 자신입니다.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부터 입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더 나아가서는 행복한 삶을 위해 긍정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다섯 가지 실천 원칙을 소개하였습니다. 한번 들어봅시다.
첫째, 마음에 숨어있는 욕망을 찾아라. 즉 무엇을 하며 일생을 보낼 것인가를 찾아라.
둘째, 잘하는 것을 찾아라. 즉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인가를 찾아라.
셋째, 욕망과 지능을 결합하라. 즉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결합하라. 이 대목은 가장 창조적인 작업이다.
넷째,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라.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다 쓰지 말고 스스로의 명령에 따라 시간을 써라. 하루에 적어도 2 시간은 자기만을 위해 써라. 다섯째, 당신이 선택한 것에 인생을 걸라.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오직 그 길을 가라.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 2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변화 (박종렬 목사 . 충무교회 원로목사, 증경총회장) 배운 자 답게 살면 지식이 빛이 나도 앎 따로 삶 따로면 배운 게 욕이라나, 행함없는 이론신앙도 그런 건가 하노라. 기독자 개개인이 성전화되기 전엔 동네마다 교회당이 총총히 들어서도 세상이 그런 것으로는 변화될 리 없을러라. 주일에서 평일로 경건이 연결되고 교리에서 생활로 신앙이 고백될 때, 변화가 여기저기서 소리없이 일러라. 세상이 바로 되길 남에게 기대 말고 나부터, 지금부터, 가능한 데서부터 하나하나 고쳐가는 게 가장 좋은 첩경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도 우리는 변화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크리스챤이 천만명이 넘었는데도 이 나라는 별로 변화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종렬 목사님의 시조는 변화되기 위하여서는 몇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변화되기 위하여서는 앎과 삶이 따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따로 떨어지면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이론신앙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운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배운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습니다.
둘째 변화되기 위하여서는 기독자 개개인이 성전화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동네마다 총총히 교회당이 들어선다고 해도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변화되기 위하여서는 교리에서 생활로 신앙이 고백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일에서 평일로 경건이 연결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일 교인 따로 있고, 평일 교인 따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리를 많이 아는 것으로는 안되고 생활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남이 변화되기를 먼저 바라지 말고 나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의 변화만을 요구하고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로마서의 말씀도 변화를 "너희는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1-11장은 교리에 관한 말씀이고, 12-16장은 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리만 가지고는 변화가 될 수 없습니다. 생활이 연결될 때만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변화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변화를 받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힘이 없습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 계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알이 스스로 변화하려고 하면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하여서는 어미 닭이 알을 품어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주면 일정 기간이 지나 알 속에서 새생명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전 5:17)고 하였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변화하라고 하지 않고 "변화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윗은 "주여, 나를 새롭게 하소서"(시51:10)라고 기도했던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잘못된 성품도 변화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된 생각도 변화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거친 언어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사고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위선적인 행위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당위성만 강조하지 않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절 하반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을 바꿔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생각이 먼저 변해야 행동이 변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 것처럼 , 각 지체는 각각의 기능을 가진 것처럼 교회라는 공동체는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몸의 지체가 된 성도들은 다른 지체인 다른 성도를 귀하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함부로 욕하지 말고, 흘뜯지 말아야 합니다. 비난하고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지체를 없수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받은 은사대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은사대로 봉사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맞게 봉사하면 됩니다. 본문 6-8절에 보면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사를 참견하지 맙시다. 제 할 일만 잘하면 됩니다.
넷째는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애하며 존경하기를 먼저 합시다. 형제사랑도 먼저하고 우애하는 것도 먼저 하고 존경하는 것도 먼저 하십시다. 인사도 먼저 합시다. 남에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고 먼저 인사합시다. 남을 바꿔놓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내가 변하면 됩니다. 다섯째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 봉사에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변화를 받으면 우리의 신앙 생활을 성숙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좀더 성숙하게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해 한해 지날 때 마다 우리은 성숙을 향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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